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하프타임
축구경기에는 하프타임이 있다. 전반전이 끝나면 잠시 쉬며 후반전을 대비하는 시간이다. 이 시간은 코치가 선수들에게 전반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후반전에는 어떻게 하는 것이 효과적인지 대비해 준다. 이때 코치의 지도에 집중하지 않거나 대책 없이 임하면 후반전은 그야말로 공포의 시간이 되고 말 것이다. 인생도 그런 것 같다. 청년 시절을 보내고 중년을 지내면서 위기를 맞이하게 될 때 자신을 돌아보며 성찰하는 인생의 하프타임을 제대로 갖지 않으면 후반 인생이 망가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렇게 인생의 하프타임이 중요한데 우리 시니어들에게는 이 말이 아주 생소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사치스럽기까지 하다. 우리의 지난 시절은 일에 파묻혀 헤어나질 못했고, 빡빡한 일정에 잠을 설쳤다. 가정에 대한 책임감과 자녀 양육 등으로 스트레스를 받아 몸도 마음도 많이 상했다. 직장일 뿐만 아니라, 각자 맡은 여러 분야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열심히 살기 바빠서 하프타임 따위는 감히 엄두도 못 냈다.
그러면 인생의 하프타임은 언제일까. 인간수명을 100세로 볼 때 40∼50세가 이 시기라면 시니어들에게는 하프타임이 이미 지나가고 없는 것일까? 절대로 그렇지 않다. 하프타임은 나이로 구분하는 것이 아니다. 하프타임은 중년을 넘어서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앞날을 대비하려는 때라고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100세는 장수에 속하니 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준비되지 못한 장수를 과연 복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장수가 복이 되려면, 신체적으로 건강해야 하고 경제적으로도 넉넉해야 한다. 아울러 정신적으로도 풍요로워야 한다. 그러나 양질의 일자리는 쉽지 않다. 경제의 안정과 건강, 정신적 풍요는 분리적인 요소가 아니다. 이는 삼위일체적인 차원으로 갖추어져야 한다.
과연 어떻게 살아야 아름다운 노년을 보내는 것인지 고민은 더욱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문제가 있으면 반드시 해결책이 있고 답도 있게 마련이다. 그 답을 축구경기에서 찾아보자. 하프타임은 경기력을 혁신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시간이다. 지난 11월 15일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우즈베키스탄과 한국의 축구경기에서 전반전에 지던 한국이 후반전에 역전하였다. 이런 결과는 한국이 하프타임에 적절한 대책을 세웠기 때문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시니어들도 하프타임을 지혜롭고 알차게 보내야 한다. 과거를 성찰하며 미래를 꿈꾸며 꼼꼼하게 계획해야 한다. 이 일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 코치다. 시니어들에게도 이런 역할의 코치가 필요하다. 내 속사정을 잘 알아주고 진지하게 답해주는 멘토(mentor)가 필요하다.
남들은 적절한 멘토를 만나기가 어렵다지만, 나는 너무 쉽게 만날 수 있어서 행운이다. 우리 시니어들에게 인문학적 상상력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게 해주는 멘토가 있다. 그는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새로운 시대를 창조적인 사고와 혁신적 발상으로 현실화를 돕기 위해 혼신을 다한다. 우리를 새로운 주인공으로 우뚝 서게 하려는 열정과 지혜로 불타오르는 헌신의 대명사 박요섭 지도교수가 바로 그 멘토이기 때문이다.
인문학 시간은 나의 하프타임이다. 나는 이 시간을 통하여 내 인생이 새롭게 바뀌었다. 무의미하게 보내던 과거를 성찰하고 미래를 꿈꾸게 되었다. 방구석의 늙은 존재가 아니라 지금까지 많은 경험을 통해 얻은 경륜과 지혜가 시니어의 자존감이고, 그것들이 진귀한 보석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지난 내 삶에서 얻은 경험과 지혜는 내 인생의 도서관을 아름답게 채우고 있다는 사실도 자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에게 묻혀있는 보석이 젊은이와 또 다른 시니어들에게 소중한 가치가 될 수 있다는데 자부심마저 든다.
나는 새로운 시작을 결심하고 그것이 무엇일까를 찾아보았다. 참 인생은 초월적 삶을 통하여 이웃에게 이타적인 사람됨이 아닌가. 그렇다면 부족하지만 나도 누군가의 멘토로 살고자 한다. 이를 이루어 보자. 이 길을 걷는 학습 과정이 험하고 어렵더라도 멈춤 없이 전진해보자.
나는 이런 계획을 실천하려는 마음으로 출발을 모색하고 있다. 그 출발 역시 인문학 강좌에서 해답을 얻고 있다. 인문학 강좌를 통하여 자연스럽게 다가온 글짓기, 내게 너무 생소하고 어려워 꺼려왔던 그 글쓰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제는 글쓰기가 우연한 만남이라기보다 필연으로 자리 잡았다.
망설였던 글쓰기였지만, 어렵사리 썼던 글로 박 교수님의 칭찬을 받고서 큰 자신감을 얻었다. 박 교수님께서 멋지게 낭독해주시고 아낌없이 칭찬해주셨을 때 나는 최고의 명문대학교에서 수석이라도 한 것 같이 기뻤다. 그때 나는 물론 듣는 모두가 진한 감동에 휩싸였다. 그 시간이 잠시 멋쩍고 수줍어 얼떨떨해졌었지만, 그 후 힘을 얻어 5편이나 더 썼으니 내겐 대단한 성취가 아닐 수 없다.
역사학자 전우용 박사는 “나이가 들면 저절로 지식과 경륜이 늘고 인격이 높아질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 공부하지 않으면 무식이 늘고, 절제하지 않으면 탐욕이 늘고, 성찰하지 않으면 파렴치만 는다. 나이는 그냥 먹지만 인간은 저절로 나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는 이렇게 권하고 싶다. “시니어들이여! 하프타임을 마련하고 미래를 계획하라. 언제라도 좋으니 우리 인문학반에 와서 하프타임을 마련함으로 값있는 노후를 준비하라. 왜냐하면, 인문학은 사람답게 사는 것을 고민하게 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성공하는 사람은 목적과 비전이 있지만, 실패하는 사람은 현재 발등에 떨어진 불만 보고 목적을 알지 못한다”고 하였다. 한 번 지나간 시간이 돌아오지 않듯 잃어버린 인생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경제적 어려움이나 늙어 감을 두려워 말고 오히려 남은 시간을 아껴 쓰자. 마지막 날에 인생을 너무 헛되게 살았다고 탄식하게 되면 얼마나 안타까울까? 자기 관리하기에 따라 노년은 아름다워지기도 하고 슬프고 고달파지기도 한다. 시간을 아끼고 보람 있게 사용하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다.
나는 결심한다. 아름다운 노년을 보내기 위해 내게 맞는 하프타임을 계속해 잘 관리해 갈 것이다. 하루는 새벽에, 한 주간에는 인문학 시간을 하프타임으로 삼을 것이다. 그리하여 육체의 남은 때를 맑은 영혼과 함께 당당한 시니어로 행복하게 살아가리라. 이렇게 결심한 오늘이 내 남은 인생의 첫날이고 덤 인생의 시작이니 마음껏 자축하며 오늘을 힘차게 출발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