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 최휘영 장관은 6월 25일 오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미국영화협회(Motion Picture Association, MPA) 회장 찰스 리브킨(Charles H. Rivkin)을 만나 한미 간 영화·영상 산업 분야의 긴밀한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양측은 글로벌 콘텐츠 시장의 변화 속에서 한국과 미국이 어떤 방식으로 교류를 넓히고, 산업 차원의 협력 기반을 강화할 수 있을지에 대해 폭넓게 의견을 나눴다.
리브킨 회장은 이날 면담에서 ‘케이팝 데몬 헌터스’, 블랙핑크, ‘오징어 게임’ 등 한국문화가 반영된 콘텐츠들이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는 단순한 외교적 수사가 아니다. 한국 콘텐츠는 이제 특정 장르나 일부 팬덤에 국한되지 않고, 음악과 영상, 캐릭터와 서사, 플랫폼 콘텐츠 전반에서 세계 소비자와 산업 관계자들에게 실질적인 영향력을 갖는 수준으로 성장했다.
특히, 한국적 정서와 감각, 제작 역량이 국제 시장 안에서 하나의 독자적 브랜드처럼 인식되기 시작했다는 점은 중요하다. 이에 대해 최휘영 장관은 한국 문화콘텐츠가 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는 데 미국영화협회가 큰 역할을 해주고 있다고 평가하며, 앞으로도 활발한 교류가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콘텐츠 산업은 이제 어느 한 나라가 독자적으로 완결하기 어려운 구조로 움직인다. 글로벌 자본과 플랫폼, 제작 네트워크와 유통망이 서로 얽혀 있어서, 세계 시장에서 영향력을 넓히려면 창작 역량뿐 아니라, 국제적 협력 관계도 함께 강화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미국영화협회와의 접점은 한국 콘텐츠 산업이 더 넓은 글로벌 질서로 들어가는 중요한 통로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다.
이번 면담에서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한국을 배경으로 한 영화·영상 로케이션 사업 활성화에 대한 공감대였다. 양측은 케이-콘텐츠의 지속적인 확산을 위해 한국을 배경으로 한 촬영 수요를 늘릴 필요성에 의견을 같이했고, 최휘영 장관은 향후 해외 대형 제작사들의 한국 촬영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현지촬영 지원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국 콘텐츠가 세계로 나가는 것만큼, 세계 콘텐츠가 한국을 배경과 제작 공간으로 선택하게 만드는 일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해외 대형 제작사가 한국에서 촬영을 진행한다는 것은 단순한 장소 대여 이상의 효과를 낳는다. 한국의 도시와 자연, 문화공간이 세계 시청자에게 노출되고, 국내 제작 인력과 서비스 산업, 지역 경제까지 연쇄적으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한국이 ‘콘텐츠 소비국’이나 ‘콘텐츠 수출국’을 넘어 ‘글로벌 콘텐츠 제작 허브’로 자리매김하는 데도 중요한 발판이 된다. 결국, 로케이션 지원 확대는 관광과 홍보 차원의 접근이 아니라, 콘텐츠 산업 생태계 자체를 넓히는 정책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양측은 또 홀드백이 영화산업에 미치는 영향 등 OTT(Over-The-Top, 인터넷으로 영화·드라마·예능 같은 영상을 바로 볼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 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에 대해서도 의견을 교환했다. 홀드백은 극장 개봉 후 부가 시장 상영까지 두는 유예기간을 뜻한다.
얼핏 기술적인 산업 용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영화산업의 수익 구조와 창작 생태계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는 문제다. 극장 상영, 온라인동영상서비스 공개, 부가 판권 시장의 순서와 간격이 어떻게 설정되느냐에 따라 영화의 회수 구조와 배급 전략, 관객 소비 방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최휘영 장관은 영화산업 전반의 상생발전을 위한 유통구조 개선책을 찾기 위해 미국영화협회와 회원사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협조를 당부했다. 이는 단지 해외 사업자에게 협조를 요청한 차원을 넘어, 변화하는 OTT 환경 속에서 한국 영화산업의 생존과 균형을 고민하고 있다는 신호로 읽힌다.
오늘의 영상 산업은 극장과 OTT의 대립으로 단순화할 수 없다. 오히려 어떻게 하면 서로 다른 유통 창구가 상호보완적으로 작동하면서도 창작자와 제작사, 관객 모두에게 지속 가능한 구조를 만들 것인지가 더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이번 면담은 그 문제를 국제 협력의 틀 안에서도 함께 논의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와 함께 리브킨 회장은 올해 9월 한국과 프랑스가 공동의장국으로 개최하는 ‘뤼미에르 서밋’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미국영화협회와 회원사들도 적극 참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뤼미에르 서밋은 영화산업의 미래와 글로벌 협력 의제를 논의하는 상징적 무대라는 점에서 미국영화협회 측의 적극 참여 의사는 한국이 국제 영화산업 의제 형성의 한 축으로 부상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한국 콘텐츠가 세계 시장에서 인기 있는 수준을 넘어, 앞으로의 산업 규범과 논의를 함께 만드는 자리로 이동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은 인공지능과 OTT 등 영화산업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창작자와 이용자의 저작권 권리 보호 필요성에 대해 양측이 공감했다는 점이다. 이는 지금 가장 예민하고 중요한 의제 가운데 하나다. AI 기술은 콘텐츠 제작 방식과 소비 구조를 빠르게 바꾸고 있지만, 동시에 창작물의 학습 활용, 저작권 귀속, 창작자의 보상과 권리문제를 새롭게 제기하고 있다.
디지털 교류가 활발해질수록 저작권 보호는 더 이상 부수적 문제가 아니라, 산업의 기본 질서를 지탱하는 핵심 기준이 된다. 양측이 콘텐츠 저작권 보호 등 원활한 디지털 교류 환경 조성을 위해 계속 소통하기로 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읽힌다.
이번 면담은 결과적으로 한미 콘텐츠 협력이 어떤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 준다. 과거에는 콘텐츠 수출과 문화홍보가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로케이션 촬영 지원, OTT 유통구조, 국제 영화산업 포럼, AI 시대 저작권 질서까지 훨씬 더 다층적인 의제가 논의되고 있다. 다시 말해 교류의 시대를 넘어 산업 질서를 함께 설계하는 단계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콘텐츠 산업은 지금 중요한 전환점 위에 서 있다. 세계적 인기와 브랜드 가치를 확보한 지금이야말로, 그 성과를 일회성 열풍이 아닌 지속 가능한 구조로 바꾸는 일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창작자 보호, 공정한 유통, 글로벌 협력, 제작 인프라, 저작권 질서 같은 기반이 더욱 튼튼해져야 한다. 이번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미국영화협회 회장의 만남은 바로 그 기반을 다지는 대화의 한 장면으로 볼 수 있다.
문화의 힘은 감동을 만드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이 산업과 제도, 협력과 규범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더 오래 간다. 한미 영화·영상 산업 협력 논의가 앞으로 어떤 구체적 성과로 이어질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의 케이-콘텐츠는 더 이상 세계 시장의 손님이 아니라, 함께 판을 짜는 주체로 서고 있다는 사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