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5(월)

화성 역사 문화 토크 콘서트

댓글 0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밴드
  • 페이스북
  • 구글플러스
기사입력 : 2017.04.06
  • 프린터
  • 이메일
  • 스크랩
  • 글자크게
  • 글자작게

화성문화원에서는 지난달 30일 화성중학교 정신관 3층 대강당에서 ‘화성 역사 문화 콘서트’를 열었다. 일제강점기 화성에서 일어났던 만세운동 98주년을 기념해 열린 이 행사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청소년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계기가 되었다.

DSC01540.jpg
 
 
화성중학교 한인철 교장은 “인류의 역사는 도전과 응전의 기록이다”라는 영국의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Arnold Toynbee)의 말을 소개하며 “바른 인성과 창의력으로 꿈과 희망이 있는 학교”라는 교육지표에 걸맞은 역사의식을 품고 실천하며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화성문화원 고정석 원장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말한 단재 신채호 선생의 역사관을 소개했다. 사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신채호 선생은 《조선상고사》의 총론에서 “역사(歷史)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의 기록이다”는 역사관을 피력했다.
 
“무엇을 <아(我)> 라 하며 무엇을 <비아(非我)>라 하느뇨? 깊이 팔 것 없이 얕이 말하자면, 무릇 주관적(主觀的) 위치(位置)에 서 있는 자(者)를 아(我)라 하고, 그 외(外)는 비아(非我)라 하나니, 이를테면 조선인(朝鮮人)은 조선(朝鮮)을 아(我)라 하고 영(英), 로(露:러시아), 법(法:프랑스), 미(美).... 등을 비아(非我)라고 하지마는 영(英), 미(美), 로(露), 법(法). ....등은 저마다 제 나라를 아(我)라 하고 조선(朝鮮)을 비아(非我)라고 하며, 무산계급(無産階級)은 무산계급(無産階級)을 아(我)라 하고 지주(地主)나 자본가(資本家)를 비아(非我)라고 하지마는, 지주(地主)나 자본가(資本家)는 저마다 제 붙이를 아(我)라 하고. 무산계급(無産階級)을 비아(非我)라 하며, 이뿐 아니라, 학문(學問)에나 기술(技術)에나 직업(職業)에나 의견(意見)에나, 그 밖의 무엇에든지 반드시 본위(本位)인 아(我)가 있으면 따라서 아와 대치(對峙)되는 비아(非我)가 있고, 아(我)의 중(中)에 아(我)와 비아(非我)가 있으면 비아(非我) 중(中)에도 또 아(我)와 비아(非我)가 있어 그리하여 아(我)에 대한 비아(非我)의 접촉(接觸)이 번극(煩劇)할수록 비아(非我)에 대한 아(我)의 분투(奮鬪)가 더욱 맹렬(猛烈)하여 인류사회(人類社會)의 활동(活動)이 휴식(休息)될 사이가 없으며 역사(歷史)의 전도(前途)가 완결(完結)될 날이 없나니, 그러므로 역사(歷史)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鬪爭)의 기록(記錄)이니라. 역사의 전도가 완결될 날이 없다. 그러므로 역사는 아와 비아의 투쟁의 기록인 것이다.”

DSC01473.jpg
 
 
일제가 교묘하게 식민사학을 퍼뜨리던 암흑의 시기에 우리 민족의 얼과 혼을 지켜내고자 온 힘을 다했던 신채호 선생은 역사 서술에서의 관점(史觀)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똑같은 사건이라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며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그 결과는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역사란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를 바라보는 것이기에 현재 어떤 틀로 과거를 조명하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이것을 토대로 미래 또한 만들어지는 것이기에 역사적 관점은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영국의 역사가 에드워드 헬릿 카(Edward Hallett Carr)는 “역사는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상호작용의 계속적인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탈리아의 역사가 베네데토 크로체(Benedetto Croce) 역시 이런 맥락에서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이다”라고 말했던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화성에서 들불처럼 일어났던 만세운동은 오늘도 살아 숨 쉬며 우리의 오늘을 일깨우며 미래를 들려주고 있다.

DSC01575.jpg
 
 
제암리 순국기념관 이해영 선임연구원은 화성에서 일어났던 만세운동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다.
화성의 만세 운동은 다른 곳과 달리 일제의 주재소를 파괴하고 순사를 처단하는 등 강한 민족의식과 독립 정신으로 격렬하게 항쟁했다. 이 지역의 독립운동은 송산, 서신에서 시작하여 장안과 우정, 향남, 팔탄까지 확산되었다.
 
일제는 송산, 마도, 서신, 우정, 장안, 화수리의 45개 마을에서 방화로 보복했고 홍면옥 등 주동자 175명을 검거했다. 고주리에서는 교회와 마을에 불을 지르고 학살해 29명이 사망하였다.

DSC01595.jpg
 
 
패널들의 발언을 들은 학생들이 독립운동과 관련한 주제를 가지고 자유롭게 대화하고 토론하여 글을 지어 발표하는 순서가 이어졌다.
 
폐회사에서 고정석 원장은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확대하자”며 “앞으로도 다양한 방법으로 시민들의 역사의식을 고취하고 그에 합당한 실천이 일어나도록 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취재위원 박종강     

타임즈코리아 톡톡뉴스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화성 역사 문화 토크 콘서트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