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04-0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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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석헌의 한국철학에 대한 온고지신
    [타임즈코리아] 함석헌의 한국철학이 씨알을 위한, 씨알의 철학이 되어야 한다는 데에 대해서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넘어선 또 다른 메타(meta) 함석헌의 한국철학이 등장해야 합니다. 그것이 함석헌식의 철학입니다.   머물지 않고 흘러가면서 개혁함이 필요합니다. 함석헌도 시대의 아들이라는 겸허한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안 되었기 때문에 함석헌의 철학이 정체되고 과거의 박제물이 되어버린 듯한 것입니다.   유학자 율곡 이이는 선조에게 올린 만언봉사에서 옛날 어진 사람들의 전해지는 말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천지가 한 세대의 사람들을 낳아 그 세대의 일을 감당하도록 한 것이지, 다른 세대로부터 재능을 빌리도록 한 것이 아니다”(天地生一世人, 自足了一世事, 非借才於異代, 今之賢者).   씨알의 능동성과 저항, 그리고 맨 사람을 역설했던 함석헌의 정신이 오늘날처럼 무기력하고 수동적인 자세로 바뀐 적이 있었을까요?   씨알은 정치의 주권자요 창조적인 존재입니다. 씨알은 한 국가의 통치 대상이나 정치전(政治戰)의 수단이 아닙니다. 씨알은 자주적인 이성으로 사태를 판단하는 능력을 갖춘 존재입니다.   씨알은 자기 자신의 힘으로 성장할 수 있는 존재로서 사회와 정치의 주역이라는 사실을 명징하게 깨달아야 합니다(이상희, “위기적 상황과 대중조작 기술”, 사상계, 1970년 1월호, 19-21).   따라서 함석헌의 한국철학 연구자들은 오늘의 시대적 삶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창의적인 자세로 연구하고 비판적 태도와 함께 열린 마음으로 변화와 발전을 이끌어야 할 것입니다.   잘 알다시피 ‘철학’(哲學)은 일본사람 서주(西周)가 Philosophy를 번역한 개념이지만, 그것은 시대를 초월한 절대 보편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협의와 합의, 그리고 소통을 통해서 만들어가는 공속의식으로 생각해야 합니다(이철승, “머리말. 한국에서 철학하기”, 위의 책, 6-7; 김교빈, “우리철학의 길”, 위의 책, 385-400).   함석헌의 한국철학이 제대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그의 삶과 사상을 철학화 하는 엄밀한(streng) 과정에서는 꼭 이를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김대식 숭실대학교 철학과 강사, 함석헌평화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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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합정보
    2021-03-25
  • 눈 오는 날 품어 보는 간절한 소망
      [타임즈코리아] 모두가 잠든 13일 오전 중부지방 곳곳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눈은 오전까지 이어지며 하얀 세상을 만들어 냈다.   이런 풍경을 만나면 설렘과 걱정이 교차하게 된다. 누구라도 하얗게 내리는 눈을 보노라면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설렘이나 마음의 정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내 현실을 생각하게 되면 출퇴근길 교통 문제, 한파 등 여러 걱정에 휩싸이게 된다.   세상살이에서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겠지만, 이 역시 생각을 통해 얼마든지 바꾸어낼 수 있을 것이다.   어니 젤린스키(Ernie J. Zelinski)가 쓴 『모르고 사는 즐거움(The Joy of Not Knowing It All)』이란 책에서 그가 조사한 결과를 보면 다음과 같다는 것이다.   우리가 걱정하는 사건의 40%는 현실에서 절대로 발생하지 않을 일이고, 30%는 이미 발생한 일이며, 22%는 사소한 고민에 대한 것, 4%는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걱정해서 소용 있는 사안은 불과 4% 정도라는 것이다. 이 조사에 비춰볼 때 우리가 걱정하는 96%는 거의 쓸데없는 것이라는 말이다.   “걱정해서 걱정거리가 해결된다면 걱정이 없겠다”라는 티베트 속담이나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기(杞) 나라에서 어떤 사람이 하늘이 무너질까 봐 걱정하며 살았다고 하는 데에서 유래된 기인지우(杞人之憂, 杞憂)도 모두 쓸데없는 걱정에 대한 말이다.     삶의 대부분은 관점과 세계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생각에 따라 세상은 달라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가능하면 긍정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좋다.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도 그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면 이 또한 긍정의 관점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구나 어린 시절 눈이 내리던 날 풍경을 떠올리면 마치 동화 속 세상이라도 만난 것처럼 즐거웠던 추억이 가슴 속 깊이에서 되살아날 것이다.   눈으로 인한 걱정은 대안을 찾아서 대처하면 된다. 이것은 걱정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눈이 오는 풍경을 보며 걱정에만 휩싸일 것이 아니라, 정서적으로 즐기면서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13일 오전 내리는 눈을 보며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 더욱더 안타깝게 느껴진다. 이런 현실 속에서 우울감에 시달리는 사람들도 많다.   이 현실에 너무 심각하게 빠져들어서는 안 된다.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다. 마스크를 쓰고, 철저하게 손을 씻으며, 거리 두기를 실천하면서 바이러스와 맞서 싸워야 한다.   이제, 유럽에서부터 백신이 접종되고 있다. 겨울이 지나고 꽃이 피는 봄을 맞으면 코로나도 기세가 꺾이기 시작할 것이다.   내년 이때 우리는 즐거운 송년 모임도 하며 평상의 삶을 되찾게 될 것이다. 이 혹독한 어려움 속에서라도 모두가 그때를 생각하며 눈 내리는 겨울의 아름다운 풍경을 통해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 한국뉴스
    • 사회
    2020-12-14
  • 종속될 것인가, 회복할 것인가
