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장은 하루 만에 완성되지 않는다. 메주와 소금물을 항아리에 담은 뒤 계절의 변화를 지나며 발효와 숙성의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경복궁에서 참가자가 직접 장을 담그고, 그 장을 실제 장고에서 약 4개월 동안 숙성시킨 뒤 이듬해 봄 다시 찾아와 된장과 간장으로 가르는 특별한 체험이 열린다.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와(본부장 조규형) 국가유산진흥원(원장 이귀영)은 11월 4일부터 8일까지 경복궁(서울 종로구)에서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를 주제로 2026년 「궁궐 일상모습 재현 및 체험」 행사를 개최한다.
이번 행사의 가장 큰 특징은 평소 일반에 개방하지 않는 경복궁 장고(醬庫)를 활용한다는 점이다. 장고는 궁중에서 사용하던 장독을 보관하고 관리하던 공간이다. 궁궐을 왕과 왕비가 머물던 건축물로만 바라보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안에서 실제로 이어졌던 음식과 생활문화를 경험하도록 했다.
행사 기간 장고 일대에서는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를 소개하는 전시와 포토존, 소규모 체험극 등이 진행된다. 경복궁 관람객은 별도 참가비 없이 장고와 현장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다.
핵심 프로그램은 11월 6일부터 8일까지 열리는 ‘장 담그기’ 체험이다. 참가자들은 대한민국 식품명인인 기순도 전통장 명인에게 장의 재료와 제조 원리, 전통문화에 대한 설명을 들은 뒤 메주와 염수를 항아리에 넣어 직접 장을 담근다.
체험은 그날 끝나지 않는다. 참가자가 만든 장은 경복궁 장고에서 약 4개월 동안 발효·숙성된다. 이후 2027년 3월 5~7일로 예정된 ‘장 가르기’ 행사에서 다시 만나 숙성된 장을 된장과 간장으로 분리해 가져가게 된다.
이 과정은 전통 장문화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준다. 장 담그기는 재료를 섞어 음식을 만드는 단순한 조리과정이 아니라, 미생물의 활동과 온도, 시간의 변화가 함께 작용하는 발효문화다. 사람은 장을 담그지만, 완성까지는 자연과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가 2024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의미도 완성된 장류 자체에만 있지 않다. 장을 만들고 나누며 이어온 생활방식과 지식, 세대를 거쳐 전승돼 온 문화적 과정에 가치가 있다는 점을 함께 보여준다.
경복궁 장고라는 장소도 이러한 체험의 의미를 더한다. 문화유산 공간을 단순히 관람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과거 그곳에서 이루어졌던 생활을 오늘의 방문객이 다시 경험하면 궁궐은 ‘보는 유산’에서 ‘체험하는 유산’으로 넓어질 수 있다.
장 담그기 체험은 하루 4회씩 진행되며 회차별 2인 1조 10팀, 20명이 참여한다. 사전예매는 10월 21일 오후 2시부터 티켓링크에서 선착순으로 진행하며 참가비는 2인 기준 5만 원이다.
전통문화를 오래 기억하게 만드는 것은 설명을 많이 듣는 것만은 아니다. 직접 메주를 항아리에 넣고 계절이 바뀌도록 기다렸다가 다시 찾아와 장을 가르는 경험은 ‘발효’와 ‘전승’이라는 말의 의미를 몸으로 이해하게 한다.
경복궁 장고에서 시작해 이듬해 봄까지 이어지는 이번 프로그램은 문화유산이 과거의 모습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늘의 사람이 다시 시간을 들여 참여할 때 살아 있는 전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