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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아온 '대동여지도', 조선의 꿈을 그리다
    대동여지도(전체 펼친 모습)   [타임즈코리아] 문화재청은 3월 30일 오전 10시 30분 국립고궁박물관(서울 종로구)에서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을 통해 일본에서 환수한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를 언론에 공개한다. 이번 환수는 해당 유물 소장자가 매도 의사를 밝히면서 그 존재가 확인됐으며, 정보 입수 이후 문화재청의 적극적인 행정 지원과 수차례에 걸친 재단의 면밀한 조사, 관계자간 긴밀한 협업을 바탕으로 올해 3월 국내로 들여오는 데 성공했다. 《대동여지도》는 조선의 지리학자이자 지도 전문 출판자인 김정호(金正浩, 1804 추정〜1866추정)가 1861년에 처음 제작·간행하고, 1864년에 재간한 22첩의 병풍식 전국 지도첩이다. 이번에 환수된 《대동여지도》는 1864년 제작된 목판본에 가필, 색칠하고《동여도》에 기술되어 있는 지리정보를 필사(筆寫)해 추가한 것으로,《동여도》와 《대동여지도》가 하나의 지도에 담겨져 있다. 《동여도》는 김정호가 《대동여지도》의 저본(底本)으로 삼았던 것으로 볼 수 있는 조선전도로, 조선시대의 교통로와 군사시설 등의 지리 정보와 약 18,000여 개에 달하는 지명이 실려 있는 채색 필사본이다. 이에 반해 《대동여지도》는 목판으로 새겨야 하는 한계 때문에 많은 지명들과 주기(註記)가 생략되어 있다. 이번에 환수된 지도는 목판본인 《대동여지도》의 한계를 《동여도》의 주기 내용을 필사해 보완한 최초의 사례로 확인되며, 《대동여지도》가 보급되면서 변용된 형태로 추정된다. 국내에 소장되어 있는 《대동여지도》와는 다른 구성과 내용을 가지고 있기에 이번 환수는 더 큰 의미를 가진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번 유물은 총 23첩(목록 1첩, 지도 22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동여도》의 형식을 따른 것으로, 일반적인 《대동여지도》는 목록이 따로 없으며 22첩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나라를 남북으로 120리 간격으로 구분하여 22층을 만들고, 각 층을 병풍식으로 접을 수 있는 첩으로 만든 것은 《동여도》와 《대동여지도》가 같다.무엇보다도 가장 주목할 것은 《동여도》의 주기 내용이 대부분 필사되어 상세한 지리정보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백두산 일대가 묘사되어 있는 제2첩의 경우 《대동여지도》 판본에는 없는 ‘백두산정계비’와 군사시설 간의 거리가 필사되어 있다. 또한 울릉도 일대가 묘사되어 있는 제14첩에는 《대동여지도》에는 기재되어 있지 않은 울릉도로 가는 배의 출발지 등의 내용이 필사로 적혀 있다.세부적인 구성에서도 그동안 국내에서 확인된 《대동여지도》와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대표적인 예로, 《대동여지도》의 지도유설은 1첩에 간인(刊印)되어 있으나 이번 유물은 지도의 빈 공간에 필사되어 있으며 그 내용도 동여도의 것과 같다. 또한 《대동여지도》 판본에서는 2면에 걸쳐 인쇄되어 있던 강원도 삼척부와 울릉도 일대가 1면으로 축소되어 배치되어 있는 점은 《동여도》의 배치 형식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공개된 《대동여지도》는 국내에서 최초 확인된 《동여도》의 주기 내용이 필사된 《대동여지도》 판본이며, 국내 소장된 《대동여지도》 갑자본과 《동여도》가 희소하다는 점 등으로 볼 때 조선의 지도 제작과 활용을 살펴볼 수 있는 연구 자료일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지리 정보 연구의 범위를 확장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문화재청과 재단은 이번 환수 및 공개가 조선시대 과학문화유산에 대한 관심과 자긍심을 고취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라며, 앞으로도 적극행정과 현지 협력망 확대를 통해 국외 중요 한국문화유산의 발굴과 환수에 최선을 다할 계획이다. 이번에 환수된 《대동여지도》매입은 정부혁신 사업으로 복권기금으로 추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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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3-30
  • 국가보훈처, 안중근 의사 순국 113주기 추모식
    [타임즈코리아] 국가보훈처는 조국독립을 위해 일신을 바치다 순국한 안중근 의사의 순국 113주기 추모식이 26일 오전 10시 서울 중구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안중근의사숭모회(이사장 김황식) 주관으로 열린다고 밝혔다. 이번 추모식은 박민식 국가보훈처장, 김황식 안중근의사숭모회 이사장을 비롯해 독립유공자 유족, 숭모회원 등 2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민의례, 약전 봉독,‘최후의 유언’낭독, 추모식사 및 추모사, 안중근 동양평화상 시상, 추모공연, 헌화 순으로 50분간 진행된다. 특히, 이날 추모식에서는 숭모회에서 제정한 ‘제3회 안중근 동양평화상’시상식이 함께 진행된다. 올해 ‘제3회 안중근 동양평화상’수상자로는 신용하 서울대학교 명예교수가 선정됐으며, 신용하 명예교수는 한국민족의 기원에서부터 독립협회, 안중근 의사를 비롯한 한국 근대사, 독도 등 폭넓은 역사분야에 대한 관심과 깊이 있는 연구를 통해 우리나라 역사를 재조명했으며, 특히 안중근 의사의 교육운동에서부터 하얼빈 의거에 이르는 국권회복운동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그 밑바탕에 평화사상이 자리해 있음을 체계적으로 논증했다. ‘안중근 동양평화상’은 안중근 의사의 숭고한 애국정신과 평화사상을 기리고 미래세대로 계승하기 위하여 국·내외에서 안중근 의사 관련한 학술연구 및 선양 활동 등에 공헌한 자를 매년 선발, 상패와 2천만 원의 상금을 지급하고 있다. 1879년 황해도 출생의 안중근 의사는 1905년 을사늑약 후 중국 상해로 건너가 국권회복의 길을 강구하다가 돌아와 사재(私財)를 털어 삼흥학교(三興學校)ㆍ돈의학교(敦義學校)를 세워 인재 양성에 힘썼다. 