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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찰적 언어의 환희: 짧은 글들 속에 머무는 긴 생각들
    [타임즈코리아] 진리는 자신의 알몸을 남김없이 드러내는 것입니다. 도정일은 삶의 예술 혹은 예술로서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조곤조곤 잘 말해줍니다. 인간의 탁월함(arete), 즉 인간 자신의 능력은 말하기, 이야기하기의 타고 난 능력에 있습니다. 아레테의 인간은 연결과 연결(narrare), 관계와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인간은 이야기(서사, mythos)를 통해서 존재의 확장을 꾀한다는 것입니다. 이야기하기의 탁월한 능력을 가진 도정일의 문제의식과 상상력은 ‘의혹의 해석학’에서 여실히 드러납니다.     이야기는 상상력이기도 하지만, 본 것에 대해서 시각적 기입하기를 통한 전지전능한 신적 지혜를 풀어 밝히는 듯한 시지각적 시선의 무한한 확장입니다. 보지 못한 것에 대한 봄은 모르는 것을 소유하려는 욕망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지면에 활자가 기입되는 순간, 활자가 나타날 때에 그 신비함은 세상의 소유, 어쩌면 죽음으로부터의 부활 같은 것을 체험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만인의 인문학(도정일, 사무사책방)』에서 저자는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이야기를 사는 인간의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와 ‘오류 가능성’을 지적합니다. 기실 평자가 엮어가는 이 글도 저 두 가지 삶의 방식의 유한성을 고스란히 따르고 있습니다. 죽음의 순간, 오류의 순간을 말입니다. 따라서 인간 존재의 유한성과 고통에 대한 겸허한 사유는 늘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것도 인문학적 성찰을 통해 죽음의 한 과정을 환대한다는 의미입니다. 환대는 나만이 아니라 타자에게까지 의식과 삶을 넓혀나갑니다. 손님처럼 상호간에 배려하고 베푸는 행위는 인간이 지닌 공통의 윤리의식이자 예의입니다.   텍스트(text)처럼 직조된(texture) 사회 속에서 우리는 모두 이방인입니다. 편하지 않은 삶의 나날들, 유한한 시공간 속에서 산다는 한계상황이 서로를 위해 환대하기 마련입니다. 텍스트 이야기는 그렇게 낯선 일상들 속에 특별한 사건들이 기입되는 인간의 정신입니다. 그래서 인문(학)이라고 합니다. 저마다 남긴 삶의 자취와 흔적이 인간과 세계의 무늬가 되는 법입니다. 설령 고통과 한숨과 좌절과 포기의 연속이라도 말입니다.   그렇게 나의 삶과 너의 삶이 건축(Bildung; bauen; bin)되는 게 인간의 텍스트요 삶입니다. 침묵의 고요한 몸짓이라 할지라도 삶과 삶 사이에 긴 여운이 남는 것처럼 호흡과 호흡을 가다듬어 숨을 쉬어야 합니다. 때론 침묵의 해석학, 침묵의 아픔이 인간의 삶 전체를 직시하게 만드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인문적 삶은 나와 타자의 삶이 다 ‘좋은 삶’이어야 합니다. 행복하지 않다는 것은 나에게만 좋거나 아니면 타자에게만 좋거나 할 때 느껴지는 불만과 불평입니다.   기술(techne)이든 종교든 삶의 관대함과 관용성이 포함되지 않으면 인간은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폭력과 이기성으로 점철된 욕망의 분출만이 난무할 뿐입니다. 거듭 말하지만 인간의 인문적 삶은 성찰하는 삶을 지향합니다. 성찰이 없는 삶, 음미하지 않는 삶은 아무리 좋은 이야기로 일구어진 삶이라 할지라도 결코 의미 없는 건조한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자기를 대상화하는 읽기, 인간 읽기, 인간 자신의 이해를 역설합니다. 자기의 성찰과 인간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는 자기 자신마저 소유하려는 욕망으로부터 벗어나는 새로운 삶의 문법, 인간다운 문화 문법을 만들어내려고 합니다.         인간은 삶의 텍스트 너머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지구상에서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살아온 인간에게 새로운 삶의 문법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테크놀로지가 지배하는 이 시대에 성찰적 인간의 삶의 이야기를 직조하는 삶의 문법은 무엇일까요? 그 단초를 찾고 싶다면 《만인의 인문학》을 펼쳐보는 것은 어떨까요? 저자의 조근 조근한 삶의 인문학, 성찰적 인문학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책의 제목처럼 이 책은 만인을 위한 텍스트가 아닙니다. 감히 단언컨대 삶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는 선택된 소수를 위한 책일 수 있습니다. 삶의 예술을 위해 자기를 성찰하는 자신이 저자의 텍스트에 자기를 비추고 삶을 새롭게 직조하기 위한 존재라면 이미 소수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니체(F. W. Nietzsche)의 《짜라투스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부제처럼 “만인을 위한, 그러나 그 누구를 위한 것 도 아닌” 책이라고 말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글쓴이 김대식 박사는 숭실대학교 철학과에서 강의를 하면서 함석헌평화연구소 부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 한국사상
    • 종합정보
    2021-07-02
  • 한국화학연구원, 스펀지로 열을 전기로 바꾸는 소재 개발
