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8월 7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평화통일고문회의 원로 간담회’를 열고, 통일부가 8월 5일 업무보고에서 제시한 ‘한반도 평화공존 발전구상’에 대한 국민적 지지와 공감대를 형성할 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임동원·이재정·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과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임헌영 국립한국문학관 관장, 함세웅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이사장 등이 참석했다.
남북 관계가 장기간 경색된 상황에서 평화 정책은 정부의 선언만으로 추진되기 어렵다. 상대방의 반응을 끌어내는 외교적 노력과 함께, 국내 사회가 어떤 원칙과 언어로 남북 관계를 바라볼 것인지에 대한 충분한 공론화가 필요하다.
정동영 장관은 간담회에서 대통령이 평화공존 정책을 인내심을 갖고 흔들림 없이 추진해야 한다는 취지의 입장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그는 북한의 태도가 여전히 강경하지만, 남북의 평화공존이 어느 한쪽의 양보가 아니라,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같은 접근은 평화 정책을 도덕적 당위에만 두지 않고 현실적 이해관계의 관점에서도 설명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군사적 긴장을 낮추고 교류 가능성을 확대하는 일이 결국 남북 모두의 안전과 경제적 비용, 주민의 일상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다.
다만, 평화공존이 실제 정책으로 작동하려면 상대방의 호응 여부뿐 아니라, 국내의 정치적·사회적 신뢰를 함께 확보해야 한다.
정동영 장관은 앞선 업무보고에서 “상대방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 평화공존의 출발”이라는 취지의 표현을 사용했다며, 이 문제는 먼저 공론화하고 국민 여론을 충분히 성숙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원로들은 남북이 유엔에 동시 가입한 이후 대통령 명의 문서와 여러 남북 합의문에서 공식 국호를 사용해 온 사례가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국호 사용 자체를 전혀 새로운 문제로 볼 필요는 없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 논의의 핵심은 특정 호칭 하나보다 남북을 어떤 관계로 인식할 것인가에 있다. 언어는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관계를 규정하는 장치다. 상대를 적대의 대상으로만 부를 것인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상대방으로 인정하면서 평화적 관계를 모색할 것인지에 따라 정책의 출발점도 달라질 수 있다.
동시에 이러한 변화가 사회적 논란을 줄이려면 정부가 일방적으로 언어를 바꾸기보다 역사적 맥락과 정책적 의미를 충분히 설명하고 국민적 숙의를 거치는 과정이 중요하다.
원로들은 한반도 평화공존 정책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넓히기 위해 외교·안보 부처 간 협력을 강화하고,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들이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남북 관계는 통일부만의 정책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외교와 국방, 경제와 국제협력 문제까지 서로 연결돼 있다. 따라서, 정부 부처가 서로 다른 메시지를 내놓거나 정책의 방향이 엇갈리면 국민에게 혼선을 줄 수 있다. 이것이 외교·안보 부처 간 일관된 전략과 메시지가 필요한 이유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전문가와 언론, 학계, 시민사회가 서로 다른 관점에서 정책의 장단점을 검토하고 토론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평화 정책은 사회 전체가 하나의 견해만 가져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서로 다른 의견을 공개적으로 논의하면서 최소한의 공통 원칙을 찾아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통일부는 앞으로 ‘한반도 평화공존 발전구상’을 추진하면서 각계 인사와 전문가뿐 아니라, 청년세대의 의견도 폭넓게 듣겠다는 계획이다. 이는 남북 관계와 통일 문제를 경험의 세대에서 미래의 세대로 확장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전쟁과 분단을 직접 경험한 세대에게 한반도 문제는 역사적 기억과 밀접하지만, 청년세대는 안보와 경제, 취업, 세금, 국제정세 등 현실적인 문제로 인식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청년에게 평화공존을 설명할 때도 추상적인 통일 담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평화가 개인의 삶과 경제, 사회의 안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
이번 간담회에서 드러난 핵심은 통일이라는 장기적 목표 이전에 남북이 어떻게 충돌을 줄이고 안정적으로 공존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평화공존은 통일을 포기한다는 의미와 같지 않다.
오히려 지속적인 적대와 충돌을 줄여 장기적으로 관계를 관리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접근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 과정에는 군사적 긴장 완화와 대화 복원뿐 아니라, 언어와 인식, 정책의 일관성, 국민적 동의가 함께 필요하다.
특히, 상대방이 즉각적으로 호응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정책을 얼마나 오래 유지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남북 관계의 변화에 따라 정책 방향이 반복적으로 크게 흔들리면 장기적 신뢰를 쌓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책은 발표하는 순간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국민이 왜 필요한지 이해하고, 우려와 반대 의견까지 충분히 논의할 때 사회적 지속성을 얻는다. 이번 원로 간담회가 갖는 의미도 ‘한반도 평화공존 발전구상’을 정부 내부의 정책 문서에서 사회적 토론의 의제로 옮겼다는 데 있다.
앞으로의 관건은 평화공존이라는 큰 원칙을 실제 정책과 제도로 얼마나 구체화하느냐다. 남북 간 대화 채널을 어떻게 복원할지, 군사적 위험을 어떻게 낮출지, 국제사회와 어떤 방식으로 협력할지, 국민과 어떤 언어로 소통할지에 대한 세부 전략이 뒤따라야 한다.
한반도의 평화는 정부 혼자 만들 수도, 상대방의 변화만 기다려서 만들 수도 없다. 사회 내부에서 평화를 둘러싼 충분한 토론과 합의를 축적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이번 간담회도 한반도 평화 정책에 관한 새로운 질문으로 보인다. 평화를 원하는가를 넘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국민과 어떻게 평화의 방법을 함께 설계할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