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보 및 저역서의 기초는 2020년 8월 11일 숭실대학교·양구군·흥사단 주최 <이당 안병욱 선생 100주년 기념행사> 에서 이당 선생의 제자 김선욱 교수가 발표한 “안병욱 선생의 생애와 사상” 원고를 참조하였음.)
-1920년 8월 10일(음력 6월 26일) 평안남도 용강(龍岡)에서 출생하다
“나는 내 고향의 이름자를 특히 좋아한다. 용이 낳은 언덕이라고 하였다. 용은 여의주를 입에 물고 있는 신령한 상상의 동물이다. (…) 그러나 나의 고향 용강에서는 불행히도 용이 나오지는 않았다. (…) 그래도 비범한 인재들이 나와서 구국제민(救國濟民)을 위해서 싸웠다. 임진왜란 때 의기 계월향(義妓 桂月香)과 더불어 서북쪽에서 큰 공을 세운 의장 김경서(義將 金景瑞)가 나왔다. 또 이조말의 민중 봉기(民衆 蜂起)의 혁명을 일으켰던 일대의 풍운아 홍경래(洪景來)도 용강땅 출신이다. 오석산(烏石山)의 정기(精氣)와 삼화우산(三和牛山)의 맑은 혼과, 대동강의 줄기찬 물줄기와 황해의 넓은 바다, 이 네 가지 요소로 구성된 곳이 평남의 서남단(西南端)인 용강의 풍토다.”(안병욱, 『安秉煜에세이1,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교육도서, 1988, pp.43~44)
“나의 고향은 약 200호쯤 되는 부유한 농촌이었다. 나는 그 마음에서 제일 여유있는 지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안씨(安氏)가 백여 호 살았다.... 나는 성품이 순하고 정직하다. 옳은 것을 좋아하고 마음속에 악의(惡意)가 없고 남과 화목하게 지내려고 애쓰는 나의 성격은 순박한 농촌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나는 여덟 살 때까지 고향에서 살았다. 그 후 여기저기를 전전하면서 살아왔다. 진남포로 평양으로 일본으로 중국으로 그리고 서울로, 이제는 고향이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안병욱, 『安秉煜에세이 9, 너와 나의 만남』, 교육도서, 1988, pp.36~37)
-1933년~38년 평양고등보통학교 졸업
-1936년 춘원 이광수를 만나다
15세 중학교 2학년 때 춘원의 처녀작을 읽게 되었다.
16세의 이당이 춘원 이광수의 책이 자신이 인생을 바꿨다고 말한다.
“나는 춘원의 문학 중에서 『유정(有情)』을 제일 애독했다. 춘원 자신도 자기가 쓴 소설 중에서 이 소설이 제일 마음에 든다고 한 일이 있다.”
16세에 『삼인시가집(三人詩歌集)』을 애독했다. 춘원과 주요한과 김동환 세 시인의 서정시를 모은 것이다. 그 중에서도 춘원의 <붓 한 자루>란 시를 특히 좋아했다.
붓 한 자루
붓 한 자루
나와 일생을 같이 하련다
무거운 은혜
인생에서 받는 각가지 은혜
언제나 갚으리
무엇해서 갚으리! 망연해도
쓰린 가슴을
부둠고 가는 나그네 무리
쉬어나 가리
내 하는 이야기를 듣고나 가리
붓 한 자루야
우리는 이야기를 써 볼까이나
(춘원의 30대 1925년 <조선문단> 2월호에 발표)
중학교 시절 춘원의 작품을 모두 독파하게 되었다.
평양고등보통학교 학생 시절에 춘원문학에 미쳐 살았다고 고백(안병욱, 『희망이 있는 곳에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자유시대사, 1991, p.36; 안병욱, 『安秉煜에세이1, 뜻이 있는 곳에 길이』, 교육도서, 1988, pp.38~40)
-1937년 도산 안창호를 알게 되다
17세 때 도산이 병환으로 가석방 되어 고향 송산리에 방문해서 강연을 할 때 도산 안창호를 알게 되다. 그 만남의 회상이 동아일보를 거쳐 고려대학교에서 펴낸 도산 강연집 서문에 수록되다.
도산은 평남 강서군에 점진학교를 세웠다. “점진은 쉬지 않고 꾸준히 나아가는 것이다. 천천히 나아가는 것은 완진(緩進)이요, 급하게 나아가는 것은 급진(急進)이다. 점진은 목표를 향하여 일보 일보 착실하게 계속적으로 전진하는 것이다. 급하게 나아가면 넘어지기 쉽고, 천천히 나아가면 부지하세월(不知何歲月)이다. 서두르지도 말고 쉬지도 말고 꾸준히 나아가자.”(안병욱, 『빛과 지혜의 샘터』, 철학과현실사, 1992, p.52)
-1939년~1941년 와세다대학교 제2고등학교
‘동경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 이나게라는 일본 선생한테서 심리학 강의를 들었다. 그 선생은 “나의 소원은 교탁을 붙들고 교단에서 쓰러지는 일입니다”라고 말하였다. 그 때의 말이 박혀서 “나도 교단에서 쓰러지자”라는 신념과 각오를 가지고 학생들 앞에 섰었다.’(안병욱, 『安秉煜에세이6, 철학노트』, 교육도서, 1988, p.192)
-1941년~1943년 와세다대학교 문학부 철학과
‘1941년 봄 동경 와세다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하여 윤리학을 전공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스코스 윤리학 영역본을 구입해서 열심히 읽었다.