    [타임즈코리아] 구부러지고 늘어나고 압축이 돼, 열이 있는 곳 어디에든 붙여 열을 전기 에너지로 바꿔주는 열전소재가 개발됐다. 완전히 유연한 열전소재가 개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화학연구원 화학소재연구본부 조성윤 박사팀은 열원의 형태와 관계없이 어디든지 붙일 수 있는 ‘스펀지형 열전소재’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열전소재는 열을 전기로 바꿔주는 소재로 온도 차에 의해 전기가 발생한다. 일례로 발전소 굴뚝에 열전소재를 부착하면, 굴뚝 안쪽의 고온(150도)과 바깥 상온(30도)의 온도 차로 전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연구진은 주변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스펀지에 탄소나노튜브 용액을 코팅했다. 탄소나노튜브를 물리적으로 분산시킨 용매를 스펀지에 도포한 후, 용매를 빠르게 증발시킨 것이다.  제조방법이 간단해 대량생산에도 적합하다. 모양을 만들어주는 틀 없이 스펀지를 이용해 열전소재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거푸집 없이 콘크리트 구조물을 만드는 셈이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열전소재는 무기 소재로 만들어진 탓에 유연하지 않았다. 사람의 몸이나 자동차 등 다양한 곡면의 열원에 붙일 수 없을 뿐 아니라, 제조공정 자체도 까다롭고 복잡하다. 전 세계 연구진들은 유연한 열전소재를 개발하기 위해 탄소나노튜브에 주목했다. 탄소나노튜브는 전기전도도가 높고 기계적 강도가 강하며, 지구상에 풍부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화학연구원 조성윤 박사팀이 탄소나노튜브를 이용해 유연한 열전소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열전소재는 딱딱하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스펀지와 유사하면서도 높게 쌓을 수 있는 탄소나노튜브 폼(foam)을 만든 것이다. 스펀지형 열전소재의 압축 안정성 실험 결과     한국화학연구원 조성윤 박사는 “지금까지 개발된 유연한 소재는 지지체나 전극의 유연성을 이용한 것”이었다면서 “소재 자체가 유연한 건 이번 스펀지형 열전소재가 처음이고 제조방법도 간단해 대량생산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개발된 스펀지형 열전소재는 열전소재의 전기적 특성과 스펀지 고유의 성질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실험 결과, 열전소재를 압축하고 복원하는 과정을 10,000번 반복해도 형태는 물론이고 전기적 특성을 안정적으로 유지했다. 압축 전과 압축 후의 저항값이 각각 1.0Ω(옴), 0.3Ω으로 그대로 유지된 것이다. 이는 스펀지에 기공이 무수히 많아 변형에 강하기 때문이다. 또한, 스펀지의 탄성을 이용한 응용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스펀지형 열전소재의 경우, 압력이 커질수록 발전량도 덩달아 높아졌다. 실험 결과, 열전소재를 압축했을 때 최대 2㎼(마이크로와트)의 전기를 생산하여, 압축 전과 비교해 발전량이 10배 정도 증가했다. 이에 대해 연구논문 1 저자인 김정원 박사는 “스펀지의 압축되고 복원되는 탄성을 활용해 몸에 부착하는 웨어러블 기기에 적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우수한 기계적 성질이 요구되는 자동차 등에도 다양하게 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김정원 박사는 “열전소재 분야 전망도 밝다. 현재 자동차에서 사용하고 난 후의 열이나 온천수를 이용한 열전발전 시작품의 실증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앞으로 관련 기술 수요도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성과는 그 우수성을 인정받아 에너지 소재 분야 권위지인 『나노 에너지(Nano Energy), IF:16.602』8월호에 게재됐으며,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창의형 융합연구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 한국뉴스
    • 과학
    2020-09-22
  • 종속될 것인가, 회복할 것인가
      [타임즈코리아]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무서운 속도로 변해가고 있다. 느린 사람은 어찌 살라는 건지, 넋이 나갈 정도로 부지불식간에 많은 것들이 바뀌곤 한다. 이런 현상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도 쉽지 않다. 변화는 순리이고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라는 논리가 더 우세한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과연 이것이 옳은 것일까? 그렇다면 약육강식이 진리이어야 한다. 여기에 동의할 사람들은 모두 강자라야 가능하다. 적어도 변화가 자연에 의한 것이라면 어쩔 도리가 없다. 하지만, 인간이 자초한 변화에 순응하라는 것은 무조건 따를 수 없는 것이다.   물질문명이 그만큼 편리를 제공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으로 인해 그만큼의 행복을 확보했다고 할 수는 없다.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것이 비대 면화되어 가고 있다. 이것을 본질적으로 바람직한 변화라고 동의하고 싶은 사람이 있겠는가? 코로나19에 따른 불가피한 강요인 셈이다.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일 뿐이다.   이렇다 보니 예술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은 이에 따른 변화에 선뜻 동의할 수 없는 곤란한 처지에 놓여 있다. 만남에서 누리고 싶은 행복은 사람의 DNA 속에서 절대로 지울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변하지 않는 가치도 있다. 현장 공연에서 느낄 수 있는 예술적 감흥도 그렇다. 그럼에도 이를 지키려는 사람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이런 노력은 모두를 위한 것이지 개인의 욕심이 아니다. 