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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성 개조만이 살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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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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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흥망성쇠는 그 민족성에 달려 있다.

‘민족적 성격의 개조, 이것이 민족이 살아나갈 유일의 길이다.’

(...) 민족개조주의 내용이 무엇이냐.

(...) 거짓말과 속이는 행실이 없게,

공상(空想)과 공론(空論)을 버리고 옳다고 생각하는 바,

의무라고 생각하는 바를 부지런히 실행하게, (...)

실과 행의 국민 성격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민족 개조 사상의 핵심이다.”

 

안병욱, 『안병욱에세이9 너와 나의 만남』, 교육도서, 1988, pp.189-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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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코리아] 이당이 평소에 무실역행의 실과 행의 생활을 반복적으로 성(誠)의 철학과 연결 지은 것은 도산 안창호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입니다. 여기에는 그가 어린 시절부터 각별하게 생각하고 영향을 받았던 춘원 이광수가 해석한 도산의 민족개조론과도 맞물려 있습니다(안병욱, 안병욱에세이9, 『너와 나의 만남』, 교육도서, 1988, p.228.).

 

정성을 다한 것과 정성을 다한 것으로 나타난 행위와 결과가 완전히 일치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실을 다한 후에 실망(失望)하거나, 망연자실(茫然自失)하기도 합니다. 이당은 성실하면 손해를 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충분히 그럴 개연성이 있습니다. 손해를 보더라도 속이지 않고 성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이것은 마땅한 것입니다. 성실은 누구나 인생의 기본 신조로 삼아야 할 필수적 자세입니다.

 

미국의 실용주의(Pragmatism) 철학은 그 어원이 되는 ‘pragma’곧 행동과 관련된 실용적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행동과 행위에 방점을 찍은 것은 정성스러운 행위와 삶은 좋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그 사람을 행복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성실은 대도(大道)요, 정도(正道)요, 상도(常道)가 되어 개인과 사회를 바로 세우는 원리입니다. 스피노자(Baruch de Spinoza)는 “무릇 모든 고귀한 것은 드물고 어렵다”고 했습니다.

 

중용에서 강조하고 있는 성의, 성실도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도산의 ‘민족개조론’에 대해 춘원이 논문을 쓴 것처럼, 성실을 진리로 삼되 생각한 바를 부지런히 실행에 옮기며 거짓 없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춘원도 무실과 역행을 ‘민족개조론’의 핵심으로 삼았습니다.

 

오늘날 정치계나 경제계, 교육계 혹은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빈말이 난무합니다. 말을 뱉어 놓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습니다. 그저 한담(閑談)이 되고 맙니다. 자신의 자아를 속이고 참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실용주의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W. James)는 “진리는 선(善)의 일종”이라고 하면서, “선(善)을 현실과 삶에서 모색하는 지적 행위가 바로 철학”이라고 했습니다. 무실(務實)과 역행(力行)은 진리이자 선(善)입니다. 따라서 생을 산다는 것은 진리에 따라 산다는 것이요, 선한 행위의 흐름으로써 산다는 말입니다.

 

진리는 그것이 진리이기 때문에 유용합니다. 역으로 유용하기에 진리라고 보는 것이 실용주의의 주요 논점입니다. 진리와 유용성은 삶에서 그 일치가 증명된다는 것인데, 진리는 자신의 삶에서 유용하다는 것이기에 모두에게 통용되는 현금 화폐(cash)와도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誠)은 곧 실(實)이요, 진(眞)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자신이 자신의 삶과 타자에게 정성을 다하는 행위는 모두에게 보편타당한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성이 진리라고 하는 것은, 여기에 행동으로 드러나는 가치가 있는 삶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안병욱, 『안병욱에세이9 너와 나의 만남』, 교육도서, 1988, pp.11~13, 171, 189~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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