한시(漢詩)에 열중했다. 도서관에 박혀서 왕유(王維), 위응물(韋應物), 맹호연(孟浩然) 등의 시집을 노트에 베끼는 것이 고되면서도 즐거운 일이었다.’(안병욱, 『安秉煜에세이9, 너와 나의 만남』, 교육도서, 1988, p.50)
와세다대학교 재학 시절 동경에서 윤동주를 만나다.
그 당시 이당은 철학 전공이었고, 윤동주는 경도(京都)의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있었다.
“나는 동경 하숙방에서 윤동주를 만났다. 그는 나보다 세 살 위였다. 우리는 만나자마자 의기투합했다. 20대의 젊은 대학생인 우리들은 밤새껏 문학을 말하고 인생을 논하고 민족을 얘기했다. 그는 조용하고 순수하고 성실했다. 말이 적었고 얼굴에 호젓한 미소를 자주 지었다.”
(안병욱, 『빛과 지혜의 샘터』, 철학과현실사, 1992, p.57; 안병욱, 『安秉煜에세이11, 생의 푸른 초원에서』, 교육도서, 1988, p.106)
-1946년~1948년 경기고등학교 교사
-1947년 경기중학교에서 국어교사로 근무하다.
문필활동과 평안도 사투리를 고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회고하다.
-1949년~1954년 서울고등학교 교사
-1954년~1956년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강사
-1955년~1965년 「사상계」를 통해 함석헌과 장준하를 만나고, 편집위원 및 주간(1958년)을 지내다.
김선욱 교수의 발표 자료에 의하면, 사상계가 1970년에 폐간될 때 폐간될 때까지 총 88편의 글을 올렸다고 한다.
사상계의 장준하를 형으로 부를 정도로 두터운 호의와 우정의 관계를 나누다.
35~36세경부터 45~46세경까지 약 10여 년 동안 주간과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다.(11집, 54)
자유당 시절 사상계의 독자의 수가 가장 많을 때 편집주간을 하고 있었으며, 이때 함석헌은 용감하게 필봉(筆鋒)을 휘둘렀다. “함 선생은 총을 잡는 마음으로 펜을 잡았다. 언젠가 나보고 한 말이 생각난다.” “불의의 시대에 의인의 갈 곳은 감옥이다. 내가 아직 감옥에 안 가고 있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함석헌은 사상계에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는 글을 쓰고 필화 사건으로 영어(囹圄)의 몸이 되었다. 함석헌이 사상계에 처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1956년 1월호부터다. <한국 기독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글을 써서 한국 기독교계에 따끔한 경종을 올리고 진지한 반성을 촉구했다. 이 글은 사상계의 부수를 부쩍 늘인 글이다. 함석헌은 한문은 물론 영어, 그리스어에 능통했다. 이당이 평양고보(平壤高普)를 다닐 무렵 함석헌은 정주(定州) 오산고보(五山高普)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는데, 이 때부터 도깨비라는 별명이 붙었다. 함석헌에 대해서는 세상에 호불호(好不好) 찬불찬(贊不贊)이 많다. 이당도 불찬성하는 점이 많다고 하면서 다만, 그의 소크라테스적 지성의 본보기를 본다고 평가했다.
““그러면 젊은 혼들아, 일어나라. 이 고난의 짐을 지자. 위대한 사명을 믿으면서 거룩한 사랑에 불타면서 죄악에 더럽힌 이 지구를 매고 순교자의 걸음으로 고난의 연옥을 걷자.” 『뜻으로 본 한국역사』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피날레의 말이다. 그것은 비장하면서 아름다운 기도다.”(안병욱, 『安秉煜에세이6, 철학노트』, 교육도서, 1988, p.53, pp.171~176)
-1956년~1958년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전임강사
-1958년~1985년 숭실대학교 철학과 교수
-1961년 미국 조지아주 머서대학교(mercer university) 교환교수
1961~1962년 사이에 미국의 저명한 철학자 M. White, Willard V. O. Quine, J. Wild, R. Carnap, F. S. C. Northrop과 만나다.
-1962년 미국 아이오와주 코넬대학(cornell college) 교환교수(한국철학, 중국철학 강의)
-1962년 6월 버트런드 러셀(B. Russell)을 만나다
러셀의 『행복론』을 번역하고 여러 저서를 애독했다. 이당은 그를 사숙하고 존경했다.
