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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슬픈 철학자 김진영의 해석학적 변주
    [타임즈코리아] 아도르노(Th. W. Adorno)를 닮은 철학자 김진영의 슬픈 고독의 아포리즘.《상처로 숨 쉬는 법(김진영, 한겨레출판, 2021)》은 형용모순입니다. 저자의 삶의 호흡법은 고통으로 내뱉은 짧았다가 간신히 길게 내쉬는 것입니다.   어떻게 상처로 숨 쉰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감히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상처를 받으면 이내 아파하고 찌그러지는 것이 사람의 생리이지만 저자는 이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숨을 쉬라고, 끝내 쉼 쉬라고 말합니다. 이 점에서 김진영은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수장인 아도르노와 닮았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김진영의 철학은 왠지 서글픔이 묻어납니다. 김진영은 외로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없는 사랑을 받았을 것 같습니다.   처절할 만큼 냉철한 분석, 번뜩이는 사회비판과 해석은 분명 아도르노적입니다. 김진영의 강의록을 묶은 이 책은 유고집이다. 아도르노의 미니아 모랄리아, 곧 ‘도저히 버릴 수 없는 한 줌의 도덕’을 의미합니다.   위대한 도덕(Magna Moralia)이 아닙니다. 한 줌도 아닙니다. 반 줌입니다. 이것을 강박으로 지켜내려는 아도르노의 부정철학과 김진영의 멜랑콜리를 통한 해석학적 강의의 조합이 절묘하게 만납니다. “아도르노에게는 철학자로서의 슬픔이 깊이 내재해 있”습니다(34쪽).   삶의 상처투성이를 견뎌내는 방식, 권력적 사유를 거부하는 편집증, 객관적 권력을 통찰하고 포착하는 아도르노의 혜안을 빌려서 우리 사회를 되짚는 김진영의 철학은 말 그대로 “정신의 자유”임을 확증합니다.   객관적 권력인 세상을 닮지 않기 위해서 슬픈 아도르노를 닮아버린 김진영. 곁에 두고두고 여러 번, 많이 읽고 싶어지는 책입니다. 평자에게는 이런 책이 칸트나 후설이나 하이데거의 책들 이외에 국내 학자의 저작물 중에서 처음 있는 일입니다.   훌륭한 철학자를 훌쩍 저 철학의 세계로 영원히 떠난 보낸 것이 아쉬울 뿐입니다. 따라서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는 게 유명을 달리한 한 철학자에 대한 예의라 생각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궁지에 몰리는 존재(Trieb)가 되어버린 인간은 가상(Schein)을 좇는 것은 아닐까요? 살아 있다와 산다는 것은 다를 얘기입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목숨이 붙어 있다는 것을, 산다는 것은 꿈을 실현하는 것(421쪽)의 분류법에 따라 ‘아름다움’은 도구가 아닙니다.     성공을 위한 도구가 아닙니다. 타자는 나를 위한 도구가 아니라는 비판은 타자에 대해 눈뜨도록 만듭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이에게 자신을 다 줘버리고 남은 게 없으니 추해집니다. 멜랑콜리해집니다. 사랑이란 그렇습니다. 김진영은 그렇게 미니아 모랄리아를 성찰과 깨어남으로 풀이합니다.   객관적 권력으로 인한 사회적 시스템을 부정하고 사람답게 사는 삶을 꿈꾸는 김진영. 그는 뒤로 물러남, 생의 권리를 되돌려 줌, 망설였다가 다가감, 뒤돌았다가 다가감을 통해서 직접성의 폭력을 자제합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상처뿐만 아니라 타자의 상처를 치유하는 현대인이 되기를 당부합니다.   아도르노의 철학이 ‘슬픈 학문’으로 명명하고, 김진영의 철학을 ‘상처의 학문’, ‘상처를 어루만지는 철학’이라 하면 어불성설일까요? 그러니 보니 우리 모두는 상처투성입니다.   그의 강의가 들어보고 싶어지는 까닭입니다. 애성이가 난 현대인이라면 이 책을 통해서 그의 진정성이 있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문득 문득 문자 위로 떠오르는 그의 슬픈 그림자와 함께 말입니다.   김대식 숭실대학교 철학과에서 강의를 하면서 절대자유, 평평한 존재론을 추구하는〈함석헌평화연구소〉부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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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합정보
