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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방황하는 외국인 유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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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3.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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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도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평화로운 공생을 위한 다문화 사회, 모두가 복된 지구촌 시대,
더불어 잘하는 인류사회의 건설과 같은 요란한 구호가
진실도 사랑도 없이 시끄럽게 울리는 꽹과리 소리는 아닌지 철저한 반성이 필요하다


▲ 새로운 지식과 문화를 선도하는 대학에서의 모습이 이래서는 안 된다. 다인종, 다언어, 다문화에 대한 폐쇄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인식과 태도가 성찰 없이 지속된다면, 성숙한 다문화 사회를 지향하는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불 보듯 뻔하다.


요즘 국내 대학에서 다인종, 다국적의 학생들이 캠퍼스를 활보하는 것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우리와 비슷한 외모를 가진 아시아 학생, 특히 중국인 학생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크다.  나는 오랫동안 한국어 교사로 이러한 외국학생들이 국내 대학에 입학하도록 돕는 일을 해 왔었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한국어 능력 중급 이상을 자격 요건으로 내세우는 대학의 요구에 맞춰 국내 대학의 입학 허가를 받는다. 가끔은 한국 신입생들도 받기 어려운 높은 비율의 장학금을 받으면서 말이다.

내가 가졌던 한국어 교사라는 직업의식 때문인지, 난 대학 내에서도 그들의 생활이나 교실 참여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그들의 대학생활은 그리 즐거워 보이지 않는다. 그들 중 열에 아홉은 대개 한국인이 아닌 자국 친구들과 무리를 지어 다니고, 강의 시간에는 있는 듯 없는 듯 자신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알리지도 않는다.

외국에서 짧은 교환학생 생활을 해 본 나의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이런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제2언어로서의 한국어 학습자를 넘어 학문 공동체 내에서 한국 학생들과 생활을 하면서 학문에 정진해야 하는 학생들이기에 이런 상황은 안타깝고 애처롭다. 특히 한국인들의 머릿속에 잔재하는 이중적 외국인 수용 잣대가 적용되는 것을 보면 이런 상황은 더욱더 안타깝다.

내가 몸담고 있는 학과에서 유독 한 명의 중국 유학생이 눈엣가시처럼 한국학생들에게서 소외되고 있는 것을 여러 번 목격했다. 이런 그 친구의 모습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시간을 내 그의 어려움을 들어보았다. 예상대로 그의 유학 생활은 평탄하지 않았고 지금도 그 고통은 계속 진행 중이다.

“교수님이 수업 시간에 저에게 수업을 알아듣지 못할 거면 당장 어학당으로 가서 한국말을 더 공부하고 오라 하셨어요. 그런데 저는 입학 면접시험에서 일등을 했고, 대학에서도 어학당 수업을 더 이상 들을 필요 없이 학부 입학이 가능하다고 했어요. 어느 날 교수님은 전체 학생들 앞에서 중국 학생들이 집안은 좋은 데, 머리가 나빠서 한국에 온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하셨어요. 그러면서 나중에 대학원 입학 지원에 대한 추천서가 필요할 때, 중국인 학생들에게는 절대 써 주지 않겠다고 하셨어요. 저는 매우 큰 상처를 받았어요. 그런데 다른 과 교수님들도 중국인들에 대한 편견이 많아요.”

나는 이 학생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머리가 멍해짐을 느꼈다. 한국인으로서 이 상황에 대해 어떤 해석을 내리며 이해를 시켜야 할지도 매우 난감했고, 이 학생의 쓰라린 심정이 사뭇 이해가 되어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것이 비록 소수 교수자들의 오만한 우월의식과 편견에서 나온 것이라 할지라도, 이렇게 미성숙하고 폭력적인 교육자의 발언이 한국학생들의 의식에도 통째로 뿌리를 내리게 될 위험성을 안고 있다. 이 중국인 학생은 한국학생들 또한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제가 길을 지나가면 중국인은 더럽다고 제가 들을 수 있게 욕을 했어요. 이 상황은 제가 졸업을 할 때까지 2년 동안 계속 됐어요. 한국어가 아닌 영어 수업에서도 무시를 당했는데 영어 발음이 좋은 편인 저를 기분 나쁜 표정으로 쳐다봤어요.”