안 의사는 고종황제의 폐위, 군대의 해산 등 나라가 식민지 상태에 이르자 다시 해외로 나가 이범윤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으며, 1908년에는 의군장이 되어 의병부대를 거느리고 함경북도로 진입하여 경흥 등지에서 대일 항전을 전개했다. 그 후 안 의사는 러시아령의 블라디보스톡 등지를 왕래하면서 동지들과 구국의 방도를 모색했고, 1909년에는 동지들과 함께 손가락을 잘라 ‘단지 동맹’을 결성하며 일사보국(一死報國)을 맹세했다. 1909년 9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일제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하얼빈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10월 26일 9시경 하얼빈역에서 러시아 군인들의 경례를 받으며 각국 영사들이 도열해 있는 곳으로 걸어가던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총을 쏘아 3발을 모두 명중시켰다. 러시아군이 그를 체포하려고 하자, 하늘을 향해 “코레아 우라(대한독립 만세)”를 크게 세 번 외쳤다. 안중근 의사는 러시아 헌병대에서 여순(旅順)에 있는 일본 감옥으로 이송되어 심문과 재판을 받는 가운데에서도 일본의 부당한 침략행위를 비판하며 시정을 요구했고, 조국의 완전 독립과 동양 평화의 정착을 주장하다가 1910년 2월 14일 사형을 선고받은 후 3월 26일 순국했다. 정부는 의사의 공적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은 “안중근 의사 순국 113주기를 맞아 조국 독립과 동양 평화를 위해 일생을 바치셨던 의사님의 숭고한 희생정신과 애국혼을 엄숙한 마음으로 되새기며, 이를 우리의 미래세대들에게도 온전히 계승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안중근의사숭모회에서는 삼성문화재단 리움미술관 보존연구실에서 약 1년간에 걸쳐 보존처리를 완료한 안중근 의사 문화유산 보존지원사업 성과공개프로그램 안중근의사 특별전'초월: 과거와 현재, 국경을 넘어 만나다'를 리움미술관 다목적실에서 4월 16일(일)까지 개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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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3-24
  • 140년 만에 확장 가상 세계 속에서 복원된 조선 관청 ‘군기시(軍器寺)’
    군기시 AR 체험     [타임즈코리아] 문화재청은 서울시, 우미희망재단(이사장 이석준), 제일기획(대표이사 김종현)과의 민관협력으로 140년 만에 조선시대 중앙관청 ‘군기시(軍器寺)’를 디지털로 복원한 문화유산 확장 가상 세계(메타버스) 체험관의 공개행사를 2월 15일 오전 10시 30분 서울시민청(군기시유적전시실 등)에서 개최한 후 일반인에게 공개한다. ‘군기시’는 1392년(태조 1년) 설치된 중앙관청으로, 조선시대 군수물자 연구·개발·제조 및 보급‧관리의 기능을 담당했다. 1884년(고종 21년) 기기국(機器局)에 흡수되어 폐지된 후 일제강점기에 ‘군기시’ 자리는 태평로 확장으로 중심영역이 사라지고 태평로 동쪽 영역은 경성일보 사옥, 경성부청사가 건립되면서 그 흔적이 완전히 사라졌다. 2009년 서울시 신청사 건축 과정에서 관련 유물이 대량 발굴되어 현재는 군기시가 있던 옛 자리 일부를 서울시민청 내 군기시유적전시실로 운영하고 있다. 군기시 디지털 협력사업은 지난 2019년 한양도성 ‘돈의문’ 디지털 복원‧활용 사업에 이은 두 번째 성과물로, 문화재청, 서울시, 우미희망재단, 제일기획의 역할분담과 상호협력을 통해 추진됐고, 특히 역사 분야(이왕무 경기대 교수‧이근호 충남대 교수), 건축 분야(김왕직 명지대 교수)의 자문위원과 스코넥(가상현실)‧애니팬(증강현실) 등의 전문기업이 검증‧자문에 참여하여 역사고증과 디지털 복원‧재현의 완성도를 높였다. 이번 사업을 통해 군기시 발굴유적지에서 증강현실(AR)로 군기시 건물 7채를 복원했고 관람객은 문화유산 확장 가상 세계 응용프로그램 ‘헤리버스 공존’을 통해 증강현실(AR)로 복원된 군기시 건물과 무기류(신기전‧변이중화차 등), 건물 내부의 무기 제작과정을 체험‧관람할 수 있다.    또한, 군기시 유적전시실을 직접 방문하지 않아도 자신만의 분신을 만들어 군기시 관람이 가능하며, 현장 관람객과 문화유산 디지털 공간에서 자유롭게 공존하고 소통할 수도 있다. ‘헤리버스 공존’은 현재 애플 앱 스토어에서 내려받기 가능하며, 구글 플레이스토어에는 곧 출시 예정이다.군기시 유적전시관 운영시간은 오전 9시~오후 8시(단, 가상현실(VR) 체험 공간 운영시간은 월~토, 오전 10시~오후 7시)이다. 문화재청은 앞으로도 국가유산의 디지털 혁신과 적극행정의 민관협력 활성화를 통해 다양한 디지털 문화유산 복원과 함께 문화유산 디지털 콘텐츠를 활용한 역사문화관광, 문화유산교육 활성화에 기여하도록 최선을 다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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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2-15
  • 문화재청, '임진왜란 웅치 전적' 사적 지정
    < 임진왜란 웅치 전적 전경     [타임즈코리아] 문화재청은 전라북도 완주군․진안군에 위치한 '임진왜란 웅치 전적'을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했다. '임진왜란 웅치 전적'은 임진왜란 초기(1592년 7월) 전라도를 침략한 왜군에 맞서 관군 및 의병이 민관 합동으로 호남을 지켜낸 ‘웅치 전투’가 발생한 곳으로 호남 방어에 결정적 역할을 했으며, 초기의 열세를 극복하고 조선군이 결국 승전하게 되는 국난 극복의 전적지로 평가된다. ‘웅치’는 완주군과 진안군 사이 고갯길의 지명으로 웅치 일대의 옛길은 전주와 전라도 동부지방인 진안 등을 연결하는 중요한 교통로로 이용됐다.'선조실록'등 여러 문헌에 기록된‘웅치’는‘웅현’,‘웅령’으로도 기록되어 있으며, 현재는‘곰티’또는‘곰치’로 불리기도 한다. 특히 조경남의 '난중잡록'에는 전투가 일어난 지리적 위치가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전주 전 만호 황박이 모집한 군사 200명을 모아 웅현에 복병했는데 웅현은 바로 전주와 진안의 경계였다. 