    2021-05-26
  • 인간은 예외자가 아닙니다
    [타임즈코리아] 사람들은 존재론하면 형이상학이 생각날 것입니다. 존재론은 일반 형이상학에서 다루는 분야입니다. 모든 존재자가 존재자로서 공통적으로 지니는 것을 말합니다. 이 구분은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기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관련지어보더라도 브라이언트의 책 제목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존재의 지도(Levi R. Bryant, 김효진 옮김, 갈무리, 2020)》(onto-cartography)라는 제목에 부제는 ‘기계와 매체의 존재론’이라니 아리송합니다. 책을 펼치는 순간 저자의 학문적 관심사나 그 깊이가 남다르다는 것을 단박에 깨닫습니다. 게다가 그의 문제의식을 독특하게 담아내는 것도 모자라 엄밀하게 풀이한 방식 또한 혀를 내두르게 합니다.   이 책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등장하는 ‘회집체(assemblage)’라는 개념 자체도 생소합니다.  모든 세계를 나타내는 저자만의 특수용어임에는 분명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회집체입니다.   존재자들이 집합을 이루기는 하는데, 그것들이 어떤 권력 혹은 중력장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해방을 꾀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시각에서 저자는 우리가 살고 있는 그러한 회집체들이 어떠한 문제들이 있는지를 분석한 후 새로운 존재 지도를 구성하려고 시도합니다.   존재의 지도는 인간뿐만 아니라 자연, 생태, 그리고 사회까지 모든 존재자들의 관계가 열려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입니다. 독자는 이른바 신체든 실체든 사물이든 각각의 존재자들을 ‘기계’라고 규정하는 다소 낯선 논리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위, 풀, 인체, 냉장고와 같은 유형 기계와 숫자, 악곡, 문화 정체성, 소설 등의 무형 기계도 다 기계입니다. 따라서 물질적 표현 혹은 행위적 표현이 존재하는 이러한 모든 기계 존재자들이 집합체 혹은 회집체입니다.   모든 존재자는 주체일 뿐만 아니라 객체이기도 하고 나아가 준객체(축구경기장의 공)입니다. 그러나 주체는 객체를 종속시키려 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안은 행위주체라는 폭넓은 개념으로 재구성해야 합니다. “주체는 일시적입니다”라는 말은 이렇게 종래의 철학적 강박을 넘어서려는 저자의 의지를 반영합니다.   저자의 논리는 ‘에일리언 현상학’이라는 데서도 그 특성이 잘 드러납니다. 이를 통해 그는 비인간 존재자들, 곧 모기, 나무, 기관, 바위 등이 주변 세계를 경험하는 방식을 검토하는 철학적 전회를 기도합니다.     인간 주체가 비인간 존재자들에 대해서 혹은 세계에 대해서 어떻게 경험하는지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인간 주체의 인식론적 태도로부터 그들이 세계를 어떻게 경험하는가 하는 타자적 응시 혹은 관점을 변경하는 것입니다.   더불어 이와 같은 에포케는 인간의 목표와 다른 존재자들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구분함으로써 가능해집니다. 나아가 이것은 보고스트(Bogost)의 “존재의 위계는 전혀 없다”는 말을 인용하면서 자신이 평평한 존재론, 아나키즘적인 존재론을 지향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알게 해줍니다.   저자에 의하면 공간과 시간의 토폴로지는 권력의 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이것을 ‘중력장’이라는 말로 치환합니다. ‘권력’이라는 뉘앙스가 지극히 인간중심적이라는 판단 때문입니다.   사회적 관계망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우리가 흔히 간과할 수 있는 허리케인과도 같은 기계가 실재적 행위자라는 인식론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반인간중심주의적 발상입니다. 