“나의 생애에서 가장 흐뭇하고 행복한 만남은 20세기 최대의 사상가요, 철학자의 한 사람인 버트런드 러셀과의 소중한 만남이다”(안병욱, 『安秉煜에세이12, 지혜롭게 사는 길』, 교육도서, 1988, pp.153~154)
-1965~2000년 흥사단아카데미 10만 회원 지도 및 양성
-1982년 숭실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소장
-1983년~1986년 흥사단공의회 회장
-1983년 안중근 의사 숭모회 이사
-1985년 경기대학교 대학원 초빙교수
-1985년 인하대학교 명예문학박사
-1985년~1990년 숭실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
-1987년~1990년 흥사단 이사장
춘원 이광수의 권유에 따라 도산 안창호가 창립한 민족운동단체인 ‘흥사단’에 가입했다. 박인주(전 청와대 수석) 전 흥사단 이사장은 이당이 이른바 이념동아리 성격과도 같은 흥사단 ‘청년아카데미’ 운동을 전개하면서 도산의 정신대로 사신 분이라고 회고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현재 60~70대 연령층의 기성세대들은 안병욱 교수님의 강연을 통해서 도산사상을 전해 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비록 그는 도산을 직접 본 적은 없으나, 도산의 정신대로 살다간 현대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인물입니다.”
박종화 목사(경동교회 원로목사)는 “당시 신학대학과 목회자들의 유명 강연자로 이당을 지목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고 말했습니다.
-1989년 도산아카데미 연구원 설립 대표
-1992년 안중근 의사 기념사업회 이사
-1992년 도산아카데미 연구원 고문
-1992년 월드리서치연구소 고문
-1993년 도산기념사업회 이사
-1998년 숭실대학교 명예철학박사
-2000년 한국NGO지도자총연합 고문
-2013년 10월 7일 영면하다
그는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동수리 파로호 근처에 있는 양구 인문학박물관 ‘김형석·안병욱 철학의 집’ 옆 ‘시와 철학의 집’뒤 공원에 잠들어 있다. 이곳은 양구군에서 안병욱과 김형석 그리고 이해인 수녀의 철학과 문학세계를 기념해 만들었다. 2012년 12월 개관한 이곳은 양구가 고향인 이해인 수녀의 ‘이해인 시 문학관’과 ‘김형석·안병욱 철학의 집’으로 꾸며졌다. 북한이 고향인 김형석, 안병욱 두 사람을 기려 고향과 가까운 양구군에서 기념관을 조성했다.
수상
-1985년 국민훈장모란장
-1998년 제3회 도산인상
-2007년 제9회 인제인성대상
-2009년 제8회 유일한상
※저서 및 번역서
【잡지 및 신문기고원고】
<실존주의의 계보>(사상계. 21. 1955. 4), <자유의 윤리>(사상계. 1955. 8), <현대사상강좌>(사상계. 1955. 10), <휴머니즘>(사상계. 1955. 11), <프래그머티즘>(사상계. 1956. 1), <허무주의>(사상계. 1956. 2), <실존주의>(사상계. 1956. 3), <현대적 세계관>(사상계. 1956. 4ㆍ5), <슈바이처>(사상계. 1956. 6), <소크라테스>(사상계. 1956. 8), <플라톤>(사상계. 1956. 10), <문화에 대한 정열: 민족의 존재이유>(사상계. 1956. 12), <베이콘>(사상계. 1957. 3), <새로운 세게관의 모색>(사상계. 1957. 4), <‘도의원론(道義原論)’ 김두헌 서평>(사상계. 1958. 3), <벨그송: 사상과 생애>(사상계. 1958. 7), <실존주의의 사상적 계보>(사상계. 1958. 8), <자유의 아포리아: 자유개념의 사적(史的) 전개를 중심으로>(사상계. 1958. 12), <육체(肉體)의 지혜(知慧)>(사상계. 1959. 2), <기성질서에 대한 레지스탕스의 구조>(사상계. 1959. 4), <나의 봉변기(逢變記)>(사상계. 1959. 5), <여정(旅情)>(사상계. 1959. 9), <역사의 알파와 오메가: 자유사관(自由史觀)의 구조>(사상계. 1959. 10), <휴머니즘의 계보>(사상계. 1959. 12), <가치개념의 변천>(세계 2. 1960. 5), <기계의 논리와 윤리>(사상계 8. 1960. 5), <러셀이 본 20세기 철학>(세계 2. 