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호숫가를 걷다가 문득 한 송이 꽃에 시선이 머물렀다. 빗물에 젖은 꽃잎은 언뜻 보면 연약해 보였지만, 이상하게도 그 모습은 더 선명하고 더 또렷했다. 마른 날보다 오히려 비 오는 날 꽃의 존재감이 더 깊게 다가오는 것은, 아마도 젖음과 흔들림 속에서도 자기 빛을 잃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에 나오는 구절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시가 오래 살아남는 이유는 결국 사람의 마음속에 이미 자리 잡고 있던 진실을 정확하게 건드리기 때문일 것이다. 노래도, 시도, 글도 많은 사람의 공감을 받을 때 널리 퍼진다. 그것은 단순히 표현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삶의 본질과 이어지기 때문이다.
도종환 시인은 꽃을 보며 삶을 읽었고, 흔들림과 젖음 속에서 오히려 더 단단해지는 존재의 진실을 발견했다. 비 오는 호숫가에서 마주한 꽃 한 송이는 그 시인의 시선이 얼마나 세심하고 깊었는지를 다시 한번 더 느끼게 했다.
우리는 비에 젖으면 먼저 불편함을 생각한다. 축축하다고 말하고, 흐린 날씨를 원망하며, 예상하지 못한 젖음을 시련처럼 받아들인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을 달리해 보면, 비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또 하나의 선물일 수도 있다.
식물에게 빗물은 단순한 물방울이 아니라, 자기를 자라게 하는 재료다. 그 물은 뿌리에 스며들고, 줄기를 타고 오르며, 광합성의 한 부분이 되어 끝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한다.
사람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다. 오늘 내 삶을 적시는 비가 있다면, 그것을 무조건 불행이나 시련으로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때로는 내가 원하지 않았던 젖음과 흔들림이 오히려 내 삶을 더 깊게 만들고, 나를 더 단단하게 세우는 과정이 될 수 있다. 눈앞의 불편함만 보면 빗물은 단지 축축한 고생처럼 느껴질지 모르지만, 조금 더 멀리 보면 그것은 결국 열매를 위한 준비일 수 있다.
젖었다는 것은 무너졌다는 뜻이 아니다. 흔들린다는 것을 두고 실패했다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것은 살아 있다는 증거이고, 자라는 과정이다. 비를 맞은 꽃이 더 깊은 빛을 품듯이, 사람도 시련의 과정을 지나며 그것을 더 따뜻한 향기를 품는 계기로 승화해 낼 수도 있다.
삶에서 주어지는 모든 것을 양분으로 바꿀 수 있는 사람, 눈물도, 아픔도, 흔들림도 결국 성장의 재료로 삼을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복 있는 사람이다.
오늘 비에 젖었다고 너무 쉽게 불평하지 말자. 그것은 하늘로부터 내리는 복이기 때문이다. 그 빗물이 내 삶의 뿌리를 적시고, 내 안의 광합성을 도우며, 언젠가 더 좋은 꽃과 더 풍성한 열매로 이어질 수 있다면, 오늘의 젖음은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닐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