      [타임즈코리아]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무서운 속도로 변해가고 있다. 느린 사람은 어찌 살라는 건지, 넋이 나갈 정도로 부지불식간에 많은 것들이 바뀌곤 한다. 이런 현상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도 쉽지 않다. 변화는 순리이고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라는 논리가 더 우세한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과연 이것이 옳은 것일까? 그렇다면 약육강식이 진리이어야 한다. 여기에 동의할 사람들은 모두 강자라야 가능하다. 적어도 변화가 자연에 의한 것이라면 어쩔 도리가 없다. 하지만, 인간이 자초한 변화에 순응하라는 것은 무조건 따를 수 없는 것이다.   물질문명이 그만큼 편리를 제공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으로 인해 그만큼의 행복을 확보했다고 할 수는 없다.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것이 비대 면화되어 가고 있다. 이것을 본질적으로 바람직한 변화라고 동의하고 싶은 사람이 있겠는가? 코로나19에 따른 불가피한 강요인 셈이다.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일 뿐이다.   이렇다 보니 예술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은 이에 따른 변화에 선뜻 동의할 수 없는 곤란한 처지에 놓여 있다. 만남에서 누리고 싶은 행복은 사람의 DNA 속에서 절대로 지울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변하지 않는 가치도 있다. 현장 공연에서 느낄 수 있는 예술적 감흥도 그렇다. 그럼에도 이를 지키려는 사람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이런 노력은 모두를 위한 것이지 개인의 욕심이 아니다. 그렇기에 머지않아 빛을 발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믿음이 있기에 예술을 가상의 세계에 가두지 않으려는 몸부림을 칠 수밖에 없다. 만약 가상의 세계에서 보고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면 우리가 굳이 직접 여행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영상이나, 증강현실 그리고 가상현실 시스템만으로도 더 자세하게 보며 실감 나는 장면 속에 빠져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온라인으로 하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계기로 우리는 온·오프라인의 콘텐츠를 구별하는 작업들을 해야 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태양의 서커스’가 파산했다는 기사가 유난히 아프게 느껴진다. 과학과 기술이 육체적 요소라면 문화와 예술은 정신적 요소이기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이런 난국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하면 문화와 예술을 활성화할 수 있을지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예술의 존엄과 가치는 예술가들이 지켜 내야 하는 것이다. 대중화, 실용화 이런 측면들은 굳이 지키려 하지 않아도 어느 시대에나 자생해 왔다. 변하지 않아야 할 것들을, 변하지 않게 하는 일, 반드시 지켜야 할 것들을, 지키려는 힘은 이미 우리 내면에 존재하고 있다. 이것을 자극하여 거대한 힘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예술의 힘이고 예술가들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코로나19가 망가트려놓은 만남과 관계를 인터넷이라는 가상의 세계 속에 내어주고 거기에 종속될 것인가. 아니면 만남과 관계를 열망하는 DNA와 인간의 지혜가 코로나19보다 더 강함을 증명하며 예전과 같은 역동성을 회복할 것인가.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인류의 역사가 증명해왔듯이 이 또한 극복해 낼 것이다. 우리는 머지않아 코로나19를 이겨낼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하고, 이전과 같은 일상을 회복할 것이다. 예술가들이여, 우리는 과학자들이 힘을 낼 수 있도록 그들에게 감동을 선사합시다.   
    • 한국사상
    • 종합정보
    2020-07-06
  • 당신은 행복한 사람입니까?
    “당신은 행복한 사람입니까?”라는 질문을 듣게 된다면 어떤 대답을 할 것인가? 사람마다 행복에 대한 생각과 기준이 다르다. 이것은 각자의 가치 판단과도 연결된다.     행복에 대한 각자의 기준과 크기는 서로 같지 않다. 그렇기에 각자가 생각하는 것을 획일적으로 행복이라고 정의할 수 없다. 그런데 행복하리라 생각하는 누군가의 삶을 행복의 전형처럼 규정하고 일방적으로 따르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거기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 매우 불행한 것처럼 생각하기도 한다. 비교는 발전의 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행복을 감소시키는 원인이 된다.   정작 자신이 가진 것에는 큰 관심도 없으면서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며 다른 사람에 대해 질투하기도 한다.          픽사베이     비교가 반드시 나쁘다고 말할 수도 없다. 다른 사람의 위치나 발전을 바라보면서 자신도 어떤 목표를 설정하고 그에 걸맞은 노력을 한다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안일한 자세로 그것을 행복으로 여기는 자세가 바람직하다고만 말할 수는 없다. 인간은 꿈을 지니고 발전을 지향하는 존재다.   그렇기에 목표나 희망을 품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낄 수도 있다. 이와 발맞추어 목표나 희망하는 것을 향해 나가는 과정도 행복일 것이다.   드디어 목표한 것을 이루거나 희망하던 것을 성취하였을 때는 과정에서 느꼈던 행복보다 더욱더 큰 행복을 맛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을 잘 관리하지 않으면 지치게 되고 행복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이렇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은 지나친 경쟁에서 오는 피로감과 좌절감일 것이다.   반면, 이 경쟁에서 이긴 자는 만족감과 희열을 느끼게 될 것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누군가의 실패나 좌절이 누군가에게는 성공과 성취감으로 작동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런 상대적 행복과 성취는 본질적이고 궁극적 행복으로 인도하지 못한다. 과연 어떻게 해야 더불어 행복할 수 있겠는가.   함께 누릴 수 있는 행복을 추구하며 그것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너와 더불어 나’라는 마음으로 ‘우리’를 만들어내야 한다. 우리의 행복은 곧 너의 행복이기도 하고 나의 행복이기도 하기에 모두의 행복이 되는 것이다.   어떤 인류학자가 아프리카 한 부족의 아이들을 모아 놓고, 자신이 저쪽 큰 나무에 매달아 놓은 맛 난 음식을 먼저 가서 차지하는 사람의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아무도 먼저 달려가지 않더라는 것이다. 가장 먼저 가는 사람이 다 가지라고 독려하자. 그 아이들은 ‘우분투(UBUNTU)’을 외치며 “한 명 이외에는 모두가 슬픈데 어째서 혼자만 행복해야 하나요”라고 말하며 함께 손을 잡고 가서 나누어 먹더라는 것이다.   ‘우분투(UBUNTU)’란 반투족 말로 “네가 있기에 내가 있다(I am because you are)”라는 뜻이라고 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을 지냈고, 1993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도 이 말을 아주 강조했다고 한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하지 않던가.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우리의 마음속, ‘함께’라는 생각 속에 있다고 본다.  
