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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의 생을 살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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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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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엇보다도 의로운 도덕적 질서를 세워야 한다. 이것이 역사적 명령이다. ‘청년들이여, 청년들이여, 언제나 정의와 같이 있어라.’ 프랑스의 문인 졸라(Émile François Zola)는 이렇게 외쳤다.

의의 편에 서서 이상에 살려는 것이 젊은이의 기상이다.

한 민족의 청년들이 이런 기상을 잃어버린다면 우리는 그 민족의 장래에 대해서 아무런 희망과 기대를 가질 수 없다.

우리는 저마다 위대한 인간이 될 수 없다. 그러나 모두 진실한 인간이 될 의무를 갖는다. 진실은 만인(萬人)의 대도(大道)다.”

안병욱, 『安秉煜에세이5 행복의 미학』, 교육도서, 1988,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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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生)의 의미나 생의 체험은 역사에서 길어 올려야 합니다. 역사적 생의 낯선 체험을 이해하고 해석하려고 했던 독일 철학자 딜타이(W. Dilthey)에게 생은 원본적 사실입니다. 생은 내적으로 우리에게 이미 알려져 있습니다. 생은 그보다 더 소급될 수 없는 전제의 전제라는 말입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세계는 정신적이며 역사적 세계로서 생이 드러난 현실입니다. 이 세계에서 역사적 주체로서 인간은 자주인(自主人)이라고 표현한 이당은 자주의 정신은 노예의 정신과 맞선다고 말합니다.

 

인간은 스스로 자기 자신의 노예가 되지 않고 주체적 삶의 의식과 해석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는 노예를 ‘살아 있는 도구’라고 했습니다. 도구는 인격이 없습니다. 도구는 사용을 기다리는 객체일 뿐입니다.

 

노예는 자기가 지닌 의식도, 자기의 판단도, 자기가 구상하는 계획이 없이 살아가야 하는 처지에 놓인 사람들입니다. 신분상으로는 노예가 아니지만, 자기만의 의식이며 판단, 자기가 설계하고 꿈꾸는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노예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외부의 명령에 따라 살아가는 존재는 자유도 권리도 없습니다. 자기의 운명을 자기가 개척할 수는 얽매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입니다.

 

불경(佛經)에 “자등명 자귀의(自燈明 自歸依)”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아 자기에게 의지하고, 남을 의지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인간은 자기가 자신의 주인으로 사는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정신이 없으면 죽은 존재고, 마음이 없으면 모든 것이 존립할 수 없습니다. 자기가 스스로 서고자 하는 사람에게 정신은 생명처럼 귀중합니다. 그것은 강인한 정신, 사라지지 않는 정신, 굴하지 않는 정신입니다. 고통당하게 될 것을 알면서도 제우스의 협박과 회유에 굴복하지 않고 불의와 억압에 맞서 약자인 인간의 편을 드는 프로메테우스(Prometheus)적 저항정신입니다.

 

인간은 불의한 외부와 저항하는 정신이자 부당하게 주어진 자기 운명과도 싸우는 새로운 정신으로 가득한 새로운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노예의 정신, 노예의 덕을 없애고 완전한 자유인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인간이 자기 정신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진실을 토대로 사고하고 그에 따라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진실은 선의 기초입니다.” 이당은 진실과 진리를 같이 봅니다. 진실한 정신은 진리의 정신에 따라 의롭게 살아갑니다.

 

진리는 참이요, 삶의 근본입니다. 진리는 편견과 사리(私利), 아집에 사로잡힌 상태가 아닙니다. 진리의 정신은 자기와의 싸움에서 참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진리의 정신은 하늘의 길이자 참을 행하는 사람의 길입니다. 그러기에 허위(虛僞)가 없습니다. 허위는 악의 통로입니다. 바이러스가 건강을 해치고 마침내 생명까지 위협하듯이 허위는 삶을 송두리째 망가뜨릴 수도 있습니다.

 

정신적 세계, 진리의 세계에서 허위를 물리치고 참을 따르기 위해서는 부단히 자기를 수양해야 합니다. 양명학(陽明學)의 창시자 왕수인(王守仁)은 “산중(山中)의 적(賊)은 물리치기 쉽지만, 심중(心中)의 적은 물리치기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그만큼 진리의 정신과 마음을 따른다는 것은 녹록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진리를 따라 올곧은 삶을 유지하며 살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한 이당의 명쾌한 대답은 이렇습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의로운 도덕적 질서를 세워야 한다. 이것이 역사적 명령이다. ‘청년들이여, 청년들이여, 언제나 정의와 같이 있어라.’ 프랑스의 문인 졸라(Émile François Zola)는 이렇게 외쳤다. 의의 편에 서서 이상에 살려는 것이 젊은이의 기상이다. 한 민족의 청년들이 이런 기상을 잃어버린다면 우리는 그 민족의 장래에 대해서 아무런 희망과 기대를 가질 수 없다. 우리는 저마다 위대한 인간이 될 수 없다. 그러나 모두 진실한 인간이 될 의무를 갖는다. 진실은 만인(萬人)의 대도(大道)다.”

 

이당은 성실하게 일관된 자세를 취하고 실천하라는 성실일관(誠實一貫)을 강조합니다. 이것은 진실한 사회를 만드는 작업입니다. 진실의 정신으로 새로운 사회를 세우고 새 역사를 쓰려면 제 분에 맞게[應分] 근면하고 성실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진실한 정신과 생생한 삶을 추구하며 살았던 니체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 어찌 행복을 구하랴. 나는 일을 구한다.” 삶의 열정은 정성을 기울이는 삶에 대하여 고뇌를 극복하도록 합니다. 동시에 진리와 진실의 정신만이 인간의 생을 구원하는 신앙이 될 것입니다. 진실이 우리의 생명입니다. 생의 화두는 진실의 정신과 진리의 정신입니다! 이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안병욱, 『安秉煜에세이5 행복의 미학』, 교육도서, 1988, pp.5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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