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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일관(至誠一貫)의 삶을 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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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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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眞理)는 반드시 따르는 자가 있고 정의(正義)는 반드시 이루는 날이 있다.

죽더라도 거짓이 없으라. (...)

적어도 동포끼리는 무저항주의를 쓰자. 때리면 맞고 욕하면 먹자.

동포끼리 악을 악으로 대하지 말자. 오직 사랑하자. (...)

너도 사랑을 공부하고 나도 사랑을 공부하자. 남자도 여자도 우리 다 서로 사랑하기를 공부하자.

그래서 우리 민족은 서로 사랑하는 민족이 되자.”

안병욱 외, 『도산 안창호 평전』, 도서출판 청포도,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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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당은 도산(島山) 안창호(安昌浩)를 지극한 정성[至誠]으로 인생을 살았던 인물로 평하고 논합니다. 지성일관은 도산의 인격이요, 생활 원리입니다. 이당이 도산을 사상가이자 수양인(修養人)으로 평가한 것도 그가 지성 위에 기틀을 다진 삶으로 일관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이당이 『중용(中庸)』의 성(誠)에 따라 학문적 생애를 산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도산이 가장 사랑한 것을 꼽으라 하면, 첫째는 진실이요, 둘째는 젊은이요, 셋째는 민족이었습니다. 그는 민족과 민중이 처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기 혁신이나 도덕적 개조가 필요하다고 역설했습니다. 그중에서도 거짓말, 속임이 가장 큰 폐습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공론공담(空論空談)도 문제였습니다. 입만 살아서 떠들어대고 실천실행이 없이 비판만 하는 민중을 간파하고 그 대책을 마련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무실역행(務實力行), 곧 “참을 힘쓰자, 행을 힘쓰자”라고 하면서 각 개별적 민중이 성(誠)의 인격적 존재가 되어야 민족의 중병을 막을 수 있다고 부르짖었습니다.

 

“이 모양으로 일상에서 반복 실천하는 동안에 습(習)이 성(性)이 되어서 개인적으로 성실하고 거짓 없는 도덕인의 만족을 얻어 더할 데 없는 법열(法悅)을 느끼게 되고 밖으로는 접하는 사람의 신임과 존경을 받아서 능히 그들의 의지할 바가 될 수 있으니, 이 지경이 깊이 들어가면 이른바 지성(至誠)이 되는 것이라, 지성의 인격은 곧 성인(聖人)의 지경이다. 지성이 감천이라 하거니와 신(神)과 사람을 감동하는 힘은 결코 언변이나 물질이 아니라 진실로 지성이다. 지성의 사람은 무언중에도 능히 사람을 움직이는 힘을 가질 것이다.”(안병욱 외, 『도산 안창호 평전』, 도서출판 청포도, 2004, p.231.).

 

이와 같은 지성일관의 사상은 이당의 생철학에서 많이 등장하는 참, 성실, 진실, 혹은 실(實)의 개념과 같은 맥락에서 찾을 수가 있습니다. 1920년 가을 흥사단 입단문답을 참조하면 도산과 이당의 진가가 드러납니다. 이에 이당이 진실함, 거짓과 속임이 없음을 자신의 철학과 실천적 지침으로 삼은 것도 도산의 영향이었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도산에게 있어 수양은 고뇌와 수련을 통해서 배우는 것인데, 서양의 아스케제(Askese, 단련 또는 훈련을 통한 자기 절제)와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독립운동과 민족의 운명은 ‘힘’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믿었던 도산은 민중의 덕력(德力), 지력(知力), 체력(體力)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치력이나 병력 같은 것은 이 힘의 조직이나 결과로서 나타날 뿐입니다. 물론 당시 독립운동가들 사이에서 도산을 비전론자(非戰論者), 혹은 점진론자(漸進論者)라고 비판한 것은 이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특히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는 도산의 독립운동 방법을 마뜩잖게 여겼습니다.