    • 한국교육
    • 종합정보
    2019-12-15
  • 제겐 꿈이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승욱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저에 대해, ‘자신이 선택한 일에 대한 책임을 질 줄 아는 21세기 리더십의 소유자'라고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사진은 한 교육프로그램에서 시행한 캠프에 참가한 장면입니다. 뉴욕 맨해튼 타임스퀘어에서 여러 사람과 함께 한국을 소개하며 찍은 사진입니다.       저를 표현할 의미 있는 순간을 담은 사진을 고르려고 했을 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 사진을 선택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우선 그때의 기억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비록 어릴 때였지만, 부모님과 떨어져 낯선 외국의 땅에서 여러 사람과 함께 한국을 소개했다는 것이 정말 의미 있고, 자랑스러웠습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온몸에 전율이 옵니다. 이 사진 한 장에 매우 소중했던 추억과 앞으로의 비전까지 담겨 있다고 보셔도 좋습니다. 저의 꿈은 그저 저만 잘 먹고 잘사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하는 일로 주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저는 이 꿈을 실현하기 위해 전자공학을 공부하려고 합니다. 전자공학은 세탁기, 텔레비전, 스마트폰은 물론, 인공지능, 로봇까지도 제작하는 데 관련된 학문입니다. 제가 이러한 꿈을 가지게 된 계기는 어릴 적 우울증을 잠시 겪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주변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후 제가 받은 사랑을 많은 사람에게 돌려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공부하고픈 분야를 통해 남을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이 되려는 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꿈을 이루기 위해 지금도 저는 꾸준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한국을 소개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게 왜 주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이냐” 하며 의아해하시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요즘 우리는 흔히 지구촌 시대라는 말을 합니다. 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글로컬을 외치고 싶습니다. 이 말은 지구촌(global)과 지역(local)을 합친 말입니다. 한국인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세계인을 행복하게 하는 데 이바지하는 것이 제 꿈입니다. 그래서 한국을 넘어 해외에서도 사람들에게 좋은 정보를 전달하며 웃음을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외에도 3.1절이나 한글날에 열리는 다양한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합니다. 현대사회는 SNS가 발달한 시대이기에 저는 블로그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제가 운영하는 블로그에는 하루 접속자가 9만 명이나 됩니다. 이 모든 것은 소통과 공감에 대한 제 실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의 롤모델은 유재석입니다. 유재석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웃음이 나오며 행복해집니다. 저 또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제 취미는 인라인스케이트와 스키 그리고 블로그 운영입니다. 인라인스케이트와 스키는 체력을 기르기 위해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숙련이 되니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어서 스키 강사 자격증까지 땄고 다른 사람을 가르치게도 되었습니다. 제가 이런 값진 결과들을 얻은 것은 많은 실패와 좌절 속에서도 “내가 선택한 일이니, 내가 책임지고 포기하지도 말자”라는 생각으로 버텨왔기에 받은 선물 같습니다. 앞으로도 저의 꿈을 향한 도전을 멈추지 않을 것이며 포기하지도 않을 겁니다. 그리고 제 모교와 우리 반에서도 친구들과 함께 날마다 이 꿈을 이루어가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여러분, 제 꿈을 응원해주세요. 감사합니다. 학생기자 이승욱
    • 한국교육
    • 종합정보
    2018-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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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석헌의 한국철학에 대한 온고지신
    [타임즈코리아] 함석헌의 한국철학이 씨알을 위한, 씨알의 철학이 되어야 한다는 데에 대해서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넘어선 또 다른 메타(meta) 함석헌의 한국철학이 등장해야 합니다. 그것이 함석헌식의 철학입니다.   머물지 않고 흘러가면서 개혁함이 필요합니다. 함석헌도 시대의 아들이라는 겸허한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안 되었기 때문에 함석헌의 철학이 정체되고 과거의 박제물이 되어버린 듯한 것입니다.   유학자 율곡 이이는 선조에게 올린 만언봉사에서 옛날 어진 사람들의 전해지는 말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천지가 한 세대의 사람들을 낳아 그 세대의 일을 감당하도록 한 것이지, 다른 세대로부터 재능을 빌리도록 한 것이 아니다”(天地生一世人, 自足了一世事, 非借才於異代, 今之賢者).   씨알의 능동성과 저항, 그리고 맨 사람을 역설했던 함석헌의 정신이 오늘날처럼 무기력하고 수동적인 자세로 바뀐 적이 있었을까요?   씨알은 정치의 주권자요 창조적인 존재입니다. 씨알은 한 국가의 통치 대상이나 정치전(政治戰)의 수단이 아닙니다. 씨알은 자주적인 이성으로 사태를 판단하는 능력을 갖춘 존재입니다.   씨알은 자기 자신의 힘으로 성장할 수 있는 존재로서 사회와 정치의 주역이라는 사실을 명징하게 깨달아야 합니다(이상희, “위기적 상황과 대중조작 기술”, 사상계, 1970년 1월호, 19-21).   