이때에 이광이 나주 판관 이복남, 김제 군수 정담 등으로 복병장을 삼아 웅현을 파수케 했는데 황박이 가서 조력한 것이다. 지난 7월 개봉한 영화‘한산’을 통해 재조명된 웅치 전투는 임진왜란 초기 진안을 거쳐 전주를 공격해오던 왜군을 진안과 전주의 경계였던 웅치 일대에서 막아서며 전개됐다. 왜군은 결국 웅치를 넘어 전주 부근까지 진출했으나 전투 과정에서 많은 전력을 상실하여 전면적인 공격을 진행할 수 없게 됐다. 이는 전주를 공격하여 전라도 일대를 장악하고자 했던 왜군의 전략을 무력화시켰다는 점에서 승패를 떠나 국난 극복의 전적지로서 의미를 가진다. 웅치 전투를 통한 호남 수호 이후, 관군과 의병이 경기도와 경상도로 진출하여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중추적 역할을 수행했으며, 전쟁에 필요한 각종 물자를 호남 지역으로부터 조달하는 등 임진왜란 극복의 계기를 마련했다. 문화재청은 전라북도 완주군․진안군과 협력하여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뛰어난 '임진왜란 웅치 전적'을 보다 체계적으로 보존․관리하고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시행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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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30
  • 화성팔탄민요 보존회,현판식 및 제1회 정기발표회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65호 지정’ 현판식     [타임즈코리아] 화성팔탄민요 보존회가 4일 팔탄면 향토민요 복원관(팔탄면 행정복지센터 내) 앞 에서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65호’지정 현판식과 함께 제1회 정기발표회를 개최했다.   지난 5월 화성시에서 유일하게 경기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화성팔탄민요는 경기 남부 지역과 충청남도 북부로 연결되는 문화권의 특성이 어우러져 ‘면생이’와 ‘긴방아타령’처럼 호흡이 긴 노래로 전승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옛 선조들이 농사일의 고단함을 잊고 서로의 의욕을 북돋아 주고자 불렀던 노동요로 모심는 소리, 논매는 소리, 긴방아타령, 지경다지기 소리 등으로 구성됐다.   화성시 팔탄면에서 전해 내려오던 민요 중 ‘팔탄 상여 회다지 소리’가 1998년 경기도 무형문화재 27-2호로 지정됐으나 이후 보유자의 사망 등으로 전승 활동이 중단되자 팔탄면 주민들이 향토민요보존회를 구성한 것이 그 시작이다.   주민들이 오랜 기간 자료를 수집하고 복원 훈련을 한 결과 지난 5월 화성시 내에서 유일하게 경기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이날 행사에는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65호 지정 현판식과 지경다지기, 모심는 소리 등 다양한 민요 시연 무대가 펼쳐졌다.   박민철 문화관광교육국장은 “화성팔탄민요를 지역의 살아 숨 쉬는 역사이자 미래세대가 이어가야 할 가치로 전승해 주신 향토민요보존회에 감사드리며, 주민들의 뜻을 받들어 전통문화를 지켜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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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05

실시간 문화 기사

  • 위안부 비하 논문, 일본의 추한 모습 다시 고개 드는 것
    마크 피터슨 브링검영 대학 명예교수   [타임즈코리아] 미국 하버드대 석·박사 출신 한국학 전문가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매춘부라고 폄하한 마크 램지어(J. Mark Ramseyer) 하버드 법대 ‘미쓰비시 일본 법학’ 교수 논문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칼럼을 정부 대표 다국어포털 ‘코리아넷’에 기고했다. 마크 피터슨(Mark Peterson) 브리검영 대학(Brigham Young University) 명예교수는 2월 17일(수) 코리아넷에 게재한 ‘위안부, 다시 한국을 자극하는 일본’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2차 세계 대전 당시 행위를 두둔하는 일본의 추한 모습이 2021년에도 다시 한번 고개를 들고 있다.”라고 글을 시작했다. 피터슨 교수는 “램지어 교수 논문의 문제점은 피해자들이 어떻게 강제로 또는 속아서 위안부가 됐는지에 대해서는 비중 있게 다루지 않았고 변호사들만 읽을 수 있는 법적인 주제로만 국한시켰다는 점”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2차 세계대전 당시 위안부로 끌려간 피해자들의 사연은 한국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다.”라며 일제 강점기 때 위안부 강제동원을 피하려고 하얼빈의 삼촌집으로 보내진 가사도우미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이어 “이 논문은 국가가 허가한 유곽에서 이뤄진 매춘에 관한 법적인 문제에 대해서만 논하고 있다. 법적인 문제 외에는 위안부에 대해 포괄적으로 논하려 하지 않는다.”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저자는 일본이 전시에 저지른 여성 착취 범죄 상황 전반에 대해서는 논하고자 하지 않는다. 잠시 쉬었다는 이유로, 병을 옮기거나 임신을 했다는 이유로 위안부들을 난폭하게 때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위안소의 잔인한 면은 ‘위험하다’ 정도로 적힌 것이 전부”라고 지적했다. 그는 일제가 저지른 난징대학살을 언급하면서 “일본군은 전투를 치른 뒤 여자들을 강간하고 사람들을 죽이며 난동을 부렸다. 일본 정부가 자국 병사들의 성욕 해소를 위한 수단으로 위안소 운영을 강화하게 됐다.”라고 밝혔다. 피터슨 교수는 “법학자는 전쟁 시의 법적인 문제에 대해 다룰 수 있다. 