 

성의 수양, 곧 갈고닦음은 한순간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도산은 “어음(語音, 음운)이 분명한 것, 말하는 속도와 음량의 조절 등 (...) 그가 한 잔의 차를 들이마시는 데도 다 고행 수련의 자취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당은 대중강연철학자로서도 탁월한 면모를 나타냈습니다. 이것이 이당의 선천적 능력일 수도 있으나, 도산을 빼놓고는 판단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당이 기억하는 도산 안창호의 모습은 매사에 정성일관(精誠一貫)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독립운동을 하다 일제에 붙잡혀 수감생활을 할 때도 그는 위국지성(爲國至誠)의 사람이었습니다.

 

도산은 성내지 않기로 유명한 인물이었습니다. 도산은 선한 자에게는 자애(自愛)로운 마음으로 대하는 자비상(慈悲相)의 사람이었고 정의돈수(情誼敦修)를 외쳤습니다. 정의(情誼)란 서로 사귀어 친해지는 정(情)을, 돈수(敦修)란 돈독히(도탑게) 닦고 연마한다는 뜻으로 서로 사랑하라는 의미입니다. 이런 도산은 이당에게 있어 사랑하기 공부의 본으로 삼을 만했습니다. 이당의 밝고 평화스러운 삶, 긍정적인 삶의 태도는 바로 도산으로부터 감화받은 것입니다.

 

도산은 자기가 덮는 이불도 수양동지회 흥사단(興士團)의 무실(務實, 노란빛, 참)역행(力行, 붉은빛)을 본떠서 두 빛깔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참되기 위해 노력하고 그러한 삶을 힘써 행하려고 하는 삶의 자세는 행주좌와(行住坐臥)에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습니다. 즉 걷기, 머물기, 앉기, 눕기 등 모든 일거수일투족은 한발 더 나아가 정결한 삶의 원칙으로도 승화되었습니다. 도산의 의복, 식사, 거처 등에는 반드시 일정한 법도가 있었습니다. 사회 공동체적 일원으로서 지켜야 하는 약속과 복리에 위반되는 일이 없도록 지성을 다하고자 한 것입니다.

 

도산의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는 삶, 정좌와 정결의 인격 수양의 자세는 이당이 숭실대학교 교수 시절 학생들에게 ‘젠틀(gentle)하고 스마트(smart)한 학자’로 각인(독일에서 하이데거의 제자 오토 푀겔러 교수에게서 사사하고, 현재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에서 강의를 하는 김인석 교수의 회상)되는 데 좋은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도산은 한국의 미(美)에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도산의 이런 면도 이당에게 영향을 끼쳤다고 보입니다. 식탁 위의 꽃무늬라든가 와당(瓦當)은 한국의 정서를 대변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당은 이런 영향과 호기심을 서예로 발전시켰다고 추측을 해봅니다. 와세다대학교에서 공부하던 시절부터 연마한 그의 서예는 자신만의 독특한 기법을 창출하는 데 이르게 됩니다. 이당의 서예 미학은 나중에 ‘이당체(怡堂體)’로 발전하게 됩니다.

 

도산은 토론과 연설, 회의에 참석하여 의견을 토로할 때도 유감없는 실력을 발휘했습니다. 그는 천사만려(千思萬慮, 여러 가지로 생각하고 고려하는 것), 좌사우탁(左思右度, 왼편에서 생각하고 오른편에서 헤아려봄)하여 그 이상 더할 수 없다는 신념에 도달하기 전에는 아예 발언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도산은 성서와 유교 경전을 읽고서 자신에게 양식이 되는 것을 적극적으로 구했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자신의 양심과 이성의 비판을 거쳐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용(中庸)의 도덕률을 세웠습니다. 도산의 이와 같은 중용의 정신은 후에 이당의 생철학을 형성하는 데 있어 많은 영감을 주었을 것입니다. 도산 안창호의 진·선·미(참, 인격, 아름다움)에 대한 성찰적 삶은 고스란히 이당에게도 녹아들어 그의 철학과 삶을 일구는 데 큰 작용점이 되었던 것입니다.

 

안병욱 외, 『도산 안창호 평전』, 도서출판 청포도, 2004, pp. 1-51, 218-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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