1960. 6), <이(利)의 세대와 의(義)의 세대>(사상계 8. 1960. 6), <기계ㆍ조직ㆍ인간>(새벽. 1960. 9), <산정(山情)>(현대문학. 1960. 9), <러셀과의 대화: 지성ㆍ행동ㆍ자유의 인간>(사상계. 1962. 9), <언어의 논리적 분석: 카르나프의 인상(印象)>(사상계. 1962. 11), <40고개>(사상계. 1963. 1), <현대철학사조의 계보: 이데아와 로고스의 철학에서 리얼리티와 파토스의 철학으로>(사상계. 1963. 4), <행복에의 추구>(신사조 15. 1963. 5), <20세기의 현대인과 철학적 모험>(Fides. 1963. 6), <여창산책(旅窓散策)>(사상계. 1963. 7), <미와 진실의 탐구: 레날도 다 빈치의 인간상>(사상계. 1963. 8), <4월의 하늘 밑을>(문학춘추. 1964. 4), <4월의 태양을 바라보라: 사일구 그 4주년을 맞으며>(사상계. 1964. 4), <조화의 감각(感覺)>(사상계. 1964. 7), <필연과 자유의 대화: 야스퍼스의 역사관을 중심으로>(사상계. 1964. 9), <문장도(文章道)>(문학춘추. 1964. 9), <신문의 사상적 자세, 철학적 견지에서>(신문평론 3. 1964. 6), <배신과 보복의 반윤리: 언론인의 자세와 정치인의 모럴>(사상계. 1964. 10), <죽음의 철학>(사상계. 1964. 11), <사랑과 신념과 사명: 새해에 젊은 학생에게 주는 수상(隨想)>(사상계. 1965. 1), <옆에서 지켜본 ‘사상계(思想界)’ 12년: 비판과 저항의 정신사(精神史)>(사상계. 1965. 4), <맑스의 무신론(無神論): 유물변증법이라는 신화(神話)>(기독교사상. 1965. 10), <하늘>(현대문학. 1965. 11), <지와 미의 향연>(사상계. 1966. 1), <인생의 시험>(현대문학. 1966. 2), <창조자와 피조자(被造者)의 대화: 기독교적 인간상>(사상계. 1966. 2), <신프로메테우스의 탄생: 근대적 인간상>(사상계. 1966. 3), <대학신입생 제군에게>(신동아 20. 1966. 4), <근대인의 의식구조: 근대적 인간상 2>(사상계. 1966. 4), <신(神)들의 대화: 윤리적 생활종교를 건설하자>(종교계 3. 1966. 4), <합리적 사고(思考)의 결핍: 한국인의 정신풍토>(정경연구. 1966. 8), <진보에의 의지: 근대적 인간상>(사상계. 1966. 8), <나와 너의 윤리: 사색의 포럼 6>(사상계. 1966. 9), <이광수의 ‘민족개조론’: 민족백년대계를 구상한 대경륜(大經綸)의 서(書)>(사상계. 1967. 1), <사회에서 바라는 의학교육(醫學敎育)>(醫脈 1. 1967. 2), <휴머니즘의 아포리아>(사상계. 1967. 3), <미래를 바라보는 농촌청년들에게>(農園. 1967. 4), <존재법칙열(存在法則悅)>(현대문학. 1967. 10), <현대의 사상: 네 개의 M이 우리에게 도전>(서울工大 633. 1967. 12), <현대의 삼강오륜>(사상계. 1968. 1), <고뇌와 죄악: 불교와 기독교의 대비(對比)>(기독교사상. 1968. 1), <자각과 신앙>(기독교사상. 1968. 2), <힘을 기르소서: 도산 서거 30주년에 붙이는 글>(사상계. 1968. 3), <무신론과 유신론>(기독교사상. 1968. 3), <성실하게 사는 지혜>(숙대학보 8. 1968. 4), <도덕적 생활종교>(기독교사상. 1968. 4), <역사를 보는 눈>(사상계. 1968. 4), <이상적 청년상(靑年像)>(청오 2. 1968. 6), <창조와 혼돈의 장(章)>(사상계. 1968. 8), <유물사관(唯物史觀)과 우리의 역사관>(자유. 1968. 8), <민족부흥과 4대 정신>(기러기. 1968. 8), <한국대학생의 가치관>(사상계. 1968. 11), <인격의 발견: 자타의 생명의 존엄을 자각하자>(藥苑 12. 1969. 2), <도산(島山)의 말과 글>(기러기. 1969. 2), <삼일운동과 한국민족의 진로>(교육평론 125. 1969. 3), <한국적 지사도(志士道)란 무엇인가>(사상계. 1969. 7), <현대와 우상 오늘의 비극은 어디에 있는가>(우리시대. 1969. 7ㆍ8), <민주교육자론(民主敎育者論)>(사상계. 1969. 9), <가치관의 조용한 혁명>(현대교육. 1969. 9), <진실과 비폭력의 성웅(聖雄): 간디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글>(사상계. 1969. 10), <한국사회의 미래상>(기독교사상. 