여기에서 모든 존재자는 사실 주체가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하는 객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밝은 객체’에서 회집체에 거의 중력도 방사하지 못하는 장애인이나 노숙자와 같은 ‘희미한 객체’, 자본주의와 같은 ‘블랙홀 객체’, 자연재난이나 인터넷 같은 ‘불량 객체’ 등 다양한 객체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저자는 자신의 ‘존재지도학’을 달리 ‘지리철학’으로 명명합니다. 이는 평평한 존재론, 수평적 존재론, 그리고 내재적 존재론으로서 수직적, 위계적 존재론을 거부하기 위함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모호한 거대 용어로 인한 추상작용에 대해서 비판적 입장을 취하기 위함입니다.   자본주의, 존재신학, 사회, 인종주의, 가부장제라는 개념조차도 애매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의심의 해석학을 통하여 해체하고 새로운 중력장을 검토하려는 저자의 노력이 엿보입니다.   그는 사람, 생태 등을 억압하는 중력장에 대해 비판적으로 뜯어보고 인간 주체에서 벗어나 사회적 회집체를 자연과 구분되는 것을 반성적으로 고찰하려고 합니다.   인간과 비인간의 구분의 경계를 폐기하고 구체적인 것에 대한 호소를 요구합니다. 기표와 기호의 추상적 관념이 다양성과 개체성을 저버리는 유사성에 매몰되지 않도록 “세계 속 기계들과 더불어 기계들 사이의 관계들에 주목하라”는 주문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구체적인 세계에 개입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자신의 역능을 박탈당한 기계가 되지 말라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맨 마지막 단락에서 저자가 밝힌 것처럼, 기후변화로 인한 위험과 위협은 결국 ‘인간 예외주의’라는 편견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논조가 책의 방향성을 다 설명한 듯합니다. 이를 위해서 자신이 존재지도학을 제공했노라고 하면서 끝을 맺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 책은 난해합니다만 매우 흥미로운 책입니다. 그리고 읽어나갈수록 매력이 있으며 흥분되는 책입니다. 만일 어떠한 독자가 브라이언트의 책을 읽고자 한다면,《존재의 지도》를 정치(精緻)하게 독해한 후《객체적 민주주의》를 손에 든다면 좀 더 명징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책은 세계를 관찰하는 데 유물론적 사유에 대한 새로운 해석학을 제공해 준 브라이언트의 탁견과 그 심대한 노력에 감탄을 자아내게 합니다. 그의 문헌 소화력과 일관성 있게 밀고 나가는 논리적인 힘은 범접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곧 사회, 자연, 인간, 물질 등의 기계로 이루어진 회집체를 비판적인 안목으로 새롭게 읽어내고자 하는 독자라면 꼭 읽어보기를 바랍니다. 시의적절한 책을 우리나라에 소개해 준 훌륭한 번역자와 갈무리 출판사에 감사합니다.   김대식 숭실대학교 철학과에서 강의를 하면서 절대자유, 평평한 존재론을 추구하는〈함석헌평화연구소〉부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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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5-24
  • 끊임없이 이어지는 대답이 없는 질문이여
    [타임즈코리아] 『한국철학사』, ‘제3장 함석헌. 씨알철학과 동양철학’을 읽고 나니, “한국철학은 고난을 겪는 씨알의 삶의 자리에서 비롯된다”는 외침이 봄의 약동처럼 메아리칩니다.   전호근은 함석헌이 고난의 자리에서 씨알과 함께 고난의 길을 걸어간 철학자라고 주장합니다. 그 철학적 저력은 동양고전이 함석헌의 삶 자체가 된 것에서 찾는 듯합니다. 저자는 특히 함석헌이 종래의 해석을 넘어 자유(자재)와 새 해석의 방식으로 동양고전을 해석했다는 것을 높이 평가합니다.    그것은 그저 제도나 체제적인 해석에 머무르지 않고 씨알(유대칠의 언어로 ‘민중’)의 자리, 시대 전체의 자리에서 읽었다는 것입니다.   함석헌은 맹자, 노자, 장자에 해박한 철학자였습니다. 함석헌은 그런 철학을 통해서 민중이야말로 혁명의 주체임을 강조했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함석헌은 우리말로 씨알의 생각을 표현해야 한다는 것을 말했습니다. 