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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창조적 지성인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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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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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결코 향락의 놀이터가 아니다. 정성스러운 창조의 일터다.

로마의 아우렐리우스가 말한 것처럼 인생은 무용(舞踊)보다도 씨름과 비슷하다.

우리는 매일 싸워야 한다. 특히 내가 나하고 항상 싸워야 한다.

인생은 자아를 실천하는 사명의 장소다.

우리는 저마다 자기의 생명을 조각하는 진지한 생의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

생에 의의를 부여하는 것은 향락이 아니고 일이요, 활동이다.”

 

안병욱, 『安秉煜 에세이 10, 영원한 자유인』, 교육도서, 1988,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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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자기의 생명을 끊임없이 개조하는 일은 인간의 과제입니다. 삶의 개조, 혼의 개조를 부르짖은 춘원 이광수의 말처럼, 인간은 혼을 개조하기 위해서 온 힘을 다해야 합니다. “생의 예술가로서 살아가야 한다”는 이당의 메시지는 인생을 살아가는 모든 인간은 자기를 축조하는 지성인으로서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미합니다. 그것이 생의 의의입니다.

 

지성인은 비판적 양심을 지닌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길러내는 요람이 대학입니다. 그런데 대학에서 자신과 사물을 깊이 탐구하는 정신, 분석적으로 사고하고 공정하게 비판하는 정신을 지닌 지성인들이 점점 더 부족해지는 것을 넘어서 사라질 것 같은 느낌마저 듭니다. 교육의 근본 목적은 “개조(改造)”에 있습니다. 인간 형성과 주체(자아) 및 객체(타아)를 개조하는 것이 교육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리의 사람, 이성적 사유, 탐구 정신이 살아있어야 합니다.

 

지성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삶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킨다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생의 과정에서 창조와 지성은 나란히 가야 합니다. 생은 창조적 활동이요 날카로운 인식과 성찰의 여정이기 때문입니다. 지성은 배워서 자신을 교정하고 개조함으로써 이상적인 인간, 곧 자아와 인격 전체를 참되게, 착하게, 아름답게 만들어가게 하는 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위해 마음 밭의 계발, 주체와 객체의 개조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칸트(I. Kant)가 주창하는 선한 인격과 듀이(J. Dewey)가 내세우는 좋은 환경과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은 이른바 칸트의 도덕제일주의와 듀이의 지식제일주의의 융합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주체와 개조에 중심을 두는 도덕제일주의와 객체의 개조에 역점을 두는 지식제일주의 혹은 직업주의교육은 양분될 우려를 지니고 있기도 합니다.

 

앙리 베르그손과 존 듀이가 역설한 삶의 도구로서의 지성, 기술적 지성, 창조적 지성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창조적 지성으로 살아가려면 객관적 대상을 조용히 바라다보는 관상적 지성과 사변적 지성도 균형 있게 갖춰야 합니다. 민주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창조적 지성과 사변적 지성, 도덕적 지성이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모든 건설은 인간이 하는 것”인데, 대학과 사회가 모두 민주지성의 탄생에 이바지하겠다는 사명에 충실해야 합니다.

 

칸트는 “스스로 사색하고 스스로 탐구하고 제 발로 서라”라고 누누이 강조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바람직한 지성을 지니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스스로 창조적 지성과 더불어 비판적 사고능력, 그리고 관조적 지성을 겸비하려는 생의 자세를 지녀야 합니다.

 

안병욱, 『安秉煜 에세이 10, 영원한 자유인』, 교육도서, 1988, pp.4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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