따라서 함석헌의 한국철학 연구자들은 오늘의 시대적 삶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창의적인 자세로 연구하고 비판적 태도와 함께 열린 마음으로 변화와 발전을 이끌어야 할 것입니다.   잘 알다시피 ‘철학’(哲學)은 일본사람 서주(西周)가 Philosophy를 번역한 개념이지만, 그것은 시대를 초월한 절대 보편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협의와 합의, 그리고 소통을 통해서 만들어가는 공속의식으로 생각해야 합니다(이철승, “머리말. 한국에서 철학하기”, 위의 책, 6-7; 김교빈, “우리철학의 길”, 위의 책, 385-400).   함석헌의 한국철학이 제대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그의 삶과 사상을 철학화 하는 엄밀한(streng) 과정에서는 꼭 이를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김대식 숭실대학교 철학과 강사, 함석헌평화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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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3-25
  • 눈 오는 날 품어 보는 간절한 소망
      [타임즈코리아] 모두가 잠든 13일 오전 중부지방 곳곳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눈은 오전까지 이어지며 하얀 세상을 만들어 냈다.   이런 풍경을 만나면 설렘과 걱정이 교차하게 된다. 누구라도 하얗게 내리는 눈을 보노라면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설렘이나 마음의 정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내 현실을 생각하게 되면 출퇴근길 교통 문제, 한파 등 여러 걱정에 휩싸이게 된다.   세상살이에서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겠지만, 이 역시 생각을 통해 얼마든지 바꾸어낼 수 있을 것이다.   어니 젤린스키(Ernie J. Zelinski)가 쓴 『모르고 사는 즐거움(The Joy of Not Knowing It All)』이란 책에서 그가 조사한 결과를 보면 다음과 같다는 것이다.   우리가 걱정하는 사건의 40%는 현실에서 절대로 발생하지 않을 일이고, 30%는 이미 발생한 일이며, 22%는 사소한 고민에 대한 것, 4%는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걱정해서 소용 있는 사안은 불과 4% 정도라는 것이다. 이 조사에 비춰볼 때 우리가 걱정하는 96%는 거의 쓸데없는 것이라는 말이다.   “걱정해서 걱정거리가 해결된다면 걱정이 없겠다”라는 티베트 속담이나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기(杞) 나라에서 어떤 사람이 하늘이 무너질까 봐 걱정하며 살았다고 하는 데에서 유래된 기인지우(杞人之憂, 杞憂)도 모두 쓸데없는 걱정에 대한 말이다.     삶의 대부분은 관점과 세계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생각에 따라 세상은 달라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가능하면 긍정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좋다.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도 그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면 이 또한 긍정의 관점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구나 어린 시절 눈이 내리던 날 풍경을 떠올리면 마치 동화 속 세상이라도 만난 것처럼 즐거웠던 추억이 가슴 속 깊이에서 되살아날 것이다.   눈으로 인한 걱정은 대안을 찾아서 대처하면 된다. 이것은 걱정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눈이 오는 풍경을 보며 걱정에만 휩싸일 것이 아니라, 정서적으로 즐기면서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13일 오전 내리는 눈을 보며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 더욱더 안타깝게 느껴진다. 이런 현실 속에서 우울감에 시달리는 사람들도 많다.   이 현실에 너무 심각하게 빠져들어서는 안 된다.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다. 마스크를 쓰고, 철저하게 손을 씻으며, 거리 두기를 실천하면서 바이러스와 맞서 싸워야 한다.   이제, 유럽에서부터 백신이 접종되고 있다. 겨울이 지나고 꽃이 피는 봄을 맞으면 코로나도 기세가 꺾이기 시작할 것이다.   내년 이때 우리는 즐거운 송년 모임도 하며 평상의 삶을 되찾게 될 것이다. 이 혹독한 어려움 속에서라도 모두가 그때를 생각하며 눈 내리는 겨울의 아름다운 풍경을 통해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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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2020-12-14
  • 종속될 것인가, 회복할 것인가
      [타임즈코리아]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무서운 속도로 변해가고 있다. 느린 사람은 어찌 살라는 건지, 넋이 나갈 정도로 부지불식간에 많은 것들이 바뀌곤 한다. 이런 현상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도 쉽지 않다. 변화는 순리이고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라는 논리가 더 우세한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과연 이것이 옳은 것일까? 그렇다면 약육강식이 진리이어야 한다. 여기에 동의할 사람들은 모두 강자라야 가능하다. 적어도 변화가 자연에 의한 것이라면 어쩔 도리가 없다. 하지만, 인간이 자초한 변화에 순응하라는 것은 무조건 따를 수 없는 것이다.   물질문명이 그만큼 편리를 제공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으로 인해 그만큼의 행복을 확보했다고 할 수는 없다.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것이 비대 면화되어 가고 있다. 이것을 본질적으로 바람직한 변화라고 동의하고 싶은 사람이 있겠는가? 코로나19에 따른 불가피한 강요인 셈이다.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일 뿐이다.   이렇다 보니 예술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은 이에 따른 변화에 선뜻 동의할 수 없는 곤란한 처지에 놓여 있다. 