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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욱 아카데미
  • 이어령 이화여자대학교 명예석좌교수
    약력
    안병욱 선생님과 저는 한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에세이 붐을 일으켰던 사람들입니다. 저는 선생님을 모시고 황폐한 정신세계에 작은 씨앗이나마 함께 뿌리고 다녔던 동반자였습니다. 철학에는 김형석 선생님과 안병욱 선생님, 문학 쪽에서는 제가 단순한 신변잡기가 아닌 하나의 에세이 붐을 통해 사람들이 생각을 하고 비전(vision)을 갖고 살 수 있도록 한 시대의 삶의 담론을 생산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인문학 콘서트 같은 많은 강연을 하고 다녔던 것입니다.   지금은 흔하지만 <독서신문>에서 주최하는 인문학 콘서트 같은 행사로서 전국순회 강연을 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선생님과 제가 부산에서부터 전남 광주, 전주, 대전, 대구, 그리고 서울에 이르기까지 전국 순회강연을 했을 때가 가장 큰 인상으로 남습니다.    그 시대는 제대로 된 강당이나 강연장이 없어서 예식장을 빌리는 경우가 허다했고, 시골에서는 심지어 극장을 빌려서 강연을 하는데 당대의 강연기록을 깰 정도로 젊은이들이 많이 몰려들었습니다. 한번은 선생님이 대전의 중도극장에서 강연을 할 당시, 매우 많은 사람들이 밀려와서 연단 위에까지도 청중들로 가득 채워졌었습니다. 그때 제가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선생님, 저들이 왜 자리에 이렇게 많이 모였을까요? 저들을 위해서 무엇을 하면 좋겠습니까?” 잘 알다시피 그 시절은 지금처럼 인터넷이나 여러 매체가 있었던 시절도 아니었습니다. 젊은이들은 오로지 책과 강연을 제외하고는 지식을 섭취하는 것은 물론 자기의 꿈을 키우면서 미래의 비전을 가질 수 있을 만한 장소와 공간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젊은이들의 고충을 고민하던 끝에 탄생한 것이 〈문학사상>이었습니다. 안병욱 선생님은 철학뿐만 아니라 간접적으로는 문학에 있어서도 큰 영향을 끼치신 분입니다. 비록 저와 길은 달랐을지라도, 많은 곳에서 선생님과 강연을 했을 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필자로서 잡지나 신문에 글을 쓰면서 동세대인과 같은 역할을 해 왔습니다.    저도 이제 미수(米壽)의 나이 88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저보다 훨씬 새로운 미래를 젊은이들에게 열어 주셨던 안병욱 선생님과 함께 동행 했던 기억이 얼마나 소중했던가를 떠올리게 됩니다. 게다가 지금이야말로 저보다 연장자이셨던 안병욱 선생님의 왕성했던 ‘타우마제인(thaumazein)’, 곧 진리에 대한 욕망, 끝없이 경이로운 세계를 향해서 나아가는 탐구적 자세, 지적 모험 등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안병욱 선생님이 남기신 그 빈자리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채워야 합니다. 지성인들은 젊은이들로 하여금 정신세계의 풍요를 누리며 미래를 꿈꾸게 하려면 반드시 안병욱 선생님처럼 진리에 대한 열망을 멈추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 이화여자대학교 명예석좌교수 
  • 김형석 연세대학교 명예교수
    약력
    선생은 90을 넘기는 수를 누리셨습니다. 다른 사람이 뒤따를 수 없는 큰 업적을 남기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생애를 사셨습니다. 선생보다 더 보람 있는 인생을 살 수는 없을 것 같기도 합니다. 아마 우리는 고향의 선배 스승이셨던 도산 선생의 뒤를 떠날 수 없는 운명이었던 것 같습니다. 선생은 도산의 정신이 곧 진정한 애국심임을 가르치고 실천하는 데 모든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너무 수고가 크셨습니다.    안병욱 선생은 항상 “우리나라에는 많은 종교인들이 있고 고등 교육기관도 수없이 많아졌는데, 어째서 사회악은 증대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탄식을 하셨습니다. 철학도로 태어나 교육을 담당하고 있으나, 한국적 가치관과 인륜적 민족의식을 주지 못해 죄송하다는 고백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제자들을 키워 조국의 장래를 위한 기초를 닦는 데 일생의 정열을 쏟았습니다. 정신적 굶주림을 치유하기 위해 많은 저서를 남겼습니다. 최선을 다해주신 선생에게 감사와 위로를 드리고 싶은 것이 저희들의 심정입니다.   김형석 연세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 
