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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면 화수리 3.1 독립운동기념비 제막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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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6.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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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3월 1일을 맞이하면 3.1절 기념행사를 한다. 올해도 97번째 기념행사가 전국 방방곡곡에서 다채롭게 거행되었다. 나에게도 특별히 생각나는 일이 있어 펜을 들었다. 나는 1983년 3월 오산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게 되었다. 그해 88서울올림픽을 대비해서 도내 모든 학교에서 각 마을 단위로 ‘학도애향대’를 조직하라는 경기도교육청(교육감 황철수)의 지시가 내려왔다.
 
우리는 ‘학도애향대’를 중심으로 마을을 다듬고, 가꾸고, 청결히 하는 운동을 하기로 했다. 우리 학교는 이에 관한 계획서를 제출하여 우수학교로 선정되었고 1984년 3월부터 시범학교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때 나는 애향의식을 고취하려면 고장의 역사, 문화, 유물. 유적 자료, 호국 사료 등을 파악하여 학습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화성군청에서 화성군에 관련된 자료를 발췌하여 책을 만들기로 했다. 여러 자료를 정리하면서 우리 고장의 호국 사료 가운데 우정면 화수리 3.1 독립운동 사건을 정리하게 되었다.
 
이렇게 수집한 자료로 화성교육청은 1985년 11월 <화성향토애향지>라는 123쪽의 책자를 발간했다. 그리고 이 책을 화성군내 모든 초·중·고등학교와 약 680여 마을 ‘학도애향대’에 배부하였다. 나는 1986년 3월 오산 성호초등학교로 전근되었다. 그곳에서 나는 ‘학도애향대’ 시범활동을 경기도 전역에 보급하는데 크게 이바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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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9월 1일 온 나라가 서울올림픽의 열기로 들떠있을 때, 나는 교감으로 승진되어 우정면 화수초등학교로 발령을 받았다. 내가 화수리 3.1 독립운동 역사를 정리할 때 알게 된 바로 그곳이었다. 동네 분들에게 화수주재소가 있었던 곳을 알아보니, 학교 교문 진입로 오른쪽 실습지가 화수주재소 자리였다.
 
학교 부근에 사는 송영은 어르신께 화수리 3.1 독립운동 사건을 문의하고 말씀을 들었다. 그리고 내 나름의 설명을 하니, 여기 사는 주민보다 더 잘 안다며 칭찬을 하셨다.
 
1989년 1월 학교는 방학 중이었다. 어느 눈 오는 날 송영은 어르신께서 두 사람을 데리고 학교로 나오셨다. 말씀인즉, 어느 일본 TV 방송국에서 화수리 주재소사건 즉, 1919년 4월 3일 이 지역 독립운동가들이 가와바다(川端豊太郞) 일본 순사부장을 타살한 사건을 취재하러 왔기에 같이 왔다는 것이다. 어르신께서는 이 사건은 내가 더 잘 알고 있으니 설명해 주라고 하시며 가버리셨다.
 
나는 일본 기자에게 현장 설명을 해 주면서 마음이 아팠다. 일본은 이렇게 한국까지 와서 70년 전 일을 취재해 방송까지 하는데, 우리는 그 귀중한 역사적 장소를 학교실습지로 쓰고 있으니 무척 아쉬운 생각에 마음이 상했다.
 
내가 모시고 있던 김순중 교장 선생님은 그해 8월 말 정년퇴임을 하실 분이었다. 나는 이를 명분 삼아 정년퇴임기념으로 독립기념비를 세우려는 계획을 세웠다. 세울 장소, 비용, 지원받을 곳, 자문을 받을 사람 등을 생각했다. 이 고장 출신 향토사학자이며 수원에 사는 이종학 선생님께 자문 받기로 하고 연락을 드렸다.
 
1989년 4월 5일 식목일을 택해 이종학 선생님을 만나려고 했더니 우정면 주곡리 선영에 가셨다고 한다. 그곳을 찾아가서 이런 계획을 말씀드렸다. 이 고장 사람도 추진하다가 못한 일을 다른 지역 사람이 하려고 한다며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조암에 살면서 3.1 독립운동자료를 정리하여 <일제의 학살만행을 고발한다>라는 책을 발간하는 등 이 고장의 독립운동사를 연구하다가 부산 동천고등학교 교사로 간 김선진 선생님에게도 연락하여 세 사람이 의논하기로 하였다. 4월 10일 세 사람이 조암에서 만났다. 여기에서 나는 이 계획을 설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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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리에서 김선진 선생님은 집에 보관 중이던 자신의 저서 130여 권을 나에게 주면서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하셨다. 기념비 세울 장소는 옛날 화수주재소자리로 정했다. 규모는 가로, 세로 각 4.5m, 비용은 약 450만 원, 지원기관은 학교체육진흥회, 어머니회, 학부모들의 찬조를 생각했다.
 
