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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은 사유와 행동의 지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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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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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은 자기의 머리로 줄기차게 사색하는 습관과 능력을 잃어버리기 쉽다.

우리의 머릿속에는 ‘지식’은 많아도 ‘지혜’는 적다.

‘의식의 과잉’과 ‘예지(叡智)의 빈곤’ 이것이 현대의 지식인이 빠지기 쉬운 결함이다.

남의 판단과 의견을 비판과 사고(思考) 없이 받아들이는 것은 정신의 노예요, 사상의 종이다.

우리는 자기의 머리로 생각하고 자기의 판단과 의견을 가져야 한다.

옛날의 철학자들처럼 자신의 머리로 줄기차고 끈기 있게 사색하는 습관과 능력을 길러야 한다.”

안병욱, 「고독과 사색」, 『새 세대의 진로』, 학원사, 1963,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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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즉사(生即思). 이당의 사유방식대로 말놀이를 하자면, 생은 곧 사색이요 사유이자 생각입니다. 생각 없이 산다는 것은 참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이 신체적 존재인 동시에 정신적 존재라는 그 특수성이 이를 나타냅니다. 인간은 미각적 쾌를 만족시키고 싶어 하는 욕구, 배설하는 쾌를 느끼는 욕구, 졸리면 자고 싶어 하는 취침 쾌의 본능적 욕구에 충실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이러한 특성 이외에 생각하고, 사색하고, 사유하는 특수성을 지닌 존재입니다.

 

이당이 말하듯이, 동물은 신체적 탄생은 있지만, 정신의 탄생과 자아의 탄생이 없습니다. 인간은 다른 존재자와는 달리 정신과 자아를 통해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반성, 내적 세계의 성찰, 자기 응시가 가능한 것입니다. 하이데거(M. Heidegger)가 통찰한 것처럼 인간은 속절없이 내던져진 존재(Geworfenheit)입니다. 키에르케고르(S. Kierkegaard)가 직관한 것처럼 인간은 우연적 존재입니다.

 

이와 같은 인간 자신에 대한 운명과 유한성의 자각은 인간에게 대상에 대한 관심에서 내적 세계에 대한 관심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과 반성은 자기를 들여다보는 고독한 사색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것은 마침내 데카르트(R. Descartes)가 말한 “Cogito ergo sum(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큰 깨달음에 이르게 합니다.

 

그런데 현대 사회는 사색할 능력과 습관, 사유하는 인간으로서의 삶의 자세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지식은 넘쳐나지만, 지혜가 부족합니다. 세계를 전체로서 파악할 수 있는 예지력(叡智力)이 결핍되어 있습니다. 자기의 머리로 생각하고 스스로 사고하는 습관이 퇴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더욱더 자기를 알고, 더 나은 ‘나’를 자기 안에서 잉태하고 출산하는 힘이 필요합니다.

 

피히테(Johann Gottlieb Fichte)의 지지자였던 생철학자 오이켄(R. Eucken)은 인간에 대해 외면적 풍요와 비교하면 내면적으로는 빈곤하여 삶이 위협받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삶을 내면화시키고 고양할 뿐만 아니라, 일상의 표피성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정신적 활동(Johannes Fischl 지음, 백승균 편역, 『생철학』, 서광사, 1987, pp.64~64.)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와 같은 주체적 자아의 확립은 사색에서 나옵니다.

 

생철학자 앙리 베르크손(H. Bergson)은 “사색인으로 행동하고 행동인으로 사색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인간의 생각, 사색, 사유는 행동하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단순한 행동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올바른 행동이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올바른 사색을 해야 합니다. 이를 꿰뚫어 본 왕양명(王陽明)은 앎과 행위가 일치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귀결이 일어나려면 그것은 올바른 생각, 사색, 사유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전제로 한 말이었습니다.

 

우리는 인간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인간이라는 존재 가치를 지니게 될까요? 인간은 올바른 생각, 사색, 사유를 통하여 새로운 삶을 일구는 존재입니다. 이것이 결여된 만큼 그 존재적 가치를 상실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이것을 가르치는 것이 삶과 교육의 본질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본질에서 벗어난 약육강식, 적자생존에 따른 경제적 논리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우리의 내면에 이것이 자리한 만큼 식민지화되었고, 이에 대한 노예로 사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노예의 삶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니, 이런 노예적 삶을 당연한 숙명으로 여기며 이를 더 강화하려는 몸부림을 생의 의미로 착각한다는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약물중독에 빠져 환상의 세계를 헤매는 사람이 그것을 진실의 세계로 착각하여, 더욱더 그런 상태에 빠져드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올바른 사유와 행동으로 인간으로서 그 존재 가치를 발현하며 아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생이 창조적으로 이루어지는 것(과정), 이루어진 것(결과)은 곧 나의 주체적 정신, 즉 생각, 사색, 사유가 오롯이 완성되는 것(과정), 완성된다는 것(결과)임을 깨달아야 가능해집니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수많은 관계와 환경 속에서 이런 여정을 성숙하게 이어나가며 삶의 기쁨과 보람을 맛볼 수 있어야 인간이라는 존재 가치가 향기를 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안병욱, 「고독과 사색」, 『새 세대의 진로』, 학원사, 1963, p.6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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