  • 이동원 지구촌교회 원로목사
    약력
    고 안병욱 교수님은 우리 사회의 큰 스승이셨습니다. 그분이 사모했던 도산의 정신을 그대로 체현하신 분이었습니다. 그분의 글은 군부 독재의 암울한 시대를 견디게 하는 빛이었습니다. 그분의 글은 맑고 깊은 멋으로 우리의 지성을 계몽했습니다. 70-80년대를 살던 젊은이들의 생각을 글로 키웠습니다. 문자 그대로 선생님의 글은 우리들의 인생 사전이었습니다.    저는 오늘의 젊은이들도 선생님의 글을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우리 시대는 피상성과 포장을 강조하며 파괴와 해체의 역기능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삶의 바른 길을 강조 하신 선생님이 그립습니다. ‘생즉도’와 ‘사즉행’을 가르치신 선생님이 그립습니다. 선생님의 글을 읽고 삶의 깊이와 넓이와 높이를 더하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이동원 지구촌교회 원로목사, 국제코스타 이사장
  • 안동규 한림대학교 교수
    약력
    나의 부친 이당 안병욱의 평전을 출판하며   나의 아버지는 이당 안병욱 선생이다. 아버지는 1920년 평안남도 용강에서 태어났고 2013년 10월 10일 강원도 양구 철학의 집에 묻히셨다. 아버지는 철학자다. 일생동안 50여권의 책을 집필하였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대중 강연과 도산 아카데미운동을 하면서 수많은 독자, 학생, 시민들과 함께 하셨다. 이당은 많은 사람들에게 저자, 강연자, 서예가, 주례자, 사상가, 운동가, 선생이며 공인이었지만 나에게는 평범하고 따뜻한 아버지였다.   우리들은 누구나 태어나면서 아버지를 갖게 된다. 나의 인생 56년을 함께한 아버지와 나는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부자지간이지만 우리의 대화는 철학, 종교, 정치, 여행, 영화, 시사, 그리고 일상적인 것들을 포함하는 소위 인생사전 같은 대화였다. 아버님의 마지막 50번째의 책은 제목을 ‘인생사전’이라 정했다. 이당이 쓴 50권의 책의 서문은 아버지 스스로가 쓰셨는데 마지막 2권은 다른 사람들이 썼다. 49번째 책 ‘철학의 즐거움’은 아버지가 병중에 계셔서 아들인 내가 썼다. 나는 아들이지만 아버지의 글을 흉내 낼 정도로 아버지를 잘 알고 많이 닮아 있었다. 이당 사후에 출간이 된 50번째의 책 ‘인생사전’은 아버지를 사랑하는 지인인 손봉호 교수 이동원 목사, 이당의 제자 숭실대학교 철학과 김선욱 교수, 그리고 평생 벗이었던 철학자 김형석 교수가 쓰게 되었다.   이당을 기념하는 안병욱평전이 세상에 출간된다는 사실은 가족들에게는 큰 보람과 행복이고 이당을 기억하는 수 많은 사람들에게는 즐거움과 기쁨이 될 것이다. 평전의 저자인 김대식 박사는 함석헌 사상의 특강의 강사로 2년 전 춘천에 오게 되어 나와 처음 만나면서 인연을 쌓게 되었다. 이당의 땀과 혼이 남아있는 숭실대학교 철학과에서 철학박사를 그리고 카톨릭대학교의 종교학 박사도 소유하고 있는 김대식 박사는 이당평전의 적임자라고 할 수 있다. 이당의 문체는 무겁고 진지하다. 김대식 박사는 이당처럼 여러 책들을 저술하였고 문체 또한 이당처럼 무게감이 있어서 이당의 사상과 삶을 녹여내는 평전작업의 어려움을 잘 소화하였다. 완성도 높은 평전을 마무리하게 된 것을 다시 한번 지면을 통해 감사를 드린다.   양구에 가면 한국 철학의 두 아이콘 안병욱/김형석을 기념하는 철학의 집이 있다. 먼저 떠난 안병욱의 돌판 묘에는 그의 글씨체인 이당체(물흐르듯한 자유로움의 본인이 명명한 글씨체) 여섯 글자가 돌판에 새겨져 있다. 청정심 청무성(淸淨心, 聽無聲). ‘사람은 마음이 깨끗하고 맑아야 하며, 그러면 무성(소리없음)을 들을 수 있어. 진리의 소리는 원래 소리가 안 나거든. 자유/사랑/진리/신의 말씀 등은 원래 소리가 없어’ 아버지의 돌판 묘를 볼 때마다 그가 나에게 들려준 아버지의 음성이 기억난다.    이당은 성실의 철학자이다. 이당은 강연에서 “우리는 성실의 모자를 쓰고 겸손의 허리띠를 띠고 근면의 신을 신고 나의 길을 가야합니다‘라고 갈파하였고 그의 자작시 ’나의 인생시‘에서 ”나는 인생을 사랑합니다. 내가 정성을 기울여 추구할 진리가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외쳤다. 강원도 양구 철학의 집에가면 이당 안병욱이 사람들을 계속 만나고 있을 것이다. 