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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을 멀리하고 자신의 근저를 발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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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2.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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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을 멀리하고 자기 자신의 근저, 신의 근저에만 마음을 두어야

▲ 사물에 집착하고 마음을 두는 존재는 신과 하나가 될 수 없다. 신은 순수성이기 때문에 물질성과는 짝할 수가 없다. 그래서 오로지 사물을 멀리하고 자기 자신의 근저, 신의 근저에만 마음을 두어야 한다.



“나는 인간이 자신의 모든 업적을 갖고 신이 줄 수 있거나 주고자 하는 모든 것에서 그 어떠한 것이라도 추구하는 한, 그는 이러한 장사꾼과 같다고 말한다. 신이 이 성전에서 그대에게 자리 잡게끔 만약 그대가 장사꾼의 속성으로부터 전적으로 벗어나기를 원한다면, 그대는 그대의 모든 일에서 행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순수하게 신의 찬미만을 위하여 행해야 한다. 그리고 그대는 마치 여기에도 없고 저기에도 없는 무(niht/nicht)가 어디에도 얽매여 있지 않는 것처럼, 그런 것으로부터 그렇게 벗어나 있어야 한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M. Eckhart, 1260-1327)는 독일 남서부의 투린기아 주 호흐하임(Hochheim)에서 태어났으며, 일찌감치 도미니코 수도회에 입회하였다. 그는 중세의 대표적인 철학자이자 신비가로서 많은 설교와 글을 남겼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이 결국 이단으로 단죄되는 결과를 가져왔고 그로인해 교황칙서가 반포되기에 이르렀지만 그 전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매우 독특한 신학적․철학적 사변을 통해서 신에 대한 인식론을 전개하였는데 범신론자(pantheist)로 낙인이 찍혔던 것이다.

그에 의하면 신은 언표 불가능한 존재이다. “하나님은 이름이 없으시다. 그것은 아무도 그분에 대해서 무엇인가를 말하거나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에 대해 쓸데없는 소리를 하지 말고 침묵하라. 당신이 하나님에 대해 이런 저런 말을 하게 되면 당신은 거짓말을 하게 되고 죄를 짓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말할 수 없는 무한 존재에 대해서는 침묵을 해야 한다. 신에 대해서 발언하는 것은 자칫 최대의 실수를 범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에 대해서 말하기보다 삶으로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강독을 하는 천 명의 스승들보다 삶의 스승 한 명이 더 낫다.”

그뿐만이 아니다. 인간은 신을 향해서 기도를 할 때 그 행위나 반응이 모순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매일 주님께서 가르치신 기도를 드리면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소서’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그분의 뜻이 이루어졌을 때에 우리는 불평하며 그분의 뜻을 기뻐하지 않는다. 우리의 기도가 진실하다면 우리는 분명 그분의 뜻을, 그분께서 행하시는 것을 최선의 것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며, 가장 최선의 것이 우리에게 이루어졌다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인간이 신을 향해 마음을 둔다고 하지만, 실상은 욕망을 투사한다는 것이다. 어떠한 기도의 응답이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바로 그것이 신이 인간에게 주는 답변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기도를 했음에도 이루어지지 않았다거나, 왜 들어주지 않는가에 대한 회의와 불만을 들여다보면 기껏해야 기도란, 내가 원하는 것을 신이 직접 이루어주기를 바라는 욕망에 지나지 않았음을 발견하게 된다.

헤세(H. Hesse)는 자신의 책 『지와 사랑』에서 늙은 수도원장의 입을 통해서 말하지 않았던가. 인간은 신의 뜻과 자신의 소망을 혼동하기 쉬운 경향을 가지고 있다고. 따라서 마이스터 에크하르트가 말한 것처럼, “선하고 진실 된 기도는 하늘까지 닿는 사다리이며, 이를 통하여 인간은 하나님께 올라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나아가 인간은 자신의 바탕, 근저에서 신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은 그 내면에서 신의 근저를 보아야 한다. 그 신의 근저가 바로 인간의 근저이다. 인간의 고유함은 거기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의로운 사람은 신과 함께(bei Gott, 신 곁에서) 영원히 산다.” 미래의 영원성은 현재에 이루어진다. 키에르케고르(S. Kierkegaard)가 통찰한 것처럼, 영원은 시간의 충만, 즉 무르익은 지금 이 순간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신은 존재이다. 그분은 없지 않고 있는 존재이다. 어쩌면 그는 없이도 있음으로 존재한다. 그 밖의 모든 존재는 신에 대해서 아니 존재(무존재가 아닌 신에 대한 상대적 존재로서의 개념)한다. 그래서 비존재(Nichtsein)이다. 신은 아니 존재하는 대상들을 넘어서 존재하기 때문에 없는 듯하지만 있는 존재, 즉 없이 있는 존재다. 없이 있는 존재만이 무한히 자신의 존재를 확장해 나갈 수 있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말한다. “신은 존재를 넘어 자신이 활동할 수 있는 범위까지 작용한다. 그는 비존재(Nichtsein) 속에서 작용했다. 곧, 존재가 있기도 이전에 신은 작용했다.” 그렇게 없이 있는 존재인 신과 합일하게 위해서는 마음의 순수성, 즉 사물과 거리 둠이 필요하다.

사물에 집착하고 마음을 두는 존재는 신과 하나가 될 수 없다. 신은 순수성이기 때문에 물질성과는 짝할 수가 없다. 그래서 오로지 사물을 멀리하고 자기 자신의 근저, 신의 근저에만 마음을 두어야 한다. “마음의 순수성이란 무엇인가? 마음의 순수성이란 모든 물질적 사물에서 동떨어져 떠나 있는 것이며, 자기 자신 속에 집중해 머물러 있는 것이며, 그러고 나서 이러한 순수성에서 신으로 자신을 던져, 거기서 (신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외물(外物)에 마음을 빼앗기고 사는 우리로 하여금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서 그곳에서 순수 그 자체를 찾으라고 촉구하는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하리라.



김대식 박사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 타임즈코리아 편집자문위원. 저서로는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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