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래드스톤이 서울 한남동에 새롭게 문을 여는 공간의 개관전으로 영국 현대미술가 에드 앳킨스(Ed Atkins)의 한국 첫 개인전 ‘1 day in space’를 개최한다.
8월 3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신작 영상 ‘Passive Mech’를 중심으로 사진, 조각, 프로타주 작업을 함께 선보이며 시간과 상실, 기억과 흔적, 영속성과 덧없음의 관계를 탐구한다.
에드 앳킨스는 그동안 ‘디지털 대체 수단(digital surrogate)’을 통해 현실과 가상의 경계, 인간의 존재와 소외를 다뤄왔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는 가상세계에서 한 걸음 물러나 카메라와 가족의 일상, 손으로 남긴 흔적이라는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시선을 옮긴다.
전시의 중심은 신작 영상 ‘Passive Mech’다. 작품은 덴마크 질랜드(Zealand)에 있는 작가의 주택 외부에 설치한 골판지 무대 세트가 한 달 동안 서서히 무너져 가는 과정을 타임랩스로 기록했다.
작가의 어린 딸 방 창가에서 1분마다 한 프레임씩 촬영한 4만 3,200장의 이미지와 다수의 오디오 클립에는 겨울이 봄으로 바뀌는 시간과 구조물의 붕괴가 함께 담겼다.
카메라는 여기서 단순한 기록 장비를 넘어 시간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눈이 된다. 무대는 대부분 비어 있지만, 날씨와 빛, 자연의 변화, 구조물의 쇠락이 그 빈자리를 채운다. 사진이 한순간을 보존하는 동시에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을 기록한다는 역설을 드러내는 것이다.
영상은 암전된 구조물의 후면 스크린에 투사된다. 골판지 무대를 뒤집어 놓은 듯한 설치는 영화관과 극장, 조종석과 침실을 동시에 연상시키며 관객이 ‘보는 사람’이라는 위치까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영상 속 일부 장면을 선별한 유니크 프린트 연작도 전시된다. 서로 다른 크기와 방식으로 출력된 사진들은 가족의 일상적 기록과 제도권 예술사진 사이의 경계를 오가며, 평범한 이미지가 어떤 순간 예술이 되는지를 질문한다.
가족생활에서 나온 사물들도 작품이 된다. 시리얼 상자와 동물 플래시카드 등 대량 생산된 생활용품은 본래의 용도에서 벗어나 작가와 아이들이 함께했던 시간을 기록하는 아상블라주(assemblage, 평범한 물건들을 모아 새로운 의미가 있는 예술작품으로 만드는 것)로 다시 구성된다.
가족이 사용한 침대 시트를 흑연으로 떠낸 실물 크기의 프로타주(Frottage, 물체의 표면 위에 종이를 대고 연필이나 목탄 등으로 문질러서, 그 표면의 무늬와 질감을 종이에 옮기는 미술 기법) 작업에서는 흔적의 의미가 더욱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신체는 화면에 등장하지 않지만, 표면에 남은 흔적은 오히려 그곳에 존재했던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존재와 부재가 동시에 기록되는 셈이다.
이번 전시는 첨단 디지털 기술을 다뤄온 작가가 오히려 사진과 사물, 마찰과 흔적 같은 원초적인 기록 방식으로 돌아와 ‘무엇이 남는가’를 묻는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기술이 모든 순간을 저장할 수 있는 시대에도 삶 자체를 붙잡아둘 수는 없다. 앳킨스의 작업은 사라지는 것을 기록하려는 인간의 욕망과 결국 남는 것은 이미지와 사물에 새겨진 불완전한 흔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함께 보여준다.
전시 개막에 이어 9월 1일에는 에드 앳킨스와 미디어 아티스트 김아영이 참여하는 아티스트 토크가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에서 열리며, 큐레이터 최장현이 진행을 맡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