민중의 생각이 민중의 언어로 나타내야 한다는 것은 단순한 국수주의가 아니라 권력의 언어로부터 탈피하자는 것입니다. 민중의 철학은 씨알의 말로 해야 합니다.   그 까닭은 한국의 역사는 고난의 역사인 동시에 씨알의 고난과 민중의 시대적 아픔이 통째로 녹아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한국의 철학사적 흐름 속에서 앞의 유대칠과 인식을 같이하는 지점입니다.   전호근은 서문에서 ‘어느 곳에서도 철학 하는 일이 어렵다고 합니다. 대답이 없는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그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 서구의 시선에 의해 일방적으로 타자화된 사유를 지금 살아 움직이는 삶의 문법으로 복원하는 데 마음을 기울였다. (…) 이제는 한국철학을 이야기할 때라고, 이제는 우리의 삶을 우리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가 되었다고 누군가가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위 서문은 두 사람(유대칠, 전호근)의 공통된 철학적 책무를 말하는 듯합니다. 평자가 볼 때 유대칠은 훈구학적 철학자라면, 전호근은 주자학적 철학자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씨알이 두 사람의 해석학적 철학을 종합해야 합니다.   나아가 함석헌을 한국철학으로서의 훈고학적 성리학으로서의 씨알철학을 더 깊게 우려내야 합니다. 또한 우리도 이러한 한국적 철학과 바탈을 가지고 함석헌처럼 씨알로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김대식 숭실대학교 철학과 강사, 함석헌평화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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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3-24
  • 철학은 나를 슬프게 한다
    [타임즈코리아] 『대한민국철학사』, 이 책은 저자의 야심 참, 비애, 한스러움, 그러면서도 솔직한 비판이 곳곳에 배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느껴지는 저자의 아린 심정은 고스란히 평자의 마음속을 파고듭니다. 고통, 아니 고난이라는 말이 어울릴 것입니다. 제도, 체제, 조직, 위계 그 어디에도 편승하지 못한 학자는 자기 고난의 짐을 한으로 풀어낼 수밖에 없습니다.   일찍이 저자의 철학 함의 토대는 서양의 사유를 근간으로 한 생철학이었습니다. 하지만 저자의 철학의 터, 곧 삶의 바탈과 현실은 한국이라는 뼈저린 고난의 장(場)이라고 인식하였던 것 같습니다. 야인(野人)처럼 살다간 여섯 명(함석헌, 류영모, 문익환, 장일순, 권정생 그리고 윤동주)을 철학사적 지평에서 펼쳐 보인 저자의 깊은 사유와 해박한 지식은 누구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서양 고대철학에서부터 중세철학, 그리고 동서양의 고전어와 여러 현대어를 통해 한국의 방계 철학자들을 우려낸 긴 호흡은 감탄을 자아내게 합니다.     시종일관 홀로 주체성에서 너를 우선으로 해 서로의 주체성을 강조하고 있는 저자는 한국의 고난 속에서 우리 철학과 우리 언어로 배태된 민중의 철학을 설파합니다. “철학은 역사의 고난을 온몸으로 살아가는 지금 여기의 민중에게 있다”(129쪽). 저자의 외침은 철학이란 남의 고민을 번역하여 내 고민인 것처럼 하지 말자는 이른바 내 주체성, 내 속의 주체성, 선험적 주체성을 역설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저자는 한국철학이 민중의 공간에서 잉태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민중은 사유의 존재(ens rationis)가 아닌 현실의 존재(ens reale)입니다. 사유 속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민중입니다(203쪽). 민중이 철학을 한다는 것은 ‘민중이 스스로 자신의 철학을 한다’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다시 민족주의니, 국가주의니 하는 이념을 넘어선 세계시민주의철학, 좀 더 거칠게 말해서 무전제의 전제인 민중의 뜻에 토대를 둔 철학이어야 합니다.   