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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년 잠에서 깬 마도4호선, 조선 시대 조운선으로 밝혀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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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5.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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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마도4호선에서 목간, 분청사기 등 출수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소장 소재구)는 지난 4월 22일부터 충남 태안군 마도 해역에서, 조선 시대 선박으로 기대를 모은 바 있는 마도4호선에 대한 정밀발굴조사 중간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결과 마도4호선에서는 ‘광흥창’이 적힌 목간, ‘내섬’이 적힌 분청사기 등 총 300여 점의 유물이 출수되었으며 유물과 선박 구조 등을 통해 조선 시대 조운선(漕運船)임을 최초로 확인했다.
 
마도4호선은 마도 북동쪽 해역 수심 9~15m에 파묻혀, 선수가 남동쪽을 향해 있고, 우현 쪽으로 50° 기울어져 있다. 잔존 규모는 길이 13m, 폭 5m, 선심 약 2m이고, 밑판 3열, 좌현 외판 4단, 우현 외판 11단, 선수ㆍ선미재도 일부 남아 있는 평저선(平底船)이다. 조선 시대 선박 구조를 그려놓은 『각선도본(各船圖本)』에서 보여주는 조운선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는데, 선수 판재가 조운선은 가로로, 군선은 세로로 그려져 있다.   
 
과거 확인된 고려 시대 선박은 선수 판재가 세로로 설치됐지만, 마도4호선의 경우 선수 판재가 가로로 설치되었다. 또한, 고려 시대 선박들은 비교적 얇은 원통목을 사용했지만, 마도4호선에서는 두껍고 강한 횡강력재를 사용해 선체의 견고함을 높이고 더욱 세련된 가공 기술을 선보여 한층 진일보한 조선 시대 선박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분청사기.jpg▲ 마도4호선에서 출수된 분청사기. 사진제공 - 문화재청
 
 
선박 내부에서 목간 60여 점도 함께 출수되었다. 목간 대부분에는 발신처인 나주와 수신처인 광흥창을 뜻하는 ’나주광흥창[羅(亽)州廣興倉]‘이 적혀있으며, 이는 전라남도 나주 영산창(榮山倉)에서 거둬들인 세곡 또는 공납품을 관리의 녹봉을 관리하던 조선 시대 국가 기관인 광흥창으로 옮기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출수된 분청사기 대접과 접시는 140여 점으로 그 중 3점에 ‘내섬(內贍)’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이는 조선 시대 궁궐에 물품을 관리하던 내섬시(內贍寺)를 의미하는데 ‘내섬’을 분청사기에 새기기 시작한 때는 관청의 명칭을 표기하도록 하는 1417년(태종 17)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마도4호선은 1410~1420년대(태종~세종)에 물품을 싣고 항해하다가 마도 해역에서 침몰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관계자는 “마도4호선은 조선 시대 초기 공납제도의 모습과 당시 공물의 운송방식인 ‘조운(漕運)’에 대해 최초 확인된 실증 자료로서 그 가치가 매우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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