그렇기에 머지않아 빛을 발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믿음이 있기에 예술을 가상의 세계에 가두지 않으려는 몸부림을 칠 수밖에 없다. 만약 가상의 세계에서 보고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면 우리가 굳이 직접 여행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영상이나, 증강현실 그리고 가상현실 시스템만으로도 더 자세하게 보며 실감 나는 장면 속에 빠져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온라인으로 하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계기로 우리는 온·오프라인의 콘텐츠를 구별하는 작업들을 해야 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태양의 서커스’가 파산했다는 기사가 유난히 아프게 느껴진다. 과학과 기술이 육체적 요소라면 문화와 예술은 정신적 요소이기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이런 난국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하면 문화와 예술을 활성화할 수 있을지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예술의 존엄과 가치는 예술가들이 지켜 내야 하는 것이다. 대중화, 실용화 이런 측면들은 굳이 지키려 하지 않아도 어느 시대에나 자생해 왔다. 변하지 않아야 할 것들을, 변하지 않게 하는 일, 반드시 지켜야 할 것들을, 지키려는 힘은 이미 우리 내면에 존재하고 있다. 이것을 자극하여 거대한 힘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예술의 힘이고 예술가들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코로나19가 망가트려놓은 만남과 관계를 인터넷이라는 가상의 세계 속에 내어주고 거기에 종속될 것인가. 아니면 만남과 관계를 열망하는 DNA와 인간의 지혜가 코로나19보다 더 강함을 증명하며 예전과 같은 역동성을 회복할 것인가.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인류의 역사가 증명해왔듯이 이 또한 극복해 낼 것이다. 우리는 머지않아 코로나19를 이겨낼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하고, 이전과 같은 일상을 회복할 것이다. 예술가들이여, 우리는 과학자들이 힘을 낼 수 있도록 그들에게 감동을 선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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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합정보
    2020-07-06
  • 인문학은 이론이 아니다
    인문학은 인간에 대한 본질을 찾아 나선다.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사변적으로 흘러가면 이념이나 현상적인 집착으로 이탈하게 된다.   이런 행태는 수많은 증오와 폭력을 낳으며 씻지 못 할 마음의 상처와 고통의 기억을 남길 뿐이다.   인문학적 정신을 갖는다는 것은 삶에서 마주치는 다양한 타자와 참된 관계를 형성하는 정신을 의미한다. 인문학적 성찰을 하는 사람은 ‘너’와 더불어 ‘나’라는 관계를 통해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조화로움의 아름다움을 통해 공감함으로써 상대방을 이웃으로써 인식하고 수용하는 인문학적 감수성을 갖추고 있다. 인문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문학, 역사, 철학, 종교 등의 이론을 습득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런 것을 배우고 익힘으로써 그들의 아픔과 울분, 사랑과 기쁨을 공유하는 공감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인문학은 ‘너’와 더불어 존재하는 ‘관계’로서의 ‘나’를 인식하고 사랑(자비, 나눔, 배려, 공감)으로 소통하는 지혜를 깨우치고 표현하게 하는 모든 문화, 사상, 지식 등을 말한다.   인문학은 진리를 찾아가는 하나의 길잡이가 되어야 한다. 진리를 찾고 따른다는 것은 자신이 사랑으로 빚어진 존재임을 온전히 깨닫고 그 사랑을 최선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 한국교육
    • 학술정보
    2016-03-18
  • 현대인 허균이 살았던 과거의 삶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동부승지, 삼척 부사, 부제학, 경상도 관찰사를 지낸 허엽(許曄)은 30년간이나 관직에 머물렀는데도 생활이 검소했고 상당히 미래지향적인 사고를 한 인물이다.   허엽의 호는 초당(草堂)이다. 오늘날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초당 순두부의 본고장이 바로 강원도 강릉시 초당동이다.         이곳에서 허엽의 아들 허균(許筠, 1569~1618)이 태어났다. 교산(蛟山) 허균은 명문가의 자제로 천재적인 두각을 나타내 모든 것이 보장된 인물이었지만, 불우한 계층을 대변하는 삶을 선택했다.   이런 까닭으로 허균은 조선시대 반역의 상징 같은 인물이 되었다. 일찍이 평등사상에 눈을 뜬 허균의 급진적인 개혁 사상은 오늘날에 와서는 훌륭한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이단과 반역을 도모하는 사회전복세력으로 평가받을 수밖에 없는 인물이었다. 그가 쓴 《홍길동전》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다.   허균이라는 인물을 볼 때, “역사는 현대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며 항상 새롭게 해석되고 평가될 수 있기에 역사를 보는 모든 이들의 시각은 상대적이다”고 말한 영국의 정치학자이며 역사가 에드워드 핼릿 카(Edward Hallett Carr, 1892년~1982년)의 견해가 더욱더 공감된다.
