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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없는 사랑을 하는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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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3.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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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함은 모든 종교를 뛰어 넘는 실천들,
즉 교리나 신념(신앙),
혹은 이론보다 우위에 있는 인류 보편적인 실천에서 나타난다.  
 
다-없는-사랑을-하는-인간.jpg▲ 다한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 괸다는 것, 그것으로써 모든 것을 완성한다는 것이다.
 
 
종교적 행위에서 온 몸, 온 맘, 온 정성을 다해서 신을 섬기고 기도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그것은 있는 그대로의 존재 근거 혹은 초월자를 향해서 다함이 없는 사랑을 하는 것이리라. ‘다하다’는 것은 곧 완성했다, 성취했다, 끝인 그것으로서 더는 할 일이 없다는 것인데, 그야말로 전적투신이다. 성서는 그렇게 말한다. 마음, 정성, 힘(마음, 목숨, 뜻; heart, soul, mind; kardia, psyche, dianoia)을 다하여 섬기라고(신명 6,5; 마태 22, 37). 그만큼 전심전력, 전력투구하여 실재(Reality)를 섬기라는 것이다. 함석헌은 이를 두고 이렇게 말한다.
 
“이미 예수를 믿는다고 했으니까 수년 동안 철저히 해봐야 돼. 철저히. 좌우간 내 있는 힘까지 다해야 돼. 그래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몸을 다해서 해봐라. 그 ‘다’라는 말이 무서운 말이에요. 건성으로 다다, “하나님 아버지, 간절히 빕니다. 우리 몸과 맘을 다해서 드린 기돕니다.” 천만에! 나는 그런 기도는 못해요. 다가 어디? 다란 끝이 없어요. 맹자도 진기심자(盡己心者)는 지기성(知其性)이라, 제 마음을 다한 사람은 바탕을 안다, 지기성(知其性)이면 지천(知天)이라, 제 성품을 알면 하늘도 안다고 그랬어. 그런 거 다 굉장히 어려운 밑천이 먹은 거, 체험한 거예요. 그러니 그 진짜가 어떤 거냐? ‘다한다’는 게 어떤 거냐?... 네 속에서 네 혁명이나 어서, 네가 새 사람이 되도록 어서, 그럭하면 아마 이 민족이 살 길이 있겠지”(함석헌, 함석헌전집, 두려워 말고 외치라 11, 한길사, 1984, 48-49쪽).
 
함석헌은 애초에 이것이 매우 어렵다고 시인한다. 그러면서 ‘다한다’는 것을 인간 안에서의 혁명, 인간이 새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방향을 일러준다. 다한다고 하는데 다한다는 것은 결국 각 개인 안에서 마음을 새롭게 하는 혁명, 새로운 사람이 되고자 하는 근본적 열정이 있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다한다’(enden, leisten, sorgen)는 것은 마음의 혁명, 새 인간의 혁명 아니고서는 안 된다. 존재근거를 발견하고, 그 존재를 자신의 삶에 전부로서 인식하고, 삶으로 체현(embody)하는 것은 설렁설렁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자신 안에서 근본적인 마음이 하늘의 명령으로 불일 듯 거듭나지 않고는 절대 다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다함이 있는 존재라고, 다하고 있는 존재라고 말할 수가 없다. 다만 그에 대한 표본을 그리스도에게서 발견할 수 있을 따름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톨릭 신학자 칼 라너(K. Rahner)의 말대로, 그리스도는 ‘다 된 인간’이고, 사람들은 ‘되어 가는 그리스도’다.”(길희성, 길은 달라도 같은 산을 오른다, 휴, 2013, 135쪽). 그리스도는 ‘다 된 인간’이다. 다시 말해서 다함으로서 다 된 인간이다. 초월적 실재에 대해서 다함으로써 자신을 봉헌한 것이 인간으로서의 완성, 다 됨, 완전히 됨, 온전한 됨이 되었던 것이다. 반면에 인간은 그저 ‘다’(완성)를 향해 되어 가는 인간이다. 완전한 존재(be)로서 초월적 실재에게 다가서고(coming) 있는 중이다. 이렇게 완전한 존재를 이루었다고 볼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성인’이다. 성인은 완전한 존재 가능이다. 완전한 존재는 그리스도와 같은 존재라면, 자신의 전생애를 바쳐 다함이 있는 존재로서 살아가고자 했던 사람들이 성인이기 때문에 그들은 완전한 존재 가능 인간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영성의 세계에서 말하는 참나란 우연적 산물인 개인의 특성이나 재능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참나는 인간이면 누구나 타고난 본연의 인간성 자체다... 성인(聖人)이란 곧 참사람을 일컫기 때문이다... 성인은 별다른 존재가 아니라 가장 인간다운 인간이다. 인간의 인간성을 제대로 자각하고 실현한 존재다”(길희성, 위의 책, 39, 134쪽).
 
