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즈코리아 뉴스추천뉴스2026. 4. 8. 오후 2:36:18

도서관, 지역 기록 및 콘텐츠 제작 거점으로 확장

도서관은 더 이상 책만 빌리는 곳이 아니다, 지역의 기억을 깨우는 창작의 플랫폼이 된다

이도선 기자
도서관, 지역 기록 및 콘텐츠 제작 거점으로 확장
‘도서관, 로컬을 깨우다’는 익숙해서 오히려 보지 못했던 동네 풍경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작업이다

도서관의 역할은 어디까지일까. 오랫동안 도서관은 책을 읽고 빌리는 공간, 조용히 공부하는 공간, 필요한 정보를 찾는 공간으로 이해됐다. 

물론, 그 기능은 여전히 중요하다. 그러나 지역사회가 더 복잡해지고, 동네의 기억과 사람들의 삶이 빠르게 사라지는 시대에 도서관이 단지 지식을 보관하는 곳에만 머문다면 그 가능성은 너무 좁아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금천구립도서관이 4월부터 시작하는 신규 사업 ‘도서관, 로컬을 깨우다’는 도서관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을 한 걸음 더 앞으로 밀어낸다. 

이 사업은 주민이 직접 지역을 탐방하고 기록하고 콘텐츠를 만드는 과정을 통해, 도서관을 지역 기억과 생활문화를 생산하는 거점으로 확장하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금천문화재단 산하 금천구립도서관은 주민이 지역을 탐방하고 기록해 문화콘텐츠를 직접 제작하는 신규 사업 ‘도서관, 로컬을 깨우다’를 운영한다고 밝혔다. 

이번 사업에는 독산도서관, 가산도서관, 금나래도서관, 시흥도서관 등 금천구립도서관 4개관이 참여한다. 주민은 각 도서관에서 마련한 프로그램을 통해 동네 골목, 시장, 지역 명소 같은 생활문화 자원을 직접 들여다보고, 사진과 글, 기사, 영상, 잡지, 굿즈 같은 다양한 형식의 결과물로 만들어 내게 된다.

이번 사업의 특징은 분명하다. 단순한 체험 행사에 머물지 않고, ‘탐방-기록-제작-공유’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는 매우 중요하다. 많은 지역 프로그램이 잠깐 체험하고 끝나는 방식으로 운영되기 쉽지만, 기억과 콘텐츠는 체험만으로 남지 않는다. 직접 보고, 듣고, 정리하고, 표현하는 과정이 있어야 비로소 한 지역의 이야기가 기록으로 남고, 공유할 수 있는 문화자산이 된다. 

이번 사업은 바로 그 지점을 도서관이 맡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각 도서관이 선택한 주제도 흥미롭다. 독산도서관은 ‘사적인 골목길’을 통해 독산동 일대를 탐방하고 오래된 상점과 골목 풍경을 사진과 글로 기록해 ‘아트 포토맵’으로 제작한다. 

익숙해서 오히려 보지 못했던 동네 풍경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작업이다. 골목은 흔히 도시의 가장 작은 단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한 지역의 시간과 생활이 가장 진하게 남아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 골목을 주민 스스로 기록한다는 것은 사라지기 쉬운 동네의 표정을 공공의 기억으로 옮기는 일과 다르지 않다.

주민 스스로 기록한다는 것은 사라지기 쉬운 동네의 표정을 공공의 기억으로 옮기는 일이다

 

가산도서관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가산, 오늘을 쓰다 - 어린이 기자단’을 운영한다. 참여 어린이들은 지역 이야기를 직접 취재하고 기사로 쓴 뒤, 다시 숏폼 영상으로 제작해 도서관 안에 전시하게 된다. 

이는 단순히 어린이에게 글쓰기 활동을 경험하게 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지역을 관찰하고, 질문을 만들고, 그것을 기사와 영상으로 풀어내는 과정은 아이들이 자기 동네를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존재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해석하는 주체가 되게 한다. 

다시 말해 도서관이 어린이에게 독서교육만이 아니라, 지역을 읽는 법까지 가르치는 공간이 되는 셈이다.

금나래도서관은 ‘도서관 옆, 시장 이야기’를 통해 현대시장 상인을 인터뷰하고 현장을 기록해 잡지와 홍보 영상을 만든다. 여기에 더해 시장 활성화를 위한 굿즈 제작과 결과물 전시·공유까지 이어진다. 