    • 한국교육
    • 학술정보
    2016-03-15

실시간 학술정보 기사

  • 타임즈코리아 설교대학(10)
      설교에서 전도, 헌금, 봉사 등의 특정 목적과 연관한 언급에 대한 견해를 말씀해 주세요.저는 주로 강해설교를 합니다. 제가 깊이 있게 설교했던 요한1서는 ‘하나님의 마음’이란 제목으로 출판했습니다. 그 다음으로 복음서 중에 예수그리스도의 사고와 성품을 드러내는 설교를 해야겠다는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을 강의하려고 마음을 먹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오리지널 가스펠’이라고 하는 마가복음을 설교하게 되었고, 그 내용을“하나님의 복음”이란 제목으로 출판도 했습니다.설교를 해나가는 과정에 절기가 옵니다. 성경에 기록된 절기가 오면, 미리 계획된 순서가 있더라도 그것에 억매이지 않고 절기에 맞춰서 설교를 합니다. 어떤 분들은 강해설교를 한다고 하면서, 고집스럽게 크리스마스가 와도 그와는 무관하게 계획한 순서대로 설교를 해 나가기도하는데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그럴 때는 절기에 맞게 예수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해서 설교해야 합니다.준비에 쫓긴다면 앞에서 했던 것도 괜찮습니다. 같은 본문도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얼마든지 풍성한 은혜가 임할 수도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설교도 가르치고 권면하는 교육적인 요소, 디다케(Didache)적인 면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다음으로는 헌금과 관련된 문제인데요. 교회당을 지어야 할 형편입니다. 그렇다면 성도들이 헌금을 해야지요. 성도들이 헌금을 하지 않으면 과연 누가 헌금을 해야 합니까. 자신의 집을 지어야 하는데 자신의 가족들이 돈을 마련해야지 남이 마련하는 법도 있나요. 이런 맥락에서 교회당을 짓기 전에 예산에 상응하는 헌금이 필요하다면, 날짜를 정해 놓고 몇 주 동안은 교회건축에 대한 필요성과 우리 성도들이 해야 될 일들에 대해서 설교를 해야 됩니다. ▲ 목회자의 욕심이 들어간 목적 달성형 설교라면, 그것은 기본에서부터 벗어난 것입니다. 설교가 결코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성경에 따른 하나님의 뜻이고 방법이라면 전도, 헌금, 봉사 등등의 것들에 대해서 주저 없이 올 곧게 설교해야 합니다. 사진설명 - 열방교회 전경 어떤 목사님들은 나는 그런 설교는 안한다는 말을 하기도합니다. 그러면 건축을 하지 말아야합니다. 그렇게 되지 않게 하려면, 교회라는 배를 이끌고 가는 목회자가 하나님의 마음을 받아서 정확하게 성경에 나와 있는 성전 건축과 헌금에 대한 설교를 해야 됩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충분하게 납득이 되어 넘치는 감동 가운데 헌금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담임 목회자 자신이 그런 부분에 약하다 싶으면, 친구나 주위 선배 목사님들을 초청해서 그런 설교를 하도록 요청해야 합니다. 저는 건축하면서 지금 은퇴하신 박종수 목사님을 모셔서 설교를 맡긴 적이 있습니다. 그 분은 ‘남서울교회’를 개척하신 분인데, 크게 부흥해서 건축도 하셨고, 성공적인 목회를 하신 분으로 헌금에 대한 설교를 명쾌하게 하십니다. 한 번은 그 분이 우리 교회에 오셔서 오전, 오후 설교를 하셨습니다. 모두 다는 아니지만, 설교를 통해서 많은 성도들이 동의를 하게 되었고 헌금을 하게 되어졌습니다.이런 주제(목적)설교에 관한 것은 특별한 경우에는 그렇게 해야 됩니다. 절기설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나는 요한복음 1장부터 한다고 절기도 무시하고, 1년 내내 그렇게 한다면 그건 바람직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강해설교가 아닙니다. 강해설교를 한다고 해도, 절기 때는 절기에 관해 설교를 하는 것이지 강해설교가 무조건적인 연속 시리즈 설교가 아닙니다. 목회자의 욕심이 들어간 목적 달성형 설교라면, 그것은 기본에서부터 벗어난 것입니다. 설교가 결코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성경에 따른 하나님의 뜻이고 방법이라면 전도, 헌금, 봉사 등등의 것들에 대해서 주저 없이 올 곧게 설교해야 합니다. 설교자 자신의 뜻을 관철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자(messenger)로서의 역할이기 때문에 가감 없이, 반듯하게 설교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곧, 성도들에게도 유익이라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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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1-15
  • 타임즈코리아 설교대학(11)
      설교 준비에서의 주석에 대한 참고 부분에 대해서 말씀해주세요.주석은 설교를 준비하는데 매우 중요합니다. 설교를 준비하며 적용까지 가는 데는 세 가지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하나는 주석적 작업입니다. 이 본문이 무엇을 말하는가를 중점에 두는 작업입니다. 두 번째는 해석의 단계입니다. 이 단계에는 본문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입니다. 세 번째로는 설명을 하는 단계입니다. 그 설명을 가지고 이 시대에 성경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마지막으로 적용을 합니다. 모든 독서에서도 이와 같은 것이 적용되어져야 합니다. 먼저는 사실의 문제가 파악되어야 합니다. 둘째는 해석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적용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석적 작업은 첫 단추와 같아서 매우 중요합니다. 설교자가 성경을 읽고, 연구하고 난 다음에 자신이 주석한 것이 맞는지, 아닌지 검증을 받아야 합니다. 검증이라는 것은 지금까지 훌륭하게 주석을 써 왔던 분들, 혹은 강해 설교를 하셨던 분들의 내용을 참고해야 합니다.칼빈주의를 따르는 장로교인 경우는 ‘칼빈 주석’, ‘랑게 주석’, ‘카일 델리치 주석’, ‘박윤석 주석’, 등을 보면서 내가 바르게 주석했는지 검증을 받아야 합니다. 