만남에서 누리고 싶은 행복은 사람의 DNA 속에서 절대로 지울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변하지 않는 가치도 있다. 현장 공연에서 느낄 수 있는 예술적 감흥도 그렇다. 그럼에도 이를 지키려는 사람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이런 노력은 모두를 위한 것이지 개인의 욕심이 아니다. 그렇기에 머지않아 빛을 발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믿음이 있기에 예술을 가상의 세계에 가두지 않으려는 몸부림을 칠 수밖에 없다. 만약 가상의 세계에서 보고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면 우리가 굳이 직접 여행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영상이나, 증강현실 그리고 가상현실 시스템만으로도 더 자세하게 보며 실감 나는 장면 속에 빠져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온라인으로 하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계기로 우리는 온·오프라인의 콘텐츠를 구별하는 작업들을 해야 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태양의 서커스’가 파산했다는 기사가 유난히 아프게 느껴진다. 과학과 기술이 육체적 요소라면 문화와 예술은 정신적 요소이기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이런 난국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하면 문화와 예술을 활성화할 수 있을지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예술의 존엄과 가치는 예술가들이 지켜 내야 하는 것이다. 대중화, 실용화 이런 측면들은 굳이 지키려 하지 않아도 어느 시대에나 자생해 왔다. 변하지 않아야 할 것들을, 변하지 않게 하는 일, 반드시 지켜야 할 것들을, 지키려는 힘은 이미 우리 내면에 존재하고 있다. 이것을 자극하여 거대한 힘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예술의 힘이고 예술가들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코로나19가 망가트려놓은 만남과 관계를 인터넷이라는 가상의 세계 속에 내어주고 거기에 종속될 것인가. 아니면 만남과 관계를 열망하는 DNA와 인간의 지혜가 코로나19보다 더 강함을 증명하며 예전과 같은 역동성을 회복할 것인가.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인류의 역사가 증명해왔듯이 이 또한 극복해 낼 것이다. 우리는 머지않아 코로나19를 이겨낼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하고, 이전과 같은 일상을 회복할 것이다. 예술가들이여, 우리는 과학자들이 힘을 낼 수 있도록 그들에게 감동을 선사합시다.   
    • 한국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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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06
  • 당신은 행복한 사람입니까?
    “당신은 행복한 사람입니까?”라는 질문을 듣게 된다면 어떤 대답을 할 것인가? 사람마다 행복에 대한 생각과 기준이 다르다. 이것은 각자의 가치 판단과도 연결된다.     행복에 대한 각자의 기준과 크기는 서로 같지 않다. 그렇기에 각자가 생각하는 것을 획일적으로 행복이라고 정의할 수 없다. 그런데 행복하리라 생각하는 누군가의 삶을 행복의 전형처럼 규정하고 일방적으로 따르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거기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 매우 불행한 것처럼 생각하기도 한다. 비교는 발전의 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행복을 감소시키는 원인이 된다.   정작 자신이 가진 것에는 큰 관심도 없으면서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며 다른 사람에 대해 질투하기도 한다.          픽사베이     비교가 반드시 나쁘다고 말할 수도 없다. 다른 사람의 위치나 발전을 바라보면서 자신도 어떤 목표를 설정하고 그에 걸맞은 노력을 한다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안일한 자세로 그것을 행복으로 여기는 자세가 바람직하다고만 말할 수는 없다. 인간은 꿈을 지니고 발전을 지향하는 존재다.   그렇기에 목표나 희망을 품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낄 수도 있다. 이와 발맞추어 목표나 희망하는 것을 향해 나가는 과정도 행복일 것이다.   드디어 목표한 것을 이루거나 희망하던 것을 성취하였을 때는 과정에서 느꼈던 행복보다 더욱더 큰 행복을 맛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을 잘 관리하지 않으면 지치게 되고 행복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이렇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은 지나친 경쟁에서 오는 피로감과 좌절감일 것이다.   반면, 이 경쟁에서 이긴 자는 만족감과 희열을 느끼게 될 것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누군가의 실패나 좌절이 누군가에게는 성공과 성취감으로 작동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런 상대적 행복과 성취는 본질적이고 궁극적 행복으로 인도하지 못한다. 과연 어떻게 해야 더불어 행복할 수 있겠는가.   함께 누릴 수 있는 행복을 추구하며 그것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너와 더불어 나’라는 마음으로 ‘우리’를 만들어내야 한다. 우리의 행복은 곧 너의 행복이기도 하고 나의 행복이기도 하기에 모두의 행복이 되는 것이다.   어떤 인류학자가 아프리카 한 부족의 아이들을 모아 놓고, 자신이 저쪽 큰 나무에 매달아 놓은 맛 난 음식을 먼저 가서 차지하는 사람의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아무도 먼저 달려가지 않더라는 것이다. 가장 먼저 가는 사람이 다 가지라고 독려하자. 그 아이들은 ‘우분투(UBUNTU)’을 외치며 “한 명 이외에는 모두가 슬픈데 어째서 혼자만 행복해야 하나요”라고 말하며 함께 손을 잡고 가서 나누어 먹더라는 것이다.   ‘우분투(UBUNTU)’란 반투족 말로 “네가 있기에 내가 있다(I am because you are)”라는 뜻이라고 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을 지냈고, 1993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도 이 말을 아주 강조했다고 한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하지 않던가.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우리의 마음속, ‘함께’라는 생각 속에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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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2-15
