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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적 인간, 혁명하는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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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3.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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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혁명은 개인을 넘어서 세계 전체를 살리기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무엇보다도 먼저 개인을
다시-만드는 일(재-형성, re-form)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모름지기 혁명은 씨알로부터 일어나야 한다. 그것도 하늘로부터 명(命)을 받아서, 하늘로부터 말씀을 받아서 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늘로부터 받지 않은 것은 결단코 혁명이 아니다.

혁명(革命). 혁명(reformation)은 그릇[형식]을 바꿔서 통째로 내용물[질료]까지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던가. 그래서 함석헌은 “달라지되 어느 한 부분만 아니라 전체를 왼통 뜯어 고치는 일”, “새 출발을 하는 일”(함석헌, 함석헌전집 인간혁명의 철학2, 한길사, 1983, 25쪽)이라고 말한다.

혁명은 일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고쳐야 한다는 말인데, 과거의 혁명은 완전한 혁명이 되지 못하고 늘 불완전한 혁명으로 그치고 말았다. 특히 한국현대사의 비극인 5․16을 혁명이라고 하나 그것은 혁명이 아니라 엄밀한 의미에서 군사 쿠데타였다.

씨알에 의해서 밑에서부터 일어난 혁명이 아니라, 무력을 앞세운 힘의 폭력이었던 것이다. 그 사건으로 무엇이 달라졌단 말인가? 그것을 과연 새 출발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5.16군사정변이 ‘새로움’, ‘새’라는 수식어를 달 수 없는 것은 그로 인해 새워진 정권이 곧 군사정권, 군사독재라는 결과물을 낳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 한 군인이 국가 수장의 탈을 쓰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모름지기 혁명은 씨알로부터 일어나야 한다. 그것도 하늘로부터 명(命)을 받아서, 하늘로부터 말씀을 받아서(함석헌, 함석헌전집 인간혁명의 철학2, 한길사, 1983, 25쪽) 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늘로부터 받지 않은 것은 결단코 혁명이 아니다. 그것이 5․16 군사정변을 혁명이라 부를 수 없는 이유이다.

씨알이 주인이 되는 시기, 씨알의 의식이 깨이는 시기, 씨알의 정신이 자주성을 갖는 시기, 씨알이 생각을 펼치는 시기가 퇴보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4․19혁명의 불완전성 때문에 빚어진 현상도 없지 않을 것이긴 하다. 5․16군사정변의 폐해가 인간의 정신이 깨이고 자신이 역사의 주인이 됨으로써 씨알이 역사철학을 형성하는 시기를 늦추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함석헌, 함석헌전집 인간혁명의 철학2, 한길사, 1983, 26-27쪽). 그래서 함석헌은 비판한다.

“민중이 일어서야겠는데, 일어서지 않기 때문에 군인이 일어선 것이다... 일어설 것은 군인이 아니요, 민중이다... 사람이 아니란다고 감정을 내는 학생이나 군인은 참 사람은 못 된다.”(함석헌, 함석헌전집 인간혁명의 철학2, 한길사, 1983, 61, 66쪽)

반면에 5․18민주화운동은 어떤가? 그 사건은 하늘로부터, 씨알로부터 이루어진 혁명이라고 말한다 하더라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함석헌이 말했듯이, “생명의 길은 언제나 모험의 길”(함석헌, 함석헌전집 인간혁명의 철학2, 한길사, 1983, 27쪽)이다. 혁명에는 바로 생명의 길로 접어드는 필연적인 과정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픔과 고통, 그리고 피비린내 나는 참극이 일어난 것이라면 섣부른 판단일까.

박정희 정권이 막을 내리고 정치권을 장악한 신군부세력의 군사독재, 언론통제, 민주정치 인사의 투옥, 계엄령, 휴교령 등에 맞선 그 당시 저항운동은 역사의 필연일 수밖에 없었다. 비록 비폭력으로 시작된 시위였다가 무장시민군이 형성되면서 엄청난 희생이 발생한 사건이 되었지만, 그것은 엄연한 ‘시민혁명’-영국의 청교도혁명(1640~60), 미국의 독립혁명(1775~83), 프랑스혁명(1789~94), 독일의 3월 혁명(1848), 러시아의 2월 혁명(1917) 등과는 다르다 하더라도-이었던 셈이다. “민중의 노함은 하나님의 불”(함석헌, 함석헌전집 인간혁명의 철학2, 한길사, 1983, 56쪽)이라는 말처럼, 시민이 주축이 된 혁명, 하늘의 뜻, 하늘의 소리를 씨알 전체에게 주었기에 이루어진 것이다. ‘5․18민주화운동’이라는 시민혁명은 국가, 세계, 생명 전체를 살리기 위해서 소아(小我)를 버리고 대아(大我)를 택한 사건이다.

