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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빛으로 자유로워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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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2.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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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존재하는 것은 선(善), 선하지 않는 것은 남용과 오용의 문제
행복한 삶은 진리를 좇는 삶

근본적으로 모든 존재는 선이다(omne ens est bonum). 왜냐하면 모든 존재는 하나님(초월자)으로부터 유래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요, 모든 것은 초월자로부터 말미암은 것이다. 그가 “만물이 하나님께 은혜를 입고 있다”(Omnia ergo illi debent)고 말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히포의 주교였던 성 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us, 354-430)는 한때 마니교에 심취하였고 사생아를 낳은 사람이기도 했지만 개종한 후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위대한 신학자이자 철학자로 평가받게 되었다.

그는 플라톤 철학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음으로써 선과 악에 대한 이분법적 사유가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먼저 그는 모든 악행이 악이 되는 까닭을 인간이 가진 정욕(libidines)과 욕망(cupiditate) 때문이라고 말한다. 평범한 인간은 그와 같은 지향성에 쉽게 무너져 버리고 만다. 그러나 현자는 지성(mentis/mens)을 통하여 정욕을 제압하고 평정을 이룬다.

물론 지성이 욕망의 동반자가 될 수 있기도 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의지(voluntas)와 자유 의지(liberum arbitrium)로 인해서 이루어진다.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하면 “자유의지도 선이다.” 다만 그것을 악용하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신으로부터 온 것들이 선하지 않은 것이 없을 것이다. 다만 사용을 넘어 남용과 오용이 문제인 것이다. “의지가 공통되고 불변하는 선에 등을 돌려 배향(背向)하고 자기 것으로 정한 고유한 선이나 외적인 선이나 열등한 선에로 전향하는 경우에 악을 범한다.” 결국 악한 것은 불완전한 선 혹은 열등한 선으로 돌아선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 의지는 우리의 능력 아래에 달려 있다.” 그로 인해 행복과 불행은 인간하기에 나름이다. 어느 것을 원할 것이냐 하는 것만이 남아 있는 것이다. 

반면에 선한 의지(bona voluntas)는 우리가 바르고 정직하게 살고 최고의 지혜에 도달하기 위해 희구하는 의지이다. 그래서 선한 의지를 획득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러니 선한 의지를 사랑하는 사람이 악을 바랄 리 없다. 아우구스티누가 볼 때, 근본적으로 모든 존재는 선이다(omne ens est bonum). 왜냐하면 모든 존재는 하나님(초월자)으로부터 유래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요, 모든 것은 초월자로부터 말미암은 것이다. 그가 “만물이 하나님께 은혜를 입고 있다”(Omnia ergo illi debent)고 말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그에 반하여 물욕(philargyria)과 탐욕은 악의 원인이다. 그것은 인간의 부정한 의지이다. 여기서 물욕이라는 그리스어는 ‘은전(돈)을 좋아한다’는 뜻을 품고 있다. 물욕과 탐욕을 선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것들은 초월자로부터 유래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자칫 물욕에 눈이 멀어 신보다 돈을 더 추구하게 된다면 악의 구렁텅이에 빠지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초월자의 진리를 따라 올바르게 행동하면 행복(beata)하게 살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비참(misera)해진다. 

‘진리는 불변하게 참인 것을 포괄하는 것’이다. 그러한 “진리가 우리 지성과 동등하다면 진리마저도 가변적일”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이성은 고상한 것인데 인간의 이성이 만일 참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삶의 영원한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진리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기 때문에 거기에 삶의 목적과 의미를 두어야 한다. 진리 곧 참은 늘 참이기 때문에 불변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가변적인 것에 몸을 의탁하고 그것이 참인 양 살아간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는 성서에 따라 진리로 말미암아 인간들이 자유로운 삶을 살기를 바란다. 명예, 권력, 재력, 학력 등 이른바 세속적인 것에 참은 없다. 참으로 가장한 거짓 진리만 있을 뿐이다. 진리는 그것들을 넘어서 초월의 세계를 비춘다. 아니 어쩌면 진리는 스스로 자기를 밝히 드러내면서 인간에게 개현(開顯)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인간은 그것에 눈을 감아 버리고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행복하고 싶다면,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싶다면 진리를 좇아야 한다. 선한 의지를 갖고 초월자로부터 온 모든 만물을 관조하면서 신을 만나고 그의 의지를 간파해야 한다. 그 속에서 초월자의 의지 혹은 일자(一者)의 의지를 알아차린다는 것은 결국 사물에 있는 진리, 우주에 편만한 초월자의 진리를 파악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 선과 진리를 가볍게 취급하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정치적 공동선, 경제적 정의, 사회의 공적 진리, 개인의 윤리는 자꾸만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다름 아닌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한 선한 의지, 그리고 참을 멀리하지 않는 삶일 것이다.


김대식 박사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 타임즈코리아 편집자문위원. 저서로는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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