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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역의 지혜와 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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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3.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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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립적인 자세로 양쪽의 입장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서로의 입장을 감안하여 말을 전달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격한 감정적 대립을 완화시키게 된다


▲ 중립적인 자세로 양쪽의 입장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서로의 입장을 감안하여 말을 전달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격한 감정적 대립을 완화시키게 된다.


오늘은 다양한 언어의 다양한 의사전달 기능을 골고루 맛본 날이다. 세 언어(한국어, 불어, 영어)가 한 데 뒤섞여 불평하고, 비난하고, 설득하고, 호소하고, 협박하고, 용서를 구하고, 합의해야 했던 날이다. 이 언어들 사이에서 가능한 한 평정을 유지하려 애를 쓰면서 말이다.

남편의 손가락 골절 수술 결과가 좋지 못해 한번쯤은 병원에 가서 환자의 권리에 대한 의견을 전달하려고 벼르고 있긴 했었다. 남편이 자신의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영어가 미숙한 한국인 의사에게 자신의 불만을 전달하며 환자의 권리를 찾는 것은 아무래도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진료실에서 의사와 환자인 남편과 보호자인 나는 영어, 불어, 한국어를 삼각 구도로 섞어가며 서로의 의견에 대해 열변을 토하며 전달에 애썼다. 불어 악센트와 고조된 감정이 뒤섞인 남편의 영어를 한국인 의사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이미 예상했던 바였다.

젊은 한국인 의사는 매우 난처한 이 상황에서 남편을 보며 영어로 설명하며, 설득을 시도하다가 중간에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은 다시 나에게 한국말로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럼, 나는 다시 이 상황을 불어로 남편에게 전하고, 남편은 다시 흥분된 감정을 나에게는 불어로, 의사에게는 큰 몸짓을 섞어 영어로 표현했다.

세 사람 사이에는 이미 팽팽한 긴장감과 안타까움이 감돌았고, 세 언어 또한 고조된 감정의 날개를 달고 작은 진료실 안을 종횡무진 했다. 한 사람의 말이 뱉어지자마자 나와야 할 상대방의 반응은 이 상황에서는 5초 정도씩 뒤로 후퇴되어 있었다.  

나는 한국어가 능통하지 못한 외국인 남편과 사는 탓에 이러한 상황에 종종 부딪칠 때가 있다. 보통 내가 나서서 개입을 해야 하는 상황은 으레 유쾌하지 않은 일일 때가 많은데 바로 오늘 같은 날이 그렇다. 오늘도 사건 이후에 몰려오는 육체적, 신체적 피로감에 시달려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늘 그렇듯이 두 개(한국어, 불어) 또는 세 개의 언어(한국어, 불어, 영어)가 등장을 하고, 나는 여러 언어나 두 진영의 중간에서 긴장감을 잃지 않으며 의미와 감정까지 전달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남편의 입장을 옹호해야 할 때가 많지만, 가끔은 중간자적인 입장에 서 생각하게 될 때도 있다. 이렇게 중립적인 자세로 양쪽의 입장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서로의 입장을 감안하여 말을 전달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격한 감정적 대립을 완화시키게 된다. 사실 남편의 불만 섞인 비난을 다 들어야 했던 그 젊은 의사는 남편의 수술 집도의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 의사에게 비난을 쏟아 부어야 하는 상황이 사실 나에게는 매우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감당해야 하는 의사가 자신의 직업에 대해 순간적으로 뼈저린 회의를 할 것 같은 염려도 되었다.  

나의 중립적 통역관 역할은 가끔 빛을 발휘하기도 하는데, 그것이 바로 오늘과 같은 상황에서이다. 남편의 격한 감정 표현이 나를 한번 거치게 되면 좀 더 완화된 한국어로 의사에게 전달이 된다. 의사가 한국어로 하는 황당무계한 변명도 나의 귀와 머리를 통해 좀 더 설명적인 불어로 뒤바뀌어 남편에게 전달된다.

이렇게 되면 양쪽 진영의 격한 감정과 긴장은 훨씬 누그러지며 좀 더 느슨한 분위기가 된다. 이런 나의 중립적 역할을 두 사람이 눈치 채지 못하게 완결시키면 다행이지만, 가끔 한국말을 이해하기도 하는 남편은 자신의 편이 되지 않는다며 비교적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하려는 나를 나무라기도 한다.

오늘 사건은 세 사람 모두를 충분히 지치게 하는 힘든 일이 되고도 남을 정도였다. 하지만 세 언어의 공존 덕택으로 이 긴장되고 격한 상황은 좀 더 느슨하게 흘러갈 수 있었다. 이런 다행스러운 결과의 도출에는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하려 했던 나의 통역관 역할도 한 몫 했다고 자부한다. 요즘 내 아들도 수영장과 태권도장에서 프랑스 친구들과 한국인 강사 사이에서 통역관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내 아들에게도 이런 상황이 닥치면 슬기롭게 잘 대처해 원만한 길을 잘 제시해 낼 수 있기를 바란다.  


박성원

박성원은 삼성인력개발원과 국, 내외 대학의 한국어 교육기관에서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국어 교육을 해 왔다. 유럽인과 결혼해 다문화 가정에서 다문화, 다언어를 실제 공간에서 체험하고 있기도 하다. 현재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며 다문화-다중언어를 위한 언어문화운동을 기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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