그러나 이 논문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위안부 피해 여성들의 삶과 이미 작고한 위안부 여성들에 대한 명예를 훼손하고 서로 골이 깊어진 두 이웃 국가 간의 불신과 증오에 불을 지피는 것이라면, 이 논문은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라며, “문제를 단편적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굉장한 폐해를 낳고 있다. 그의 논문은 일본에 대한 한국의 오랜 반감, 불신, 증오에 불을 질렀다.”라고 했다. 램지어 교수에 대해서도 언급했는데 램지어 교수는 공식 직함이 ‘미쓰비시 일본 법학교수’이고, 일본에서 유소년 시절을 보냈으며 2년 전에는 일본 정부 훈장인 ‘욱일장’을 받았다고 소개했다. 이어 “그는 일본 사람이 아니지만 어느 누구보다 열심히 일본을 대내외적으로 홍보해 왔다. 이번에는 하버드 법대에서 나온 논문으로 일본의 입장을 두둔하며 다시 한국의 상처에 소금을 뿌렸다.”라고 지적했다. 일본 정부의 행태와 관련해서는 “위안부 문제를 부정하는 입장을 고집해왔으며 매번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딱지를 떼어내 버린다. 일본은 전범국가로서 보여야 할 사죄와 동정과는 멀찍이 거리를 두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피터슨 교수는 “과연 언제쯤 일본과 일본을 대표하는 모든 이들이 20세기 초 자국이 저지른 전범행위에 대한 정당화를 중단하고 ‘미안하다’고 말할까”라며 글을 끝맺었다. 피터슨 교수는 1987년 하버드 대학에서 동양학 박사 학위를 받고 브리검영 대학에서 30년 이상 한국학을 가르쳤다. 2018년 은퇴 후 ‘우물 밖 개구리(The Frog Outside the Well)’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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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2-18
  • 삼국 시대 금동신발 2건 첫 보물 지정 예고
    [타임즈코리아] 문화재청은 고창 봉덕리 1호분과 나주 정촌고분에서 출토된 백제 시대 '금동신발' 2건을 각각 보물로 지정 예고하였다. 고창 봉덕리 1호분 출토 금동신발은 1,500여 년 전 한국 고대인들의 상장례(喪葬禮) 문화를, 나주 정촌고분 출토 금동신발(羅州 丁村古墳 出土 金銅飾履)은 5~6세기 백제 금속공예 기술을 알려주는 중요한 유물이다. 둘 다 각각 한 쌍으로 출토된 이들 금동신발들은 모두 백제 5세기에 제작되었으며, 삼국 시대 고분 출토 금동신발 중 가장 완전한 형태로 발견된 보기 드문 사례다. 그동안 삼국 시대 고분 출토 유물 중 귀걸이, 목걸이, 팔찌 등은 국보나 보물로 상당수 지정되었지만, ‘금동신발’이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 예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금동신발은 고구려·백제·신라·가야 등 삼국 시대 유적에서만 발견되는 우리나라 고유의 고대 금속공예품 중 하나다. 비슷한 시기의 중국 유적에서는 찾아보기 힘들고, 일본의 고분에서는 유사한 형태의 신발이 출토된 사례가 있으나, 이는 우리나라에서 전래된 것이다. ‘고창 봉덕리 1호분 출토 금동신발(高敞 鳳德里 一號墳 出土 金銅飾履)’은 전라북도 고창 봉덕리에 위치한 4기의 대형 분구묘(墳丘墓, 분구를 조성한 다음 그 안에 매장시설을 설치하는 무덤양식) 중 규모가 가장 큰 1호분의 제4호 석실에서 2009년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가 발굴했다. 4호 석실은 전혀 도굴되지 않은 무덤으로, 여기에서 금동신발 한 쌍이 무덤 주인공의 양쪽 발에 신겨져 거의 훼손되지 않은 채 출토되었던 것이다. 이 봉덕리 1호분 출토 금동신발은 장례 때 의례용으로 사용된 신발로서 백제 시대의 전형적인 형태와 문양을 보여주는 금속공예품이다. 금동신발의 전체 형태를 보면, 발목깃을 갖추어 앞쪽은 뾰족하면서 약간 위로 들렸고, 중간 바닥이 편평하며, 뒤쪽은 약간 좁아져 둥근 편이어서 흡사 배 모양을 연상케 한다. 투각(透刻)의 육각형으로 구획된 형태 안에 용, 인면조신(人面鳥身, 사람얼굴에 새 몸통을 가진 상상의 동물), 쌍조문(雙鳥文), 괴수(怪獸), 연꽃 등 각종 문양이 화려하게 장식되었다. 신발 바닥에는 1.7㎝ 높이의 뾰족한 못 18개를 규칙적으로 붙였고, 내부에는 비단 재질의 직물을 발라 마감하였다. 고창 봉덕리 1호분에서 출토된 금동신발은 현재까지 삼국 시대의 고분에서 출토된 약 19점의 금동신발 중 가장 완벽한 형태이며, 나주 정촌고분에서 출토된 금동신발과 비교했을 때 어자무늬(魚子文, 물고기 알 문양) 등 삼국 시대 초기 문양이 확인되어 시기적으로 앞서 제작된 것으로 판단된다. 무령왕릉의 왕과 왕비의 신발과 마찬가지로 바닥판과 좌우측판, 발목깃판으로 구성되고 바닥에 징(스파이크)를 박은 백제 금동신발의 전형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어 백제의 중앙 권력자가 제작해 왕의 힘을 과시하고 지방 수장의 위신을 세워주기 위해 지방 유력 지배층에게 내려준 ‘위세품(威勢品)’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고창 봉덕리 1호분 출토 금동신발’은 백제 시대 의례용 금동신발로서, 보기 드물게 원형을 갖추어 출토된 중요한 고대 금속공예품이자, 다양하고 뛰어난 공예기법을 이용해 제작된 것으로, 5세기 중반 백제 미술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보물로 지정할 가치가 충분하다. ‘나주 정촌고분 출토 금동신발(羅州 丁村古墳 出土 金銅飾履)’은 삼국 시대 대형 분구묘인 정촌고분의 1호 석실에서 2014년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가 발굴한 것이다. 5~6세기 무렵 영산강유역에는 복암리고분군, 정촌고분, 영동리고분군 등 대형 고분이 축조되었는데, 그 중 정촌고분은 1,500여 년 전 백제·마한 문화를 가장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고분이면서 도굴 피해를 입지 않아 매장의 원형을 알 수 있어 고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무덤이다. 정촌고분 1호 석실 제3목관에서 발견된 금동신발은 좌우 신발 한 쌍이 거의 훼손되지 않은 채 완벽한 모습으로 출토되었으며, 특히, 발등 부분에 부착된 용머리 장식은 현존 삼국시대 금동신발 중 유일한 사례로 주목을 받아 왔다. 