철학의 집에는 안병욱의 어록과 붓글씨 그리고 책과 업적들이 청무성(聽無聲)의 역할을 하고 있다. 77세 아버님의 희수 생신 때 평상시 안 우시던 아버지는 우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저의 소원은 통일이 되어서 고향땅 평안남도 용강에서 돌아가신 아버님/어머님의 무덤에서 목 놓아 울고 싶은 것이다.’ 불행하게도 그 소원은 안 이루어지셨지만 다행인 것은 북녘 고향땅과 아주 가까운 휴전선 근처 강원도 양구에 아버지가 잠들어 계시다는 사실이다.   노 철학자 아버지에게 돌아가시기 얼마 전 나는 ‘아버지, 철학이 도대체 뭐예요?’ 라고 순진한 질문을 하였는데 그때 이당은 ‘철학은 죽음의 연습이다’라고 무거운 철학적 대답을 하였다. 나는 그것이 그 때에는 무슨 뜻인지 이해를 못하였는데, 아버지의 죽음을 목도하면서야 그 심오한 뜻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누구나 죽어야 되는 인간의 삶속에서 철학은 바로 죽음의 연습이다’ 이것이 아들에게 가르친 마지막 아버지 이당의 인생철학 청무성강의였다.   철학자 안병욱의 삶과 사상과 일생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이당 안병욱평전’이 철학이 무엇이고, 성실이 무엇이며, 과연 인생이 무엇인지를 찾는 독자들에게 또 하나의 청무성강의가 되기를 바라면서 아버지의 묘 앞에 이 평전을 바칩니다.   막내 아들 안동규 (한림대학교 교수) 
  • 김선욱 숭실대학교 교수
    약력
    안병욱 선생님께서는 재직 당시 숭실대보다도 더 유명하셔서, “안병욱 교수는 숭실대 교수다”가 아니라 “숭실대는 안병욱 교수가 있는 대학이다”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였습니다. 선생님께 배우기 위해 숭실대 철학과를 선택해 입학한 학생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저희는 강단에서 그 폐부에 스며드는 울림이 있는 목소리의 강의를 듣고 깨침의 감동과 감격을 매시간 느끼며 행복했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한국사회가 정치 사회적으로 어려움 가운데 있을 때 무엇이 올바른 길인지를 가르쳐주신 이 나라의 스승이셨습니다. 교수로서 상아탑에 갇히지 않고 학문과 현실을 아우르는 학자로서의 실천, 지성인으로서의 참된 실천의 모습을 보여주신, 지금의 표현대로 하자면, ‘공공철학자’의 귀감이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그 가르침의 내용에 있어서도 누구나 또 어느 시대나 곱씹고 또 실천해야만 할 것들을 알려주셨습니다. 이제 숭실은 선생님께서 남기신 말씀이 서가에 처박힌 책속의 글로서가 아니고 삶의 실천 속에서 빛을 발하는 말씀으로 드러낼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당신의 키보다 더 높은 분량으로 써 내신 책들 속에 담긴 지혜는 두고두고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의 영혼의 양식이 될 것입니다.   김선욱 숭실대학교 철학과 교수  
  • 박인주 전 청와대 사회통합수석 비서관
    약력
    이당 안병욱 선생님께서는 어둡고 힘든 시기였던 196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말까지 30여 년간 수십만 명의 한국인, 특히 청소년들에게 말씀과 글을 통해 엄청난 영향을 미치셨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니, 꿈을 키우고, 힘을 기르고, 그리고 성취를 이루어야 한다(3A 원리: Ambition, Ability, Achievement)고 말씀하셨다. 그러기 위한 실천 사항으로 세 가지, 국제화와 태평양 시대 준비를 위한 영어 능력, 타자 자격증, 운전면허증을 취득해야 한다고 하셨다.    필자는 말씀과 글로 선생님의 금과옥조와 같은 가르침과 영향을 받은 수십만 명 중에서 가장 지근에서 매우 긴 기간 동안 훈육을 받은 몇 사람 중의 한 명이다. 내 아내를 소개해 주고, 멀리 대구까지 오시어 주례까지 해주셨으며, 나의 큰아들 영민의 이름까지 지어주셨다. 홍사단 대구지부 발전 기금 마련을 위해 도자기에 붓글씨를 수십 점 써 주시고, 또한 흥사단 서울지부 발전을 위해 40여 점의 붓글씨를 써 주기도 하셨다.   뿐만 아니라, 흥사단의 모든 조직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셨다. 선생님은 저뿐만 아니라, 흥사단, 한국의 젊은이들을 두루두루 많이 사랑하셨고, 많은 것을 나누어주시었다. 그래서 선생님은 나의 정신과 가슴속에 영원히 함께 살아 계시며, 흥사단 아카데미 10만 여 명의 동지와 그 시대의 청년 수십만 명의 정신 속에 지금도 생생하게 살아 계신다. 그리하여 선생님은 그 시대 한국사회의 젊은이들의 꿈이자 횃불이셨고, 북극성과 같은 존재셨다. 오늘도 그 시절의 선생님이 주신 끝없는 사랑을 생각하면, 가슴이 뜨거워진다.   박인주 전 청와대 사회통합수석 비서관, 전 홍사단 이사장, 현재 생명존중시민회의 대표    