저자가 “스스로 서지 못함, 자기 생각의 부재를 자각하는 것이 철학의 시작 자리”라고 말한 것도 민중의 자기 생각, 그러나 너와 더불어 나의 철학을 하자는 것입니다. “자기 삶의 주인이 바로 자기 자신이다”, “생각하는 나 그것이 희망”이라고 역설하는 저자는 플라톤의 동굴 비유를 통해서 그 실현 가능성을 점칩니다. 철학자는 동굴에 갇혀있는 사람들에게 설핏 이나마 빛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평자는 그런 철학자가 바로 유대칠 같은 철학자요, 함석헌, 윤동주와 같은 철학적 문학가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저자는 한국철학을 위해서 홀로 주체성만 가져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적어도 한국철학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너에게서 나를 볼 수 있어야 하고, 나에게서 너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422쪽). 여기서 저자는 함석헌의 뜻 형이상학을 발견합니다. 뜻은 민중 속에 있습니다. 바깥에 있지 않습니다. 뜻의 형이상학, 뜻의 존재론의 토대는 ‘나’입니다. 다시 주체요, 서로 주체입니다. 종살이하고 있는 객체가 아니라 자각한 주체로서 뜻은 나와 너, 우리 안에, 전체 안에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저자는 함석헌의 뜻의 내재론을 역설하는 듯합니다. 저자는 “너의 자기 내어줌”, “너의 존재 없이 지금의 나는 없다”는 서로 주체성을 일관성 있게 내세웁니다.   저자는 민중과 더불어 하는 철학, 그것이 철학이라고 말합니다. 더불어 있음의 철학을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한국철학의 형이상학이 정립될 수 있도록 지금이라도 국가나 시민의 의식이 계몽되어야 할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저자가 말하는 자각한 씨로서 주체적인 철학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서로 주체성을 확보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주체성의 변형인 서로 주체성을 말하고 있지만, 결국 서양철학의 주체를 벗어나지 못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주체를 함석헌의 씨알로서의 민중 주체에게서 발견했다고 하는 점은 고무적인 것 같습니다.   이 책은 민중 자신의 이성적 상승을 위한 고민이 담겨 있습니다. 따라서 주체로서의 이성과 감정이 불끈불끈 용솟음치면서 정말 철학을 해야겠다고 다짐하는 익명의 민중들이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철학적 습성을 각성해야 할 종래의 제도권 철학자들에게 일독을 권하는 바입니다. 씨알의 슬픔이 함께, 더불어 철학으로 승화되기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김대식 숭실대학교 철학과 강사, 함석헌평화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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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합정보
    2021-03-23
  • 국가가 존재하는 정당성은 무엇이겠는가
    [타임즈코리아] 오래간만에 속이 후련해지는 책을 발견했다. 『국가의 딜레마』는 국가의 탄생에서부터 아나키즘에 이르기까지 실로 방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탄탄한 논리력과 풀이, 그리고 일목요연한 학자들의 주의와 주장을 인용하는 것까지 그 성실성도 잘 갖추고 있는 책이다.   평자는 〈함석헌평화연구소〉와 〈함석헌기념사업회〉의 〈부설 씨ᄋᆞᆯ사상연구원〉에 속하여 연구하지만, 아나키즘을 표방하는 개인적 입장에서 보자면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저자는 먼저 국가의 실재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그것이 헌법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물론 이 헌법이라는 것이 만일 국가권력과 등치 되는 것이라면 국가 권력은 국민의 동의에서 나온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것이 저자의 강력한 전제인 것 같다. 그러나 저자가 주장하듯이 애초에 헌법의 출발은 서민과 관계가 없다. 