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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조화와 화목의 자리가 중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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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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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타락한 시장사회의 원리가 작용한다. 불성(不誠)과 불화(不和)가 지배한다. 부패한 상인 정신이 휩쓴다. 나의 이(利)에 눈이 어두워 남을 수단으로써 이용한 데서부터 시작한다. 태초에 조우(遭遇)가 있었다. 상호 불신 속에 인간적 화목을 잃었다. 불의(不義)의 재(財)를 탐내고 부정의 이(利)에 혹하여 양심이 마비되고 염치(廉恥)를 상실했다. 곧은 마음과 바른 정신을 잃었다. 지조를 버리고 신의를 망각한다. 속임수와 권모술수가 성행한다. 타인을 나의 욕망 충족의 도구로 삼는다.”

안병욱, 『빛과 생명의 안식처』, 삼성출판사, 1979, pp.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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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만남입니다.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은 만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는 인식론적 확신과 존재론적 명석판명(明晳判明)함(clara et distinct; 나의 의식에 분명히 현존하기에 부인할 수 없고 다른 지식과 명확히 구별됨)은 ‘우리는 존재한다’는 관계적 명제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나는 너를 통해 존재하고 너는 나로 인해서 존재인식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당은 이렇게 ‘나’와 ‘너’가 만나는 그 마당을 사회라고 말합니다. ‘나’와 ‘너’가 만나는 곳이 공동체적 장(community)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내게 정성을 다하듯이 타자인 너에게도 정성을 다하는 생의 성실성이 요구됩니다. 너에게 정성을 다한다는 것은 언어적 행동, 행위적 행동, 노동적 행동, 사유적 행동 등 행동이라는 실천적 모습으로 모든 존재자와 조화(調和)와 화목(和睦)을 이루어야 한다는 데까지 나아갑니다. 더욱이 인간이 ‘수신(修身)’에서 ‘평천하(平天下)’, 곧 자기 자아가 세계로까지 확장되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평화·조화·화목의 조건이 형성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당이 상호존중이나 상호존경을 위한 수신(修身)에서 경(敬)보다 앞서는 것이 성(誠)이라고 말한 것도 그런 차원에서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모름지기 세계로 속절없이 내던져진 ‘나’는 모든 ‘너’라는 존재와 적절하고 조화롭게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각자가 존중과 존경을 받기 위한 합당한 인격체로 서 있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 성(誠)이 화(和)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것은 ‘세계’와 ‘나’라는 존재 말고도 수많은 또 다른 ‘너’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화(和)는 서로 사랑이요 서로 나눔을 이룸으로써 비폭력 상태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존엄하고 소중한 것처럼 ‘다른 나’ 곧 타자(타자, alter ego)도 존엄한 존재요 존중 받아야 할 존재입니다. 이당은 사람의 사람다움은 “화의 원리에 있다”고 말합니다. 인격적 존경과 존중의 바탕은 화(和)에 기반을 두어야 비인격, 비인간으로 전락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 사회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세계가 되어야 합니다. 획일주의, 전체주의, 국가주의, 민족주의, 그리고 한쪽만의 정체성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통제하는 사회를 넘어서서 각 인격체의 개성을 존중하는 ‘너’와 ‘나’가 되어야 합니다.

 

중용(中庸)은 화이부동(和而不同)입니다. 이에 이당은 “모두가 동(同, 같다)할 필요는 없지만, 화(和)할 필요는 있다”고 말합니다. 명언입니다. ‘너’와 ‘나’의 관계는 그렇게 상호 존중, 상호 존경, 상호 인정이 살아 숨 쉬는 사이가 되어야 합니다.

 

성(誠), 경(敬), 화(和)의 철학적 체계가 중용(中庸)의 정신으로 정착되어야 비로소 인간은 서로 수단의 존재, 사용의 존재, 불신의 존재가 아니라, 참된 인간적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안병욱, 『빛과 생명의 안식처』, 삼성출판사, 1979, pp.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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