‘가장 인간다운 인간’, ‘인간의 인간성을 자각한 존재’, ‘참사람’은 초월적 실재에 대해서 다함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표상이다. 다함은 자신의 내적인 마음의 혁명을 이루어 참나를 깨달은 새로운 인간의 행위이다. 그렇다면 그 다함의 궁극을 이루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고독과 침묵이다. 자신의 내면적인 고독과 침묵을 좋아할 수 있어야 한다. 고독과 침묵은 인간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초월적 실재가 들어설 시공간을 주기 위함이다. 다함의 행위는 나를 위한 행위는 없고 오직 초월적 실재를 위한 삶만이 있기 때문에 고독과 침묵은 영성의 필연이다. “영성과 고독이 함께 간다면 영성과 침묵도 떼려야 떼기 어려운 짝을 이룬다... 고독과 침묵은 같이 가며 자발적 고독은 자발적 침묵을 위함이다... 생각은 홀로 하는 말이고 자기 자신과의 대화다. 그래서 진정한 침묵은 생각마저 멈추는 무념의 경지까지 나아가야 한다”(길희성, 위의 책, 195쪽).
 
생각을 멈춰야 초월적 실재가 들어설 자리가 있다. 실재는 생각이나 사념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 있기 때문에 생각하면 할수록 실재에 대한 깨달음에는 방해가 된다. 따라서 생각하지 않음으로써 생각한다가 맞을 것이다. 생각은 자신에게서 피어나는 깨달음이어야 하는데, 자칫 이에 미치지 못하는 생각을 함으로써 편견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다함으로 돌아가서 이야기해보면 다함이 되기 위해서 나의 생각이 있으면 안 된다. 단지 생각의 흐름을 관찰하고 종국에는 생각을 놓을 수 있어야 한다. 초월자의 뜻, 초월자의 마음, 초월자의 사랑으로 일념이 되어야, 무념의 상태에서 다함이 가능하다. 그래서 고독과 침묵이 일상이 되어야 한다. 고독과 침묵은 자기 심연(실재)과의 대면을 가능케 하고 초월적 실재가 머무는 장소(locus)를 확보할 여지를 준다. 말하고 또 말하는 데 익숙하고 이제는 그 말 안 함이 오히려 병리(질병)가 되어 버리는 사회에서 고독과 침묵은 단순히 치유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삶과 인생에서도 다하고 더 나아가서 완전한 존재, 초월적 존재에게도 다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마련하기 위함이다.
 
마지막으로 이 다함의 구체적 삶의 형태 혹은 신앙 형태는 어떻게 나타나는가? 그것은 정의, 평화, 사랑, 자연 등으로 나타난다. 길희성은 이렇게 말한다.
 
“종교다원주의자들 가운데는 이론이나 사상의 차원보다는 실천의 차원에서 다원주의론을 펴는 사람도 있다. 실천적 종교다원주의에 따르면, 종교의 궁극적 일치는 어떤 종교적 경험이나 교리, 사상 또는 궁극적 실재에서보다는 정의와 사랑 같은 실천적 차원에서 찾는다... 정의, 평화, 사랑, 자유, 해방, 자연, 인간의 복리라는 보편적이고 초월적인 구원의 이상 앞에서 과거나 현재 존재하는 종교는 모두 불완전하다... 실천적 종교다원주의는 진리보다 사랑의 우선성을 주장한다고 말할 수 있다. 아니, 사랑이 진리다”(길희성, 위의 책, 177-180쪽).
 
다함은 모든 종교를 뛰어 넘는 실천들, 즉 교리나 신념(신앙), 혹은 이론보다 우위에 있는 인류 보편적인 실천에서 나타난다. 실재에 대해서 다함은 실재 안에서 포괄하고 있는 진리, 곧 사랑이 전부다.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다한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 괸다는 것, 그것으로써 모든 것을 완성한다는 것이다. 거기에 어떤 교설, 교리, 신학도 필요하지 않다. 다함. 그 끝을 보았는가? 그 끝을 보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사랑하라!’
 
김대식 박사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 타임즈코리아 편집자문위원. 저서로는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 세계』,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과 종교문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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