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수많은 사람을 헤어지게 하지만, 때로는 평생 잊지 못할 인연을 남기기도 한다. 6·25전쟁 당시 한국에서 종군기자로 활동했던 한 미국인이 생전 그리워했던 한국 소년을, 그의 아들이 70여 년의 시간을 넘어 다시 찾고 있다.
국가보훈부(장관 권오을)는 6·25전쟁 당시 미국 종군기자로 참전했던 고(故) 로버트 H. 모지어의 유족이 전쟁 중 부친과 인연을 맺었던 한국 소년 ‘KIM’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모지어의 아들 로버트 P. 모지어 씨는 최근 국가보훈부에 “생전 아버지가 늘 KIM을 그리워했다”며 아버지를 대신해 다시 만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고(故) 로버트 H. 모지어는 1923년생으로, 1951년부터 1952년경 미 해병 종군기자로 6·25전쟁에 참전했다. 그가 만난 ‘KIM’은 당시 창도리 인근 피난민 캠프에서 생활하던 한국 소년이었다. 창도리는 당시 강원도 김화군 창도면에 속했으며 현재는 북한 지역이다.
1951년 겨울 KIM의 나이는 약 15세로 추정되며, 출생 연도는 1935년에서 1937년 사이로 알려졌다. 그는 홍천 출신으로 기독교 가정에서 성장했다. 당시 부친은 이미 세상을 떠난 상태였고, 폭격으로 인해 가족이 홍천에서 인근 지역으로 거처를 옮긴 것으로 전해진다.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만난 미국인 기자와 한국 소년은 단순한 취재자와 현지인의 관계를 넘어 일정 기간 일상을 함께했다. KIM은 모지어 기자와 함께 지내면서 사진 촬영 현장을 따라다녔고 부대 보조원 역할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두 사람의 관계가 단순한 현장 인연에 그치지 않았다는 정황도 남아 있다. 모지어 기자는 크리스마스 무렵 KIM과 함께 그의 집을 방문해 모친과 조부, 누이를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전쟁으로 가족과 삶의 터전이 흔들리던 시기, 한 미국인 종군기자가 한국 소년의 가족을 직접 만났다는 사실은 당시 두 사람이 상당히 가까운 관계를 형성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전쟁은 다시 이들을 갈라놓았다. 1952년 7월 무렵 사단이 철수하면서 두 사람은 헤어졌고, 이후 다시 만났다는 기록은 없다. 모지어 기자는 전쟁의 모습을 사진과 글로 남겼다.
그가 기록한 내용은 1953년 내셔널지오그래픽에 「미국과 한국의 아이들 : 미군이 전쟁으로 황폐해진 땅의 아이들과 음식, 옷, 거처를 나누다」(The GI and the Kids of Korea: America’s Fighting Men Share Their Food, Clothing, and Shelter with Children of a War-torn Land)라는 제목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이 기록에서 주목할 부분은 전투와 군사작전만이 아니라, 전쟁 속 어린이들의 삶에도 시선을 두었다는 점이다. 전쟁의 공식 기록은 대체로 전투와 작전, 희생 규모와 같은 거대한 사건을 중심으로 남는다. 하지만, 실제 전쟁을 살아낸 사람들의 삶은 식량과 잠자리, 가족의 죽음과 피난, 낯선 사람과의 만남 같은 작은 경험으로 구성된다. KIM을 찾는 과정은 바로 이런 개인의 기억을 다시 역사 속으로 불러내는 작업이기도 하다.
아들 모지어 씨는 1990년대 초부터 KIM을 찾기 위해 여러 차례 노력해 왔다고 밝혔다. 그러나 ‘KIM’이라는 제한된 이름과 70년이 넘는 시간, 전쟁으로 인한 행정기록의 손실과 이동 등을 고려하면 한 사람을 특정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런데도 가족은 찾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아들 모지어 씨가 다시 한국 정부와 국민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은 아버지의 개인적 기억을 가족의 기억으로 이어가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평생 기억했던 한 사람을 아들이 대신 찾아 나선 것이다.
이번 사연은 보훈이 반드시 훈장과 추모행사, 전투 기록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보여준다. 전쟁에서 형성된 사람 사이의 관계와 기억 역시 보존해야 할 역사적 자산이 될 수 있다. 특히, 6·25전쟁처럼 국제전의 성격을 가진 전쟁에서는 참전국 군인과 기자, 의료진, 한국 민간인 사이에 수많은 관계가 형성됐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공식 기록에 남지 않았거나 이름조차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KIM을 찾는 일은 한 개인을 찾는 일이면서 동시에 전쟁 속에서 이름 없이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복원하는 일이기도 하다.
제보를 받는 데 당시 사진이나 가족 기록, 지역 주민의 기억 등이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KIM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1935~1937년생이라면 현재 생존 여부를 확인하는 것부터 쉽지 않은 상황이다. 본인을 직접 찾지 못하더라도 가족이나 친척, 지역 공동체의 기억을 통해 그의 이후 삶을 확인할 가능성도 있다.
이 과정에서 개인 사진이나 편지, 가족의 구술 같은 자료는 공식 문서 못지않은 역사적 가치를 가질 수 있다. 전쟁사를 더욱 입체적으로 이해하려면 국가가 남긴 기록과 함께 개인이 남긴 작은 기억을 수집하는 작업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국가보훈부는 현재 홈페이지와 유튜브를 통해 관련 제보를 받고 있다. 이번 찾기가 성공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재회의 의미를 넘어설 수 있다. 15세 소년 KIM이 전쟁 이후 어떤 삶을 살았는지, 가족은 어떻게 되었는지, 당시 모지어 기자와 함께했던 시간을 기억하는지까지 확인된다면 한 사람의 생애를 통해 6·25전쟁 이후 한국 사회의 또 다른 역사를 읽을 수도 있다.
역사는 거대한 사건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소년 한 명의 삶도 역사의 일부다. 70여 년 전 한 미국인 기자가 마음에 품었던 한국 소년을 그의 아들이 다시 찾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쟁은 끝났지만 사람의 기억은 끝나지 않았다.
이번 ‘KIM 찾기’는 보훈의 의미를 과거의 희생을 기억하는 차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전쟁 속에서 맺어진 인간적 관계와 삶의 흔적까지 복원하는 일로 확장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