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는 밝을 때보다 어두울 때 더 또렷하게 자신의 존재 이유를 드러낸다. 햇빛이 가득한 낮에는 그 불빛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밤이 깊어지고 바다가 검어질수록, 파도가 거칠어지고 방향을 잃기 쉬워질수록, 등대는 비로소 자기 역할의 무게를 온전히 감당한다.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불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길을 잃은 누군가가 방향을 찾게 하려면 빛을 내는 것이다. 이것이 등대의 본질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기만을 위해 살지 않고 타인을 위해 빛을 비추는 사람을 두고 “등대 같은 사람”이라고 불러왔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인간의 삶도 등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은 혼자 존재하는 것 같아도 언제나 누군가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한 사람의 말 한마디가 누군가를 일으켜 세우기도 하고, 한 번의 배려가 다른 사람의 하루를 견디게 하기도 한다.
어떤 이는 가족 안에서 등대가 되고, 어떤 이는 학교나 직장에서, 어떤 이는 사회와 국가적 차원에서 등대가 되기도 한다.
등대의 크기는 서로 다를 수 있다. 바닷가에 우뚝 선 커다란 등대도 있고, 작은 포구를 지키는 아담한 등대도 있다. 그러나 크고 작음은 본질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과연 빛을 밝히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가정의 등대가 있다. 가족이 흔들릴 때 중심을 잡아 주고, 갈등 속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게 해주는 사람이 있다. 꼭 가장만이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어머니의 말 없는 인내가, 때로는 자녀의 따뜻한 위로가, 때로는 조용히 책임을 다하는 한 사람의 태도가 그 집의 등대가 되기도 한다.
사회의 등대도 있다. 자기 이익만을 좇지 않고 공동체를 위해 자기 능력과 시간을 내어 주는 사람들, 드러나지 않는 자리에서 원칙을 지키고 공공의 선을 붙드는 사람들, 그들이 있기에 사회는 완전히 어두워지지 않는다.
국가의 등대도 있다. 시대의 혼란 속에서도 더 큰 방향과 가치를 붙들며 사람들을 바른길로 이끄는 지도자와 사상가, 교육자와 시민이 바로 그런 존재들이다.
사람은 누구나 어떤 규모로든 등대가 되어야 하는 존재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지닌 존재적 가치다. 인간은 단지 먹고 사는 기능적 존재가 아니라, 자기 바깥을 비추고 누군가의 길에 의미를 더해야 하는 존재다.
다른 생명과 구별되는 인간의 존엄은 바로 여기에 있다. 자신을 넘어 타인을 생각하고, 혼자만의 안락을 넘어 공동체의 방향을 고민하며, 자기 이익만이 아니라 더 나은 삶의 질서와 의미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등대는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인간 존재에 대한 하나의 정의이기도 하다.
문제는 사람이 이런 존재적 가치를 잃을 때다. 누군가를 위해 불을 밝혀야 할 책임과 가능성을 잊어버린 사람은 단지 무기력해지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자기 안의 어둠을 밖으로 흘려보내며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존재가 되기도 한다.
삶의 중심에 자기 욕망만 남기면, 타인을 살피는 마음, 공동체를 향한 책임도 사라져 버린다. 이것은 빛과 어둠이 공존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 삶에서는 향기가 아니라 악취가 나기 시작한다. 여기서 말하는 악취란 단순한 기분이나 도덕적 비난의 말이 아니다. 사람을 소모품처럼 대하는 태도, 관계를 계산으로만 보는 시선, 책임을 회피하고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삶, 진실보다 편의를 더 중히 여기는 마음에서 비롯된 부패에서 파생되는 모든 것을 뜻한다.
인생에는 중간이 없다. 물론 현실의 사람은 완전한 빛도 아니고 완전한 어둠도 아니다. 모두 흔들리고 부족하다. 그러나 방향이라는 점에서 보면 우리는 계속 선택하며 산다.
빛을 밝히는 쪽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악취를 풍기는 길로 갈 것인가. 타인을 살리는 존재가 될 것인가, 타인을 지치게 하는 존재가 될 것인가.
삶은 이 물음 앞에서 반복적으로 대답하는 과정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사람에게 올바른 선택을 하게 하는가.
여기서 필요한 것이 바로 인문학적 상상력이다. 인문학적 상상력이란 책을 많이 읽었다는 뜻만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무엇인지, 삶이 무엇을 향해야 하는지, 내가 지금 어떤 존재가 되어 가고 있는지를 질문할 수 있는 능력이다.
즉, 눈앞의 효과와 즉각적인 이익만이 아니라, 더 깊은 차원의 의미와 가치, 책임과 관계를 상상할 수 있는 힘을 말한다. 사람은 이 상상력이 있을 때 비로소 자기 삶을 단순한 생존에서 존재의 문제로 끌어올릴 수 있다.
인문학의 가장 기본적인 질문이 “나는 누구인가?”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질문은 철학자의 책상 위에만 놓인 질문이 아니다. 오히려 바쁘게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가장 절실한 질문이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는가. 나는 누구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가. 나는 지금 빛을 밝히고 있는가, 아니면 악취를 풍기고 있는가.
이런 질문 앞에 정직하게 서는 순간, 비로소 배움이 시작된다. 배움이란 정보를 더 많이 쌓는 일이 아니라, 자기 존재를 더 진실하게 성찰하는 데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 사회가 이토록 혼란스럽고 지쳐 보이는 것도 어쩌면 이 질문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무엇을 소유할 것인가, 어떻게 더 빨리 성공할 것인가, 어떻게 더 많은 인정을 받을 것인가를 묻는 사람은 많지만, 나는 누구이며 어떤 빛을 밝혀야 하는 존재인가를 묻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 결과 사람들은 방향을 잃고, 관계는 메말라 가며, 공동체는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사람은 여전히 많지만, 등대는 점점 줄어드는 사회. 그것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사회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한다. 나는 어떤 등대가 될 것인가. 거대한 바다를 비추는 등대가 아니어도 좋다. 한 사람의 밤을 지켜 주는 작은 빛이어도 된다. 가정에서, 일터에서, 학교에서, 마을에서, 친구 곁에서, 누군가가 길을 잃지 않도록 조용히 빛을 비추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인간다운 삶의 길이다. 등대는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꼭 필요하다. 등대는 자기 자리를 떠나지도 않는다. 그러나 많은 이의 길을 살린다. 등대는 자기 자신을 위해 빛을 밝히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 빛 속에서 가장 분명한 존재 가치를 드러낸다.
우리가 모두 그렇게 살 수 있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덜 거칠고 덜 어두울 것이다. 거창한 영웅이 되지 않아도 된다. 다만, 자기 자리에서 불을 켜는 사람, 그 불빛을 끝까지 지키는 사람으로 살면 된다.
인간의 고귀함은 얼마나 높이 올랐느냐보다, 얼마나 많은 생명을 자기 빛으로 안전하게 이끌 수 있느냐에 더 가까운 것이다.
등대가 되어 삽시다. 그것이 타인을 위한 일이면서 동시에, 가장 깊은 차원에서 자기 자신을 사람답게 만드는 길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선택은 거창한 내일이 아니라, 바로 오늘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