  • 제겐 꿈이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승욱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저에 대해, ‘자신이 선택한 일에 대한 책임을 질 줄 아는 21세기 리더십의 소유자'라고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사진은 한 교육프로그램에서 시행한 캠프에 참가한 장면입니다. 뉴욕 맨해튼 타임스퀘어에서 여러 사람과 함께 한국을 소개하며 찍은 사진입니다.       저를 표현할 의미 있는 순간을 담은 사진을 고르려고 했을 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 사진을 선택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우선 그때의 기억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비록 어릴 때였지만, 부모님과 떨어져 낯선 외국의 땅에서 여러 사람과 함께 한국을 소개했다는 것이 정말 의미 있고, 자랑스러웠습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온몸에 전율이 옵니다. 이 사진 한 장에 매우 소중했던 추억과 앞으로의 비전까지 담겨 있다고 보셔도 좋습니다. 저의 꿈은 그저 저만 잘 먹고 잘사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하는 일로 주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저는 이 꿈을 실현하기 위해 전자공학을 공부하려고 합니다. 전자공학은 세탁기, 텔레비전, 스마트폰은 물론, 인공지능, 로봇까지도 제작하는 데 관련된 학문입니다. 제가 이러한 꿈을 가지게 된 계기는 어릴 적 우울증을 잠시 겪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주변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후 제가 받은 사랑을 많은 사람에게 돌려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공부하고픈 분야를 통해 남을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이 되려는 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꿈을 이루기 위해 지금도 저는 꾸준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한국을 소개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게 왜 주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이냐” 하며 의아해하시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요즘 우리는 흔히 지구촌 시대라는 말을 합니다. 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글로컬을 외치고 싶습니다. 이 말은 지구촌(global)과 지역(local)을 합친 말입니다. 한국인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세계인을 행복하게 하는 데 이바지하는 것이 제 꿈입니다. 그래서 한국을 넘어 해외에서도 사람들에게 좋은 정보를 전달하며 웃음을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외에도 3.1절이나 한글날에 열리는 다양한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합니다. 현대사회는 SNS가 발달한 시대이기에 저는 블로그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제가 운영하는 블로그에는 하루 접속자가 9만 명이나 됩니다. 이 모든 것은 소통과 공감에 대한 제 실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의 롤모델은 유재석입니다. 유재석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웃음이 나오며 행복해집니다. 저 또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제 취미는 인라인스케이트와 스키 그리고 블로그 운영입니다. 인라인스케이트와 스키는 체력을 기르기 위해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숙련이 되니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어서 스키 강사 자격증까지 땄고 다른 사람을 가르치게도 되었습니다. 제가 이런 값진 결과들을 얻은 것은 많은 실패와 좌절 속에서도 “내가 선택한 일이니, 내가 책임지고 포기하지도 말자”라는 생각으로 버텨왔기에 받은 선물 같습니다. 앞으로도 저의 꿈을 향한 도전을 멈추지 않을 것이며 포기하지도 않을 겁니다. 그리고 제 모교와 우리 반에서도 친구들과 함께 날마다 이 꿈을 이루어가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여러분, 제 꿈을 응원해주세요. 감사합니다. 학생기자 이승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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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3-30
  • 나의 아름다운 사계절
