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유산청(청장 허민)은 6월 22일 오후 2시 국립고궁박물관에서 ‘2026년 K-무형유산 지식자원 기초조사’ 사업에 참여하는 전국 10개 대학의 12개 학과와 연구소와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올해부터 새롭게 시작하는 ‘2026년 K-무형유산 지식자원 기초조사’ 사업은 무형유산 분야의 청년·대학생 연구자들이 전국 지방소멸 위기 지역의 75세에서 90세 사이 고령인구를 직접 찾아가 그들의 삶의 이야기를 조사하고 기록한 뒤, 이를 짧은 영상이나 웹툰 같은 디지털 콘텐츠로 만드는 사업이다.
이 사업에는 서울대학교 민속학연구센터, 강원대학교 문화인류학과, 충북대학교 문화유산연구소, 한국교통대학교 한국어문학과, 충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전남대학교 민속학연구소와 국어국문학과, 국립목포대학교 인문콘텐츠학부 문화유산 전공과 문화와자연유산연구소, 국립경국대학교 문화유산 전공, 경상국립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민속무용예술학과, 제주대학교 국어문화원 등 전국 10개 대학이 참여하며, 청년·대학생 연구자만 100여 명에 이른다.
이 사업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조사를 한 번 더 한다는 데 있지 않다. 지금 지방소멸 위기지역에서 가장 빠르게 사라지고 있는 것은 인구만이 아니다. 그 지역만의 생활 감각, 말과 표정, 손끝의 기술, 공동체의 기억도 함께 사라지고 있다.
특히, 75세에서 90세 사이의 고령층은 근대 이후 한국 사회의 격변을 몸으로 통과해 온 세대이자, 지역사회가 오랫동안 축적해 온 삶의 지식과 정서를 가장 깊이 간직한 세대다. 이들의 경험은 단순한 개인의 추억이 아니라, 지역이 어떻게 살아왔고 무엇을 지켜 왔는지를 보여 주는 사회적 기록이다. 따라서, 그 삶의 이야기를 듣고 남기는 일은 곧 지역의 미래를 위해 과거의 숨은 자산을 확보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이번 협약은 국가유산청과 조사 참여 대학 간 유기적 협력체계를 만들고, 미래 무형유산의 가치 확산을 도모하기 위해 마련됐다. 협약의 주요 내용은 권역별 연구 네트워크 구축 협력, 조사자료와 디지털자료의 공유 및 적극적 활용, 사업의 홍보를 통한 무형유산 가치 확산 등이다.
여기서 눈에 띄는 것은 ‘미래 무형유산’이라는 관점이다. 무형유산은 흔히 오래된 것, 전통적인 것, 이미 가치가 확정된 것만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이번 사업은 오히려 현재 살아 있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 앞으로 무형유산으로 읽힐 가능성이 있는 자원을 발굴하려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다시 말해 무형유산을 박제된 과거가 아니라, 이 순간에도 형성되고 있고 곧 사라질 수 있는 현재의 삶으로 본다는 것이다. 이는 무형유산 정책의 시선을 과거 보존 중심에서 동시대 기록과 해석의 영역으로 확장하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이 사업에 청년·대학생 연구자들이 대거 참여한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지역 고령층의 삶을 기록하는 일은 단순한 자료 수집이 아니다. 그것은 세대와 세대가 직접 만나 서로의 시간을 건네받는 과정이기도 하다.
청년 연구자들은 단지 조사자가 아니라, 지역의 기억을 다음 세대로 옮기는 매개자가 된다. 고령층의 이야기와 청년 세대의 감각이 만날 때, 무형유산은 과거형 기록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해석과 공감의 언어를 얻게 된다. 짧은 영상이나 웹툰 같은 디지털 콘텐츠로 확장하는 기획도 이런 세대 간 번역의 성격을 잘 보여 준다. 과거의 삶을 현재의 플랫폼과 감각으로 다시 풀어내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는 문화유산 정책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를 시사한다. 과거에는 발굴하고 지정하고 보존하는 행정이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기록하고 해석하고 공유하는 일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특히, 지방소멸과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현실에서는, 사라진 뒤에 안타까워하기보다 사라지기 전에 기록하는 일이 훨씬 시급하다.
무형유산은 유형유산보다 더 취약하다. 건물은 비어 있어도 남아 있을 수 있지만, 삶의 이야기는 말해 줄 사람이 떠나면 함께 사라지기 때문이다.
사업 총괄과 참여 대학 관리를 맡은 허용호 한국민속학회장은 “이번 업무 협약을 계기로 지역 간 무형유산 연구 교류가 활발해지고, 무형유산 분야의 청년·대학생 인재가 많이 육성되기를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이 사업은 기록 사업이면서 동시에 인재 양성 사업이기도 하다. 무형유산 연구는 현장성과 긴 호흡이 필요한 분야이지만, 젊은 연구자 유입이 충분하지 않으면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대학을 거점으로 연구 네트워크를 만들고, 청년 연구자를 현장에 참여시키는 방식은 무형유산 연구 기반 자체를 넓히는 효과도 기대하게 한다.
황권순 국가유산청 무형유산국장은 “이번 업무 협약을 통해 그동안 지역에 숨겨져 있던 미래 무형유산 자원을 발굴하고, 이렇게 확보된 자원이 향후 K-문화를 선도하는 원천자료로 활용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K-문화의 힘은 화려한 산업적 성과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 바탕에는 한국 사회의 생활문화와 정서, 언어와 관계 맺기 방식, 공동체 경험이 있다. 그리고 그런 원형은 종종 가장 변두리처럼 보이는 지역의 일상에 살아 있다.
고령층의 삶을 기록한다는 것은 결국 한국 문화의 가장 깊은 저수지를 다시 살피는 일과도 같다. 앞으로 이런 자료가 영상, 웹툰, 교육 콘텐츠, 기록물 등으로 다양하게 확장된다면, 이는 단지 지역 아카이브를 넘어서 미래 문화산업과 사회교육의 중요한 자산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
국가유산청은 앞으로도 참여 대학들이 각 지역에서 무형유산 기초조사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적극 협력하고, 국가유산청과 각 대학에 축적된 역량과 자원을 활용해 무형유산의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가는 적극적 행정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방이 사라지기 전에, 그곳을 살아 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먼저 듣겠다는 것이다. 소멸 위기라는 말은 종종 숫자와 행정 용어로만 소비되지만, 그 안에는 평생 한 지역에서 살아 온 사람들의 말과 기억, 몸의 습관과 삶의 철학이 함께 걸려 있다. 그것을 기록하는 일은 단지 과거를 붙드는 일이 아니라, 앞으로 어떤 문화적 토대 위에서 미래를 세울 것인가를 묻는 일이다.
무형유산은 박물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도 어느 마을의 어르신 한 사람의 기억 속에, 손끝의 기술 속에, 살아온 시간을 풀어내는 말 한마디 속에 남아 있다. 이번 ‘K-무형유산 지식자원 기초조사’ 사업은 그 살아 있는 유산을 더 늦기 전에 사회의 공적 자산으로 전환하려는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