그 후 해석과 설명의 단계로 넘어가면 됩니다. ▲ 주석적 작업은 내가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을 볼 수 있고, 곁길로 가지 않도록 잡아 주는 좋은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해석하고 전달하는 설교에 있어서 인본주의나 신비주의적 오만과 편견에 갇혀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목회자들은 항상 주석을 여러 권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또는 주석을 잘 해놓은 책들을 참고해도 됩니다. 예를 들면 사도행전을 강해 설교해야겠다고 생각되면 F.F 브루스의 사도행전 주석들, 존스토트의 사도행전 주석 등을 참고하면 됩니다. 그러면 내가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을 볼 수 있고, 곁길로 가지 않도록 잡아 주는 좋은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이런 과정을 거치는 노력에 대한 결실은 성경을 바르게 반영하여, 그것을 회중들과 의미 있게 연결하도록 만들어 줄 것입니다. 무조건 주석에 억매이다가 보면 건조해질 수도 있습니다. 설교학적 원리에 따라 알차게 준비하되, 그 안에는 회중들의 실제 삶을 향한 뜨거운 열망이 있어야 합니다. 주석을 통해 항상 질문해보십시오. 이 본문이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확고한 믿음이 있는가? 그리고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시야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한국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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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1-15
  • 타임즈코리아 설교대학(12)
      연중설교 계획은 어떻게 세워야 하고, 그렇게 해야 한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말씀 해 주세요. 연중설교에 대해서는 제가 쓴「맛 설교학」의 ‘교회행사에 따른 설교’ 부분에서 상세하게 다루었습니다. 한 해 동안 목회현장에, 여러 가지 행사가 있을 수 있지 않습니까? 여기에 따라서 일 년 동안의 설교 스케줄을 세울 수가 있습니다. 다음에 병행해서 해야 할 것은 교회력에 따르는 것입니다. 사순절, 고난주간, 부활절,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 같은 이런 절기들은 교회에서 놓칠 수 없는 아주 중요한 절기들입니다. 그 다음은 전통에 따라서 설교계획을 세우는 것입니다. 장로교나 감리교에서는 전통에 따라 교단에서 일 년 동안 설교할 성경본문과 제목과 그리고 요약된 설교본문까지 정해놓기도 합니다. 저는 이렇게 하는 것은 참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교회마다 형편이 다르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이런 것들을 기준으로 하되, 잘 변형해서 자기 목회상황에 맞게 해야 합니다. 일 년 52주 무엇을 설교할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로드맵을 짜야합니다. 설교계획을 세워 놓으면 설교자가 편합니다. 내가 다음 주에 무슨 설교를 할까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유익은 주어진 본문에 따라 자료를 수집하고, 묵상하는데 집중할 수 있게 합니다. 그러므로 보다 더 안정적이고 힘 있는 설교를 할 수 있습니다. ▲ 연중설교를 계획하는 것은 목회 계획에 있어 중요한 부분입니다. 설교자 자신부터 계획에 따라 안정감을 가지고 설교할 수 있고, 목회전반에도 안정적인 분위기를 이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존 스토트 목사님께서 강해설교의 장점을 이야기 했는데, 귀 담아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왜 강해설교를 해야 하는지를 영국의 상황을 들어 설명했습니다. 영국은 이혼율이 높습니다. 10명중 6명이 이혼을 합니다. 그러면 이혼한 사람들이 교회에 안 오느냐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면 성경이 이혼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허용하는 측면도 있는 것 같지만 절대적으로 이혼을 금하고 있습니다. 이혼하지 말라고 설교를 하면 청중하고 안 맞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는 것이 아니라 목사님이 이혼한 자기들을 책망한다고 듣습니다.  믿음이 적은 사람들은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존 스토트 목사님의「산상수훈」이란 책을 보면, 마태복음 5장 1절부터 차례로 강해합니다. 차례로 하다보면 나중에 이혼하지 말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니 누가 뭐라 말해도 설교자는 차례로 성경을 강해하여 나간 것이지, 이혼한 사람을 책망하려고 의도한 것이라는 오해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일 년의 설교계획을 다 세우고, 어떤 설교본문으로 설교할 것인지를 성도들에게 공표해놓으면 이런저런 오해를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거기에 걸리는 사람이 있어도 우리 목사님은 일 년의 설교계획을 가지고 설교하시는 것이지 나를 표적으로 삼아 설교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벌써 성도들의 마음속에 수용할 수 있는 토양이 형성되는 겁니다. 그러나 그런 계획 없는 상태에서 교회에 발생한 문제와 연관되는 설교를 하게 되면 사실이 그렇지 않음에도 당사자는 자신에게 설교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자칫 반발을 불러올 수도 있게 됩니다. 자기들끼리 싸우고도 나중에는 그 책임을 설교자한테 돌립니다. 연중설교 계획에 입각한 방식은 이런 것을 줄여 나갈 수 있는 좋은 장점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연중설교를 계획하는 것은 목회 계획에 있어 중요한 부분입니다. 설교자 자신부터 계획에 따라 안정감을 가지고 설교할 수 있고, 주보제작을 비롯한 목회전반에도 안정적인 분위기를 이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것들이 연중설교 계획을 세우는 이유라고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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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1-15
