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0-08-03(월)

별세신앙을 통해 길을 묻다

“죽어라! 그리하면 내가 살고 공동체가 산다.”

댓글 0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밴드
  • 페이스북
  • 구글플러스
기사입력 : 2013.07.08
  • 프린터
  • 이메일
  • 스크랩
  • 글자크게
  • 글자작게

지난 4일 장마철에 들어선 날씨로 비가 오락가락 하는 가운데 분당한신교회(담임목사 이윤재)에서는 이중표 목사 8주기 추모예배와 제3회 별세포럼이 열렸다. 한국기독교 선교 130주년을 한 해 앞둔 7월의 문턱에서 한국교회를 돌아보게 하는 의미 있는 행사이다. 참석자들은 이중표 목사를 그리는 마음들로 가득했다.

인간적인 아쉬움이나 연민이 아니라, 이중표 목사의 신앙과 지도자로서의 인격에 대한 시대적 필요가 더욱더 절실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이중표 목사는 세상에 없다. 세상과의 이별을 고한지 8년째가 되었다. 사랑하는 가족과 생사의 이별에서도 세월은 그 기억을 희미하게 만들어준다. 이중표 목사가 세상을 떠난 지 8년이 되었음에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 그가 더욱더 생생한 것은 어떤 이유에서 인가.

‘최학휴 목사(광주양림교회)의 사회, 조영식 목사(김포한신교회)의 기도, 박진구 목사(전주안디옥교회)의 설교(별세의 소원), 이윤재 목사(분당한신교회)의 추모사, 별세목회원의 찬양(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손창완 목사(군산세광교회)의 광고, 차창현 목사(부곡교회)의 축도’로 이루어진 추모예배에서의 모든 순서마다 이중표 목사가 외친 별세신앙의 메시지가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박진구 목사의 설교를 통해 바라본 이중표 목사의 별세영성은 참석자들의 마음에 젖어들었다. “별세의 신앙은 사후의 세계가 아니라, 이제로부터 영원히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을 사는 것이다. 이 땅에서의 삶은 하늘과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칙과 뜻을 따라 사는 복된 것이다. 이런 신앙은 결코 쓰러지지 않으며, 모두를 사랑하게 된다.”

추모사를 하는 이윤재 목사는 누구보다도 그리움이 역력한 모습으로 이중표 목사를 회상하며 별세의 의미를 되새기게 했다. “이중표 목사님의 8주기를 맞이하면서 어떻게 하면 그 분의 영성을 더욱더 올바르게 이어갈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이중표 목사님의 자리를 이어간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지만, 별세는 구호가 아니라 삶으로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라는 차원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추모예배에 이어서 김종균 목사(별세목회연구원)의 사회로 “죽어라! 그리하면 내가 살고 공동체가 산다”라는 윤성민 박사(분당한신교회, 별세목회연구원)의 발제와 이강석 박사(선교사)의 논찬, 송문식 목사(고삼교회)의 마침기도로 모든 순서가 끝났다.

발제의 제목에서 말하고 있듯이 기독의 진리는 죽음과 희생을 통한 새로운 생명을 강조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야말로 기독교의 핵심인 것이다. 발제자 윤성민 박사는 이중표 목사의 생전에 분당한신교회에서 전도사로 시무하면서 이중표 목사의 가르침을 받은 사람이다. 윤 박사는 이중표 목사의 권유와 도움으로 독일에서 유학을 하게 되었다.        


윤 박사의 감회는 별세(別世)영성에 대한 연구와 실천적 확산에 대한 노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는 한국교회의 위기에 대한 해결의 모색에서도 별세(別世)영성을 통해 그 답을 찾고자 하였다. 내외적 모든 문제는 결국 ‘자신이 죽지 않음’에서 찾고 있다. ‘자신이 죽어야, 그리스도와 함께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윤 박사는 이것이 별세신앙을 외쳤던 이중표 목사의 영성이었으며, 바울, 마르틴 루터 등으로 이어진 교회사적 개혁신앙의 영성이기도 함을 강조한다. 논찬에 나선 이강석 박사는 윤 박사의 발제가 이중표 목사의 별세영성에 대해 개인적 별세와 별세의 교회론이라는 두 가지에서 조감하고 있음을 의미 있게 바라보면서 균형 잡힌 신앙을 강조했다.  

발제에 대한 이 박사의 논찬은 이중표 목사의 별세신앙이 별세한지 8년이 지난 지금, 더욱더 생생하게 살아 있음에 주목하였다. 발제와 논찬은 이중표 목사가 개인적 별세신앙을 갈라디아서 2장 20절로 설명했음을 상기시켰다.

첫째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힘’이라는 ‘떠남의 신앙’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은 옛사람에서 그리스도에게로의 떠남이라는 것이다.

둘째는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는 ‘새 삶의 신앙’이다. 그리스도에게로 떠난 삶은 이미 이전의 삶과 결별한 것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그리스도로 인한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는 ‘살림의 신앙’이다. 나만의 구원과 새로운 삶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에 보답하고 세상을 향하여 구원의 도를 전파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별세의 교회론이라는 차원에서 발제자는 “기독교적 에고이즘”과 “교회공동체의 육(肉)”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한 크리스토프 블름하르트의 지적을 통해 한국교회의 위기를 조명하고 있다. 중세 카톨릭교회에 대해 개혁의 기치를 높이 들었던 개신교가 아이러니하게도 중세 카톨릭교회적 개혁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잘 알려진 유명교회나 교단에서의 불법, 탈법이 매스컴에 그대로 노출되는 모습은 어떤 말로도 합리화하기 어려운 지경에 도달해 있다. 개 교회적으로는 묻지마식 교인 받기 행태가 보편화 되어버렸다. 어느 보험광고 문구처럼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는다. 무조건 받아 준다’는 것이 교회에서 새신자를 환영하는 논리이다. 물론 타 지역에서의 이사나 불가피한 이동의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이런 경우에라도 전후 사정과 맥락을 잘 살피며 올바른 신앙성장을 돕는 차원에서 신중하게 처리해야 한다. 상도의에도 못 미치는 교인 뺏기 쟁탈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상업 체인화적 시스템이며, 바르지 못한 방법으로의 교회 물려주기 등도 여기저기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

이것은 한국교회가 마치 경영자연합회나 노동자연합회처럼 이익집단화되어 가고 있다는 증거이다. 골로새서 2장 8절에는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이와 같이 사람들의 방법과 학문을 따르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길이 아님을 바울은 분명히 가르치고 있다.   
        
윤 박사는 중세 카톨릭교회의 타락을 통해 한국교회를 조명해볼 때, 오늘 한국교회의 모든 기독교인들이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회개하며 별세신앙의 자세를 갖자고 호소한다. 윤 박사는 이중표 목사는 개인의 별세뿐만이 아니라, 교회공동체의 별세도 중요시하였음을 상기하고 별세영성을 통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로 돌아가자고 힘주어 말했다.

제3회 별세포럼을 마치고 교회당입구를 나서는 길에, 거지(巨智) 이중표 목사와 별세신앙을 생각하노라니, 이슬처럼 얼굴에 부딪히는 가랑비가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처럼 느껴졌다.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성령과 피로서 거듭나니...세상과 나는 간 곳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라는 추모예배 시간에 불렀던 찬양이 가슴과 귓전에서 맴돈다.  

타임즈코리아 톡톡뉴스 @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별세신앙을 통해 길을 묻다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