최근에는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가 수행한 과학적 분석 결과, 신발의 주인공이 40대 여성으로 추정되기도 하였다.   이 금동신발은 형태와 제작기법, 문양 등에서 고창 봉덕리 출토 금동신발과 매우 유사하다. 얇은 금동판 4장으로 바닥판과 좌우 옆면판, 발목깃판을 만들어 서로 작은 못으로 연결하였고 문양을 투각해 세부를 선으로 묘사한 방식 등 고대 금속공예 기법이 잘 반영되어 있다. 아울러 육각문, 용문, 인면조신(人面鳥身), 괴수문, 연화문 등 사후영생(死後永生)을 기원한 고대인들의 사후세계관이 반영된 듯한 다양한 문양이 정교하고 세밀하게 표현되어 있어 조형적으로도 매우 우수하다. ‘나주 정촌고분 출토 금동신발’은 고창 봉덕리 금동신발에 비해 조금 늦은 5세기 후반 경에 제작되어 6세기 무령왕릉 출토 금동신발로 이어지는 과도기적 단계를 보여주는 공예품으로서, 5~6세기 백제의 사상과 미술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작품이다. ‘고창 봉덕리 1호분 출토 금동신발’과 ‘나주 정촌고분 출토 금동신발’ 2종은 국내 최초 원형 그대로 발굴된 유물이라는 점에서 고고학과 역사적으로 의미가 크다. 또한, 같은 시기 중국이나 고구려, 신라의 미술품과 비교하여 문양의 기원과 변천, 상징적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 지금까지 알려진 삼국 시대 금동신발과 비교하여 백제 공예문화의 독자성을 밝힐 수 있는 원천유물이라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 또한 매우 높다고 평가된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지정 예고한 ‘고창 봉덕리 1호분 출토 금동신발’ 등 2건에 대해 30일간의 예고 기간 중 각계의 의견을 수렴·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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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2-16
  • 광화문에 금갑장군 그린 문배도로 코로나19 극복 기원
      [타임즈코리아]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경복궁관리소는 오는 11일부터 14일까지 경복궁 광화문에 금갑장군(金甲將軍)이 그려진 문배도(門排圖)를 부착한다. ‘문배’는 정월 초하루 궁궐 정문에 나쁜 기운을 물리치고 복을 구하는 의미로 그림을 붙이는 풍속을 말하며, 이때 붙이는 그림을 ‘문배도’라고 한다. 문배도의 제작은 도화서에서 담당하였으며 이러한 풍속은 조선 후기 이후 민간으로도 퍼져나갔다. ‘문배’에 관한 기록은 그동안 조선 시대 문헌 자료인 『열양세시기(冽陽歲時記)』,『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를 비롯하여 조선 후기 행정법규와 관례 등을 정리한 『육전조례(六典條例)』에도 수록되어 있었지만, 그 도상의 실체에 대해서는 뚜렷이 확인할 수가 없었다.   지만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최응천)이 2015년 주미대한제국공사관(미국 워싱턴 D.C. 소재) 복원·재현 과정 중 미국 의회도서관 이 소장한 경복궁 광화문 사진을 발굴함에 따라 광화문에 붙인 문배도의 구체적인 도상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이 사진을 통해 19세기 말 경복궁 광화문에 금갑장군이 그려진 문배도가 붙여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번 광화문 ‘문배도’ 부착은 연초 액과 나쁜 기운을 쫓는다는 조선 시대 세시풍속에서 착안해 코로나19로 지친 국민의 마음을 위로하고자 기획되었다. 이번에 부착하는 ‘문배도’는 도상의 일부만 남아 있는 미국 의회도서관 소장 경복궁 광화문 사진만으로는 재현이 어려운 한계가 있어서 자문회의를 거쳐 도상과 의장기물의 표현에서 왕실과의 연계성이 보이며 유일하게 완형이 남아 있는 안동 풍산류씨 하회마을 화경당 본가 소장 유물을 바탕으로 제작하였다. 원래 광화문의 문배도는 종이로 제작하여 광화문에 직접 부착하여야 하나 제거 시 광화문의 훼손을 우려하여 탈·부착이 편리한 현수막 형태로 부착할 예정이다. 설날 연휴인 11일부터 14일까지 부착할 계획이며, 야간에도 조명을 비추어 광화문의 모습을 다채롭게 할 예정이다. 추후 광화문 문배도에 대하여는 도상의 원형을 복원하기 위한 추가적인 고증 연구를 시행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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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2-08
  • 2.8독립선언 제102주년 기념식 개최
    [타임즈코리아] 국가보훈처는 3·1운동의 도화선이 된 '2․8독립선언 제102주년 기념식'이 오는 8일 오전 11시, 일본 도쿄 재일본 한국YMCA회관(한국문화관)에서 개최된다고 밝혔다. 이번 행사는 재일본한국YMCA 주관으로 도쿄 현지에서 거행되며, 행사의 진행 과정은 온라인으로 실시간 중계된다. 기념식에는 강창일 주일대사를 비롯해 독립유공자 후손, 유학생 대표, 재일본 한국청년회 회원 등 100여 명이 참석하며, 식순은 2·8독립선언의 노래, 국민의례, 기념사, 성경봉독 및 기도, 2·8독립선언서 낭독, 만세삼창 순으로 진행한다. 특히, 이남우 보훈처 차장은 영상 메시지를 통해 "2·8 독립선언에 참여했던 선열들의 애국충정에 존경과 감사를 표하고, 조국독립을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를 적극 발굴하여 최고의 예우를 다하겠다"라는 기념사를 대신할 예정이다. 한편, 보훈처는 이번 2·8독립선언 기념식을 시작으로 머나먼 이국땅에서 조국독립을 위해 헌신한 선열들의 숭고한 뜻을 이어가기 위해 36여 개의 국외 독립운동 기념행사를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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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2-05
  • 세계유산 필암서원 내 ‘하서유묵 목판’ 회수
