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즈코리아 뉴스뉴스2026. 4. 14. 오후 1:11:03

봄날은 간다

박시우 작가
봄날은 간다

〈봄날은 간다〉라는 노래가 있다. 이 노래는 가수 전영록 씨의 어머니 백설희 씨가 1954년에 발표해 널리 알려졌다. 같은 제목의 영화도 있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를 만든 허진호 감독이 연출해 2001년 개봉한 작품이다. 

이처럼 〈봄날은 간다〉라는 제목은 노래와 영화를 통해 한국인의 감수성 속에 오래 남아 있는 말이 되었다.

특히, 이 노래의 가사는 2004년 시인 100명에게 물었을 때 가장 좋아하는 대중가요 노랫말로 꼽힐 만큼 문학성까지 인정받았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이 노래가 발표된 시점이다. 1954년은 6·25전쟁의 상처가 채 가시지 않은 때였고, 정전협정이 체결된 이듬해였다. 그러므로 이 노랫말 속 그리움과 상실의 정서는 단순한 개인적 이별을 넘어, 시대 전체가 안고 있던 아픔과도 겹쳐 읽힌다. 

그래서 화자가 그리워하는 대상이 군에 간 남편이었을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해진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

이 노랫말은 겉으로 보면 봄날의 풍경을 노래하는 듯하지만, 실상은 지나가 버린 사랑과 청춘의 시간을 붙잡아 바라보는 서정의 독백이다. 

‘연분홍’이라는 빛깔은 진달래꽃처럼 곱고 화사하여, 봄날의 정서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여기서 “연분홍 치마”는 단순한 옷차림이 아니다. 그것은 사랑의 시절일 수도 있고, 가장 눈부셨던 청춘의 한순간일 수도 있으며, 마음속 깊이 사랑하는 사람을 상징한다고도 볼 수 있다.

그다음 표현이 마음을 적신다. “휘날리더라.” 이는 단순히 “휘날렸다”라고 사실을 전달하는 문장이 아니다. ‘~더라’라는 어미는 보고 겪은 것을 뒤늦게 떠올리며 되새길 때 나오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 한마디에는 기억이 실려 있고, 감정이 배어 있으며,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을 다시 만져 보는 듯한 회한이 담겨 있다. 

봄바람에 휘날리는 것은 치맛자락만이 아니라, 다시는 붙잡을 수 없는 사랑의 시간이고 청춘의 결이기도 하다.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이라는 구절도 마찬가지다. 꽃이 피고 지는 자연의 변화에 따라 함께 웃고 울었던 시절은 그만큼 서로의 마음이 깊이 연결되어 있던 때를 보여 준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은 오래 붙들려 주지 않는다. “봄날은 간다”라는 후렴은 그 사실을 담담하게 인정하고 있다. 가장 찬란했던 순간도 지나가고, 가장 애틋했던 약속도 시간 앞에서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그 안에 스며 있다. 그래서 이 노래는 단순히 슬픈 사랑의 노래가 아니라, 빛났던 그 시절을 아름다운 기억으로 꽃피우려는 삶의 노래가 된다. 

예부터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오래 피어 있을 수는 없다는 뜻이다. 결국에는 가장 좋았던 것도 지나간다. 인생의 봄날도, 사랑의 봄날도, 청춘의 봄날도 머물지 않는다. 

〈봄날은 간다〉는 바로 그 사실을 노래한다. 그래서 듣는 이의 마음을 울린다. 누구에게나 지나간 봄날 하나쯤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노래가 우리에게 남기는 의미가 허무만은 아니다. 지나가는 봄날을 붙들 수는 없지만, 그 봄날을 기억하고 승화하는 일은 가능하다. 

한때의 찬란함이 사라졌다고 해서 삶 전체가 어두워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나간 봄의 의미를 깊이 품어 싹을 틔울 때, 더 넓고 깊은 계절을 맞이할 수 있게 된다. 상실을 통과한 사람만이 새로운 생명의 빛을 더 또렷이 꽃피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거리마다 화사하게 피었던 벚꽃이 하나둘 떨어지고 있다. 말 그대로 봄날이 가고 있다. 그러나 가는 봄을 아쉬워하는 데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떨어지는 꽃잎 너머로 더 짙어질 신록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지나감을 슬퍼하는 마음도 필요하지만, 그 지나감 속에서 다시 오는 생명의 푸름을 읽어내는 안목이야말로 청춘의 시야를 제공해줄 것이다. 봄날은 가지만, 생명은 또 다른 빛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가는 봄과의 작별에서 슬픔만이 아니라, 다음 계절을 향한 희망도 함께 배워야 한다.

박시우 작가
박시우 작가
psy@newsnetp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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