  • 황보윤식 함석헌평화연구소 소장
    약력
    회고의 글을 쓰는 이 사람(승실대 68학번)은 안병욱 선생님의 강의를 두 강좌 들은 바 있습니다. 당시 숭실대학은 기독교 대학이었지만 다른 대학이 부럽게 생각하는 교수진이 포진해 있었으므로, 특히 사학과와 철학과는 당대 명문학과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철학과의 경우, 이승만 독재 권력 때, 언론 탄압에 굽히지 않고 한국의 지성인 잡지 「사상계(분)를 지켜 낸 사상과 실천의 선구자 안병욱 선생님은 ‘자유와 민주주의의 확립’이라는 유명한 글을 남긴 철학 에세이 작가이기도 합니다.   안병욱 선생님은 매년 신입생 입학식 때마다, 신입생들에게 특별 강연을 도맡아 했습니다. 특별 강연에서는 숭실(崇實), 성실(誠實), 진실(眞實) 등 삼실(三實)의 사상과 대학생의 각오, 그리고 당 시대에 걸맞은 대학생들의 자세, 어떻게 공부를 할 것인가 등의 내용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안병욱 선생님은 당시 승실대학의 얼굴이자, 간판이었습니다. 안병욱 선생님은 늘 독재 권력을 조롱하듯, 젊은이들에게 살아 있는 정신을 가르쳤습니다. 정신이 살아 쌓이고 쌓이면 언제인가는 독재 권력을 물리치는 힘이 될 거라고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비폭력 평화 사상’을 학생들에게 일깨워 주었다고 봅니다.    선생님은 강의 때마다 늘 책을 당신의 키만큼 출간하겠다고 공언하셨습니다. 그 공언한 약속을 지키고 가셨습니다. 본문 내용에서도 보는 바와 같이, 엄청난 철학 에세이집을 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글을 쓰기 전에는 반드시 손을 씻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늘 정결한 마음으로 글을 써야 한다”는 말씀을 하곤 했습니다. 추천자도 그 말씀에 전이(轉移)가 되어 책을 읽거나, 글을 쓰기 전에는 늘 손을 먼저 씻고 눈을 찬물로 헹군 다음에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책을 보고, 글을 쓰는 사람은 눈(目)이 보배이기 때문에 눈을 잘 보존해야 한다고 하신 안병욱 선생님의 말씀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게 남아 있습니다.    이번 『안병욱 평전』은 우리나라 최초의 ‘철학평전’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라고 봅니다. 이 깊이 있는 ‘안병욱 철학평전’은 평전에 그치지 않고, 안병욱의 사상을 연구하는 안내서 역할도 하리라 생각합니다. 철학을 전공하는 연구자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들도 꼭 읽을 필요가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철학평전’입니다. 독자 제현(讀者諸賢) 께 일독/이독/삼독을 권합니다.   황보윤식 함석헌평화연구소 소장 
  • 이당 안병욱 선생님의 연보
    약력
    평안남도 용강에서 태어난 이당(怡堂) 안병욱(安秉煜, 1920년 6월 26일 ~ 2013년 10월 7일) 교수는 서울대학교 김태길 교수, 연세대학교 김형석 교수와 함께 한국의 3대 철학자로 일컬어진다. 1958~1964년 월간 ‘사상계’ 주간을 맡아 언론 자유 확립에도 앞장섰다. 또한, 숭실대학교 교수, 숭실대학교 인문사회과학연구소장, 경기대학교 대학원 초빙교수, 흥사단공의회장, 흥사단 이사장, 도산아카데미 고문,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이사 등을 지냈다. 국민훈장 모란장, 제1회 숭실인상, 제3회 도산인상, 제8회 유일한상 등을 수상했고 『현대사상』, 『파스칼 사상』, 『도산사상』, 『사색인의 향연』, 『너와 나의 만남』,『사색인의 향연(饗宴)』, 『알파와 오메가』, 『행복(幸福)의 미학(美學)』, 『진리의 샘터에서』, 『인생은 예술처럼』, 『안병욱 인생론』 등 사상집과 수필집 47권이 있다. 안병욱 교수는 에세이, 철학 사상, 전기 등의 저서와 논문을 통해 자기 회복과 각성, 휴머니즘, 자유 등을 주제로 현대 지성과 현대인의 정신이 추구해야할 방향을 제시하였다.