그러니 민중과 합의된 것이 아니다. 권력의 바탕이 되는 민중과 무관하니 국가의 존립 여부가 불투명해진다.   하지만 독일의 국가주의나 민족주의에 기반을 둔 사상들이 싹트고 국가를 절대자로까지 등극시킨 역사(셸링)를 보자면 자못 국가의 힘은 그리 간단치만은 않다. 전쟁으로부터 국가를 지키고 다시 전쟁으로 국가를 만들어나갔던 역사와 맞물려 폭력과 탈취 등의 더러운 인간상을 고스란히 간직한 것이 국가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국가주의나 민족(인종) 차별주의는 결국 파시즘으로 흐르게 되어 있다. 그 결과가 히틀러에 의한 제2차 세계대전의 참상이요 홀로코스트이다. 이러한 현상을 분석한 크로포트킨이 괜히 국가란 소수의 약탈자라는 식으로 규정한 것이 아니다.   아나키스트 고드윈도 충성을 강요하는 국가, 사유재산을 용인하는 국가, 투표의 허점을 이용하는 국가에 대해서 비판적 입장을 취했다. 그렇다면 고드윈의 대안은 무엇일까? 비폭력적 사상혁명이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개인의 자유를 말살하는 국가는 사실 무용지물이다.   그래서 바쿠닌은 국가를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던가. 바쿠닌이 마르크스와 맞서고 로자 룩셈부르크가 레닌을 신랄하게 비판했던 것도 프롤레타리아가 지배 계급이 되어야 하고 당이 대중들을 억압한다면 국가는 더는 있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설파하고 있듯이 우리는 국민이기 전에 인간이다. 인간으로서의 절대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어떤 조직도 용인할 수가 없다.   하지만 저자가 적시하고 있듯이 국가 철폐 이후에 새로운 대안 공동체, 대안 사회를 아나키스트가 제시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숙제로 남는다. 이에 대한 서평자 개인의 주장은 여기서 피하기로 하겠다. 여하튼 국가는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가져야 한다면 민중(demos) 정치(kratia)가 되어야 한다.   슘페터처럼 민중을 단순히 정치적 합의도 해 내지 못하는 정치적 소비자로만 치부하고 만다면 민주주의는 설 자리를 잃고 말 것이다. 아무리 우매하다고 하더라도 정치의 소비자인 민중도, 클라우스 오페가 말한 것처럼, 신뢰를 철회(vertrauensentzug)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신뢰를 선거할 때만 얻으려고 호들갑을 떠는 정치가들에게 그 신뢰의 철회가 무엇인지 보여주어야 할 것 아닌가? 단순히 정치를 소비만 하고 박수나 치고 환호성을 지르는 청중민주주의는 소용이 없다. 그것이야말로 민중이 전혀 생각이 없는 것이다.   하버마스가 말한 것처럼 국민은 언제나 복수로서 등장한다. 개인이 국민은 아니다. 개인이 있어야 국민이 형성되고 국가가 생긴다.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지 않는 국가가 개인에 대해 단지 정치적 유용성만을 따진다면 국가의 절대적 선은 요원해지고 만다.   저자가 간절히 염원하고 있는 국가의 절대적 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도덕성을 위한 국가로 진화해 나가는 과정에 있다는 확신, 그 도덕성이야말로 국가의 정당성이라는 저자의 주장에는 전적으로 동감한다. 하지만 과연 국가의 진화가 가능할까? 평자의 입장에서는 회의적이기는 하지만, 저자의 엄밀한 분석과 희망에는 좋은 생각거리를 던져준 것만은 사실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오늘날의 국가주의는 경제적 국가주의와 신자유주의로 나타나 경계가 무너진 초국가의 신국가적 개념의 자국중심주의가 만연해지기 시작했다. 그것의 사례가 바로 중국이 아니던가. 일부 서구 유럽국가의 경제무역정책도 마찬가지다. 난민을 받지 않는 것도 그 연장 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런데도 저자는 국가가 진화하고 있다고 믿는다. 긍정적으로 진화하고 있다면 말이다. 만일 그렇다면 서평자가 국가 제도의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있는 느슨한 연대 혹은 비조직의 조직으로서의 사람들의 삶이 가능한 기구가 아닐까? 책을 읽으면서 내내 들었던 평자의 생각이다.   평자의 주장은 뒤로하고 적어도 오늘날의 국가는 더는 이상적이 아니라고 느끼는 독자를 대신하여 던지는 질문에 이 책은 적절하게 답변을 하고 있다. ‘현재의 국가 형태, 그리고 국경을 넘어서 이루어지는 신자유주의의 신국가를 저지할 수 있는 대안적 삶의 형태 혹은 조직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그것을 고민하는 독자들에게 차분한 일독을 권한다.   김대식 숭실대학교 철학과 강사, 함석헌평화연구소 부소장  