    나의 아름다운 사계절 / 김현호   봄 추운 겨울이 지나고 날씨가 점차 따뜻해질 때쯤 봄이 시작된다. 봄에는 따뜻하고 시원한 바람이 스치고 그 바람으로 인하여 다양한 식물들은 여러 가지 소리를 낸다. 또, 봄에는 다양한 식물이나 꽃향기가 가득하고, 이때를 놓치지 않고 바쁘게 일하는 벌들이나 나비들도 우리의 마음을 들뜨게 한다. 그리고 봄에는 다양한 먹을거리들도 있는데 그중 예를 들면 화전, 딸기, 더덕, 꼬막 그리고 주꾸미 등등이 있다. 우리는 이렇게 다양하고 즐겁게 봄을 보낸다.   여름 봄이 지나고 점차 날씨가 더워질 때쯤 여름이 시작된다. 일단 여름에는 사람들이 더위를 날리기 위해 시원한 커피, 차, 아이스크림, 팥빙수 같은 음료나 식품을 먹고 마신다. 휴가나 짬을 내어 산이며 바다나 강으로 놀러 가기도 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볼을 스치는 시원한 바람에게 숲속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껏 노래하는 매미 소리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여유를 맛보게 된다. 그러다 출출해지면 우리는 맛있는 도시락을 펼쳐놓고 하하 호호 웃고 떠들며 즐거운 한때를 보낸다. 더위가 우리를 지치게 하지만, 우리는 이 계절에 익어가는 곡식처럼 한여름을 의미 있게 보내야 알찬 미래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가을 한여름 더위가 절정에 이르면 풀벌레 소리가 가을을 부른다. 가을에는 봄의 꽃 못지않게 아름답게 단풍이 온 산을 물들인다. 가을에는 많은 식물의 열매가 무르익는다. 알밤이 토실토실한 얼굴을 드러내고 논에는 벼가 익어가며 황금 물결을 이루면 허수아비가 흥에 겨워 춤을 춘다. 감도 수줍게 빨간 물이 들고, 온종일 결실을 도왔던 태양도 온 세상에 쉼을 선사하러 넘어가며 붉은 색깔 조명을 연출한다. 가을에는 추석이 있어 추수에 대해 감사를 표하며 맛있는 음식을 나누며 즐겁게 지낸다. 두둥실 떠오르는 보름달이 우리 맘속에도 가득 비치면 풀벌레는 아쉽게 가을과 작별의 노래를 한다.   겨울 잎들이 봄부터 함께한 나무와 마음 깊은 대화로 울긋불긋 물이 들면 아쉬운 작별의 시간이 다가온다. 아쉬움이 지워질 때면 하늘에서 내려오는 흰 선물로 아이들의 환호가 들녘에 촘촘히 들어찬다. 호호 시린 손을 불며 썰매도 타고, 눈싸움도 하다가 보면 겨울 해는 추위에 지친 듯 금세 잠이 들고 세상은 캄캄해진다. 종종걸음으로 퇴근길을 서둘러온 아빠의 손에 들린 군고구마는 내가 겨울을 기다리는 행복한 이유 가운데 하나다. 하굣길에 사 먹는 붕어빵이며 어묵은 겨울 추위가 주는 또 하나의 매력이고, 집에 도착해 어머니가 만들어준 간식과 함께 마시는 코코아는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를 깨우쳐준다. 날씨는 매우 춥지만, 겨울은 이렇게 따뜻한 정감 속에 봄을 향해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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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3-30
  • 정의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정의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주제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대부분은 “강자를 위한 것이다”, “약자를 위한 것이다”, “모두를 위한 것이다”라는 세 가지로 구분해 말한다. 하지만 강자와 약자를 구분 짓는 것부터 이미 정의롭지 못할 수 있다. 강자와 약자의 차이는 누가 조금 더 가지고 있는가, 그렇지 못한가의 차이일 뿐이다. 단지 누가 더 소유하고 있는가에 따라서 정의를 논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기준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것을 정의롭다고 할 수 있겠는가? 말 그대로 정의는 정의로운 사람이라야 가능하다.       그렇다면 과연 정의롭지 못하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정의롭지 못한 사람은 두 부류에서 공통으로 나온다. 강자가 되기 위해 잘못된 행동을 하는 약자, 강자로 남기 위해 노력보다는 편법을 행하는 강자, 약자를 밟고 위로 올라가 있는 강자, 강자를 끌어내리고 자기가 올라가는 약자, 이런 사람들이 바로 정의롭지 못한 사람이다. 자신을 강자 혹은 약자로 규정한 사람들은 스스로 정의롭지 못함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정체성을 단지 소유에 따라 나누는 사람들이라면 이는 정의롭지 않을뿐더러 절대 발전할 수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우리의 사회를 정의롭게 만들기 위해서는 강자와 약자로 구분하지 말고, 정의로운 자와 정의롭지 못한 자로 나누어야 한다. 이런 구분에 앞서 항상 자신부터 자신이 정의로운 자인가를 의심을 하며 더욱더 정의를 추구하고 실천하며 살아야 한다. 이렇게 될 때 정의는 모두를 위한 것이 되고, 모두의 행복을 창출하는 바탕이 되어줄 것이다.   학생기자 김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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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3-03
  • 나의 행복 창출과 나
    내가 가장 잘 아는 것, 그건 당연히 ‘나’라는 존재이다. 하지만 나 자신이라고 해도 ‘나’를 완벽하게, 전부 알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나’의 범주 안에서 내가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감정’이다. 내가 어떤 일을 하거나 당할 때, 감정은 즉각적으로 자신의 기분을 표현한다. 그 감정 중에서도 나는 내가 행복할 때를 ‘나’를 가장 잘 알게 되는 것 같다.       나는 매일매일 플래너를 작성하는데, 계획했던 것을 하나씩 형광펜으로 칠할 때와 새로운 한 주를 계획할 때 기분이 좋다. 중학교 1학년 1학기 때까지는 계획이라곤 시험 보는 3일 동안 어떻게 공부할까를 이면지에 끼적이는 정도였다. 그러다가 2학기에 어머니께서 한번 써보라고 스터디 플래너를 사 주셨다. 플래너를 통해 구체적인 계획과 시간을 정해 놓고 공부를 하니 효율도 올라가고 그 시간 안에 끝내려고 노력하다 보니 집중력도 높아지는 게 느껴졌다. 그런 느낌을 받은 이후로 플래너를 작성하는 게 재밌어졌고, 그것을 달성할 때 작지만 행복함을 느낀다. 나는 공예라면 뭐든 좋아한다. 겨울에는 목도리, 장갑, 귀마개 같은 털실을 이용한 공예품을 주로 뜨고 여름에는 팔찌를 만든다. 외에도 귀걸이, 머리핀, 양모 펠트, 양말 인형 등 그냥 만드는 것 자체를 좋아한다. 사실 어렸을 적부터 뭔가 만드는 체험이 내 눈에 보이면 꼭 해야 할 정도로 만드는 걸 좋아했는데 그게 현재까지 이어져 혼자 집에서 책이나 인터넷을 보며 배우거나, 직접 하루짜리 강좌를 신청해 만들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다. 요즘엔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평소 고마움을 느꼈던 사람들에게 예쁘게 포장해 선물한다. 선물이란 단어는 참 신기하다. 받는 사람뿐만 아니라 주는 사람의 마음까지도 풍요롭게 하니 말이다. 어렸을 땐 선물을 주는 게 왜 행복하단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받는 사람의 얼굴을 보니 그 말이 이해가 갔다. 나의 선물이 누군가를 행복하게 만든다는 점이 나까지 행복하게 만든다.       나는 연주할 때도 행복하다. 내가 주로 연주하는 악기는 바이올린이다. 오케스트라도 다니고 과외도 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런 나를 보고 전공을 준비하는 것이냐고 물어본다. 