1969. 10), <창조적 지성: 대학생과 현실참여>(常綠. 1969. 11), <번영의 자세>(중앙행정 1. 1969. 11), <칼의 힘과 펜의 힘>(사상계. 1969. 12), <진리의 샘>(기러기. 1969. 12), <우리의 정신지표>(기러기. 1970. 1), <한국의 이상적 지식인상(像)>(월간충청. 1970. 3), <러셀의 인간과 생애>(사상계. 1970. 3), <러셀의 인간과 사상>(사상계. 1970. 4), <지성의 선언>(월간충청. 1970. 7), <진리의 샘>(기러기. 1970. 7), <진리의 샘>(기러기. 1970. 8), <지성인의 3대 좌표>(교육연구. 1970. 8), <가치: 자유와 번영과 신의(信義)>(기독교사상. 1970. 8), <진리의 샘>(기러기. 1970. 9), <러셀의 인간과 사상>(1970), <진리의 샘>(기러기. 1971. 1), <성실론(誠實論)>(圓光 69. 1971. 4), <현대인의 정신구조>(농민문화 21. 1971. 5), <흥(興)의 원리와 망(亡)의 원리>(경협 84. 1971. 7), <진리의 샘>(기러기. 1971. 8), <출판인의 사명과 자세>(출판문화 72. 1971. 9), <진리의 샘>(기러기. 1971. 10), <진리의 샘>(기러기. 1971. 12), <싸움>(現存 26. 1971. 12), <사상적 측면에서 본 함석헌(咸錫憲)>(씨ᄋᆞᆯ의소리. 1971. 12), <성실은 부패를 막는 원리다>(자유. 1971. 12), <농촌지도자의 정신자세>(농민문화 28. 1972. 1), <자유의 파수병>(東亞財經. 1972. 1), <민족의 좌우명을 찾아>(창조. 1972. 1), <진실과 자주(自主)와 사명>(협동 65. 1972. 1), <진리의 샘>(기러기. 1972. 1), <노예>(現存 27. 1972. 1), <지성의 3대 좌표(座標)>(藥苑 15. 1972. 2), <자주정신과 협동정신>(농촌근대화. 1972. 3), <자각(自覺)과 긍지와 정열을 갖고 교단(敎壇)에 서자: 새로 교단에 서는 분들에게>(새교육. 1972. 3), <나는 죽음을 이렇게 본다: 죽음과 부활>(기독교사상. 1972. 4), <국가발전과 도서관>(도서관 167. 1972. 4), <충무정신(忠武精神)과 한국의 지도자상>(새충남. 1972. 4), <민족부흥의 철학: 자력갱생(自力更生)과 실무역행(實務力行)>(東亞政經.1972. 5), <현대청년의 정신적 좌표>(자유. 1972. 6), <새 엘리트상(像)>(민족. 1972. 7), <역사: 심판으로서의 역사>(現存 33. 1972. 8), <진리의 샘>(기러기. 1972. 8), <창조적 가치관>(會計 9. 1972. 9), <인간상실과 인간회복>(기러기. 1972. 9), <민족혼과 동포애(同胞愛)로: 5천만 동포에게 보내는 편지>(씨ᄋᆞᆯ의소리 14. 1972. 9), <비전의 사람이 되자>(기러기. 1972. 12), <스피노자, 소크라테스에서 솔제니친까지: 지식인의 수난사(受難史)>(문학사상 4. 1973. 1), <남북대화와 국민의 자세>(국토통일 31. 1973. 1), <존재의 의미>(씨ᄋᆞᆯ의소리 18. 1973. 1), <우리의 전통과 교육>(교육과학 57. 1973. 3), <삼일정신의 재평가>(기독교사상. 1973. 3), <경제발전과 인간회복: 경제발전이 인간화란 목표에 봉사해야>(財政. 1973. 4), <진리의 샘>(기러기. 1973. 4), <우리의 전통과 교육: 한국교육발전의 전기(轉機) 형성>(교육평론 174. 1973. 4), <지성의 좌표: 방황하는 한국지성의 올바른 건립을 위하여>(梨花 28. 1973. 6), <한용운과 저항의 인간>(통일세계 31. 1973. 6), <현대사상과 실존주의>(통일세계 32. 1973. 7), <진리의 샘: 사색 노우트>(기러기. 1973. 7ㆍ8), <한국인의 실상(實像)>(기업경영 184. 1973. 8), <민족주체사상과 교육자의 자세>(중등교육 25. 1973. 8), <현대인과 서예>(월간서예 창간호. 1973. 9), <민족정기론(民族正氣論): 한국사상의 모색>(씨ᄋᆞᆯ의소리 27. 1973. 10), <브루노: 소크라테스에서 솔제니친까지>(문학사상 14. 1973. 11), <석가의 사생관(死生觀)>(法施 76. 1974. 1), <창조적 생활의 윤리>(會計 11. 1974. 2), <진리의 샘>(기러기 110. 1974. 1/2), <청소년의 의미>(통일세계 40. 1974. 