      [타임즈코리아] 문화재청은 서울경찰청과 공조하여 2006년 전남 장성군 필암서원 내에서 도난당한 전남 유형문화재 제216호 ‘장성필암서원하서유묵목판일괄(56판)’ 중 묵죽도판(墨竹圖板) 3점을 포함한 총 34점의 도난문화재를 회수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문화재청 사범단속반은 도난문화재 관련 첩보를 2019년 7월 입수하여, 문화재매매업자와 문화재사범을 대상으로 탐문조사를 지속적으로 수행하였고, 끈질긴 수사 끝에 도난문화재를 2019년 11월부터 2020년 2월까지 3회에 걸쳐 회수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번에 회수한 문화재 중 전남유형문화재 제216호 ‘장성필암서원하서유묵목판일괄’은 필암서원 내 경장각에 보관되던 것으로 조선 중기 인종이 하서 김인후(1510~1560)에게 하사한 3점이다. 선조 1년(1568)과 영조 46년(1770)에 새긴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군(인종)과 신(김인후)의 이상적인 관계를 널리 알린다는 뜻으로 새긴 것이다. 하서 김인후의 초서체 글씨는 당시 성리학자들 사이에 전형적인 글씨로 모범이 되었고, 묵죽도판을 통해 판각의 변천양식과 조선사회 생활방식을 파악할 수 있어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고 평가된다. 특히, 필암서원이 2019년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됨에 따라 이번에 회수한 문화재를 전시나 교육에 활용할 경우, 필암서원의 가치를 보다 높일 수 있어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도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함께 회수된 문화재 중 전북 유형문화재 제14호 ‘선운사석씨원류’는 석가의 일대기와 불법(佛法)을 글과 그림으로 제작한 목판으로 조선시대 삽화 중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1910~20년대 사이 지어진 보은 우당고택(국가민속문화재 제134호) 내 ‘무량수각 현판’도 회수하였다. 이들 문화재들도 앞으로 제자리를 찾게 되면 해당 문화재가 보존된 장소의 가치를 더욱 향상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문화재청은 앞으로도 경찰청과 공조하여 도난·도굴과 해외밀반출 등 문화재 사범을 단속하고 문화재 불법유통을 방지하는 등 문화재의 건전한 유통질서를 확립할 계획이다. 또한, 소중한 문화재가 제자리에서 그 가치에 맞는 보존과 활용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관계기관과 꾸준히 협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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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2-02
  • 조선 왕실 5m 대형 병풍‘요지연도’미국서 환수 후 첫 공개
    요지연도   [타임즈코리아]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은 지난 19일부터 박물관이 재개관함에 따라 지하 1층에 자리한 ‘궁중서화실’에서 궁중회화의 진가를 고스란히 담은 ‘요지연도’를 포함한 병풍 세 점을 전시하고 있다. 이번에 선보이는 <요지연도>는 미국의 개인이 소장하던 작품으로 소장자의 부친이 50여 년 전 주한미군으로 근무할 당시 구입하여 미국에 가져갔던 것으로, 지난해 문화재청이 국내 한 경매사를 통해 다시 구입한 후 국립고궁박물관에 이관하여 국민 누구나 감상할 수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이 되었다. 가로 넓이가 무려 5m에 이르는 대병(大屛)으로, 조선후기 왕실 병풍의 위용을 보여준다. 특히, 이 병풍의 장황(裝潢) 상태가 제작시기보다 후대로 추정되어 경매 당시 표구(表具) 시기에 관해 전문가들의 의견이 분분하였다. 확인을 위해 병풍 한 폭의 뒤편 배접지(褙接紙)를 살펴본 결과, 1957년 조선일보 신문과 1959년 동아일보 신문이 발견되어 소장자가 미국에 가져가기 전 한국에서 다시 표구를 했던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요지연도’는 중국 고대 전설 속 서왕모(西王母)가 신선들의 땅인 곤륜산(崑崙山)의 연못인 요지(瑤池)에 주나라 목왕(穆王)을 초대해 연회를 베푸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불로장생(不老長生)의 도교적 주제를 담은 신선도는 국가와 왕조의 오랜 번영을 염원하는 뜻을 담아 조선 후기 궁중을 중심으로 유행하였다.   지금까지 알려진 '요지연도' 중 대표적인 작품은 국립중앙박물관과 경기도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8~19세기에 제작되었으며 이번에 첫 공개하는 <요지연도>는 이 중에서도 비교적 고식(古式)에 속하는 것이다. 요지연도의 공통된 특징은 서왕모와 목왕 앞자리에 잔치상(찬탁, 饌卓)이 놓인다는 점인데, 국립고궁박물관의 <요지연도>는 찬탁 대신 여러 악기를 연주하는 시녀들을 배치해 연회의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킨 것이 특색있다.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지친 국민이 다가오는 봄을 기다리며 새롭게 단장한 궁중서화실에서 일상의 생기를 조금이나마 되찾기를 바란다."며 "아울러 앞으로도 상설전시실 개편 사업을 꾸준히 진행해 더욱 쾌적한 관람환경을 조성하도록 노력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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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27
  • 골목 안 풍경 30년의 기록, 서울역사박물관 품으로
