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을 함께 심고 계절의 변화를 바라보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사회와 다시 연결되는 첫걸음이 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돌봄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는 시간이 된다.
서울그린트러스트가 치매 환자 부양가족과 2030 청년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공원 기반 소셜가드닝 프로그램 ‘느슨한 가드닝’ 6기를 9월부터 시작한다.
2021년 시작된 ‘느슨한 가드닝’은 치매안심센터와 서울청년센터 등 지역사회 기관과 협력해 청년과 치매 환자 가족이 정원을 함께 가꾸며 자연스럽게 관계를 형성하도록 돕는 프로그램이다.
2024년부터는 서울어린이대공원을 주요 활동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참여자들은 식물을 심고 정원을 관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계절의 변화를 관찰하고 일상을 나누며, 각자의 속도로 자연과 사람을 만난다.
프로그램 명칭에 담긴 ‘느슨함’ 역시 일을 천천히 한다는 의미보다 뚜렷한 성취를 요구하지 않고 잠시 숨을 고르며 자신과 다른 사람을 돌보는 관계 방식에 가깝다.
올해는 특히 사회적·정서적으로 취약한 상황에 놓인 청년들의 참여 폭을 넓힌다. 은둔·고립 청년과 의가사 제대 청년, 자립 준비 청년, 가족 돌봄 청년 등 일상에서 사회적 관계와 활동의 기회를 얻기 어려운 청년들이 정원을 통해 외부와 연결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치매 환자를 돌보는 가족에게도 정원은 다른 의미의 공간이 된다. 지속적 돌봄에서 잠시 벗어나 자연 속에서 쉬고, 자신과 다른 세대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운영 방식도 달라진다. 기존 20회 프로그램을 10회 단위로 나눠 2026년 하반기와 2027년 상반기에 각각 진행한다. 한 기수의 참여 기간은 줄이는 대신 참여 기회를 넓혀 더 많은 시민이 정원에서의 회복 경험을 접하도록 한다는 취지다.
평일 참여가 어려운 청년을 위한 ‘느슨한 초록’도 마련된다. 겨울방학 등 토요일을 활용해 프로그램을 운영함으로써 생활 여건 때문에 기존 일정에 참여하기 어려웠던 청년까지 접근성을 넓힌다.
지난해에는 누적 739명이 참여해 총 1만 4,790시간의 교육을 함께했다. 서울그린트러스트에 따르면 참여자의 사회 통합감은 평균 84.5%, 정서적 역량은 94%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시민들과 함께 서울어린이대공원 내 약 400㎡ 규모의 공간을 가꾸고 지역사회 협력 네트워크를 확대하는 성과도 있었다.
올해 참여자들은 여름부터 이듬해 초여름까지 사계절의 변화를 함께 경험한다. 정원가와 작가, 세밀화 작가 등 다양한 분야 전문가가 참여하는 원데이 클래스도 마련해 식물을 심는 활동을 넘어 자연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경험으로 확장한다.
이 프로그램이 주목하는 것은 ‘얼마나 잘 가꾸었는가’보다 ‘정원에서 누구와 어떤 시간을 보냈는가’에 가깝다. 사회적 고립이나 돌봄 부담처럼 개인이 혼자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 앞에서 정원은 치료를 대신하는 공간은 아니지만, 다시 사람을 만나고 일상의 속도를 회복할 수 있는 작은 연결 지점이 될 수 있다.
서울그린트러스트가 공원을 단순한 이용시설을 넘어 쉬고 관계를 맺으며 서로를 돌보는 생활권 공동체 공간으로 바라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느슨한 가드닝’은 정원을 가꾸는 사업인 동시에, 끊어진 관계를 너무 빠르지 않은 방식으로 다시 잇는 실험이라고도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