3), <흥국(興國)의 기본철학>(기러기 111. 1974. 3), <학문은 진리의 바다>(새교육 233. 1974. 3), <사회 부조리의 병리(病理)>(財政. 1974. 3), <민족대표의 청절(淸節)과 변절(變節): 삼일절에 다시 생각한다>(월간중앙 72. 1974. 3), <나의 서도관(書道觀)>(書通. 1974 춘), <자아의 발견>(政訓 3. 1974. 4), <민족문화의 좌표>(숙대학보 14. 1974. 4), <사명의 자각>(政訓 4. 1974. 5), <인간의 자아의식>(기독교사상 193. 1974. 6), <가치의 창조>(政訓 6. 1974. 7), <가치의 원리>(政訓 7. 1974. 8), <외로운 야인(野人) 쏘로: 소크라테스에서 솔제니친까지>(문학사상 23. 1974. 8), <평화를 위한 제언(提言)>(광장 16. 1974. 9), <삼차원의 가치관>(政訓 8. 1974. 9), <참여의 조건은 무엇인가>(財政. 1974. 10), <민족발전의 철학>(기러기 121. 1975. 3), <창조와 비약의 생(生)>(기독교사상 204. 1975. 5), <국난극복(國難克服)의 자세>(기러기 124. 1975. 6), <존경받는 교사의 자세>(수도교육 20. 1975. 6), <인격의 수양>(書通. 1975. 춘/하), <지도자론>(현대경영 112. 1976. 2), <가치의 붕괴 속에서>(기독교사상 212. 1976 .2), <보시(布施)의 정신: 현대불교인의 자세>(法施 134. 1976. 6), <바람직한 직업관의 확립>(기업경영 218. 1976. 6), <이단(異端)의 서(書) ‘바보예찬’>(독서생활 7. 1976. 6), <새 세대를 아끼고 보람 있게 기르자>(시사 158. 1976. 11), <인생의 길>(한국문학 37. 1976. 11), <기업인의 자세>(上場協 2. 1980. 10), <생의 철학, 지혜와 성실>(산공메아리 13. 1981. 5), <현대인과 직업정신>(淨化 6. 1981. 7), <나라사랑에 대한 신념>(경찰고시 207. 1982. 1), <새로운 가치관과 생애관리>(총력안보 112. 1982. 2), <경영인의 자세>(한국기계공구 38. 1982. 3), <새시대 공무원의 윤리>(지방행정 342. 1982. 4), <공직자의 여덟 가지 신조>(경찰고시 211. 1982. 5),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안창호>(기러기 203. 1982. 6), <주인정신(主人精神)>(국회보 190. 1982. 8), <이상적 한국인상의 정립>(기러기. 1982. 12ㆍ1983. 1ㆍ2ㆍ3), <생의 지혜: 버리는 공부, 대화의 자세>(地籍 97. 1983. 4), <동서윤리의 비교>(정신문화연구 18. 1983. 11), <성실과 화목과 봉사>(은행계 215. 1984. 4), <사감원리(四感原理)>(재경춘추 1. 1984. 9), <평생교육의 필요성>(교육연구 187. 1985. 2), <도산사상의 재음미>(통일한국 17. 1985. 4), <인격은 갈고 닦는 것>(자녀교육. 1985. 4), <경로효친 교육의 방향>(문교경북 83. 1985. 6), <사물을 바라보는 눈>(국회보 227. 1985. 9), <애정의 충족 속에 행복은 존재한다>(자녀교육. 1985. 12), <빛과 지혜의 샘터>(기러기 256. 1987. 5), <현대사회와 윤리>(국회보 247. 1987. 5), <전인교육론>(현대이념연구 5. 1987. 12), <민주주의와 대화의 정신>(자유공론 265. 1989. 4), <종교의 알파와 오메가>(한국종교 14. 1989. 5)
【에세이집】
【철학저서】
<현대사상(現代思想)>(영신문화사. 1952), <키엘케골>(사상계사. 1959), <철학개론>(삼중당. 1964), <파스칼사상>(지문각. 1964), <파스칼>(지문각. 1964), <민족의 스승 도산 안창호>(대성문화사. 1966), <인생은 예술처럼>(민중서관, 1968), <휴머니즘>(민중서관. 1969), <도산사상(島山思想)>(대성문화사. 1970), <도산 안창호>(금문사. 1972), <키에르케고르 사상>(삼육출판사. 1973), <휴머니즘 사상>(삼육출판사. 1976), <인도 사상가의 세계관>(선일문화사. 1977), <세계위인회고록>(의명당. 1983), <세계사(世界史)와 민족의 이상(理想)>(철학과현실사. 1990), <인생론>(철학과현실사. 1993), <논어인생론>(자유문학사. 1996)
【번역서】