  • 타임즈코리아 설교대학(13)
      설교자의 성경해석적 접근과 알레고리에 대해서 말씀해주세요.우리가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으로 구속사적 해석, 역사적 해석, 모형론적 해석과 같은 것을 제시합니다. 소위 알레고리(allegory)적 해석은 알렉산드리아 학파가 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그 시대는 알레고리한 것이 즉시성을 가져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알레고리적 해석을 하지 않습니다. 알레고리적 해석은 알렉산드리아 학파에서 오리겐이 대표적으로 했습니다. 선한사마리아인에 관한 비유인데 상당히 풍유적으로 해석을 했습니다. 그 해석이 그리스도 중심, 교회론 중심으로 했을지는 모르나 예수님께서 선한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하신 의도는 이웃사랑에 대한 것입니다.다시 말해서 비유는 one-point 밖에 없습니다. 비유를 가지고 여러 가지로 해석하면 그것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의도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비유는 딱 한 가지입니다. 나단이 다윗에게 와서 비유적으로 책망을 했는데, 그 책망의 핵심은 당신이 회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서 또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처럼 해석하면 안 됩니다. ▲ 개혁주의 성경해석원리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은 성경대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목사님들이 실수하는 것이 어떤 비유 속에 나오는 여러 가지 단어를 가지고, 나름대로의 각양의 교훈을 주려고 하는데 그것은 오버센스입니다. 풍유적으로 해석을 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그것이 오버센스이기 때문입니다. 말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니지만 본문이 그렇게 말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개혁주의 성경해석원리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은 성경대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비슷한 것을 가지고 와서 해석을 합니다. 그것을 우리는 아날로지(analogy), 즉 유추해석(analogical interpretation)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그 본문의 정신은 벗어나지 않지만 다른 본문을 가지고 와서 유추해서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이 말하고 있지 않는 것을 다른 여러 가지 진리들을 가지고 와서 작위적으로 거기에 끼워 맞추는 식의 해석은 위험한 것입니다. 이것이 풍유적으로 성경해석을 하면 안 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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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1-15
  • 타임즈코리아 설교대학(14)
      같은 본문에서의 이야기식 설교, 강해식 설교, 주제 설교의 차이점은?먼저 모든 성경 본문에는 장르의 다양성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구속사적으로 접근하는 사람은 모든 본문을 다 구속사적으로 해석하는데, 이것은 잘못 된 것입니다. 성경 속에는 구속사적으로 봐야 하는 본문이 많이 있지만, 모든 본문이다 다 그렇지는 않습니다.십계명에 보면 ‘도둑질하지 말라’는 계명이 나옵니다. 이것을 어떻게 구속사적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윤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에 대한 윤리문제로 다루어야지 ‘도둑질하지 말라’는 계명 자체를 구속사적으로 해석하면 잘못된 것입니다. ▲ 모든 성경을 하나의 붕어빵 구워내듯이, 구속사적으로, 모형론적으로, 내러티브하게 한쪽으로만 설교 하는 것은 잘못 된 것입니다. 장르에 따라 다양하게 설교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구원론에 대해 말하는 본문은 구원론적으로 접근을 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내러티브(이야기식)설교를 할 수 있는 본문도 따로 있습니다. 구속사적 설교와 마찬가지로 모든 것을 내레티브 설교로 할 수 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비유나 역사는 내러티브로 설교 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의 흐름은 발단, 전개, 절정, 결론의 순으로 가기 때문에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비유나 역사는 내러티브로 할 수 있습니다.그러나 시편을 어떻게 이야기식으로 할 수 있습니까? 이것은 시를 가지고 소설을 만들라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시가 다른 것이 될 수는 없습니다. 시로서의 장르로 이해하여 소화해야합니다. 모든 성경을 하나의 붕어빵 구워내듯이, 구속사적으로, 모형론적으로, 내러티브하게 한쪽으로만 설교 하는 것은 잘못 된 것입니다. 장르에 따라 다양하게 설교 할 수 있어야 합니다.탕자의 비유는 내러티브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비유 속에서도 의미는 하나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내러티브하게 또는 강해설교로 주제설교로 얼마든지 적절하게 설교 할 수 있습니다. 설교자는 너무 외골수적으로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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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1-15
