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30(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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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이화여자대학교 명예석좌교수

안병욱 선생님과 저는 한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에세이 붐을 일으켰던 사람들입니다. 저는 선생님을 모시고 황폐한 정신세계에 작은 씨앗이나마 함께 뿌리고 다녔던 동반자였습니다. 철학에는 김형석 선생님과 안병욱 선생님, 문학 쪽에서는 제가 단순한 신변잡기가 아닌 하나의 에세이 붐을 통해 사람들이 생각을 하고 비전(vision)을 갖고 살 수 있도록 한 시대의 삶의 담론을 생산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인문학 콘서트 같은 많은 강연을 하고 다녔던 것입니다.  


지금은 흔하지만 <독서신문>에서 주최하는 인문학 콘서트 같은 행사로서 전국순회 강연을 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선생님과 제가 부산에서부터 전남 광주, 전주, 대전, 대구, 그리고 서울에 이르기까지 전국 순회강연을 했을 때가 가장 큰 인상으로 남습니다.   


그 시대는 제대로 된 강당이나 강연장이 없어서 예식장을 빌리는 경우가 허다했고, 시골에서는 심지어 극장을 빌려서 강연을 하는데 당대의 강연기록을 깰 정도로 젊은이들이 많이 몰려들었습니다. 한번은 선생님이 대전의 중도극장에서 강연을 할 당시, 매우 많은 사람들이 밀려와서 연단 위에까지도 청중들로 가득 채워졌었습니다. 그때 제가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선생님, 저들이 왜 자리에 이렇게 많이 모였을까요? 저들을 위해서 무엇을 하면 좋겠습니까?” 잘 알다시피 그 시절은 지금처럼 인터넷이나 여러 매체가 있었던 시절도 아니었습니다. 젊은이들은 오로지 책과 강연을 제외하고는 지식을 섭취하는 것은 물론 자기의 꿈을 키우면서 미래의 비전을 가질 수 있을 만한 장소와 공간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젊은이들의 고충을 고민하던 끝에 탄생한 것이 〈문학사상>이었습니다. 안병욱 선생님은 철학뿐만 아니라 간접적으로는 문학에 있어서도 큰 영향을 끼치신 분입니다. 비록 저와 길은 달랐을지라도, 많은 곳에서 선생님과 강연을 했을 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필자로서 잡지나 신문에 글을 쓰면서 동세대인과 같은 역할을 해 왔습니다.   


저도 이제 미수(米壽)의 나이 88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저보다 훨씬 새로운 미래를 젊은이들에게 열어 주셨던 안병욱 선생님과 함께 동행 했던 기억이 얼마나 소중했던가를 떠올리게 됩니다. 게다가 지금이야말로 저보다 연장자이셨던 안병욱 선생님의 왕성했던 ‘타우마제인(thaumazein)’, 곧 진리에 대한 욕망, 끝없이 경이로운 세계를 향해서 나아가는 탐구적 자세, 지적 모험 등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안병욱 선생님이 남기신 그 빈자리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채워야 합니다. 지성인들은 젊은이들로 하여금 정신세계의 풍요를 누리며 미래를 꿈꾸게 하려면 반드시 안병욱 선생님처럼 진리에 대한 열망을 멈추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 이화여자대학교 명예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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