    김기찬 기증 자료   [타임즈코리아] 서울역사박물관(관장 배현숙)은 故 김기찬(1938~2005) 사진작가의 유족으로부터 필름 10만 여점과 사진, 육필원고, 작가노트 등 유품을 일괄 기증 받았다고 밝혔다. 김기찬 작가는 1968년부터 2005년 6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30여 년 간 서울의 변화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 가운데 서울의 달동네에서 시작된 ‘골목 안 풍경’ 사진집 시리즈는 그의 대표작이다. 60년대 말 우연히 들어선 중림동 골목에서 사람들의 따뜻한 정을 느꼈던 김씨는 골목을 주제로 삼아 도화동, 행촌동, 공덕동 등의 풍경을 사진에 담기 시작했다. 고도성장시기 급변하는 서울의 모습이 아니라, 후미진 골목으로 시선을 가져간 사진작가는 김씨가 처음이었다. 김씨는 다른 이들이 보지 못한 서울의 모습을 성실하게 기록하여 필름에 새겨 넣었고, 그렇게 차곡차곡 쌓인 필름들이 10만 점을 넘겼다. 90년대 이후 재개발로 인해 달동네들이 하나 둘 사라지면서, 그가 사랑했던 골목들에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평생을 매달리겠다고 생각했던 사진 작업은 골목들이 사라지면서 끝을 맺게 되었고, 김씨는 2005년 갑작스런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남긴 사진과 필름들을 보관해왔던 유족들은 김씨의 사진들이 서울의 소중한 기록으로 보존되길 바란다는 뜻을 밝히며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했다. 필름 중에는 그 동안 사진집이나 전시회에서 공개되었던 ‘골목 안 풍경’ 사진들 뿐 아니라, 개발 이전의 강남 지역과 서울 변두리 지역의 사진 등 미공개 자료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서울역사박물관 배현숙 관장은 “김기찬 작가의 사진은 도시 서울에 대한 향수를 느끼게 할 뿐 아니라, 기록자료로서도 풍부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역사박물관은 김기찬 작가의 자료들을 박물관 수장고에 영구 보존할 예정이며, 10만 여점에 달하는 필름들은 올해부터 디지털화하고 색인하는 작업을 거쳐 박물관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할 계획이다. 김기찬 작가는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2004년 옥관문화훈장을 수훈하였고, 이명동 사진상과 동강사진상을 수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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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11
  • 제102회 전국동계체육대회 코로나19로 취소
    [타임즈코리아] 문화체육관광부는 대한체육회와 함께 코로나19 상황 등을 고려해 ‘제102회 전국동계체육대회’ 개최를 취소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제102회 전국동계체육대회는 당초 2월 5일부터 8일까지 서울, 강원, 경북 지역에서 분산 개최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최근 코로나19 확산세가 다시 심각해짐에 따라 문체부와 대한체육회는 지난해 12월부터 교육부, 시·도체육회, 동계 회원종목단체 등 관계 기관과 대회 개최 여부에 대해 지속적으로 협의하고 의견을 수렴해왔다. 그 결과, ▲ 전국동계체육대회 개최 시 합숙, 단체훈련 등으로 인한 선수들의 코로나19 감염 확산 우려, ▲ 동계종목 특성상 설질 저하 등으로 대회 연기가 어려운 점, ▲ 수도권과 일부 시·도 경기장 시설 이용이 어려워 선수들의 훈련 부족으로 인한 부상 위험이 큰 점, ▲ 전국 규모 대회인 만큼 선수들의 안전이 최우선이며, 특히, 학생선수가 다수 포함된 점 등을 고려해 정상적인 대회 개최가 어렵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 이에 대한체육회 이사회 서면 의결과 1월 8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논의를 거쳐 전국동계체육대회를 취소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향후 문체부와 대한체육회는 이번 대회의 미개최로 인해 학교 진학, 연봉체결 등에서의 선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교육부와 지자체 등 관계 기관과 협의해 대책을 마련해 나갈 예정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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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08
  • 부여 부소산성에서 ‘乙巳年(645년 추정)’명문 토기 출토
    명문토기   [타임즈코리아] 문화재청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부여 부소산성(사적 제5호) 긴급발굴조사에서 백제~통일신라 시대 성벽, 와적기단(瓦積基壇) 건물지, 집수시설을 비롯하여 ‘을사년(乙巳年)’, ‘북사(北舍)’ 글씨가 새겨진 토기 등 중요유물을 확인하였다고 전했다. 부여 부소산성은 백제 사비도성의 배후산성과 왕궁성으로 추정되는 유적으로, 성의 둘레는 약 2,200m이다. 지난 1980년부터∼2002년까지 국립문화재연구소와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연차 발굴조사를 진행하여 백제~조선 시대에 축조한 성벽, 백제 시대 수혈 건물지와 목책열, 조선시대 군창지 등을 확인한 바 있다. 이번 조사는 지난 7~8월, 부소산성 내에 너비 1m, 깊이 0.8m의 재난 방재 관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성벽, 건물지, 추정 집수시설 등 유구의 존재가 확인되어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긴급발굴을 하면서 이루어졌다. 조사결과, 부소산성 내 평탄지가 존재하는 군창지 구간, 사자루 구간, 궁녀사 구간 등에서 백제 시대 다양한 유구가 확인되었다. 군창지 구간에서는 백제 중요유적에서 주로 확인되는 와적기단을 갖추고 둥근 모양으로 잘 다듬은 초석을 사용한 위계 높은 건물지가 발굴되었다. 사자루 구간에서는 백제~통일신라 시대 성벽, 굴립주 건물지, 사각의 초석을 사용한 건물지 등이 조사되었다. 궁녀사 구간에서는 집수시설이 확인되었다. 특히, 궁녀사 구간 집수시설에서는 ‘乙巳年(을사년)’, ‘北舍(북사)’라는 글씨가 새겨진 토기, 중국제 자기, 칠기(漆器) 등 중요유물과 더불어 수백 점이 넘는 백제 사비기 토기가 함께 매몰되어 있었다. 출토된 백제 시대 토기는 완형에 가까운 기대(器臺), 보주형(寶珠形)뚜껑, 전달린토기의 비중이 높았다. 