이 학생은 한국어를 못해도, 영어를 잘해도 학문 공동체 내에서 가차 없이 무시와 멸시를 당했다. 하지만 이 학생이 중국이 아닌 서양에서 온 백인 영어 원어민 유학생이었어도 똑같은 대접을 받았을까. 나는 이 학생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문화 사회를 위한 우리의 시민의식 수준에 대해 강한 의문을 품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전 인류의 평화로운 공생과 이득을 지향하며 끊임없이 학문에 정진해야 하는 학문 공동체인 대학에서 이런 상황이 연출된다는 것은 더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인종 차별주의적인 교육자의 발언과 태도, 이런 위험천만한 교육이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학생들에게 답습되는 국내 대학에서 외국인 유학생들, 특히 아시아 출신 유학생들은 방황하고 고립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중국인 학생의 한국어가 향상된 것은 자기 말을 관심 있게 들어 주었던 또 다른 한국인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 매우 다양한 손님들을 만났다고 한다. 거기에서는 어떤 누구도 자신의 불완전한 한국어를 비난하거나 무시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때 그 사람들과 나눴던 이야기가 지금 자신의 한국어를 향상시키는 데 많은 도움을 줬다고 한다. 이 학생은 정작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고 싶었던 대학에서는 무시를 당했다. 그러나 대학 밖의 실생활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대학이 아닌 삶의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과 나눈 대화를 통해 한국어 실력을 향상시켜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 학생은 한국어와 학문적 동기가 없거나 열정이 부족한 소극적인 학습자가 아니었다. 한국인들의 냉정한 반응과 차별적 태도는 한국어와 한국문화, 나아가 학문에 대한 동기와 열정마저도 식게 할 수 있다. 대학에서 요구하는 한국어 능력 시험을 통과해 입학을 했으나 대학 내에서 합법적인 일원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일들을 어떻게 보아야 할지 당혹스럽다. 부당한 이유로 소외되고 방황해야 하는 이런 유학생들의 시련은 어쩌면 준비되지 않은 우리의 다문화 사회의 일면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유학생들을 무차별적으로 유치하기 위해서만 애쓰는 대학은 이들을 위해 과연 어떤 관심을 갖고, 지원해주고 있는가. 외형적인 지원 정책보다, 그들이 실제 대학에서 어떤 생활을 하며 어떤 고충을 겪고 있는지 그들의 목소리에 한번쯤 귀 기울여 본 적이 있는지 반성해 볼 때이다.

새로운 지식과 문화를 선도하는 대학에서의 모습이 이래서는 안 된다. 다인종, 다언어, 다문화에 대한 폐쇄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인식과 태도가 성찰 없이 지속된다면, 성숙한 다문화 사회를 지향하는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불 보듯 뻔하다.

그들의 불완전한 한국어가 그들의 지적 능력을 대표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그들을 충분한 잠재능력을 가진 유학생으로 인정해야 한다. 이들에 대한 어떤 차별적 요소도 존재해서는 안 된다. 이들은 우리와 공통의 가치관을 공유하는 존중 받아야 할 사람들이다. 이들에게도 학문 공동체뿐만 아니라, 인류사회를 더 풍요롭게 할 자질과 가능성이 누구 못지않음을 인식해야 한다.

요즘 일본 우익세력의 무모한 행태를 보면 황당하고 어처구니가 없다. 상식과 진리는 어느 나라 누구에게나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이제 우리도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평화로운 공생을 위한 다문화 사회, 모두가 복된 지구촌 시대, 더불어 잘하는 인류사회의 건설과 같은 요란한 구호가 진실도 사랑도 없이 시끄럽게 울리는 꽹과리 소리는 아닌지 철저한 반성이 필요하다. 이런 것들이 구호만이 아니라, 진실이라면 가뜩이나 유학생활로 힘들고 외로운 그들을 포근하게 감싸고 배려해야 한다. 



박성원
삼성인력개발원과 국, 내외 대학의 한국어 교육기관에서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국어 교육을 해 왔다. 유럽인과 결혼해 다문화 가정에서 다문화, 다언어를 실제 공간에서 체험하고 있기도 하다. 현재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며 다문화-다중언어를 위한 언어문화운동을 기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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