4월 말경 교장 선생님께서 김현구 우정면장을 만나 자랑삼아 박창규 교감이 자신의 교장퇴직을 기념해 독립기념비 건립을 추진한다고 했다. 이것을 들은 면장님이 이 행사는 면에서 해야 했을 일이라며 비용의 절반을 부담하기로 했다.
 
면장님은 우정면 이장단 회의를 개최했다. 43개리 이장 가운데 국화도를 제외한 42개리 이장들이 각자 6만 원씩 찬조하기로 하였다. 점점 더 일이 커지고 있었다. 이종학 선생님이 100만 원, 기타 여러분의 기부금이 접수되기 시작하니 규모를 작게 만들 수가 없었다.
 
이때부터 우정면에서 3.1 독립기념비 건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면장이 위원장이 되고 총무를 선임하여 비용을 관리하고 집행하게 되었다. 나는 기념비건립 비용을 더 들이기로 하고 규모를 가로, 세로 각 12m로 늘리기로 계획을 바꿨다. 옛날 화수주재소 자리에 기초공사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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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 터파기와 콘크리트 작업은 학교에 근무하는 기사들이 맡아 해 주었다. 굴착기로 배수로 작업을 시작하자마자 도로 건너편 논 소유주가 우기에 자기 논에 토사가 들어 올 것이라며 화성교육청에 민원을 넣었다. 교육청 담당자가 현장에 나와서 독립기념비 건립 공사를 하는 중 이라고 설명을 하니 공사를 중지하라고 했다.

이유인즉, 학교 토지에 독립기념비를 세운 후 나중에 문화재로 지정되면 문화재 담당 부서에 이 토지가 수용될 수도 있다며 계속하여 중지를 요구했다.
 
이 내용을 면장님께 말씀드리니 이장단들이 교육청에 가 항의해서 관철시키겠다고 했다. 이쯤 되니 나도 일을 시작해 놓고 처지가 난처했다. 그러나 어떻게든 해야 할 일이었다.

처음부터 학교에서 교육청 허가를 받아 일을 하려고 했다면 지금의 독립기념비건립은 어려웠을 것이다. 이장단들의 항의로 교육청에서도 관여 안하기로 하고 공사는 계속 진행되었다.
 
나는 이종학 선생님과 자주 만나서 상의하며 자문을 받았다. 선생님은 임진왜란, 일제강점기시대 역사에 대해 아주 해박했다. 많은 관련 자료도 수집하여 소장하고 있었다. 독립기념비 비문 내용은 이종학 선생님이 지었다. 비문 글씨는 이종학 선생님의 친구이며 우정면 출신이신 한동인 서울 매원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 쓰셨다. 비석과 기타 석재는 수원 고려석재의 사장님이 어렵지 않게 지원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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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3.1 독립운동 70주년 해인 1989년 8월 15일 광복절에 여러 기관장과 주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화수초등학교 교정에서 독립기념비 제막식을 거행했다. 이로써 이 고장 선열들의 얼을 후손들이 배워 익힐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작은 규모로 시작한 독립기념비 사업이 우정면 면민들의 협조로 확대되면서 이 지역의 큰 행사가 되었다. 그때로부터 27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나는 지금도 화수리가 제2의 고향 같은 생각이 든다.
 
나는 그때의 열정을 잃지 않으려 감사패와 독립기념비 기초공사 공정부터 완성에 이르기까지 찍은 사진 70매와 관련 자료를 보존하고 있다. 이 독립기념비를 찾아가 보면 비석 옆면 추진위원 명단에 나와 우정면 이장단 42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그때 열정적으로 활동했던 일은 참으로 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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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비를 구상하고 설계했던 일, 수원까지 나가서 철물점에서 물건을 사 나르던 일, 고려석재 사장님에게 형편을 설명하면서 사정하던 일 등이 주마등처럼 스쳐 가고 큰 보람도 느껴진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내 제안을 쾌히 받아주셨고 이 일에 열정적으로 참여하셨던 이종학 선생님, 김선진 선생님이 눈에 선하다. 또 어디에선가 복된 삶을 살고 계실 김현구 면장님의 건투를 빈다.
 
※사운(史芸) 이종학(李鍾學) 선생(1927년~2002년)
화성 우정면 주곡리 출생, 향토서지학자,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 독립기념관 자료수집위원, 경기도사 편찬위원 겸 감수위원, 사운(史芸) 연구소장, 독립기념관 연구위원, 울릉도 독도박물관에 자료기증(512점)과 초대 박물관장(1998-2001), 독도박물관 옆에 안장,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 초대소장, 국민훈장 무궁화장, 수원박물관에 자료기증(2만여 점)
 
취재위원 박창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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