  • 안병욱 교수의 삶
    약력
    평안남도 용강에서 태어난 이당(怡堂) 안병욱(安秉煜, 1920년 6월 26일 ~ 2013년 10월 7일) 교수는 서울대학교 김태길 교수, 연세대학교 김형석 교수와 함께 한국의 3대 철학자로 일컬어진다. 1958~1964년 월간 ‘사상계’ 주간을 맡아 언론 자유 확립에도 앞장섰다. 또한, 숭실대학교 교수, 숭실대학교 인문사회과학연구소장, 경기대학교 대학원 초빙교수, 흥사단공의회장, 흥사단 이사장, 도산아카데미 고문,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이사 등을 지냈다. 국민훈장 모란장, 제1회 숭실인상, 제3회 도산인상, 제8회 유일한상 등을 수상했고 『현대사상』, 『파스칼 사상』, 『도산사상』, 『사색인의 향연』, 『너와 나의 만남』,『사색인의 향연(饗宴)』, 『알파와 오메가』, 『행복(幸福)의 미학(美學)』, 『진리의 샘터에서』, 『인생은 예술처럼』, 『안병욱 인생론』 등 사상집과 수필집 47권이 있다. 안병욱 교수는 에세이, 철학 사상, 전기 등의 저서와 논문을 통해 자기 회복과 각성, 휴머니즘, 자유 등을 주제로 현대 지성과 현대인의 정신이 추구해야할 방향을 제시하였다.
  • 인생의 지혜는 삶보다 먼저 옵니다
    약력
    평안남도 용강에서 태어난 이당(怡堂) 안병욱(安秉煜, 1920년 6월 26일 ~ 2013년 10월 7일) 교수는 서울대학교 김태길 교수, 연세대학교 김형석 교수와 함께 한국의 3대 철학자로 일컬어진다. 1958~1964년 월간 ‘사상계’ 주간을 맡아 언론 자유 확립에도 앞장섰다. 또한, 숭실대학교 교수, 숭실대학교 인문사회과학연구소장, 경기대학교 대학원 초빙교수, 흥사단공의회장, 흥사단 이사장, 도산아카데미 고문,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이사 등을 지냈다. 국민훈장 모란장, 제1회 숭실인상, 제3회 도산인상, 제8회 유일한상 등을 수상했고 『현대사상』, 『파스칼 사상』, 『도산사상』, 『사색인의 향연』, 『너와 나의 만남』,『사색인의 향연(饗宴)』, 『알파와 오메가』, 『행복(幸福)의 미학(美學)』, 『진리의 샘터에서』, 『인생은 예술처럼』, 『안병욱 인생론』 등 사상집과 수필집 47권이 있다. 안병욱 교수는 에세이, 철학 사상, 전기 등의 저서와 논문을 통해 자기 회복과 각성, 휴머니즘, 자유 등을 주제로 현대 지성과 현대인의 정신이 추구해야할 방향을 제시하였다. 
  • 안병욱아카데미 로고타이프
    약력
    안병욱 교수는 학자로서의 현대 철학 연구에 이바지하는 활동을 바탕으로 저술과 강연을 통해 참다운 철학의 길을 열고자 힘썼다. 현대사회가 건강하고 아름답게 발전하는 데 열과 성을 다하였던 안병욱 교수는 특히, 인간성 상실과 가치관 혼란과 같은 인간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에 깊은 관심과 열정을 쏟았다. 우리는 그를 ‘운명과 자유의 교향악을 연주하는 철학자’라고 지금도 그의 글을 통해 여전히 교감하며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고 있다. 로고타이프에서는 이런 의미를 종합적으로 담고자 하였다. 현재를 이해하고 성찰하는 것을 바탕으로 역사를 해석하고 미래를 결단한다는 맥락에서 사람이 무릎을 굽혀 성찰하며, 역동적으로 출발하려는 모습, 이것이 고집이 아니라 소통이어야 한다는 의미로 열린 문, 그리고 아카데미라는 차원에서 건물을 형상화하였다.