  • 타임즈코리아 설교대학(15)
      박사님께서 정의하는 설교란?설교를 한 문장으로 정의하기란 어렵습니다. 설교는 예배에서 성서를 해석하는 순서입니다. 그러나 설교란 무엇인가를 정의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설교자가 주석하고 해석하고 설명해서 성도들의 삶에 적용시킴으로 변화와 성숙을 가져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주제설교냐, 강해설교냐, 본문설교냐, 절기설교냐에 따라 그 정의가 다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자가 성도들에게 적용시킴으로 변화와 신앙적 성숙을 가져온다는 것에는 동일합니다. 어떤 시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여러 가지 정의가 가능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성경에 대한 바른 해석을 청중에게 전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설교란 무엇인가를 정의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설교자가 주석하고 해석하고 설명해서 성도들의 삶에 적용시킴으로 변화와 성숙을 가져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성서신학이며 조직신학적 이해와 연구가 튼튼한 바탕을 이루어야 합니다. 설교는 현란한 화술의 표출도 아니고, 감상주의적 공감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도덕주의나 종교적 이데올로기의 설파도 아닙니다. 이를 데자면 성서가 특정 목적의 도구로 쓰이게 되는 설교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화의 전시장이 된다거나, 동기부여의 수단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사람들이 선호하는 내용에 초점을 맞춘 하나의 상품으로 전락해서도 안 됩니다.    이렇게 이야기하기는 하지만 굉장히 어렵고 예민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본문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확대되고 강화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교자의 모습이나 목소리가 아닌, ‘텍스트’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설교자의 자세는 자신의 역할에 대해 통로적 최소화라는 의식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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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1-15
  • 타임즈코리아 설교대학(16)
    설교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 점은 어떤 것인가요? 설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이 그 본문을 통해서 청중들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느냐? 그것을 우리는 주제나 핵심이라고 말합니다. 그 핵심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설교자는 하나님의 마음을 찾아서 그것을 성도들에게 설득력 있게 논리적으로 전달하면 됩니다. ▲ 설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설교자는 하나님의 마음을 찾아서 그것을 성도들에게 설득력 있게 논리적으로 전달하면 됩니다. 때로는 설교자가 자기의 강연을 하기위해서 성경구절을 타이틀로 뽑고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전혀 들어있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시공을 초월하여 한결같습니다. 오늘날 개인과 공동체에도 동일하게 말씀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설교의 생명이자,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그 외에 음성이나 제스처 등의 스킬(skill)에 관한 것들은 부수적인 것입니다. 물론 스킬적인 것도 잘하면 좋습니다. 그러나 핵심이 빠진 부수적인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모든 것들도 본질적이지 않는 것에 집착하면 본질을 놓치고 맙니다. 특별히 설교에서 스킬에 집착하다가 본문을 통해 전달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놓친다면 이것은 존재적 가치의 상실입니다. 이것을 부여잡고 흔들림 없이 올곧게 나간다면 이미 그것으로 그 가치를 입증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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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1-15
  • 타임즈코리아 설교대학(17)
      설교문 작성에 있어서 박사님 자신만의 특별한 방법이 있나요? 먼저 성경 본문을 10여 번 이상 읽습니다. 그래서 본문의 내용들이 내 머릿속에 자리 잡도록 합니다. 그 다음은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저에게와 교회에게 하시고자 하시는 메시지가 무엇인가를 생각해봅니다. 그 다음 주제를 정합니다. 주제와 제목은 다릅니다. 그 주제를 표현하는 것이 제목입니다. 주제(theme)속에서 제목(title)을 결정하게 되지요. 이어서 본문에서 포인트를 설정하고, 그에 따라서 2~3개의 대지를 설정한 다음, 그에 대한 설명을 작성합니다. 짧은 설교 속에서 주석이나 해석에 대한 내용은 하나하나 다 할 필요는 없습니다. 설명을 하면서 포인트마다 적용을 할 수 있도록 설교문을 작성합니다. ▲ 저는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께서 성경을 많이 읽도록 하셨습니다. 성경은 지식(knowledge)이 아니라 지혜(wisdom)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께서 성경을 많이 읽도록 하셨습니다. 성경은 지식(knowledge)이 아니라 지혜(wisdom)입니다. 저는 성경을 많이 읽었던 것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도움을 피부적으로 절감하며 삽니다. 