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한 낮 / 최병우
고춧잎은 수양버들처럼 늘어지고
바삐 날던 새도 지쳐 눈을 붙이니
마당에 어미개도 헐떡이다 못해 잠이 든
여름날 한 낮
아침부터 울던 매미 소리마저 끊겼다.
길게 드러누운 한적한 길에서는
신기루가 전설처럼 기어오르고
미루나무는 바람 한 점 없는 길가에
온종일 버티고 서서 누굴 기다리는지
건너편 참외밭 원두막에는
노란 참외의 달콤한 향기에 취해 잠든
농부의 얼굴에서 지친 여름이
가을로 물들어 가는 중인데
한 줄기 바람이 지나며
전해주는 한 겨울 이야기가
달콤한 사랑처럼 가슴에 젖어들면
어느새 마음에는 그 옛날의 눈이
하염없이 쏟아져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