  • 김대식 원장
    약력
    안병욱 평전의 저술자 김대식 박사는 박수근과 이해인이 탄생한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났다. 서강대학교, 대구가톨릭대학교, 숭실대학교 대학원에서 공부하였으며 종교학과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서울신학대학교, 성공회대학교, 숭실대학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에 출강했으며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 한국종교연합(URI-Korena) 지도위원, 함석헌평화연구소 부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 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씨알의 희망과 분노』(공저),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 성서해석 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식탁의 영성』(공저), 『망각의 해석학』(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생태 영성의 이해』,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예수와 신앙 언어』. 『함석헌과 이성의 해방』, 『그리스도교 감성학』, 『함석헌의 평화론』, 『간트철학과 타자인식의 해석학』,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그리스도교 생태철학』, 『켜켜이 쌓인 시간을 풀어주는 사람』, 『치명적 자유의 향연: 아나키즘과 함석헌』(공저), 『아시아 평화공동체』(공저), 『인문학적 상상력과 종교』(공저) 등이 있다. 논문으로는 「종교 간 고통에 대한 해석학적 성찰과 유동적 종교」, 「생명에 대한 존재론적 인식과 생명미학적 정치」 등이 있다. 주요 관심분야는 아나키즘과 현상학적 인식론 및 존재론을 기반으로 하는 함석헌의 철학과 사상, 로자 룩셈부르크의 사회주의 해석, 기술철학과 정치미학, 해체구성적 종교이다. 
  • 안병욱아카데미 프로그램
    약력
    평안남도 용강에서 태어난 이당(怡堂) 안병욱(安秉煜, 1920년 6월 26일 ~ 2013년 10월 7일) 교수는 서울대학교 김태길 교수, 연세대학교 김형석 교수와 함께 한국의 3대 철학자로 일컬어진다. 1958~1964년 월간 ‘사상계’ 주간을 맡아 언론 자유 확립에도 앞장섰다. 또한, 숭실대학교 교수, 숭실대학교 인문사회과학연구소장, 경기대학교 대학원 초빙교수, 흥사단공의회장, 흥사단 이사장, 도산아카데미 고문,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이사 등을 지냈다. 국민훈장 모란장, 제1회 숭실인상, 제3회 도산인상, 제8회 유일한상 등을 수상했고 『현대사상』, 『파스칼 사상』, 『도산사상』, 『사색인의 향연』, 『너와 나의 만남』,『사색인의 향연(饗宴)』, 『알파와 오메가』, 『행복(幸福)의 미학(美學)』, 『진리의 샘터에서』, 『인생은 예술처럼』, 『안병욱 인생론』 등 사상집과 수필집 47권이 있다. 안병욱 교수는 에세이, 철학 사상, 전기 등의 저서와 논문을 통해 자기 회복과 각성, 휴머니즘, 자유 등을 주제로 현대 지성과 현대인의 정신이 추구해야할 방향을 제시하였다.
  • 안병욱 에세이 힐링
    약력
    평안남도 용강에서 태어난 이당(怡堂) 안병욱(安秉煜, 1920년 6월 26일 ~ 2013년 10월 7일) 교수는 서울대학교 김태길 교수, 연세대학교 김형석 교수와 함께 한국의 3대 철학자로 일컬어진다. 1958~1964년 월간 ‘사상계’ 주간을 맡아 언론 자유 확립에도 앞장섰다. 또한, 숭실대학교 교수, 숭실대학교 인문사회과학연구소장, 경기대학교 대학원 초빙교수, 흥사단공의회장, 흥사단 이사장, 도산아카데미 고문,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이사 등을 지냈다. 국민훈장 모란장, 제1회 숭실인상, 제3회 도산인상, 제8회 유일한상 등을 수상했고 『현대사상』, 『파스칼 사상』, 『도산사상』, 『사색인의 향연』, 『너와 나의 만남』,『사색인의 향연(饗宴)』, 『알파와 오메가』, 『행복(幸福)의 미학(美學)』, 『진리의 샘터에서』, 『인생은 예술처럼』, 『안병욱 인생론』 등 사상집과 수필집 47권이 있다. 안병욱 교수는 에세이, 철학 사상, 전기 등의 저서와 논문을 통해 자기 회복과 각성, 휴머니즘, 자유 등을 주제로 현대 지성과 현대인의 정신이 추구해야할 방향을 제시하였다.
