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림청이 2027년 전면 개통을 앞둔 ‘동서트레일’의 성공적인 안착을 위해 민관 협력의 첫 장을 열었다. 단순히 길을 만드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길 위에 사람과 지역, 산업과 문화를 함께 올려놓겠다는 구상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숲길은 오랫동안 자연을 걷는 공간으로 인식돼 왔지만, 이제는 지역을 살리고 새로운 관광 수요를 만들며 아웃도어 산업과 공공정책을 연결하는 플랫폼으로 다시 해석될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이번 ‘동서트레일 만남의 날’은 하나의 행사라기보다, 길을 둘러싼 국가적 상상력이 정책과 협력의 언어로 구체화되기 시작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산림청은 27일 서울 더플라자 호텔에서 민관 협력 기반 구축을 위한 ‘동서트레일 만남의 날’을 개최했다고 밝혔다. 이번 행사는 2027년 전 구간 개통을 앞둔 동서트레일의 지속가능한 운영과 관리 체계를 마련하고, 민간과의 협력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마련됐다.
현장에는 산림청과 한국등산·트레킹지원센터를 비롯해 아웃도어 기업, 여행사, 플랫폼 기업 등 관계자 90여 명이 참석해 동서트레일의 정책 방향과 협력 가능성을 함께 논의했다.
동서트레일은 충남 태안에서 경북 울진까지 5개 시·도, 21개 시·군·구를 연결하는 총 55개 구간, 849km 규모의 국내 최초 장거리 백패킹 숲길이다. 동서를 잇는 이 긴 길은 단순한 이동 경로가 아니라, 대한민국 산림의 경관과 지역의 삶, 여행과 체류, 소비와 문화가 함께 흐를 수 있는 거대한 축이 될 가능성을 품고 있다. 길이란 본래 한 점에서 다른 한 점으로 이어지는 선이지만, 잘 설계된 길은 선을 넘어 관계를 만들고 흐름을 바꾸는 힘을 갖는다.
이날 행사는 지속가능한 동서트레일 운영·관리 방향, 이용자 특성과 민관 협력 방안, 동서트레일 활성화를 위한 공공의 역할 등 세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총 8개의 발표와 토론으로 진행됐다.
산림청은 ‘사람·지역·자연을 잇는 대한민국 대표 숲길’이라는 비전을 바탕으로 동서트레일의 정책 방향과 조성 현황을 공유했으며, 장거리 트레일(trail· 사람이 걸어서 이동하거나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든 길)에 적합한 이용 문화의 정착과 중·장기적 민관 협력 분야를 제시했다.
이는 숲길을 단순히 조성하는 데서 끝내지 않고, 어떻게 걷고 어떻게 머무르며 어떻게 함께 관리할 것인지까지 포함한 보다 입체적인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민간 분야의 발표도 눈길을 끌었다. 여행 플랫폼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이용자 분석, 백패킹 축제와 아웃도어 산업을 연계한 콘텐츠 발굴 등 실질적인 협력 사례가 공유되면서, 동서트레일이 공공사업을 넘어 생활과 시장, 여행문화와 연결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드러났다.
특히, 오늘날의 여행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경험과 기록, 취향과 콘텐츠를 소비하는 행위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에서, 장거리 트레일의 성공 여부는 길이나 풍경만이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경험 설계와 서사 구축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민간의 참여는 선택이 아니라 사실상 필수에 가깝다.
아울러 코리아둘레길 운영 사례와 미디어 관점의 홍보 전략도 함께 논의되면서, 동서트레일이 단순한 숲길 조성 사업을 넘어 관광, 지역경제, 아웃도어 산업을 연결하는 국가 대표 콘텐츠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모색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지점이다. 길이 생긴다고 해서 곧바로 사람이 찾아오는 것은 아니며, 사람이 찾아온다고 해서 자동으로 지역이 살아나는 것도 아니다. 길과 사람 사이에는 정보와 콘텐츠가 있어야 하고, 방문과 체류 사이에는 소비와 관계가 있어야 하며, 여행과 지역 활성화 사이에는 전략과 협력이 있어야 한다. 길의 경쟁력은 노선 자체가 아니라 그 길 위에 어떤 경험과 의미를 얹느냐에 달려 있다.
조영희 산림청 산림복지국장은 “길이 열리면 사람이 찾아오고, 사람이 찾아오면 지역의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며, “동서트레일은 사람과 사람을 잇고,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며, 산림의 아름다움과 지역 문화·관광이 조화를 이루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트레일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발언은 동서트레일이 단순히 걷는 길이 아니라 지역을 회복시키는 연결의 인프라가 되어야 한다는 기대를 담고 있다.
실제로 장거리 트레일의 가치는 풍경의 아름다움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 길을 따라 걷는 사람의 발걸음이 지역의 숙박과 음식, 상점과 체험, 축제와 문화로 이어질 때 비로소 길은 경제가 되고 산업이 되며 공동체의 자산이 된다.
또한,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이용 문화를 정착시키고, 지역 주민과 방문객이 상생할 수 있는 운영 원칙을 세울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트레일이 된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빠른 개통만이 아니라, 개통 이후를 책임질 수 있는 운영 철학과 협력 구조다.
이번 ‘동서트레일 만남의 날’은 바로 그 점에서 의미가 크다. 숲길 하나를 만드는 일은 토목의 문제가 아니라 기획의 문제이며, 더 나아가 관계의 문제다. 공공은 방향을 제시하고 기반을 놓아야 하며, 민간은 데이터와 콘텐츠, 서비스와 시장의 언어로 그 길에 생명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지역은 길 위에서 자기만의 고유한 이야기와 자원을 드러내야 하고, 이용자는 소비자가 아니라 함께 문화를 만들어 가는 참여자가 되어야 한다. 이 모든 조건이 맞물릴 때 동서트레일은 단순한 숲길을 넘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장거리 트레일로 자리잡을 수 있다.
2027년 전면 개통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중요한 것은 길이 완성되는 순간이 아니라, 그 길이 사람들에게 어떤 기억을 남기고 지역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며 우리 사회에 어떤 새로운 여행 문화를 뿌리내리게 하느냐이다.
동서트레일은 지금 하나의 선으로 조성되고 있지만, 앞으로는 지역과 산업, 자연과 사람을 잇는 더 넓은 연결망으로 자라나야 한다. 그 가능성을 민관이 함께 확인한 첫 자리였다는 점에서, 이번 만남은 조용하지만 분명한 출발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