<미국철학사(美國哲學史)>(Joseph L. Blau. 사상계사. 1955), <실존주의철학>(John wild. 탐구당. 1957), <아브라함 링컨>(Benjamin P. Thomas. 사상계사. 1956), <행복의 철학>(B. Russell. 민중서관. 1958), <현대인의 아편(阿片)>(Raymond Aron. 창문사. 1967), <지식인의 아편(阿片)>(Raymond Aron. 삼육출판사. 1986)
※이당 안병욱 교수 저작목록
※안병욱 선생님 <사상계> 기고문(번역 및 저술) 목록 (좌담 제외)
1. 「回顧와 展望: 화이트헤드의 對話」, 루우씬 프라이스 (安秉煜 譯). 13호(1954년 8월)
2. 「歷史는 矛言할 수 있는가?」, 라인홀드 니버 (安秉煜 譯). 14호(1954년 9월)
3. 「世界史의 課題: 世界平和에 對한 構想」, 버틀랜드 러셀 (安秉煜 譯). 16호(1954년 11월)
4. 隨筆 「貧困의 族譜」, 安秉煜. 20호(1955년 3월)
5. 「實存主義의 系譜」, 安秉煜. 21호(1955년 4월)
6. 「大學生活의 反省」, 安秉煜. 23호(1955년 6월)
7. 「自由의 倫理」, 安秉煜. 25호(1955년 8월)
8. 「휴매니즘」, 安秉煜. 28호(1955년 11월)
9. 「生의 哲學」, 安秉煜. 29호(1955년 12월)
10. 「虛無主義」, 安秉煜. 31호(1956년 2월)
11. 「實存主義」, 安秉煜. 32호(1956년 3월)
12. 「現代的 世界觀(上)」, 安秉煜. 33호(1956년 4월)
13. 「現代的世界觀(下)」, 安秉煜. 34호(1956년 5월)
14. 「슈바이처: 生의哲學者」, 安秉煜. 35호(1956년 6월)
15. 「쏘크라테스」, 安秉煜. 37호(1956년 8월)
16. 「連載敎養-思想과 生涯 ②: 續 쏘크라테스」, 安秉煜. 38호(1956년 9월)
17 「連載敎養-思想과 生涯 ③: 플라톤」, 安秉煜. 39호(1956년 10월)
18. 「文化에 對한 情熱: 民族의 存在 理由」, 安秉煜. 41호(1956년 12월)
10. 「連載敎養-思想과生涯 ⑧: 베이콘(Bacon)」, 安秉煜. 44호(1957년 3월)
20. 「새로운 世界觀의 模索」, 安秉煜. 45호(1957년 4월)
21. 「社會機構와 휴매니즘」, 安秉煜. 51호(1957년 10월)
22. 「죤·와일드 著 「實存主義哲學」, 安秉煜. 55호(1958년 2월)
23. 「金斗憲著 道義原論」, 安秉煜. 56호(1958년 3월)
24. 「思想과 生涯 22-벨그송」, 安秉煜. 60호(1958년 7월)
25. 「實存主義의 思想的系譜」, 安秉煜. 61호(1958년 8월)
26. 「自由의 아포리아 :自由槪念의 史的展開를 중심으로」, 安秉煜. 65호(1958년 12월)
27. 「肉體의 智慧」, 安秉煜. 67호(1959년 2월)
28. 「旣成秩序에 對한 레지스탕스의 構造」, 安秉煜69호(1959년 4월)
29. 「나의 逢變記」, 安秉煜. 70호(1959년 5월)
30. 「歷史의 알파와 오메가: 自由史觀의 構造, 安秉煜. 75호(1959년 10월)
31. 「파스칼著 申相楚譯 팡세」, 安秉煜. 76호(1959년 11월)
32. 「휴머니즘의 系譜」, 安秉煜. 77호(1959년 12월)
33. 「‘言語의 意味’의 發見者: 빗트겐슈타인의 人間과 哲學」, 에리히 헬러(安秉煜 譯). 78호(1960년 1월)
34. 「言語形式에서 導出되는 誤解: 빗트겐슈타인의 人間과 哲學(下)」, 에리히 헬러(安秉煜 譯). 79호(1960년 2월)
35. 「利의 世代와 義의 世代」, 安秉煜. 83호(1960년 6월)
36. 「旅愁記」, 安秉煜. 87호(1960년 10월)
37.「哲學은 生活속에 있다, 朴鍾鴻, 安秉煜. 90호(1961년 1월)
38. 「哲學과 人間의 行動」, 시드니 후크(安秉煜 譯). 94호(1961년 5월)
39. 「럿셀과의 對話: 知性·行動·自由의 人間」, 安秉煜. 111호(1962년 9월)
40. 「言語의 論理的 分析: 카르나프의 印象」, 安秉煜. 113호(1962년 11월)
41. 「40고개」, 安秉煜. 116호(1963년 1월)
42. 리포트, 「現代哲學思潮의 系譜: 이데아와 로고스의 哲學에서 리얼리티와 파토스의 哲學으로」, 安秉煜. 119호(1963년 3월)
43. 「自由와 民主主義의 確立」, 安秉煜. 120호(1963년 4월)
44. 「나와 咸錫憲先生」, 安秉煜. 120호(1963년 4월)
45. 「손의 哲學」, 安秉煜. 122호(1963년 6월)
46. 「美와 眞實의 探求: 레오날도·다빈치의 人間像」, 安秉煜. 123호(1963년 7월)