  • 안병욱 인성학교
    약력
    평안남도 용강에서 태어난 이당(怡堂) 안병욱(安秉煜, 1920년 6월 26일 ~ 2013년 10월 7일) 교수는 서울대학교 김태길 교수, 연세대학교 김형석 교수와 함께 한국의 3대 철학자로 일컬어진다. 1958~1964년 월간 ‘사상계’ 주간을 맡아 언론 자유 확립에도 앞장섰다. 또한, 숭실대학교 교수, 숭실대학교 인문사회과학연구소장, 경기대학교 대학원 초빙교수, 흥사단공의회장, 흥사단 이사장, 도산아카데미 고문,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이사 등을 지냈다. 국민훈장 모란장, 제1회 숭실인상, 제3회 도산인상, 제8회 유일한상 등을 수상했고 『현대사상』, 『파스칼 사상』, 『도산사상』, 『사색인의 향연』, 『너와 나의 만남』,『사색인의 향연(饗宴)』, 『알파와 오메가』, 『행복(幸福)의 미학(美學)』, 『진리의 샘터에서』, 『인생은 예술처럼』, 『안병욱 인생론』 등 사상집과 수필집 47권이 있다. 안병욱 교수는 에세이, 철학 사상, 전기 등의 저서와 논문을 통해 자기 회복과 각성, 휴머니즘, 자유 등을 주제로 현대 지성과 현대인의 정신이 추구해야할 방향을 제시하였다.
  • 안병욱 인문학여행
    약력
    평안남도 용강에서 태어난 이당(怡堂) 안병욱(安秉煜, 1920년 6월 26일 ~ 2013년 10월 7일) 교수는 서울대학교 김태길 교수, 연세대학교 김형석 교수와 함께 한국의 3대 철학자로 일컬어진다. 1958~1964년 월간 ‘사상계’ 주간을 맡아 언론 자유 확립에도 앞장섰다. 또한, 숭실대학교 교수, 숭실대학교 인문사회과학연구소장, 경기대학교 대학원 초빙교수, 흥사단공의회장, 흥사단 이사장, 도산아카데미 고문,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이사 등을 지냈다. 국민훈장 모란장, 제1회 숭실인상, 제3회 도산인상, 제8회 유일한상 등을 수상했고 『현대사상』, 『파스칼 사상』, 『도산사상』, 『사색인의 향연』, 『너와 나의 만남』,『사색인의 향연(饗宴)』, 『알파와 오메가』, 『행복(幸福)의 미학(美學)』, 『진리의 샘터에서』, 『인생은 예술처럼』, 『안병욱 인생론』 등 사상집과 수필집 47권이 있다. 안병욱 교수는 에세이, 철학 사상, 전기 등의 저서와 논문을 통해 자기 회복과 각성, 휴머니즘, 자유 등을 주제로 현대 지성과 현대인의 정신이 추구해야할 방향을 제시하였다.
  • 안병욱 독서대학
    약력
    평안남도 용강에서 태어난 이당(怡堂) 안병욱(安秉煜, 1920년 6월 26일 ~ 2013년 10월 7일) 교수는 서울대학교 김태길 교수, 연세대학교 김형석 교수와 함께 한국의 3대 철학자로 일컬어진다. 1958~1964년 월간 ‘사상계’ 주간을 맡아 언론 자유 확립에도 앞장섰다. 또한, 숭실대학교 교수, 숭실대학교 인문사회과학연구소장, 경기대학교 대학원 초빙교수, 흥사단공의회장, 흥사단 이사장, 도산아카데미 고문,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이사 등을 지냈다. 국민훈장 모란장, 제1회 숭실인상, 제3회 도산인상, 제8회 유일한상 등을 수상했고 『현대사상』, 『파스칼 사상』, 『도산사상』, 『사색인의 향연』, 『너와 나의 만남』,『사색인의 향연(饗宴)』, 『알파와 오메가』, 『행복(幸福)의 미학(美學)』, 『진리의 샘터에서』, 『인생은 예술처럼』, 『안병욱 인생론』 등 사상집과 수필집 47권이 있다. 안병욱 교수는 에세이, 철학 사상, 전기 등의 저서와 논문을 통해 자기 회복과 각성, 휴머니즘, 자유 등을 주제로 현대 지성과 현대인의 정신이 추구해야할 방향을 제시하였다.