시장은 경제 공간이면서 동시에 지역 공동체의 표정이 응축된 장소다. 그러나 대형 유통과 온라인 소비가 일상화된 시대에 전통시장은 점점 낡은 공간처럼 취급되기도 한다. 그런 시장을 주민이 직접 인터뷰하고 기록하는 작업은 단순한 홍보가 아니라, 지역경제와 생활문화의 연결고리를 다시 발견하는 과정이 될 수 있다. 

시장 활성화라는 목표 역시 행정적 구호만으로는 어렵지만, 사람들의 이야기와 장소의 기억이 콘텐츠로 살아날 때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다.

시흥도서관은 하반기에 안양천을 활용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달리기와 독서를 결합한 방식이라고 하니, 도서관이 실내의 정적인 공간이라는 고정관념을 바꾸는 시도라고도 볼 수 있다. 이는 도서관이 지역 명소와 신체 활동, 독서와 사유를 함께 묶는 새로운 생활문화 플랫폼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사업이 주는 더 큰 의미는 따로 있다. 주민들이 익숙한 지역 공간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는 점이다. 사람은 늘 사는 동네를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익숙함 때문에 오히려 가장 많은 것을 놓친다. 

오래된 상점의 시간, 시장 상인의 삶, 골목길의 변화, 하천 주변의 기억은 기록하려는 마음이 없으면 쉽게 스쳐 지나간다. 도서관이 주민에게 그런 시선을 열어 주고, 그것을 콘텐츠로 남기게 한다면, 도서관은 더 이상 ‘정보가 저장된 곳’만이 아니라 ‘지역의 삶이 새롭게 해석되는 곳’이 된다.

이런 점에서 ‘도서관, 로컬을 깨우다’는 이름도 적절하다. 여기서 깨우는 것은 단지 지역 자원만이 아니다. 동네를 다시 읽는 주민의 감각, 기록의 가치를 이해하는 시민성, 그리고 지역의 이야기를 함께 공유하는 공동체성도 함께 깨어난다. 도서관은 그 과정에서 매개가 된다. 책이 쌓인 공간이면서 동시에 이야기가 모이는 공간, 기록이 남는 공간, 주민이 자기 지역의 해석자가 되는 공간으로 기능하는 것이다.

서영철 금천문화재단 대표이사가 이번 프로젝트를 두고 “주민들이 주인공이 되어 금천구만의 고유한 서사를 만들어가는 의미 있는 여정”이라고 설명한 것도 이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지역의 서사는 행정이 대신 써 줄 수 없다. 가장 잘 쓰는 사람은 결국 그 동네를 걷고, 보고, 살아온 주민들이다. 도서관이 그 주민들의 언어와 시선을 모으는 중심축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은 도서관의 역할이 확장되는 것이 아니라, 본래적 의미가 더 깊어지는 일일지도 모른다. 

책이란 결국 사람의 삶을 기록한 것이고, 도서관은 원래부터 기록과 기억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지역사회에서 도서관의 중요성은 더 커질 가능성이 크다. 학교 밖 교육, 생활문화, 세대 간 소통, 지역 기록, 시민 참여가 모두 필요한 시대에 도서관만큼 안정적이고 공공적인 거점도 드물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그 가능성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현실화하느냐이다. 금천의 이번 시도는 그 점에서 의미 있는 사례가 된다. 주민이 지역을 기록하고, 그 기록이 콘텐츠가 되고, 콘텐츠가 다시 공동체 안에서 공유되는 순환 구조가 실제로 작동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도서관은 조용한 공간이다. 그러나 그 조용함은 멈춤이 아니라 축적의 시간일 수 있다. 금천의 도서관들이 이번 사업을 통해 보여주는 것은 바로 그 가능성이다. 

지역의 골목과 시장, 사람과 기억이 도서관 안으로 들어오고, 도서관에서 다시 콘텐츠가 되어 밖으로 나간다. 그 흐름 속에서 도서관은 더 이상 책만 빌리는 곳이 아니다. 지역을 깨우고, 주민을 연결하고, 동네의 서사를 미래로 남기는 가장 생활밀착형 문화 거점이 되어가고 있다.

이도선 기자
이도선 기자
ids@newsnetp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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