    • 한국서적
    • 종합정보
    2021-03-22

실시간 한국서적 기사

  • 한국도서관협회, 전국 410개 공공도서관과 함께 책 읽는 가족 선정
    한국도서관협회가 2018년 ‘책 읽는 가족’을 선정했다고 17일 밝혔다. ‘책 읽는 가족’ 사업은 한국도서관협회가 2002년 4월 ‘도서관주간’을 계기로 시작해 매년 전국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가족독서 운동 캠페인으로, 도서관을 매개로 가족 단위의 독서생활을 권장하고 도서관 이용 활성화에 기여하고자 추진하고 있다. 2018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 지원을 바탕으로 도서관을 활발하게 이용하고 있는 556가족을 선정하여 410개 공공도서관에 책 읽는 가족 인증서와 현판을 전달하였다. ‘책 읽는 가족’으로 선정된 가족에게는 인증서와 현판이 수여되며 각 도서관에서 시상식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는 10월 25일(목) 강원도 하이원리조트에서 진행하는 제55회 전국도서관대회에서 대표 가족을 초청하여 인증서 수여식을 진행할 예정이며 초청한 가족과 사서들을 위해 ‘책을 통한 나와 가족 행복읽기’ 라는 주제로 강연을 진행할 예정이다. 책 읽는 가족은 2002년부터 2018년까지 총 1만4406가족이 선정되었다. ‘책 읽는 가족’ 선정기준은 가족 단위로 공공도서관의 회원으로 등록하여 도서대출량, 이용성실도 등 각 도서관의 기준에 맞춰 선정하고 있으며 60세 이상의 가족 구성원이 포함된 가족을 우선 선정함으로써 어르신의 도서관 이용률 증대와 독서활성화에 기여하고자 하였다.  
    • 한국서적
    • 종합정보
    2018-10-17
  • 알라딘, 주목받는 신간 ‘역사의 역사·고양이’ 꼽아
    인터넷 서점 알라딘은 최근 주목받고 있는 신간으로 유시민 작가의 ‘역사의 역사’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고양이’를 꼽았다. 알라딘은 유시민 작가의 신작 ‘역사의 역사’는 7일 오전 예약 판매 개시 후 하루 만에 2100부 가량 팔리며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다고 밝혔다유시민 작가의 신작 ‘역사의 역사’는 고대로부터 최근까지 역사를 사로잡은 18권의 역사서들을 나누어 훑으며 역사에 대한 애정과 역사 공부의 중요성을 담은 책이다. 주 구매층은 30~40대로 전체 구매의 69.6%를 차지했으며 여성의 구매가 52.3%로 남성 47.6%보다 조금 높게 나타났다.   ▲ 유시민 작가의 역사의 역사. 사진제공 - 알라딘     베르나르 베르나르 신작 ‘고양이’ 역시 5월 30일 출간 이후 지속적으로 높은 판매량을 보이고 있다. 알라딘은 출간 이후 8일간 총 2만부가 판매되었다고 밝혔다(5월 30일 ~ 6월 7일 기준). 해당 도서 구매 고객의 경우 30대의 구매가 33.7%로 가장 많았으며, 뒤이어 40대 구매자가 28.3%, 20대 구매자가 24.8%를 차지했다. 또한 여성의 구매가 67.6%로 남성의 구매 32.4% 보다 2배 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고양이’는 고양이의 눈으로 본 인간 문명에 관한 책으로 프랑스에서는 전작 ‘잠’보다 높은 인기를 누린 책이다. 알라딘 측은 ‘역사의 역사’와 ‘고양이’ 모두 다양한 연령대에서 주목받고 있는 만큼, 당분간 화제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알라딘은 ‘역사의 역사’ 예약 구매자에게는 유시민 작가의 취향으로 블렌드 한 드립 커피를, ‘고양이’ 구매자에게는 ‘고양이’ 머그컵을 증정하는 이벤트를 진행 중이다. 자세한 내용은 알라딘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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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합정보
    2018-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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