지금도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셔서 본문에 대한 주제가 떠오르게 하십니다. 그 주제와 연관하여 제목을 결정하게 됩니다.그에 따라 예화도 설정하는데, 한 소제목에 따라 1~2개 정도 예화를 넣습니다. 예화는 분위기를 환기시키고, 주제를 더욱 선명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보통 A4 용지 5~6 페이지 정도를 작성하게 되는데 이는 약 40~50분의 설교 분량입니다. 방법론적으로 이렇다, 저렇다고 주장하는 것보다도 설교자마다 주어진 환경과 달란트에 따라 설교학적 기본에 충실하여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 한국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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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1-15
  • 타임즈코리아 설교대학(18)
      설교는 이래야 한다는 것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설교는 하나님의 마음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설교에서 주가 되어야하고 그것을 전달함으로 성도들의 삶의 변화를 이끌어내야 합니다.  로마서 12:1~2은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설교가 아무리 해도 변화가 없고 단순히 웃고 즐기며 끝나면, 그 설교는 설교로서의 가치가 없습니다. 무엇인가 눈물을 흘리고 기뻐하고 감사했다면, 실제적인 삶으로까지 이어져서 변화를 이끌어 내야합니다. 그것이 참된 설교입니다. ▲ 설교가 아무리 해도 변화가 없고 단순히 웃고 즐기며 끝나면, 그 설교는 설교로서의 가치가 없습니다. 무엇인가 눈물을 흘리고 기뻐하고 감사했다면, 실제적인 삶으로까지 이어져서 변화를 이끌어 내야합니다. 그것이 참된 설교입니다. 설교학자들이 말하는 설교의 정의에서도 설교가 삶에 적용되지 않는 것은 설교가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해던 로빈슨(Robinson, Haddon)은 강해설교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적용이 없다면, 그것은 설교가 아니라고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로이드존슨, 존스토트 목사도 설교의 적용을 강조했습니다. 설교가 설교로서의 가치발현을 하려면, 삶에 있어서의 적용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변화를 이끌어내는 설교가 참된 설교라고 생각합니다. 설교자가 하나님 말씀을 청중들에게 던져주어서 사람들이 도전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싹이 트고 자라서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도록, 그 속에 충실한 메시지가 있어야 참된 설교입니다. 이를 위해서 기도하고 묵상하면서 말씀을 연구하여 설교를 준비하고, 그것을 소망 가운데 기쁨으로 전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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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1-15
  • 타임즈코리아 설교대학(19)
      타임즈코리아 설교대학장님으로서의 비전에 대해서 말씀해주세요.오늘과 같은 대담을 통해서 독자들이 올바른 설교관을 정립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변화가 빠른 시대에 살기 때문에 모이기가 힘든 시대입니다. 먼저 인터넷으로 타임즈코리아 설교학장이 어떠한 설교관을 가지고 있는지, 독자들에게 원론적인 측면에서 기여했으면 좋겠습니다. 1년에 2차례 정도는 오프라인에서 만남의 장을 통해 일방적인 강의가 아닌, 서로 나누며 결론을 도출하는 귀납적인 방법으로 세미나를 진행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저술한 ‘존스토트 설교원론 방법’과 ‘맛 설교학’을 통해 강의에 참석하지 못하는 분들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지금은 인터넷으로 통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지구촌 누구나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타임즈코리아 설교대학이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 있는 목회자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끼치는 아름다운 매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인터넷으로 통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지구촌 누구나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타임즈코리아 설교대학이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 있는 목회자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끼치는 아름다운 매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동안 총 19차례의 대담식 강좌를 통해 여러분들을 만나 뵙게 된 것을 대단히 기쁘게 생각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이것 다음에는 목회현장에서 좀 더 구체적인 도움이 되도록 전문적인 설교학 강좌를 이어가려고 합니다. 이 매체를 통해 보시게 되는 분들의 성원과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아울러 주변에 많은 분들과도 이런 내용을 공유할 수 있도록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여러분의 가정과 섬기시는 교회 그리고 사역위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늘 충만하시기를 기도합니다.   
    • 한국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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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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