또한, 7세기 신라 병형토기도 출토되었다. 주요 출토 유물인 ‘乙巳年’ 명문 토기에는 ‘乙巳年三月十五日牟尸山菊作’(을사년삼월십오일모시산국작)이라는 14자의 명문이 쓰여 있는데, 그 내용은 을사년 3월 15일 모시산 사람 국(菊)이 만들었다‘로 해석되어 토기의 제작연대(645년 추정), 제작지(예산, 덕산 추정), 제작자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같이 출토된 ‘北舍’명 토기는 백제 사비왕궁지구인 관북리 유적, 익산의 왕궁리 유적, 익산토성과 같이 왕실과 관련 있는 중요 유적에서 출토된 바 있다. 이번 조사에서 확인된 유구들은 부여 부소산성 내 백제∼통일신라 시대 성벽의 축조방식과 부소산성 내부공간의 활용방식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조사결과는 코로나19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하여 오는 11일 오전 10시에 문화재청과 국립문화재연구소 유튜브 채널을 통해 온라인으로 공개된다. 문화재청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2021년부터 부소산성에 대한 중·장기 학술조사 계획을 수립하여 체계적인 발굴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아울러 조사 과정에서 도출되는 성과는 온·오프라인을 활용한 현장설명회를 진행하여 국민과 함께 공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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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2-08
  • 제주 신창리 바다에서 中 중세 무역선의 3.1m 대형 닻돌 발견
    제주 신창리 닻돌 인양 현장   [타임즈코리아]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와 국립제주박물관이 공동으로 올해 5월말부터 7월까지 실시한 제주 신창리 해역 수중발굴조사에서 중국 도자기, 동전과 함께 3.1m짜리 대형 닻돌(碇石) 1점을 확인하였다. 제주 신창리 해역 수중유적은 중국 남송(南宋, 1127~1279)대 도자기가 다량 발견되고 있는 곳으로, 과거 중국 무역선이 난파되면서 형성된 유적으로 추정된다. 이번에 발굴된 닻돌은 두 조각으로 쪼개져 발견되었으며, 전체적으로 긴 마름모꼴로 중앙부가 두툼하고 양 끝으로 갈수록 가늘어지는 형태이다. 모든 면을 편평하게 다듬었는데, 자연석의 일부만을 다듬어 사용한 우리나라 전통 닻돌과는 차이를 보인다. 닻돌 중앙부에는 닻채와 맞닿는 부분에 22cm의 얕은 홈이 가공되어 있으며, 고정못을 설치하기 위한 폭 7cm 가량의 홈도 확인된다. 이런 형태의 닻돌은 중국 송·원대에 유행하던 것으로 중국 송나라 사신인 서긍(徐兢)이 쓴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 형태나 사용방법이 상세히 기록(“… 아래에는 닻돌을 달아매고 돌 양 곁에 나무 갈고리 두 개를 두었다. … 닻을 내려 물 바닥에 떨구고, 닻줄을 당겨 고정시키면 배는 가지 않는다.”)되어 있다. 이로 보아 닻돌은 나무로 된 닻가지와 결합되어 배를 정박시키는데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에서는 이런 형태의 닻을 목조석정(木爪石碇)이라고 부른다. 중국 닻돌이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사례로는 태안 마도 해역에서 3점, 진도 명량대첩로 해역에서 1점이 있다. 이 닻돌들은 길이 175cm 내외, 두께 11~13cm, 무게 100~130kg 정도이나, 이번 신창리 해역에서 발견된 닻돌은 전체 길이 310cm, 중심부 폭 36cm, 중심부 두께 29cm, 무게 586kg으로 크기와 무게가 기존 닻돌에 비해 매우 크고 무겁다는 점이 특징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송대 닻돌 중 중국 광둥성 양장(陽江)시 앞바다에서 발견된 난하이(南海) 1호의 닻돌이 가장 큰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닻돌은 길이 310cm, 무게 420kg로 신창리 해역에서 발견된 것과 길이와 형태는 비슷하나, 무게는 신창리 것이 약 1.4배 무겁다. 이를 통해 신창리 해역에서 난파된 선박의 규모를 간접적으로나마 추정해 볼 수 있다. 이번 발굴조사에서는 닻돌과 함께 중국 동전도 확인되었다. 발견된 동전은 경덕원보(景德元寶, 1004~1007년 주조), 희령원보(熙寧元寶, 1068~1077년), 선화통보(宣和通寶, 1119~1125년)로 모두 북송(北宋)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이 동전들 중 경덕원보는 고려 시대 제주도의 대표적 사찰인 수정사 터에서 중국 도자기와 함께 발견된 사례가 있으며, 희령원보는 제주 고내리 유적에서 발견된 사례가 있다. 이렇듯 제주도내 육상과 바다 속에서 같은 종류의 유물이 확인된다는 것은 과거 바닷길을 통한 동아시아 국제교류 상에서 제주도의 위치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제주 신창리 수중유적은 1983년 금제 장신구가 발견되면서 처음 존재가 알려졌다. 지난해 처음으로 진행된 정식 발굴조사에서 중국 남송대 저장성 룽취안(龍泉) 요에서 생산된 다량의 도자기와 상인이 직접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인장 2점을 확인한 데 이어, 올해 2차년 발굴조사에서 대형 중국 닻돌과 중국 송대(宋代)의 동전까지 발견되어 신창리 해역 수중유적의 성격을 규명하는 중요 자료들을 추가 확보하였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앞으로도 신창리 해역을 포함하여 제주도 해안에 대한 지속적인 조사를 계획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과거 해양교류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보다 다양한 연구가 진행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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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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