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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그리고 깨어 생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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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4.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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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이 깨어 생각하고 스스로 정신을 계몽할 수 있다면 역사는 달라지는 것입니다.
 
함석헌이 말하는 ‘봄’이라는 것, ‘본다’라는 것은 단순히 시지각적인 행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봄’의 부정성으로서의 ‘안 봄’과 ‘참 봄’의 부정성으로서의 ‘겉 봄’을 구분하고 있습니다(함석헌, 함석헌전집2, 인간혁명의 철학, 한길사, 1983, 11쪽). 그러면서 지금의 시대가 참 봄이 아니라 겉 봄의 시대라고 비판합니다. 어쩌면 그의 봄(시각 및 인식)의 철학은 시지각적인 행위가 아니라, 인식론적이며 계보학적 측면을 부각시키고 있는지 모릅니다.
 
‘본다’(see, voir)는 행위는 인식론적으로 ‘안다’(savoir)라는 정보의 습득과 남김 없는 타자의 파악, 그에 따른 조정과 ‘소유’(avoir)까지도 내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써 그는 정말 본다는 것은 안 봄, 즉 비폭력적인 무시선적인 태도가 진정한 봄이라고 합니다. 흘끗 봄, 사적 관심이나 이익을 가지고 타자를 바라보는 행위는 타자에 대해서 거리를 한껏 좁혀 인식론적으로 포착, 자기 것화 하려고 하기 때문에 폭력이 될 수 있습니다.
 
존재를 인식하되 완벽하게 인식하겠다는 것은 오만입니다. 시각적으로, 시신경 안으로 들어온 정보는 지극히 선택적 정보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보는 즉시 우리는 판단의 과정 속에서 타자를 전부 이해했다고, 세계를 다 알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것은 그야말로 함석헌이 말한 ‘겉 봄’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지금은 생각을 해야 합니다. “죽어서도 생각은 계속해야 합니다. 뚫어봄은 생각하는 데서 나옵니다”(함석헌, 위의 책, 12쪽). 생각은 존재의 기본 행위, 존재의 근원적 본질을 특징짓는 행위입니다. 생각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무슨 생각이든 생각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한다고 해서 다 생각이 아닙니다. 생각은 현상을 깊게 뚫어 볼 수 있는 사유가 전제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정신과-사상이-모이게-되면-.jpg▲ 정신과 사상이 모이게 되면 인류를 보는, 세계와 역사를 해석하고 역사를 보는 시선과 생각이 달라져 결국에는 혁명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한 번의 생각이 영구불변한 생각일 수 없듯이 생각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변합니다. 변해야 생각입니다. 하지만 생각 없이 생각을 하면 생각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모순, 즉 ‘무생각’이 되고 맙니다. 생각이 아예 없는 것입니다. 뚫어봄, 즉 세계와 현상을 올바르게 꿰뚫어보는 인식론적 통찰력을 올바르게 갖지 않는 이상, 그것을 생각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단지 정보를 갖고 판단하고 이해하는 오성적 인식으로는 부족합니다. 자기 동일성인 이성을 가지고 사태를 정직하고, 있는 그대로 인식할 수 있는 비판력이 있어야 합니다.
 
함석헌이 왜 남들이 다 싫어하는 사상의 넝마주의를 자처했을까요? 왜 인생의 넝마주의, 역사의 넝마주의가 되겠다고 주저 없이 말했던 것일까요? 그 근저에 “혁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쓰레기를 줍는 넝마가 곧 혁명이기 때문입니다(함석헌, 위의 책, 14-15쪽).
 
생각을 통하여 흩어져 범주화·종합되지 않은 온갖 사상의 쓰레기, 정신의 쓰레기를 한곳으로 모으는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그 쓰레기가 인류를 지탱하는 사유와 정신, 역사를 이끄는 원동력이 되기에 그렇습니다. 함석헌 스스로 민중의 사유를 결집시키고 한곳으로 모아 생각하게 하는 선구자가 되고 싶었던 것입니다.
 
넝마주의자는 아무나 될 수가 없습니다. 쓰레기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만이 그 생각과 시선이 제대로 된 쓰레기를 모음, 곧 사상과 정신, 역사의 넝마주의자가 될 수가 있습니다. 정신과 사상이 모이게 되면 인류를 보는, 세계와 역사를 해석하고 역사를 보는 시선과 생각이 달라져 결국에는 혁명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민중이 깨어 생각하고 스스로 정신을 계몽할 수 있다면 역사는 달라지는 것입니다.
 
김대식 박사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 타임즈코리아 편집자문위원. 저서로는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 세계』,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과 종교문화』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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