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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속에 속임수와 거짓의 자리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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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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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은 거짓이 없고 정성(精誠)스러운 것이다. 성실은 진실무망(眞實無妄)이다. 참되고 허망(虛妄)하지 않은 것이다. 성실의 반대는 허위요, 허망이요, 속임수다.”

안병욱,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자유문학사, 2001,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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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당은 삶과 철학이 모순되지 않습니다. ‘성실’을 말하면 ‘성’과 ‘실’에 걸맞은 사람이 되려고 하였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정성스러움은 없으면서 지나친 결실과 결과만을 바랍니다. 그러니 성실에서 말하는 삶의 진실 됨은 찾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거짓과 속임수만 난무합니다. 경쟁과 야합으로 허망하기 짝이 없는 삶을 살아갑니다. 삶의 진정성과 순수성은 온데간데없고 술수와 속 다른 말만 무성합니다.

 

이당은 주자(朱子)가 성(誠)을 진실무망으로 해석한 것을 따라서 삶은 거짓 없고 진실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또한 여기서 망(妄)을 망(望)과 같은 의미로 보기도 하니, 무망이란 결국 진실한 것 이외에는 바라지 않는다는 말도 됩니다. 삶의 세계가 그렇지 않은데 어떻게 진실하게만 살아갈 수 있는가? 이렇게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반문 자체가 문제입니다.

 

중용에서 말하는 성실이 삶의 으뜸가는 덕목이 되어야 합니다. 성실을 성현의 말로만 생각하는 데서 그치지 말고 우주의 이치라고 믿고 그렇게 살아가야 합니다. 모든 것은 존재 가치를 지니고, 그에 따른 성실로 존재 가치를 실현합니다. 이것이 바로 이치입니다. 삶의 현실과 이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치에 맞게 사는 것이 삶이어야 합니다.

 

중용은 이렇게 일러줍니다. “참은 하늘의 길이요, 참을 실천하는 것이 사람의 길이다”(誠者天之道也 誠之者人之道也, 『중용』 20장). 감탄을 자아내는 말입니다. 인간은 우주 질서 속에 있습니다. 인간은 하늘과 땅을 벗어나서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삶은 자연의 이치나 원리와 법칙에 따라서 살아야지, 그것을 넘어서면 거짓과 속임수가 됩니다. 생사화복, 생로병사 그 모든 것들이 다 자연이 일러준 법칙에 따라서 살아야 한다는 매우 단순한 이치를 설명한 말입니다.

 

참을 알고 참을 실천하는 것은 태어남과 병듦, 그리고 죽음조차도 다 하늘의 길이니, 순응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천년 만년 살 것처럼 아귀다툼하면서 삽니다. 다른 사람들이 죽든 말든, 고통을 당하든 말든, 가난해서 굶든 말든 상관없이 축재(蓄財)하고 온갖 욕망을 다 채우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거기에서 진실과 순수는 허망한 것들입니다. 남에게 거짓된 행위를 하는 것은 물론 자신까지도 속이며 살아가니 말입니다.

 

하늘과 땅이 거짓말을 하고 속이는 일은 없습니다. 자연은 스스로 그러함이고 무위(無爲)입니다. 사람들만 의식적으로 행동하고 거짓을 꾸며대는 작위(作爲)와 허위(虛僞)의 행태를 보입니다. 이당은 계속해서 중용 25장의 말을 인용합니다. “성실은 사물의 시작인 동시에 끝이다. 성실이 없으면 사물도 없다(誠者物之終始, 不誠無物).” 누누이 강조해도 지나치다고 할 수 없는 말입니다.

 

성실은 모든 일에 시작이요, 끝입니다. 시종일관 성실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는 일이 없습니다. 따라서 성실하지 않고 과한 결실과 결과만을 바라는 것은 과욕입니다. 여기에서 탈이 생깁니다. 관계가 깨집니다. 우주의 이치, 천지 만물의 이법을 어겼으니 그 결과를 손에 쥔다고 한들 그것은 거짓의 열매입니다. 어디까지나 만사는 성실과 진실이라는 내면적인 법칙[眞實]에 따라서 이루어질 때 거짓되지 않습니다[無妄]. 말을 이루는 게 성(誠)이라는 한자어의 내포적 의미가 그것을 지향합니다.

 

결과로서 주어진 일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이 우연으로 생긴 것이 아니라 나의 진실한 마음에 의한 필연적인 것인지, 자신을 성찰해봐야 합니다. 그래서 이당은 말합니다.

 

“성실성이 결여된 행동은 천박한 행동이다. 얼마만큼 성실한가에 따라서 인간과 사물의 가치가 결정된다. 성실은 성물(成物)의 원리인 동시에 성기(成己)의 원리다(『중용』 25장).” 사물이란 본래 인간의 수단이 아니니, 그것이 지닌 가치를 배려하면서 동시에 인간은 하늘이 부여한 덕스러운 자기를 완성하는 것이 성실이라는 것입니다.

 

이로써 내 마음과 타자의 마음이 멀지 않고, 내 몸과 사물이 다르지 않음을 느끼게 됩니다. 자기의 몸과 마음을 잘 갈고닦는 것과 사물과 타자에게 성심을 다하여 베푸는 것, 이 둘의 관계가 어디 분리될 수 있겠습니까? 이런 성실한 과정을 통해 얻어지는 것들이야말로 소리 없이 모두에게 유의미한 가치를 공급할 것입니다.

 

안병욱,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자유문학사, 2001, pp.169~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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