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상장애를 넘어 경제를 살리는 사람
누워있어야만 하는 와상 환자가 어촌계장을 맡아 양식장을 15배나 늘렸다
주인공은 태안군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문광순(69·남) 씨이다. 문 씨는 요양 1등급의 와상(臥床) 환자로 하루 4시간씩 방문요양서비스를 받고 있는 중환자이다. 충청남도 태안군 방갈리에서 문 씨는 숙박시설을 운영한다. 이곳이 문 씨가 사는 집이기도 하다. 학암포 해수욕장이 내다보이는 문 씨의 방에는 감사패, 공로패, 기념패들로 꽉 차있다.
문 씨는 1987년 이장이 되었고, 1990년에는 재추대되어 마을을 위해 밤낮없이 일하며 많은 기대를 모으며 사랑을 받았다. 그렇게 달렸던 문 씨가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전신마비가 된다. 문 씨와 마을 주민 모두에게도 커다란 슬픔이고 불운이었다.
사고 후 10여 년 동안 그는 죽을 궁리만 해야 하는 불행한 상태였다. 그러나 머리 외에는 아무것도 움직일 수 없는 문 씨에게는 모든 것이 불가능이었다. 치료에 많은 돈을 썼지만 나아지지는 않았다. 마음은 썩고 정신은 나락으로 추락하는 것 같았다. 마음을 고쳐먹어 봤지만 꼼짝달싹할 수 없는 와상 환자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과 마주하는 것 외에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러나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사고를 당한 지 10년째 되던 2002년 마을의 어촌계에 위기가 닥쳤다. 어장도 5ha밖에 안 되고 계속된 실패로 빚은 늘어만 갔다. 그때 주민들이 문 씨에게 찾아와 하소연하면서 의논을 했다.
처음에 문 씨는 자신은 어차피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그저 듣기만 했다. 그러나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주민들의 고민 속으로 빠져들었다. 안타까운 마음 때문에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이런저런 대안을 제시했는데 마을주민들은 문 씨에게 어촌계장을 맡아달라고 했다. 문 씨는 황당하다고 생각했다. 움직일 수도 없는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민들은 그의 아이디어와 인격이 중요하다고 문 씨를 설득했다. 문 씨는 몇 달을 고민한 끝에 어촌계 임원들이 손발이 되겠다는 다짐을 받고 어촌계장직을 수락했다. 모든 일을 생각과 말로만 해야 했다. 누워서 수많은 청사진을 그렸다. 그러다가 착상이 떠오르면, 그것을 진행하게 하며 하나하나 꼼꼼하게 점검해 나갔다.
여기에 감동한 마을 사람들은 그의 계획에 따라 적극적으로 사업을 진행했다. 친구였던 전임 군수도 최선을 다해 도와주었다. 이렇게 모두의 노력이 빛을 발하기 시작하여 빚도 청산하고 어장은 73ha까지 늘렸다. 오늘도 어촌계가 보유한 위판장, 공동판매장. 어장관리 선박은 힘차게 돌아가고 있다.
문 씨는 2006년부터 2013년도까지 8년 동안이나 어촌계장직을 수행했다. 건강한 사람도 하기 힘든 일을 문 씨는 누워서 해냈던 것이다. 자기 한 몸도 가눌 수 없는 형편의 사람이 마을의 번영에 앞장섰던 것이다. 그야말로 누워서 경제를 살리는 사람이 된 것이다. 그러나 문 씨는 “내가 공을 세운 것이 아니라, 어촌계가 나를 살렸다”며 미소를 지었다.
지금도 그의 머릿속에는 학암포 마을과 어촌계로 가득 차있다. 소원이 무엇이냐고 묻자, “환자용 리프트 차량만 있으면 휠체어에 의지해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여러 현안을 풀어가고 싶다”고 한다.
현재 어촌계의 숙원사업인 선착장 이전 사업이 진행 중이다. 썰물 때가 되면 낮은 수심으로 선착장에 큰 배를 정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지금까지는 어장에서 수확한 해삼, 전복 등의 수산물을 멀리 소원면 모항항까지 싣고 가서 판매해야 했기 때문에 시간과 경제적 손실이 매우 컸다. 현재 선착장 이전공사가 승인되어 착공을 기다리고 있다.
문 씨의 얼굴에서는 장애가 드리운 그늘은 찾아볼 수 없다. 누워만 있어야 하는 장애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선물하고 있다. 그가 하는 모습에서 마을주민들과 어촌계는 엄청난 용기를 얻었다. 저런 처지의 문 씨도 마을을 위해서 일하는데 우리가 낙망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생각으로 모두가 일어나 힘을 모았던 것이다. 이것은 작은 어촌 마을 학암포의 이야기를 넘어, 대한민국의 희망 이야기고, 지구촌 모두에게 던지는 희망의 메시지이다.
서산 안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