  • 안병욱 학술세미나
    약력
    평안남도 용강에서 태어난 이당(怡堂) 안병욱(安秉煜, 1920년 6월 26일 ~ 2013년 10월 7일) 교수는 서울대학교 김태길 교수, 연세대학교 김형석 교수와 함께 한국의 3대 철학자로 일컬어진다. 1958~1964년 월간 ‘사상계’ 주간을 맡아 언론 자유 확립에도 앞장섰다. 또한, 숭실대학교 교수, 숭실대학교 인문사회과학연구소장, 경기대학교 대학원 초빙교수, 흥사단공의회장, 흥사단 이사장, 도산아카데미 고문,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이사 등을 지냈다. 국민훈장 모란장, 제1회 숭실인상, 제3회 도산인상, 제8회 유일한상 등을 수상했고 『현대사상』, 『파스칼 사상』, 『도산사상』, 『사색인의 향연』, 『너와 나의 만남』,『사색인의 향연(饗宴)』, 『알파와 오메가』, 『행복(幸福)의 미학(美學)』, 『진리의 샘터에서』, 『인생은 예술처럼』, 『안병욱 인생론』 등 사상집과 수필집 47권이 있다. 안병욱 교수는 에세이, 철학 사상, 전기 등의 저서와 논문을 통해 자기 회복과 각성, 휴머니즘, 자유 등을 주제로 현대 지성과 현대인의 정신이 추구해야할 방향을 제시하였다.
  • 안병욱 교수의 활동
    약력
    안병욱 교수는 학자로서의 현대 철학 연구에 이바지하는 활동을 바탕으로 저술과 강연을 통해 참다운 철학의 길을 열고자 힘썼다. 현대사회가 건강하고 아름답게 발전하는 데 열과 성을 다하였던 안병욱 교수는 특히, 인간성 상실과 가치관 혼란과 같은 인간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에 깊은 관심과 열정을 쏟았다. 우리는 그를 ‘운명과 자유의 교향악을 연주하는 철학자’라고 지금도 그의 글을 통해 여전히 교감하며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고 있다. 로고타이프에서는 이런 의미를 종합적으로 담고자 하였다. 현재를 이해하고 성찰하는 것을 바탕으로 역사를 해석하고 미래를 결단한다는 맥락에서 사람이 무릎을 굽혀 성찰하며, 역동적으로 출발하려는 모습, 이것이 고집이 아니라 소통이어야 한다는 의미로 열린 문, 그리고 아카데미라는 차원에서 건물을 형상화하였다.
  • 안순모 작가
    약력
    내 고향은 화성이다. 이곳에서 태어났고 공부도 했다. 공직생활도 화성에서 시작하여 정년퇴직했다. 직장 관계로 수원으로 이사하여 살았으나 지금은 화성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도 언제나 마음만큼은 고향 집에 있었다.   지난날을 돌이켜 보면 학업과 농사일을 병행했고, 직장에 다닐 때도 여전히 농사일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고향 집에는 언제나 부모님의 사랑과 지난 추억이 어려 있기에 고생스러웠던 기억들마저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동년배들보다는 다소 늦게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했고, 같은 전공으로 대학원도 졸업했다.   40년 공직생활을 정년으로 마치고, 취미생활로 사진을 배우기 시작했다. 화성시사진작가협회에서 활동하게 되었던 것도 고향의 모습을 사진 속에 담아, 나의 추억을 시대 가치적으로 승화하고 싶어서였다. 영국의 역사학자 에드워드 헬릿 카(Edward Hallett Carr)는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이다”라고 했다. 나는 이런 맥락에서 과거와 호흡하며 현재를 미래와 이어가는 작품을 하고 싶어 한다.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기독교를 알게 되었고, 지금까지 기독교 신앙을 갖고 생활하고 있다. 공무원이셨던 형님의 권유로 공직자가 되었고, 딸도 뒤를 이어 공무원이 되었다. 아들은 고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한다. 참으로 다복한 가정과 가족들을 생각하노라면 더욱더 진한 감사가 배어 나온다. 모두 진실하고 올곧게 살려는 정신을 소중하게 여기며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름의 보람과 행복을 느끼기도 한다.   평생 하나의 길로만 걸어오다가 보니 다소 다양한 삶의 길을 걸어보지 못한 아쉬움도 있다. 그래도 곁눈질하지 않고 묵묵히 소명감으로 일해 온 것이 그 어떤 보상보다 큰 자부심으로 가슴에 자리하고 있다. ‘정직과 진리 편에 서자’를 삶의 철학으로 살아온 인생 여정으로 인해 때로 답답하게 보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이정표가 흐트러짐 없이 지금까지 오게 한 힘이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변치 않고 최선을 다하리라고 마음을 가다듬어 본다.   늘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마음은 오늘도 배움을 지향하게 한다. 그리고 이런 자세가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고 경청하는 지혜를 일깨워주었다. 지금도 우리 사회가 더욱더 아름답고 행복하게 되는 데 이바지하고자 두 번째 청춘을 불태우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