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 목표를 선언하는 국가와 기업은 늘고 있지만, 목표를 실제 사업과 정책, 시민의 생활 속 변화로 옮기는 일은 훨씬 어렵다. 배출량을 계산하는 기술만으로 산업과 사회의 구조가 바뀌는 것도 아니다.
결국, 현장에서 문제를 찾고 감축 계획을 설계하며 사람과 조직을 움직일 인재가 필요하다. 이러한 ‘실행의 공백’을 채우겠다는 탄소중립 전문 교육기관이 출범했다.
사단법인 탄소중립 아카데미 ‘나무’(이사장 서병륜, 원장 안병옥)는 10월 14일 서울 광화문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창립식을 열고 공식 활동을 시작했다. 이사장은 서병륜, 원장은 안병옥이 맡았다.
창립식에는 기후·환경 분야 학계와 시민사회, 산업계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아카데미는 ‘10만 탄소중립 설계자 양성’을 목표로 기업과 공공기관, 시민사회에서 탄소중립 계획을 직접 수립하고 실행할 수 있는 실무형 인재 육성에 나설 계획이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이날 축사를 통해 환경 문제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충분한 학습과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공부를 해야 답을 찾을 수 있다며 아카데미가 지속적인 학습의 장이 되기를 기대했다.
특별강연에 나선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은 기후위기에 대해 문명과 생태계의 관계를 다시 설계해야 하는 문제로 바라봤다. 강금실 전 장관은 아카데미에서 배출되는 설계자들이 탄소중립 시대를 열어가는 역할을 하기를 바란다며, 성장 역시 생태적 균형과 성숙이라는 관점에서 새롭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도 영상 축사를 통해 정부가 한국형 녹색대전환을 산업과 지역의 지속 가능한 성장으로 연결하려 하고 있다며 아카데미의 역할에 기대를 나타냈다.
‘나무’가 내세우는 핵심은 지식 전달에 머무르지 않는 교육이다. 탄소중립은 배출량 산정이나 관련 제도를 아는 것만으로 실행되지 않는다. 기업에서는 생산공정과 공급망, 투자계획을 검토해야 하고 공공기관에서는 정책과 예산, 지역 특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시민사회 역시 생활 속 실천을 제도와 공동체의 변화로 연결하는 역량이 필요하다.
아카데미가 교육 대상자를 ‘전문가’가 아닌, ‘설계자’로 표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탄소중립이라는 목표를 각 조직과 지역의 현실에 맞는 구체적인 행동계획으로 바꾸는 사람을 양성하겠다는 의미다.
2027년 3월부터는 ‘탄소중립·ESG 기획자 과정’과 ‘AI 활용 탄소중립 전문가 과정’ 등의 전문과정을 운영할 예정이다. 시민을 대상으로 한 인문 강좌도 함께 마련한다.
특히, AI를 탄소중립 교육에 접목하려는 시도도 주목된다. 앞으로 기업과 기관의 탄소중립 업무에서는 방대한 에너지·배출 데이터를 분석하고 감축 시나리오를 비교하며 정책과 기술 정보를 빠르게 활용하는 능력이 더욱 중요해질 수 있다.
다만, 기술을 사용하는 능력만큼 어떤 감축 목표를 설정하고 이해관계자와 어떻게 실행할 것인가를 판단하는 역량도 필요하다.
아카데미의 성패 역시 교육생 숫자만으로 평가되기는 어렵다. 교육을 받은 사람이 실제 기업의 감축 계획을 바꾸고, 지역의 에너지 정책을 설계하며, 시민사회의 실천을 구체적인 변화로 연결했는지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
탄소중립은 2050이라는 숫자를 선언하는 것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국가의 목표를 기업의 생산현장으로, 지역의 정책으로, 시민의 생활로 번역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
한 그루의 나무가 숲을 만들 수는 없지만 수많은 나무가 뿌리 내리면 풍경은 달라진다. ‘아카데미 나무’가 내세운 10만 명의 설계자라는 목표 역시 결국 몇 명을 교육했느냐보다 그들이 현장에서 어떤 변화를 설계했느냐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