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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종교철학적 아포리즘(aphor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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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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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아낌없이 빼앗습니다. 사랑은 아낌없이 줍니다. 사랑에 관한 상반되는 이 명제는 모두 옳은 말입니다. 사랑에는 이러한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전자는 ‘빼앗는 사랑’이며, 후자는 ‘주는 사랑’ 또는 ‘바치는 사랑’입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모든 것을 기꺼이 바치고, 아낌없이 줍니다. 이것이 사랑의 헌신(獻身)의 원리입니다. 또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소유하고 독점하고 싶어 하며,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 합니다. 이것이 사랑의 독점의 원리입니다.”
『인생사전』, 예원북, 2013,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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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코리아] 안병욱이 종교에 대해서 언급한 글은 거의 없습니다. 말년의 글에서 조금씩 나타나는 신에 대한 사랑 혹은 거기에서 파생되는 사랑에 관한 풀이는 흡사 설교 문을 읽는 듯합니다. 사랑을 크게 신이 인간에게 베푸는 하향적 사랑, 인간이 신을 향하는 상향적 사랑, 인간과 인간의 수평적 사랑으로 나누는 명료함도 해석학적 식견이 한몫한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말은 마음을 설레게 하는 고상한 밀어(密語) 같은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사랑을 종교적 실천이나 연인 사이의 아름다운 감정으로 생각하는 경우는 많습니다. 그러나 사랑을 철학적 문제로 사유하는 데까지 나가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렇다 보니 이른 봄 지표면은 녹았으나 땅속은 아직도 얼어 있는 것처럼, 사랑에 대해 온전한 이해와 실천으로 나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자칫하면 사랑도 소유 개념으로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소유하거나 말거나 하는 이기주의로 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당은 “산다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삶과 사랑은 자신에게 충실하면서 동시에 타자에게도 성실해야 하기에 정확한 표현입니다. 이당이 그토록 강조하는 것처럼, 삶을 성실하게 산다는 것은 속이지 않는 것입니다. 자신과 타자에게 속이지 않는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시기, 질투, 분노, 증오를 넘어서야 합니다.

 

철학적 사랑은 나의 속이나 남의 속을 모두 만족시키는 순수함에 있기에 어렵습니다. 많이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당은 빼앗는 사랑이 아니라 온전히 내어주는 아가페적 사랑을 높게 평가합니다. 흔히 아가페적 사랑은 성서적, 기독교적 사랑으로 봅니다. 성서에 등장하는 사랑의 정수를 꿰뚫어 본 이당은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라고 말합니다. 이와 같은 사랑을 추구하고 실천에 힘쓴다면 사랑은 모든 덕 중에 최고의 가치를 지닌다고 말합니다.

 

맑은 영혼이 하나님을 보며, 하나님 안에 있는 사람이 사랑 안에 있다는 해석학적 논리도 두드러집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이중 계명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으면서 유한한 인간은 그저 그러한 사랑을 하려고 노력하는 것밖에 달리 방법이 없음을 모를 리 없습니다. 그러므로 절대적 사랑을 하기 어렵다면 최소한 ‘우애’(philia)라도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낭만적이고 열정적인 에로스(eros)는 곡해되었고,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인 스토르게(storge)도 퇴색되어 버렸습니다. 이런 현상을 부인하고 싶지만, 이것이 우리가 사는 세계의 현실입니다. 모두가 다 신의 자녀로서 신의 뜻에 따라 사랑(agape)을 할 수 없다면, 우정 어린 마음으로 사람을 사귀는 것만큼이라도 귀중하게 여기며 실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친구처럼 흉금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황량한 사막과도 같습니다. 벗을 뜻하는 한자어 우(友)는 두 친구가 서로 손을 맞잡고 있는 형상을 본뜬 것입니다. 꼭 벗이 아니더라도 손을 맞잡을 수 있는 사람이라도 많아야 합니다.

 

필리아는 우정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문화·예술에 대한 사랑까지 아우르며 심지어 philosophia, 곧 지혜에 대한 각별하고 사심 없는 사랑도 포함합니다. 철학과 사랑의 긴밀한 랑데부(rendezvous, 밀회)가 잘 드러나는 말이기도 합니다.

 

사랑을 딱 네 가지로 분류하고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또 이 사랑의 개념과 감정은 서로 중첩되기도 합니다. 이 개념들을 분석하고 분류하는 것보다도 중요한 것은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넓고 깊게 할 수 있는 만큼 사람이 달라집니다. 그 사랑 속에 그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에 대한 이해만큼 실천하게 됩니다. 실천이 부족하다면 그만큼 이해가 이루어지지 못한 것입니다. 사랑의 실천만큼이 그 사람의 깊이입니다. 그 사람의 삶의 질은 이와 비례할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사랑받은 것보다 사랑하는 것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당은 사람 안에 사랑이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사랑 안에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이런 형이상학적 통찰에서 사랑을 말해줍니다.

 

※아포리즘(aphorism)

명언, 격언, 잠언과 같이 신조나 이치를 기억하기 쉽게 간결하고 명쾌한 표현으로 쓴 글을 일컫는 말이다. 주로 작가의 체험적 내용을 독창적으로 표현한 것이기에 그 작가만의 개성과 지적 역량을 통해 사물의 핵심이나 이치를 깨달으며 교훈도 얻는 묘미를 맛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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