“혁명의 목적은 공(公)을 살리기 위해 사(私)를 죽이는 데 있습니다.” 프랑스의 혁명정신 속에 살았고 민주주의 투사였던 빅토르 위고는 폭동과 혁명을 구별해 말하면서 “폭동은 물질적 동기로 일어나는 것이고 혁명은 정신적 동기로 일어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정신이 무엇입니까? 공(公)을 위하는 것이 정신입니다. 그런데 공이 무엇입니까? 천하위공(天下爲公)입니다. 세계가 공입니다... 살아도 인류 전체가 같이 살고 죽어도 인류 전체가 같이 죽게 된 것이 오늘의 세계의 현실입니다.”(함석헌, 함석헌전집 인간혁명의 철학2, 한길사, 1983, 30쪽)

이제 혁명은 개인을 넘어서 세계 전체를 살리기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무엇보다도 먼저 개인을 다시-만드는 일(재-형성, re-form)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래야 개인에게서 시작하는 혁명은 한 개인을 넘어서 사회, 국가, 세계로 뻗어 나갈 수가 있다. 개인에게 머무는 혁명은 혁명이 아니다. 하늘 뜻을 새롭게 펼치는 것이 아니라 한갓 개오(改悟)에서 멈추고 만다. 한 현자는 이렇게 말했다. “자기로부터 시작하라고 했지 자기에게서 그치라고 하지는 않았다. 자기를 출발점으로 삼되 목표삼지는 말라는 말이다. 자기를 파악하되 자기에 사로잡히지는 말라는 말이다.”(Martin Buber, 장익 옮김, 하씨딤의 가르침에 따른 인간의 길, 분도출판사, 1978, 40쪽) 물론 개인을 새롭게 만들지 못하는 혁명은 공동체를 새롭게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개인과 공동체 모두가 처해진 상황과 위치를 전혀 알지 못한다.

“랍비 하녹이 한 이야기다. 옛날에 아주 멍텅구리가 하나 살았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옷을 찾아 입기가 너무 어려워, 밤이 되면 이튿날 깨면서 또 고생할 생각이 끔찍해서 잠자리에 들기를 꺼릴 정도였다. 그러다가 하루저녁 큰 노력을 하여 연필과 종이를 갖다 놓고 옷을 한 가지씩 벗는 대로 어디다 놓았는지를 정확히 적어 두었다. 그 이튿날 아침 매우 만족한 그는 종이 조각을 들고 “모자”하고 읽으면 모자가 있어서 머리에 쓸 수 있었고, “바지”하면 바지도 있어서 입을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옷을 다 입도록 계속했다. “자, 그건 다 좋았는데 나 자신은 어디 있지”하고 크게 당황하면서 물었다. “내가 도대체 세상 어디에 있는 거지”하면서 두리번거렸으나 자기는 찾지를 못했다. “우리가 바로 그 모양이에요”하고 랍비는 말했다.”(Martin Buber, 장익 옮김, 하씨딤의 가르침에 따른 인간의 길, 분도출판사, 1978, 37-38쪽)

그 어느 때보다 지금, 자기를 부정하지 않는 인간, 자기 존재도 모르는 인간을 위한 “인간 개조”, 즉 자기 초월을 하면서 인간 자신을 뜯어 고치는 혁명이 전체로서 일어나야 한다. 그 “혁명이 성공하려면 반드시 대중운동이 아니면 안 된다.”(함석헌, 함석헌전집 인간혁명의 철학2, 한길사, 1983, 65-66, 74쪽)

“이제 혁명은 전체의 협동으로서만 될 수 있습니다. 가령 아주 알기 쉬운 실례를 하나 든다면 핵무기 문제입니다... 개인의 참 발달을 막고 병들게 하는 것은 개인주의와 그것의 변태인 집단주의입니다. 개인의 정말 발달은 전체가 개체 안에 있고 개체가 전체 안에 있는 사회에서만 가능할 것입니다. 국가주의를 배격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지금 국가가 전체를 가장하고 속이는 그 우상숭배주의 때문에 인간의 물질적․정신적․영적 에너지는 얼마나 쓸데  없이 소모되고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단순히 세계의 발달만 아니라... 새 인류가 나타날 가능성까지도 내다보고 있는 이 진화의 시점인데, 그러한 돌변화는 개체의 자유가 절대로 보장이 되는 전체 안에서만, 말을 바꾸어 한다면 생각을 전체로서 하는 사회에서만 될 수 있습니다.”(함석헌, 함석헌전집 인간혁명의 철학2, 한길사, 1983, 30-31쪽)

세계는 지금 생명의 위기, 환경의 위기, 문명의 위기, 경제의 위기, 정치의 위기, 교육의 위기 등 인간 전체, 세계 전체의 위기에 직면에 있다. 그야말로 위기의 시대다. 이러한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의 개조, 인간 자체의 혁명인 것이다. 국가의 혁명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세계를 전체로 보고 전체로서의 혁명, 전체로서의 인간 혁명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또한 국가 이데올로기에 의해서 소진되고 있는 여러 현상들 이면을 짚어내는 ‘생각의 혁명’이 일어나야 할 것이다.


김대식 박사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 타임즈코리아 편집자문위원. 저서로는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 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근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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