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적 가치를 발하자
세상에 과연 쓸모없는 존재가 있을까?
이런 질문에 문득 쓰레기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쓰레기가 절대적으로 쓸모없는 존재를 의미할까? 이미 쓰레기의 재활용은 일반화되어 있다. 누군가에게는 쓰레기라도 다른 누군가에게는 자원이 되기도 한다.
겉으로는 의미 없고 쓸모없는 존재도 어떤 곳에서는 꼭 필요하고 의미 있는 존재가 되기도 한다.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에서처럼 나와는 무관했던 ‘그’도 ‘내’가 ‘그의 이름’을 부르자 꽃이 된다.
권정생 작가의 <강아지똥>에서도 ‘강아지똥’은 자신을 쓸모없는 존재라고 여긴다. 하지만 ‘민들레’가 ‘강아지똥’을 필요로 하자 민들레의 노란 꽃을 피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귀중한 존재가 된다.
모든 존재는 그 나름의 절대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적절한 곳에 쓰이지 못할 때 무가치한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쓰임에 적절한 만남을 이루지 못했다고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닐진대 낙망하거나 실망하는 것은 옳지 않다.
우리는 각자 자신이 귀하게 쓰이도록 가치를 아름답게 꽃피워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을 알아봐 주도록 향기를 퍼뜨려야 한다. 이런 모든 일이야말로 이 땅에 존재하는 우리들의 존재적 가치가 아니겠는가.
학생기자 김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