아니다. 내가 행복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다. 열심히 한다고 그것이 모두 진로와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이 시기에 진로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취미 활동도 중요하다고 본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성공적인 자리에 가더라도 취미를 통해 여가를 즐기며 행복을 가꿀 수 없다면 과연 성공적 인생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내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을 돌아보니 모두 소소한 일들이다. 이 말에는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란 뜻도 들어있다. 누구에게나 하루에 한 번쯤은 행복한 순간이 있다.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행복의 의미를 너무 큰 곳에서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각 사람이 생각하고 느끼는 행복은 각양각색일 것이다. “누군가 무엇을 했는데 행복했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도 그 일을 해서 행복할지는 보장할 수 없다. ‘나의 행복’은 나만이 나만의 느낌과 색깔로 느끼는 것이기 때문이다. 굳이 크고 어려운 방법으로 행복을 찾을 필요는 없다. 종이에 내가 좋은 느낌을 받는 순간들을 써 내려가기만 해도 나만의 행복을 느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방법으로 나의 행복을 꽃피운다. 이것이 바로 나를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이기도 하다. 이렇게 글을 쓰는 순간 역시 내 행복을 꽃피우는 길이기도 하다. 학생기자 김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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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2-23
  • 존재적 가치를 발하자
    세상에 과연 쓸모없는 존재가 있을까? 이런 질문에 문득 쓰레기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쓰레기가 절대적으로 쓸모없는 존재를 의미할까? 이미 쓰레기의 재활용은 일반화되어 있다. 누군가에게는 쓰레기라도 다른 누군가에게는 자원이 되기도 한다. 겉으로는 의미 없고 쓸모없는 존재도 어떤 곳에서는 꼭 필요하고 의미 있는 존재가 되기도 한다.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에서처럼 나와는 무관했던 ‘그’도 ‘내’가 ‘그의 이름’을 부르자 꽃이 된다.       권정생 작가의 <강아지똥>에서도 ‘강아지똥’은 자신을 쓸모없는 존재라고 여긴다. 하지만 ‘민들레’가 ‘강아지똥’을 필요로 하자 민들레의 노란 꽃을 피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귀중한 존재가 된다. 모든 존재는 그 나름의 절대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적절한 곳에 쓰이지 못할 때 무가치한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쓰임에 적절한 만남을 이루지 못했다고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닐진대 낙망하거나 실망하는 것은 옳지 않다. 우리는 각자 자신이 귀하게 쓰이도록 가치를 아름답게 꽃피워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을 알아봐 주도록 향기를 퍼뜨려야 한다. 이런 모든 일이야말로 이 땅에 존재하는 우리들의 존재적 가치가 아니겠는가.    학생기자 김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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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2-20
  • 더욱더 아름다운 세상을 열기 위하여
    자신이 원하는 일을 성공시키며 남에게도 긍정적 영향을 주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는 자신이 원하는 일로 다른 사람에게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가 무엇일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를 토대로 다른 사람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칠 가장 효율적 방법을 구체적으로 현실화해내야 한다. 남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방법은 다양하다. 무엇보다도 함께 하는 일을 통해 자신의 발전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스스로 생각하고 깨닫게 해야 한다. 이런 과정은 함께하는 협력을 통해 협동의 힘과 자신만의 차별화를 이루게 된다. 이것이 바로 확대와 재생산의 힘이다. 여기에서 공유의 싹이 트게 된다. 무언가 함께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일에는 사람들이 모이게 한다. 이것은 유대감을 형성시키고 더욱더 발전적 해답을 향해 나아가게 한다.       두 번째는 넓은 안목과 다양한 관점에 대한 수용력이 필요하다. 하나의 사실에 대하여서도 안목에 따라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또한, 같은 일일지라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판단은 달라질 수 있다. 사람들이 지닌 여러 모양의 관점은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성이기도 하다. 이것을 조화롭게 발전시킬 수 있어야 세상은 그만큼 건강하고 아름다워진다. 우리가 자신의 발전만을 고집한다면 이 결과는 충돌과 갈등으로 얼룩진 세상일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성공과 함께 타인의 발전까지 고려하는 사고력과 넓은 안목을 바탕으로 다양한 관점에 대한 수용력을 발휘한다면 더욱더 아름다운 세상을 여는데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학생기자 김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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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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