47. 「倦怠보다는 죽음을: 레오날도· 다빈치의 人間象」, 安秉煜. 124호(1963년 8월)
48. 「不滅의 巨人: 레오날도· 다빈치의 生涯」, 安秉煜. 125호(1963년 9월)
49. 「近代의 프로메듀스: 레오날도 다 빈치의 藝術」, 安秉煜. 126호(1963년 10월)
50. 「韓國의 등불이 될 두冊: 『島山 安昌浩』와 『뜻으로 본 韓國歷史』」, 安秉煜. 127호(1963년 11월)
51. 「孤高의 精神」, 安秉煜. 129호(1963년 12월)
52. 「4月의 太陽을 바라보라!: 젊은 生命들이여 땅의 소금이 되자」, 安秉煜. 132호(1964년 4월)
53. 「調和의 感覺」, 安秉煜. 136호(1964년 7월)
54. 「必然과 自由의 對話: 야스퍼스의 歷史觀을 中心으로」, 安秉煜. 138호(1964년 9월)
55. 「背信과 報復의 反倫理: 言論人의 姿勢와 政治人의 모랄」, 安秉煜. 139호(1964년 10월)
56. 「죽음의 哲學: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어야 하나」, 安秉煜. 140호(1964년 11월)
57. 「사랑과 信念과 使命: 새 해에 젊은 學生에게 주는 隨想」, 安秉煜. 142호(1965년 1월)
58. 「越南에 平和를 가져오는 길: 美國政策을 批判하는 越南 知性人의 소리」, 황반지(安秉煜 譯).145호(1965년 4월)
59. 「옆에서 지켜본 「思想界」 12年: 批判과 抵抗의 精神史」, 安秉煜. 145호(1965년 4월)
60. 「사랑에 의한 革命: 낡은 不正의 秩序에 挑戰하는 非暴力의 哲學」, 마틴 루터 킹(안병욱 譯). 147호(1965년 6월)
61. 「解放 20年의 反省: 우리는 그 날을 떳떳이 回想할 수 있는가?」, 安秉煜. 150호(1965년 8월)
62. 「슈바이처의 生涯와 思想」, 그의 逝去에 부치는 글, 安秉煜. 152호(1965년 10월)
63. 「民衆의 證: 咸錫憲翁 60年의 발자취」, 咸錫憲, 安秉煜. 154호(1965년 12월)
64. 「知와 美의 饗宴: 希臘的 人間像」, 安秉煜. 155호(1966년 1월)
65. 「創造者와 被造者의 對話: 基督敎的 人間像」, 安秉煜. 156호(1966년 2월)
66. 「解放後 20年의 精神的 變貌」, 車基璧, 申一澈, 洪承勉, 安秉煜. 156호(1966년 2월)
67. 「新프로메테우스의 誕生: 近代的 人間像 (1)」, 安秉煜. 157호(1966년 3월)
68. 「近代人의 意識構造: 近代的 人間像(2)」, 安秉煜. 158호(1966년 4월)
69. 「人間의 獨立宣言: 近代的 人間像(3)」, 安秉煜. 159호(1966년 5월)
70. 「現代哲學思想① 實用主義哲學」, 安秉煜. 159호(1966년 5월)
71. 「進步에의 意志: 近代的 人間像(4)」, 安秉煜. 160호(1966년 8월)
72. 「나와 너의 倫理」, 安秉煜. 161호(1966년 9월)
73. 「金容基씨의 生活哲學」,金容基, 安秉煜. 162호(1966년 10월)
74. 「李光洙의 『民族改造論』: 民族100年大計를 構想한 大經綸의 書」, 安秉煜. 165호(1967년 1월)
75. 「휴머니즘의 아포리아」, 安秉煜. 167호(1967년 3월)
76. 「現代의 三綱五倫」, 安秉煜. 177호(1968년 1월)
77. 「<힘을 기르소서>: 島山 逝去 30周忌에 붙이는 글」, 安秉煜. 179호(1968년 3월)
78. 「歷史를 보는 눈」, 安秉煜. 180호(1968년 4월)
79. 「文化活動의 暗中摸索② 創造와 混沌의 章: 思潮의 변천」, 安秉煜. 184호(1968년 8월)
80. 「韓國大學生의 價値觀」, 安秉煜. 187호(1968년 11월)
81. 「나와 너와의 만남: 和와 誠과 敬의 秩序」, 安秉煜. 188호(1968년 12월)
82. 「韓國的 志士道란 무엇인가」, 安秉煜. 195호(1969년 7월)
83. 「民主敎育者論: 御用學者는 專制政治의 遺物이다」, 安秉煜. 197호(1969년 9월)
84. 「<이 사람을 보라> 眞實과 非暴力의 聖雄: 간디의 탄생 100周年을 기념하는 글」, 安秉煜. 198호(1969년 10월)
85. 「칼의 힘과 펜의 힘」, 安秉煜. 200호(1969년 12월)
86. 「럿셀의 人間과 生涯: 抵抗의 97年」, 安秉煜. 203호(1970년 3월)
87. 「럿셀의 人間과 思想: 創造의 哲學-럿셀의 基本思想(1)」, 安秉煜. 204호(1970년 4월)
88. 「自由의 哲學」, 安秉煜. 205호(1970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