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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한 물음, 분명한 대답: 물음 주체, 삶의 주체인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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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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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尊貴)한 것이 무엇이냐. 온 천하를 주어도 바꿀 수 없는 최고 가치가 무엇이냐.

제일 값지고 소중한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나다. 왜냐, 하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는 천상천하(天上天下)에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존재다. 무수한 너가 있고 무수한 그가 있다.

그러나 나는 오직 하나뿐이다.”

『지혜롭게 사는 길』,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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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욱 교수, ‘양구인문학박물관 김형석·안병욱 철학의 집’ 전경

 

[타임즈코리아] 인간이 태어나서 제일 먼저 부딪히는 철학적 물음 중의 하나가 ‘나는 오직 하나다’, ‘똑같은 존재가 하나도 없다’라는 난제(難題, aporia)일 것입니다. 그런데 당연한 현상으로 의식해서인지 존재 주체인 나에 관해서 묻지 않습니다. 안병욱은 나에 대해서 ‘자기’, ‘자아’(自我), ‘존엄한 생명’, ‘고귀한 인격’(人格), ‘아름다운 영혼’, ‘자각적(自覺的)인 주체(主體)’, ‘양심의 존재’, ‘이성(理性)의 빛’, ‘자유로운 혼’, ‘불성(佛性)의 그릇’, ‘만물의 연장’, ‘독자적 개성’과 같이 여러 개념으로 정의합니다.

 

이러한 개념에서 의미하는 공통점은 ‘나’란 도구적 존재나 매매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나의 개별성은 자꾸 상품으로 전락하거나 소모품(소비재)처럼 취급되기도 합니다. 주체요, 인격이요, 영혼이요, 독존적 존재라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우리는 그냥 시류에 떠밀려서 혹은 맥락에 맞춰서 그때그때 자기의 자신을 팔기도 하고, 또 다른 자기[他我]를 사기도 합니다. 이런 것을 두고 자아의식이 없다고 말합니다. 자기 자신을 보는 관점이 부재한 상태입니다.

 

다른 사람이 자기를 규정하거나 나에게 명령 내린 대로만 살아가면 타율적 인간으로 전락합니다. 안병욱은 시지포스(Sisyphus)의 용기와 프로메테우스(Prometheus)의 정열을 갖고 살라고 당부합니다. 자기에 대한 자부심, 곧 자기 자신의 마음에 자기 자신임, 자기(selbst, self)라는 것을 반드시 인식시킴으로써 타자와는 구별된 자기 인생을 사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자부심과 용기는 다르지 않습니다. 자부심이 있는 사람은 용기도 있습니다. 자신감이 있기에 그렇습니다. 자기 인식과 자기 자신의 과신과 몰지각에서 비롯된 오만이나 교만과는 다릅니다. 그것은 만용입니다.

 

‘나’에 대한 인식과 ‘우리’라는 공동체성의 맥락에서 볼 때 우리 사회는 그 어디에서도 정도를 걸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나’를 집단화하거나 ‘우리’를 이익만 생각하는 패거리로 왜곡·곡해합니다. 진정한 자기에 대한 물음도 없는 채 공격, 비난, 혐오 같은 것을 행하는 데에는 민감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안병욱이 말한 ‘나’에 대한 존귀한 존재론적 지위·위치에 서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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